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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이라는 시간을 담은 전시, 정연두 《백년 여행기》 | ARTLECTURE

100년이라는 시간을 담은 전시, 정연두 《백년 여행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Art & Preview/
by 민플루
100년이라는 시간을 담은 전시, 정연두 《백년 여행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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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이 자리를 빌어 고백하자면, 필자가 동시대 미술을 좋아하게 된 시작은 '정연두 작가'로부터다. 2005년 <로케이션>시리즈 작품들을 마주하고나서 본격적으로 미술에 마음을 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나서 20여년의 '시간'이 흘렀고 당시에는 주목받는 작가였던 그가, 이제는 한국 대표 작가가 되어 국립현대미술관 《백년 여행기》 라는 전시로 돌아왔다. 100년 이라는 시간을 담은 전시로 말이다.

1. <상상곡>

본격 전시 공간에 들어서기 전, 천정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상상곡>이라는 작품을 스쳐 지나가게 된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작품인지 모를 정도로, 전시공간 바깥 천장에 [사진1]처럼 빨간 열매와 잎사귀 조형물이 인테리어처럼 설치되어 있다. 마치 이름이 부여되지 않은 잡초처럼.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잡초가 아니라 '백년초'라는 이름을 가진 것의 열매이고 잎사귀이다.


백년초. 100년이라는 시간을 이름으로 한 이 식물은, 이번 전시의 시작이자 너무도 미스터리한 존재이다. ‘손바닥 선인장’이라고 불리는 이 식물은 멕시코가 원산지인데, 아주 먼 옛날 태평양을 건너 제주도까지 건너와 ‘백년초’라는 이름까지 얻게 된 것이다. 지금처럼 쉽게 세계여행을 하는 시기가 아닌 아주 먼 옛날에 말이다. 그렇게 발도 없는 선인장이 멕시코에서 제주도로 건너와 제주도에 뿌리 내린 식물 '백년초'.


다시 돌아와 '서울박스' 전시장에 설치된 <상상곡> 작품은 그 백년초의 빨간 열매가 우리에게 말을 건다. 은유적 표현이 아니라 진짜로 그 열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빨간 열매 안에 센서가 있어 일정 거리 안에 들어가면 소리가 재생되도록 셋팅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소리를 들어도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언어가 한국어가 아닌 아랍어, 인도네시아어와 같은 외국어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 목소리의 주인공들은 멕시코에서 제주도로 왔던 백년초처럼, 현재 먼 나라에서 한국으로와 백년초의 삶을 살고 있는 외국인들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들의 말을 이해하려면, 일정 거리 안에 들어가야 하며 그들의 언어를 알아야만 한다. 이렇게 너무도 쉽게 들을 수 있는 소리를, 노력을 들여야만 들을 수 있는 소리로 만들어 버린 작품 <상상곡>.



2. <세대 초상>


3번째 전시공간에 들어서면 아주 크고 넓은 공간에 마주 보는 양쪽 벽에 설치된 '영상 초상화'가 보인다([사진2]와 [사진3] 참고). 그런데 이 설치 방식이 참 비효율적이다. 가운데 공간은 텅 비운 채, 양쪽 벽 끝에 작품을 설치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굳이' 메인 공간은 비워 놓고 양쪽 끝 벽에 설치된 영상 초상화에는 20세기초 멕시코로 이주한 한인들의 모습이 재생된다. 한쪽 벽엔 부모의 모습, 그리고 그것과 마주보는 벽엔 자식의 모습이 '동시에' 비춰진다.


작품 <세대 초상>에 대해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시 이 전시의 이름 《백년 여행기》에 담긴 100년 이란 시간으로 돌아가보자. 기술이 좋아져 요즘 100세시대라고 하지만, 100년 여행기는 한 사람의 생애를 담은 여행기라고 하기엔 너무도 긴 시간이다. 아마도 100년이란 시간은 부모에서 자식으로 이어지는 여러 세대의 삶을 담은 여행기일 것이다. 그렇기에 2000년대 초반 <내 사랑 지니>연작을 통해 한 명의 ‘인물 초상’을 찍었던 정연두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는 부모 자식을 한 쌍으로 찍은 ‘세대 초상’을 공개했다.


발갛게 웃고 있는 아버지와 수줍게 미소 짓는 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 아버지가 멕시코에서 이민자로 살면서 결혼하고 딸을 낳아 그 딸이 성인이 될 때까지의 그 시간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그러니깐 그 넓디 넓었던 공간은 텅 비워져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서 딸로 이어진 시간이 담겨있는 것이다. 그렇게 <세대 초상>이라는 작품은 시간을 공간으로 구현하여 관람객들이 그것을 생각하고 경험하게 만든다.



3. <백년 여행기>


이렇게 정연두 작가는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여러 작품을 통해 배경지식을 쌓게 한 후 4번째 공간에 들어서게 되면, 바로 이번 전시 제목이기도 한 <백년 여행기>라는 48분짜리 영상 작품을 만나게 된다. 여기서 작가의 주특기가 나온다. 여러 언어를 등장하게 하고, 한 화면이 아니라 여러 개의 영상으로 보여주는 방식 말이다. <백년 여행기>는 3개의 언어를 활용했고, 1개의 메인 화면과 3개의 보조 화면으로 구성되었다([사진4] 참고). 


48분이라는 긴 시간동안 들려주는 내용은 1905년 한국을 떠나 희망을 안고 멕시코에 도착한 한인 이민자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이 멕시코 노팔 선인장 농장에서 얼마나 노예처럼 일을 했는지, 얼마나 차별과 무시를 받고 처절한 삶을 살았는지 신파와 눈물에 기대어 들려주지 않는다. 


'마리아치(Mariachi)'라는 흥겨운 멕시코 전통 음악과 우리의 '판소리' 그리고 일본의 '분라쿠'. 이렇게 3가지 음악 언어로 한인 멕시코 이민자의 삶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주고 들려준다. 이러한 다채널을 통한 교차편집은 관객들이 이야기 안으로 들어갈 자리를 만들어준다. 먼 과거의 이야기,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도 그 이야기의 구성요소가 되어 지금 이곳의 이야기처럼 생생하게 경험하게 한다.


그 이야기 속에는 이름도 길고 어려운 ‘마리아 빅토리아 리 가르시아’ 할머니가 등장한다. 자신을 ‘팔자 사나운 여자’라고 소개하며 이민 2세로서 자신이 일곱 번 결혼해서 그토록 원하던 아이를 낳은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이 팔자 사나운 인생 이야기가 절절한 판소리, 긴장감을 돋우는 분라쿠, 그리고 웅장한 마리아치 이렇게 3가지 음악 언어로 이야기되는 과정에서 그냥 팔자 사나운 인생 이야기가 아님을 발견하다.

아이를 낳지 못해 여섯 번 소박 맞고 일곱 번째 애를 낳아 대를 이은 이야기가 아니라, 여섯 번 사내를 바꾸고도 아이를 얻을 수 없어, 일곱 번째 결혼을 해 아이를 낳아 원하는 팔자로 고쳐 먹은 한 개인의 이야기로 말이다. 마치 팔자 사납게 멕시코에서 제주도로 떠밀려 왔지만 결국엔 제주도 월령리에 군락을 이뤄 ‘백년초’라는 이름까지 얻게 된 손바닥 선인장처럼. 그렇기에 이 전시 제목이 ‘고난사’가 아니라 ‘여행기’인지도 모르겠다. 마치 천상병 시인이 이 세상에서의 삶을 ‘소풍’이라 불렀던 것처럼.



사진1, 상상곡, 2023


사진2, 세대초상, 2023

사진3, 세대초상, 2023

사진4, 백년 여행기, 2023

all images/words ⓒ the artist(s) and organiz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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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민플루_미술에 대해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