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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듀안 마이클 | ARTLECTURE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듀안 마이클

-소설과 영화, 그리고 사진-

/Art & History/
by 노용헌
Tag : #영화, #시간, #소설, #사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듀안 마이클
-소설과 영화, 그리고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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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그의 작품은 <사후 영혼의 여행>에서 거울 앞에 선 자신의 영혼에게 정체성에 관한 질문들을 던진다. 그의 작업이 <연속사진>이라는 특성은 마치 소설이나 영화를 보듯, 허구적인 공간과 시간의 연출이 연속적으로 추상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

나의 경우 그것은 내면의 대화였지 외부의 대화가 아니였다문제는 나는 누구인가그것은 무엇 때문에 끝없는 시야에서 이러한 진화론적 여정이 발생하며... 왜 내가 스스로를 정의 내려야만 했기 때문에 그렇게 흥분해야만 하는가?이다많은 사진가들은 그들이 찍는 사진뿐만 아니라 그들 삶과 감정까지 표면적인 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바라본다

사진가들은 항상 일관된 상황만 찍는다그들을 결코 그 상황의 문을 열 생각을 하지 않는다일단 당신은 그 상자를 연다면 그것은 상자속에 다른 상자가 들어있어 좀처럼 끝을 볼 수 없는 중국의 마술상자 같을 것이다그래서 나는 그 내용물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촬영한다는 것이 그렇게 쉽다고 생각한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나는 나무와 자동차와 사람들이 그 자체의 현실로 출현하는데 혼란을 가졌고 이러한 출현의 사진은 그것의 사진이어야 한다고 믿었었다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실패이다나는 거울 안에 반영된 다른 반사물을 사진촬영으로 다시 반영하고 있었다진실을 찍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찍지 않는 것이다.” 

-듀안 마이클     







듀안 마이클(Duane Michals)의 부모는 체코 출신의 미국인이다. 그의 부모는 미국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성(性)을 미할(Mihal)에서 마이클로 바꿨고, 듀안(Duane)이란 이름은 그녀의 어머니가 가정부로 일하던 집의 아들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고 한다. 이름을 빌어온 듀안이란 청년이 자살을 해 죽어버리는 바람에 듀안이란 이름을 쓰던 사람을 만날 기회는 없었다고 하지만, 듀안 마이클에게는 썩 유쾌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름에 얽히 이런 에피소드처럼 그의 작품은 <사후 영혼의 여행>에서 거울 앞에 선 자신의 영혼에게 정체성에 관한 질문들을 던진다. 그의 작업이 <연속사진>이라는 특성은 마치 소설이나 영화를 보듯, 허구적인 공간과 시간의 연출이 연속적으로 추상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 앞선 이미지와 뒤에 오는 이미지간의 상호 보완적인 성격은 데리다의 ‘회기’의 개념처럼 매듭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의 작품 중에 <사물은 기묘하다>라는 9개의 연속된 장면이 있다. 이 작업은 현실의 공간의 프레임안에 허구의 공간이 연속되어지는 묘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프레임 속의 공간은 허구이자 낯선 세계로의 연결을 의미한다. 초현실주의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대표적인 방법으로 디페이즈망(depaysement)이라고도 한다. 코엔형제 감독의 영화 <바톤 핑크Barton Fink>에서도 유사한 장면이 나온다. 한 손에 상자를 들고 해변가를 걷는 바톤, 호텔방에서 보았던 그림속으로 들어가 아름다운 여자와 가까운 거리를 두고 모래사장에 앉는 장면의 엔딩샷, 세면대의 구멍에서 동굴의 이미지로 가는 장면등은 듀안 마이클의 사진을 연상케 한다.   


   





칠레 출신의 감독 라울 루이즈가 감독한 영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되찾은 시간Le Temps Retrouve, Time Regained>(1999년)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지막 권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초호화 캐스트를 자랑한다. 과거와 현재가 혼재하고, 환상과 현실이 얽히는 복잡한 서사 구조를 지닌 원작을 재구성했다기보다는 주물 뜨듯 금속 이미지로 변환시켰다는 평을 개봉 당시 들었던 이 영화에는 ‘문학의 각색’보다는 ‘새로운 해석’이란 평가가 어울릴 것이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원작 소설은 이미 83년에 볼케 쉰론도르프가 알랭들롱, 제르미 아이론 등을 캐스팅하여 첫번째 에피소드인 스완의 집쪽으로를 각색하여 <스완의 사랑>(1984년)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하였으나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였다. 이에 비해 이번 영화는 비평가들로부터 비교적 원작에 충실하다고 호평받았다. 임종직전의 마르셀 프루스트는 옛 사진들을 보면서 지내온 삶을 회상한다. 프루스트의 인생, 그 자체가 소설이고 주변 사람들은 소설속 인물과 오버랩되면서 허구의 세계는 현실로 차츰 전환된다.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A la recherche du temps perdu>는 〈스완네 집 쪽으로 Du Côté de Chez Swann〉(2권)·〈꽃 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À l'Ombre des Jeunes Filles en Fleurs〉(3권)·〈게르망트가의 사람들 Le Côté de Guermantes〉(2권)·〈소돔과 고모라 Sodome et Gomorrhe〉(3권)·〈갇힌 여인 La Prisonnière〉(2권)·〈자취 감춘 여인 La Fugitive〉(1권)·〈되찾은 시간 Le Temps Retrouvé〉(2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1906년부터 1922년까지 집필하여 1913년부터 1927년까지 출간한 7권의 장편 소설로, 마지막 3권은 작가 사후 출판되었다.     







과자 부스러기가 섞인 그 한모금의 차가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나의 내면에서 범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소스라쳐 놀랐다어떤 감미로운 쾌감이 나를 사로잡았던 것이다원인 불명의 고립된 쾌감이었다그 쾌감으로 인하여 나는 곧 인생의 부침같은 것은 별 것 아니고 갖가지 재난도 무해한 것이며 그 덧없음을 착각일 뿐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마치 사랑의 힘이 작용하여 그렇게 하듯이 그 쾌감이 나를 어떤 귀중한 본질로 가득 채웠던 것이다아니 그 본질이 내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이 바로 나 자신이었다나는 더 이상 스스로가 보잘것없고 우연적인결국은 죽어 없어질 존재라고는 느끼지 않게 되었다대체 이 벅찬 기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 알 수 없는 상태그 어떤 논리적 증거도 보여주지 않았지만 다른 모든것을 모조리 다 지워버릴 만큼 확실한 행복감과 현실감을 느끼게 했던 그 알 수 없는 상태란 대체 무엇이었을까틀림없이 이렇게 내 깊숙한 밑바닥에서 파닥거리는 것은 그 맛과 관련된 것으로 그 맛의 뒤를 따라서 내게까지 올라오려고 애쓰고 있는 이미지시각적인 기억이 분명하다그러나 그것은 너무나도 먼곳에서 너무나도 어렴풋하게 몸부림치고 있다내가 알아볼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휘저어놓은 색채들이 형체를 알 수 없게 뒤섞여 소용돌이치는 특징 없는 그림자가 고작이다.     

그 형태들은 없어지거나 잠들어버리거나 하여 의식에 가 닿을 수 있는 확장력을 상실하고 만 것이었다그러나 사람들이 죽은 뒤어느 아득한 과거로부터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되었을 때에냄새와 맛은 더 연약하지만 더 생생하고더 비물질적이지만 더 끈질기고 더 충실한 것이 되어 영혼들처럼 여전히 오랫동안 남아서 다른 모든 것들의 폐허 위에서 회상하고 기다리고 희망하며거의 만져지지도 않을 정도로 미세한 물방울 위에서 불굴의 힘으로 추억의 거대한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듀안 마이클의 사진집 ‘마그리트와 보낸 시간(A Visit with Magritte)’은 화가 마그리트의 모습을 다중노출 기법으로 담고 있는 책이다. 마그리트는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으로, 후대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마이클 역시 마그리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마이클은 마그리트의 그림들이 자신의 인생에 ‘위대한 선물’과도 같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책에는 마이클이 1965년 8월 어느 날 마그리트 집을 방문해 찍은 마그리트의 초상사진과 집 안의 모습이 담겨 있다. 마이클은 그날을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그날의 기억에 나를 맡겨보자면, 마그리트의 집을 찾아서 길 코너를 돌 때 나를 사로잡은 흥분을 나는 아직도 느낄 수 있다. 서른세 살이던 나는 사진에 대해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가정들을 무너뜨린, 심오하고 위트 있는 초현실주의 그림을 그린 그 남자를 곧 만나기 직전이었다.”     







그는 죽어가고 있었다영영 죽었나누가 그렇다고 단언할 수 있나물론 심령술의 실험도 종교의 교리와 마찬가지로 영혼불멸의 긍지를 보이지 못한다단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승에 있어서는 마치 현세에서 무거운 의무를 짊어지고 태어났기라도 하듯이 만사가 경과한다는 점이다.

이 지상에서 삶을 누리는 조건 속에서 선을 행해야 한다는세심해야 한다는 의무예절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의무마저 느끼게 하는 하등의 의무가 없고또 신을 믿지 않는 예술가로 말하면 영영 알려지지 않는 화가고작 베르메르라는 이름임에 틀림없다고 확인되고 있는데 지나지 않는 화가가학식과 세련된 솜씨를 다해 황색의 작은 벽면을 그려냈듯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한 가지를 그려야 한다는 의무를 짊어지고 있다고 느끼는 하등의 이유가 없다.

설령 그 그림이 칭찬을 받은들구더기에 먹힌 그 몸엔 대수롭지 않을 거다.

이러한 의무는 현세에서 상벌을 받는 게 아니라 이 세계와는 동떨어진 세계선의세심細心희생에 기초를 둔 다른 세계에 속하고 있는 듯 싶다.

인간은 그 세계로부터 나와 이 지상에 태어나고아마도 미구에 그 세계로 되돌아가 미지의 법도法度의 지배 밑에서 다시 사는 게 아닐까.

그러나 그러기에 앞서 인간은 이 지상에서 그 법도에 따른다왜냐하면 어떤 손이 적었는지 모르는 채 마음속에 법도의 가르침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온전한 지성의 수고가 우리로 하여금 가까이 보이게 하는 이 법도단지 어리석은 자의 눈에만 안 보이는아니 때로는 어리석은 자의 눈에도 보이는 법도,

베르고프의 육신은 묻혔다그러나 장례식 날이 깊도록 책방의 환한 진열장에 그 저서가 세 권씩 늘어 놓여 날개를 펼친 천사처럼 밤을 새우고 있는 것이이제 이승에 없는 이를 위한 부활의 상징인 듯 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제 9권 <갇힌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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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노용헌_사진기자 - 사진을 찍을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고 사진관련 일로 생활하고 사진찍으며 사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