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질반질 윤이 나게 닦인 외제차, 화사하고 반짝이는 옷과 보석들, 서랍장에 고이 모셔놓는 오래되고 특별한 접시 등... 우리가 애착하고 좋아하는 사물은 각자 다르다. 그렇지만, 그것은 개인의 기호와 취향, 선택, 기억 등을 섞어놓은 집합체임이 틀림없다. 어떤 사람은 화려하고 비싸고 특별한 것을 소유하면서 자신의 격이 높아지는 것을 기대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유년 시절부터 간직한 평범하지만, 손때 묻고 조금은 꾀죄죄한 사물에 특별히 애착한다. 우리 아이도 한 살부터 가지고 놀던 피카츄를 유독 좋아한다. 정식 명칭은 피카츄이지만, 삐까, 뻐까 등으로 불리며 우리 가정에서 거의 둘째 아이처럼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왜 사물에 집착할까? 좋아하는 것치고는 조금 더 집요하게 좋아하는 측면이 있다. 요즘은 사람보다, 반려견에 애정을 쏟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사물에 집착하는 것도 이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현대인들이 사물을 좋아하는 것은 병적인 측면이 있다. 너무 많은 사물에 치여 살기도 하고, 정리가 안되고 오래된 사물과 함께하다 보니, 집 자체가 병들어 간다. 한때 미니멀라이프가 유행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현대인들은 많은 사물에 둘러싸여 있다. 사물은 묘하기도 하다. 한번 갖고 싶은 것을 획득하기까지 많은 고민과 숙고를 거치지만, 일단 획득하고 나면 순간의 쾌감이 사라지고, 약간의 여운과 허전함을 남긴다. 어떤 사람들은 이 공허함을 메우기 위해 다른 사물을 곧 탐한다. 그러나 이것 또한 금방 싫증이 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사물을 욕망한다는 것은 사물만을 욕망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예쁜 퍼 코트를 사고 싶다고 치자. 퍼는 동물 털을 비롯한 인조털로 만들어져 있어서, 몽글몽글한 느낌을 준다. 이것은 어여쁘고 귀여운 강아지 같은 포근함을 연상시킨다. 퍼 코트를 소유한다는 것은 일종의 따듯함을 소유하는 일이기도 하다. 코트 자체의 따듯함과 털에서 비롯되는 이미지의 따듯함... 또한 이것을 욕망하는 것은 이것을 입었을 때 나의 사회적 신분의 미묘한 뉘앙스를 간직한 일이기도 하다. 사물을 획득한다는 것은, 자신의 소득이나, 처지, 성격, 등을 반영하는 역할도 한다. 여러 사물을 욕망하는 현대인들을 보면, 칭찬이나 인정에 목말라 있는 경우가 많다. 거칠게 말해, 애정결핍이 사물에 대한 애착심을 키운다고 볼 수도 있다.
이화백 after the wedding #10
이렇게만 말하면, 사물을 애정 하는 것이 병적 자기 집착으로 느껴지지만, 긍정적인 측면도 존재한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벼루, 칼, 생황, 호리병, 파초, 중국 골동품 등과 함께 생활하였다. 고동 기물 등과 책과 함께 있는 그림이 책거리이다. 우리 주변에도 책거리들은 있었다. 어린 시절, 지우개, 연필, 크레파스, 자 등의 학용품은 문구점에서 파는 흔한 것이었다. 작은 몽당연필 몇 자루가 담긴 이층 필통은 어린 나에겐 가장 귀한 사물이었다. 욱여넣어 하던 공부였지만, 학창 시절에 함께 보냈던 귀엽고 살뜰한 학용품들은 여전히 곁을 지켜주고 있다.
책거리나 옛 그림을 보면 문방사우가 등장한다. 이처럼 조선시대 사물에서는, 선비의 자의식이 묻어난다. 선비는 곧 글을 읽고 쓰는 사람인 것이다. 글을 읽어 입신출세하여 사회로 나아가는 것에 목표를 둔다. 자신보다, 자신이 처한 위치와 본분이 무척 중요했다. 그에 반하여 현대인의 사물은 ‘자기애’적이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부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내 돈 주고 산 것을 뜻하는 신조어 ‘내 돈 내산’이라는 단어만 보더라도, 현대인에게 ‘나’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게 부상하고 있다.

윤정미 <지유와 지유의 핑크색 물건들>, 2006, 가변크기, 라이트젯 프린
윤정미의 핑크 프로젝트를 보자. 미취학아동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핑크로 둘러싸여 있는 사물들과 함께 있는 것을 표현하였다. 방에 사물들을 둘러보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마론인형, 신발, 의류, 장난감 등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소비를 부추기는 현대사회에서 이 정도의 소비의 쾌락은 어린이라고 누리지 말라는 법이 없다. 아이는 ‘내가 좋아하는’ 곰인형과 잠이 들 것이며, ‘내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 것이며, ‘내가 좋아하는’ 샌들을 신고, 핑크 옷을 입을 것이다. 거대해진 자기애를 막을 방법은 없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확장해 가는 것은 인간의 오래된 욕망의 패턴일 뿐이다.
진보라 urban blossom
진보라의 ‘urban blossom', 역시 자신이 좋아하는 화장품이 가득한 화장대를 보여준다. 화장품 진열대가 눈이 부시다. 여성은 예뻐지고 싶어 한다.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마찬가지이다. 예전에 여성들은 남을 위해 화장을 했다. 남에게 맨얼굴을 보이기에 민망하다거나, 실례나 된다거나, 그런 측면들 때문에 화장대에서 무엇을 조금이라도 찍어 발랐다. 요즘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당당하기 위해 화장을 한다. 더불어, 화장품의 디테일한 기능이나, 감촉, 향, 가격 등을 고려하여 제품을 구매한다. 또한 어떻게 화장을 해야 자신이 기분이 좋은지를 고려한다. 시선의 주체가 다른 사람에서 자신으로 이동했다. 자신이 좋아야 하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물 속에서 행복한 것은 예부터 인간의 오랜 감각이다. 북송때 은일자 임포 또한 자신이 좋아하는 몇가지 사물만 가지고 생활한 사람이다. 매화와 몇가지 사물과 시종과 함께한 <고사인물도>는 임포의 맑은 성정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이렇게 간소한 사물만 가지고 어떻게 마음의 평정을 얻었냐고 물어보고 싶다.
<고사인물도> (부분) 열 폭 병풍 가운데 두 폭, 종이에 채색,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사물에 애착하는 것은 인간의 오랜 습성이다. 우리는 오래되고 낡은 소중한 사물을 보면 마음의 안정감을 획득한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사물보다, 나무나 천연의 소재로 된 것을 선호한다. 그런 것을 보면, 인간은 자연에서 획득한 것으로 사물을 만들어 곁에 두는 것을 오래 즐겨왔다고 볼 수 있다. 사물을 곁에 두고 오래 애정 한 우리... 너무 많은 자기애적인 사물보다, 임포의 간소하고 즐거운 사물이 좋다고 말한다면 고리타분한 생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