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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학적 사진이 뭘까? | ARTLECTURE

유형학적 사진이 뭘까?


/Artlecture/
by 최다운
유형학적 사진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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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이처럼 유형학적 사진이라고 하려면 형식적인 면만이 아니라 내용도 함께 담아내야 합니다. 베허 부부의 물탱크와 거스키의 현대 사회와 시르의 현상 트레이를 유형학적 사진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도 이것입니다. 작가가 프레임 안에서 풍경을 새롭게 재현하면서 그만의 고유한 의미를 발산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아모레 퍼시픽 미술관에서 열린 안드레아스 거스키 사진전을 보고 왔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사진 작품 판매 기록을 가지고 있는 거스키는 현대 사진계의 주요한 작가 중 한 명입니다. 90년대 초중반부터 대형 사진 작품을 만들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2000년대 초반 뉴욕현대미술관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서 개인전을 열며 이름을 널리 알렸습니다. 


토마스 루프, 칸디다 회퍼 등과 함께 독일의 베른트 & 힐라 베허 부부 밑에서 공부한 거스키의 작품은 다른 작가들의 작업과 함께 유형학적 사진으로 구분되곤 합니다. 거스키는 현대 문명과 세상의 풍경을 정형화되지 않은 틀에 담아내었는데, 한곳에 모아놓고 보면 우리 사회의 여러 본질적 측면을 담고 있는 순간을 재현했습니다.


작년에 한 그룹전에서 거스키의 작품 한 점을 실제로 본 적이 있었는데요. 대형 인화가 중요한 특징인 그의 사진 앞에 서니 시선을 압도하는 것처럼 꽉 찬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광대한 전경에서부터 가까이 다가가 볼 수 있는 사람과 사물의 디테일까지, 시선의 거리를 바꾸면서 프레임 안을 관찰하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이번에 APMA에서 열린 전시 또한 널찍한 공간에서 여유 있게 그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작품. Red Brick Art Museum, Beijing, 2021.



그런데 우리가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사진이나 몇몇 중요한 현대 사진가의 작업을 볼 때 많이 듣는 표현이 하나 있습니다. 앞에서도 잠깐 나왔지만, 바로  ’유형학적 사진’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유형학적 사진이란 것이 대체 뭘까요? 여러 군데서 읽고 들어봤지만, 그게 뭔지 손에 잘 잡히진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아트렉처 독자분들과 함께 유형학적 사진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조금 알아볼까 합니다.


먼저 유형학의 정의를 찾아볼까요? 영어로 “Typology"인 유형학은 말 그대로 어떠한 유형(type)을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유형(type)과 학문(-ology)의 결합인 것이지요. 인터넷 두산 대백과 사전에 실려 있는 유형학의 정의는 이렇습니다. "인간의 정신적 소질이나 체질을 어떤 이론적 기준에 의거, 유형으로 분류하여 성격을 이해하고 연구하기 위한 방법론" 1)이라고 합니다.


이것만 읽어보면 오히려 더 헷갈릴지 모르지만, 중요한 부분만 뜯어서 보면 이렇습니다. 유형학이란 "일정한 기준에 따라 유형을 분류하고, 이해하기 위한" 학문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분류’와 ‘이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전에서는 심리학 중심으로 설명을 해 놓았지만, 유형학이라는 표현은 경계의 구분 없이 쓰입니다. 심리학, 의학 등뿐만 아니라 고고학, 언어학 등 다른 분야에서도 유형학이라는 구분을 많이 사용합니다. 물론 이번 글에서 이야기하는 사진 예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모레 퍼시픽 미술관 안드레아스 거스키 사진전 풍경



그럼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유형학적 사진’이란 무엇을 뜻하는 걸까요? 거스키의 작업을 놓고 생각해 보면, 먼저 그의 작품이 다루는 유형이 무엇인지를 봐야 합니다. 안드레아스 거스키는 사진을 통해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와 세상을 보여줍니다. "인류와 문명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은" 2) 대형 작품이라는 전시 소개처럼 그의 작품 안에서는 우리가 발 딛고 선 세상이 하나의 유형이 됩니다. 그리고 세상이라는 하나의 유형 안에서 나눠지는 다양한 모습을 거대한 프레임 안에 담아 ‘탐구’합니다. 


거스키의 작업은 단순히 세상을 하나의 유형으로 만들어 분류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탐구’하고 ‘이해‘하려는 시도입니다. 거스키는 단순히 그가 새롭게 창조한 세상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사회의 풍경을 관통하는 무언가를 드러내려 합니다. 유명한 <99센트, 1999 (리마스터 2009)>나 <아마존, 2016>, <라인강  II, 1999> 같은 작품을 보면 거스키가 이해하려는, 혹은 우리가 이해하길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를 연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의 부관장 우혜수님은 거스키가 담은 대상을 "현대 문명의 증거" 3)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럼 유형학적 사진은 거스키의 작업처럼 세상이나 문명과 같은 거대 담론만을 다루는 것일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베른트와 힐라 베허 부부가 물탱크라는 한 단면을 통해 산업 사회의 유형학을 보여 주었고, 안드레아스 거스키가 디지털 후보정을 통해 현실에서 마주칠 수 없는 현실 세계의 유형학을 만들었다면, 필자가 뉴욕에서 보았던 존 시르의 프로젝트 <현상 트레이 (Developer Trays)>는 작은 플라스틱 접시에 담긴 추상/시간의 유형학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4)



아모레 퍼시픽 미술관 안드레아스 거스키 사진전 풍경



물론 단순히 일정한 기준에 따라 피사체를 선정하고 찍었다고 해서 유형학적 사진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장정민 평론가님은 한때 국내에서 유행처럼 번졌던 유형학 사진 전시를 언급하면서, 유형학적 사진은 겉으로 보이는 형식만이 아니라 내용(의미)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는데요. 5) 그는 유형학이라는 학문의 바탕에 깔린 서구의 세계관(철학)을 되짚으며 우리가 너무 쉽게 유형학을 말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유형학적 사진이라고 하려면 형식적인 면만이 아니라 내용도 함께 담아내야 합니다. 베허 부부의 물탱크와 거스키의 현대 사회와 시르의 현상 트레이를 유형학적 사진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도 이것입니다. 작가가 프레임 안에서 풍경을 새롭게 재현하면서 그만의 고유한 의미를 발산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유형학적 사진이라는 구분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뒤셀도르프 아카데미에서 많은 제자를 길러낸 베른트 & 힐라 베허 부부가 유형학적 사진을 말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지만, 시작은 20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독일의 사진가 아우구스트 잔더는 <우리 시대의 얼굴 (1929)>이라는 작업을 통해 동시대를 살아가던 독일인들의 모습을 농민부터 대도시 시민들까지 계층, 직업, 성별 등의 기준에 따라 구분하여 담았는데요. 그의 프로젝트는 유형학적으로 피사체를 바라보고 이해하려 한 초기의 시도 중 하나였습니다. 6)


어떠셨나요? 여기까지 아주 간략하게 유형학적 사진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오늘 글이 앞으로 여러분이 사진을 감상할 때 조금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각주

1)https://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716057

2)APMA 전시 안내: https://apma.amorepacific.com/contents/exhibition/559445/view.do

3)우혜수 씀, "숭고한 열망”, <안드레아스 거스키> 전시 도록, 아모레퍼시픽미술관, 2022, p.9

4)최다운 지음, <뉴욕, 사진, 갤러리>, 행복우물, 2021, p.16~29

5)장정민 지음, <사진이란 이름의 욕망 기계>, 이안북스, 2018, p.86 ~ 87

6)그 이전에 범죄자를 하나의 유형으로 분류하여 사진으로 기록, 분석하려 시도한 이 등도 있었으니, 아우구스트 잔더가 유형학적 사진을 개척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사진사에서 조금 더 의미 있는 작업을 꼽을 때 잔더의 프로젝트를 예로 드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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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최다운_아마추어 사진 애호가로 뉴욕의 사진 전문 갤러리에 대한 <뉴욕, 사진, 갤러리>를 출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