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파를 바라보는 기계의 눈
알고리즘 풍경화 ‘여름 정원(Jardins d’Ete)‘
인상파를 바라보는 기계의 눈
알고리즘 풍경화 ‘여름 정원(Jardins d’Ete)‘
고대 철학자 플라톤은 '시인 추방론'을 펼쳤다고 한다. 시인이 국가에서 추방되어야 한다니, 무슨 말일까? 플라톤의 <국가>에 보면, 예술가는 진리로부터 두 단계나 떨어져 있는, 가상에서 가상을 창조하는 인물들이라고 나온다. 허상을 재창조하여 시민을 현혹시키는 인물들이니 국가에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보면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다. '동굴의 비유'에서는 사람들은 모두 동굴에 갇혀 있는 것처럼 진실을 알지 못하며, 우리가 듣고 보고 만지는 감각은 허상에 불과하다고 한다. 진리는 동굴 밖, 즉 현실 밖의 '이데아'에 존재하며, 현실은 이데아를 모방한 그림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19세기 인상주의(Impressionism) 화가들이 플라톤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몹시 섭섭해했을 듯하다.
인상주의 또는 인상파라 불리는 화가들은 주로 빛의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이들은 고전적인 규율에 얽매이지 않고 일상에서 소재를 찾았으며, 사물의 사실적 묘사보다는 순간적인 색채의 인상을 포착해내었다. 이들의 별명은 1874년 프랑스 화가 모네가 <인상, 해돋이>를 걸어놓은 것을 보고 비평가 르로아가 '그저 인상만을 그리는 작당들'이라는 의미로 '인상파'라 조롱한 데서 비롯되었다. 실제로 모네의 그림은 기존의 화법을 무시하고 노을에 비친 강을 모호하고 흐릿하게 표현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그림만 보면 어디까지가 하늘이고 어디까지가 강인지 알 수 없었으며, 물결은 거칠고 마구잡이식으로 붓칠된 것처럼 보였다. 비평가들에게는 혹독하게 공세를 받았지만, 인상파 미술은 마네, 세잔, 고흐, 고갱 등 걸출한 작가들을 내놓으며 훗날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각종 빌딩이 즐비한 종로 한복판, SK 서린 사옥에서는 '여름 정원'을 전시하고 있다. 아트센터 나비에서 보여주는 이 작품은 알고리즘 풍경화라는 독특한 장르를 소개한다.>
인상파 미술이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빛에 따라 변하는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여 그리는 화가의 개성 넘치는 시선을 좋아했다. 그들 나름의 시각에서 새롭게 표현된 자연은 그 자체로 생명력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따사로운 햇살 아래의 여인, 정원, 마을 등을 그린 그림들은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왔다. 누구든 사랑할 수 있는 아늑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게다가 이들 화가는 그림이 더 이상 정확성과 정교함의 한계를 지킬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화가의 소망대로 그려낸 투박한 그림들도 얼마든지 미적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사진과 비디오의 발달로 인해 사람들은 실물보다 더 실물 같은 장면을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게 되었고, 인상주의 작품들은 나름의 가치를 더욱 빛내게 되었다.
미디어아트와 4차 산업혁명이 결합한 알고리즘 풍경화는 19세기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현대적으로 재현하는 실험을 이어오고 있다. 런던 기반의 아티스트 콰욜라(Quayola)는 고전 회화와 조각을 새롭게 해석하고 표현하는 작가다. 그의 작품 '여름 정원(Jardins d’Ete)'은 기존의 인상주의 작품에 시각적 분석과 복잡한 기하학을 접목한 결과물이다. 이 작품은 인상주의적 색채의 구성과 조합, 면의 표현, 자연의 움직임에 대해 고도의 계산을 적용한 시스템을 통해 작동한다. 보는 이들은 고전적이면서도 현대적인 감성으로 프랑스 루아르 강 쇼몽성의 정원을 간접 체험할 수 있다. 오래전, 유럽의 화가들은 자연이 전하는 찰나의 아름다움을 포착하고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기억에 남을 만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오늘날, 알고리즘 풍경화에서는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을 연속적으로 담아냄으로써 한 번 더 인간의 인식 한계를 넘어서고자 한다. 교묘하게 조작된 소프트웨어는 기계의 눈으로 모사하는 인간의 시선을 담아낸다.
허상을 모사하는 예술가들을 나라 밖으로 쫓아내야 한다고 주장한 플라톤이 오늘날 '여름 정원(Jardins d’Ete)'을 본다면 어떠한 생각을 할까. 가상을 모방하는 가상을 창조하는 예술가들을 비판하지 않을까. 인간의 눈에 비친 자연의 모습은 그저 상상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본질에서는 더욱 멀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술가들은 자연을 나름의 시선으로 해석해내는 사람들이다. 오히려 예술가의 감각은 작품 속에서 더 살아난다. 오늘날, 자연의 장면은 소프트웨어 아트의 발달로 인해 더욱 생동감 있게 재현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19세기 유럽의 미술 사조에서 유행하던 자연의 모사를 다시 한번 살려낸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인간의 눈으로 본 풍경을 이제는 기계가 대신 보고 있다. 기계는 인상주의 화가들이 보았던 정원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기계가 표현하는 '여름 정원'은 정교하고 미스테리하며 인간에게 도전하는 듯한 움직임을 나타낸다. 영원히 모였다 흩어지는 꽃들은 우리의 인식의 한계를 비웃으며 감각을 표현할 수 있는 초월적인 힘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오늘날의 인간은 무한히 꿈틀대며 증식하는 가상을 창조하면서 예술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아트센터 나비의 내부로 들어가면 다른 미디어 아트 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다.>
All images/words © the artist(s) and organization(s)
☆Donation: https://www.paypal.com/paypalme2/artlec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