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상의 빛>(1995),<바닷마을 다이어리>(2015)를 비롯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몇몇 작품은 '죽음’이라는 요소를 공통으로 갖고 있다. 그러나 이를 보다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죽음 자체를 논하기보다 남겨진 사람들의이야기에 초점을 둔다. <걸어도 걸어도>(2008) 또한장남 준페이의 죽음이 이야기 전개의 시발점이긴 하오나, 결국 그의 죽음 이후 남겨진 가족들의 일상을그려낸다. <걸어도 걸어도>는 철저하게 플래시백기법을 사용하지 않으며, 이와 동시에 죽음과 연관된 사건을 과감하게 생략하는 연출 방식을 택함으로써남은 사람들의 상실감 및 그로 인한 행동에 집중한다. 특히 1층에서일어나는 소리가 2층에도 들리는 집 구조는 낮임에도 불구하고 음영이 굉장히 뚜렷하게 부각되는데, 인물의 표정이 음영이 짙은 공간에서 비춰질 경우 가족의 죽음의 여파로 개인적이면서도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는역할을 한다. 집 구조뿐만 아니라 <걸어도 걸어도>에서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설정은 료타(아베 히로시)의 아내 유카리(나츠카와 유이)의존재감이다. 유카리는 료타의 식구인 동시에, 죽음 때문에전남편과 사별한 경험을 한 인물이다. 유카리는 전남편의 죽음을 목격한 뒤 시간이 흘러 료타의 식구가되었지만, 준페이의 부재가 남긴 어두운 그림자를 여전히 외부인으로서 바라본다. 이러한 그녀의 시선은 관객들의 시선이 되어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조금씩 어긋난 영문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가족이어도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엇갈리게 만드는 상실감
일반적으로 오래간만에 온 가족이 모이면 하루를 왁자지껄 속에서 보내게 된다. 이와마찬가지로, 장남의 기일에 모두 모인 가족은 맛있는 음식을 같이 준비하고 먹으면서 옛 추억을 끄집어내며쉴 새 없이 이야기를 이어가지만, 정작 꺼내야만 하는 과거의 사건을 말로 내뱉지 못한다. 아버지 쿄헤이(하라다 요시오)는아들들이 자신처럼 의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달리 회화 복원사가 된 료타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장남이 살아있었으면 자신의 바람을 이뤄졌을 거라는아쉬움을 표현한다. 반면 차남인 료타는 그런 아버지의 태도를 비롯해,옛 추억을 이야기할 때마다 형과 자신을 헷갈리는 가족 때문에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시선을 바닥으로 돌린다. 어머니 토시코(키키 키린)는간만에 시끌벅적한 집안 풍경에 웃음꽃을 피우는 듯하나, 장남이 목숨과 바꿔 구했던 청년이 찾아오자 감췄던서늘한 표정을 바깥으로 꺼낸다. 이처럼 여러 형태로 드러나는 상실감은 여름이라는 계절과 맞물려 극심해지고, 이는 서로를 서먹하게 만들거나, 계속 무의미한 대화를 나누거나, 혹은 무심코 날카로운 말들을 내뱉으면서 상처를 입히며 갈수록 어긋나게 만든다.무엇보다 가족이라도 각자가 지닌 비밀을 공유하지 않고 장면은 가족 간 어긋날 대로 어긋난 관계성을 은유한다.

묘지와 바다를 향해 오르락내리락 걷는다는 것
<걸어도 걸어도>의장소는 집을 중심으로 위에는 묘지, 집에서 내려가는 찻길을 내려가면 아래에 바다가 위치해 수직적 구조를이루고 있다. 묘지는 죽음을 알리는 장소지만, 바다는 죽음의기원이 되는 장소다. 어머니 토시코는 료타와 아들 가족과 함께 형이 묻힌 묘지로 올라가지만, 아버지 쿄헤이는 손자 아츠시(타나카 쇼헤이)와 함께 바다를 향해 찻길을 따라 바다를 향해 내려간다. 하지만 단순히묘지를 향해 올라가고, 바다를 향해 내려가지 않는다. 가는길에 항상 오르락내리락 걷게 된다. 오르락내리락 걷는 모습을 <걸어도걸어도>에서만큼은 쉽게 넘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부재의여파로 기나긴 감정적 잔허에 계속 어긋나는 가족이지만 반복해서 펼쳐지는 구불구불한 길은 장소의 수직 구조를 무의미하게 만듦으로써 상실감의 크기를비교할 수 없지만, 같이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포착한다. 이와함께, 평소에는 아웅다웅하지만 다 함께 걷는 장면들은 가족이기에 묘하게 서로를 닮아가고 있다는 점도놓치지 않는다. 여기에 러닝타임 내내 주로 고정되었던 카메라는 갑자기 집 안에 나비가 들어오는 순간, 그 장면은 핸드헬드 카메라로 전환되어 바깥의 길처럼 위아래로 흔들리며 촬영된다. 이는 작가 윤흥길의 단편 소설 『장마』에서 구렁이를 죽은 아들로 대하는 것처럼, 나비를 장남의 환생으로 받아들이는 가족의 모습을 지속적인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담아내며 모두가 그를 그리워한다는걸 이야기한다.

몇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료타는 아내와 아들, 그리고 그사이에 태어난딸과 함께 돌아가신 부모님 묘를 방문한다. 어머니가 형의 묘비에 물을 뿌리셨듯이, 료타도 여름 더위 때문에 고생하실 부모님을 위해 묘비에 물을 뿌린다. 아울러묘지에 계신 부모님을 뵌 료타와 그의 가족은 같이 언덕을 내려가는데, 내려가는 모습에서도 가족이란 서로가점차 닮아가는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크레인 숏(Craneshot)으로 묘지와 바다를 동시에 보여주며 끝나는 <걸어도 걸어도>는 겹겹이 쌓여왔던 감정이 깊은 여운으로 전환되며 마무리를 짓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