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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Paul Gauguin | ARTLECTURE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Paul Gauguin

-고연정의 15분 11화-

/Art & History/
by 아트팩트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Paul Gauguin
-고연정의 15분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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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폴 고갱과 타히티는 누군가의 노래가사 덕분인지 우리에게 마치 한 단어처럼 나란히 쓰는 것이 익숙하다. 많은 예술가들이 파리로 모여 예술의 본질에 대해 논할 때, 고갱이 타히티로 떠난 화가 고갱. 그의 예술에 대해 알아본다.

규정할 수 없는 화가


여느 화가들의 안타까운 생전의 시기가 그러하듯, 고갱 역시 생전에 화가로서 인정받지 못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고갱의 가족들은 고갱의 사망 이후, 채무 변제를 위해 작품들을 경매로 처분하였으며 유품 또한 받지 못했다. 그의 성격은 자존감이 지나치게 강해서 독선적이었다 평가되었으며, 이러한 성격으로 인해 상당히 좁은 대인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러한 성격은 가정에서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다섯명의 자식이 있었지만 경제적으로는 무책임한 가장이었다. 


그렇다면 예술적인 면에서는 어떠했을까 ?


미술사학자 E.곰브리치와 예술평론가 C.그린버그가 말했듯이 고갱의 작품은 그 독창성으로 인해 한 유파로 분류하기 어렵다. 그의 작품에는 원시주의와 상징주의의 특징이 혼재하며, 성향으로는 남성 우월주의, 인종주의, 식민지주의가 묻어난다는 평이 있다. 고갱은 상대적으론 늦은 나이에 미술을 시작하였는데, 그 시기는 이미 마네, 모네, 드가와 같은 화가들이 활발한 활동을 보이던 때였다. 또한, 후기 인상주의 시대에는 인상주의, 자포니즘, 상징주의, 종합주의, 원시주의 등의 여러 유파가 존재하였기 때문에, 고갱의 작품은 그 시대적 성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볼 수 있다. 


우리가 고갱과 타히티를 연관 짓는 것 처럼 예술, 특히 유파의 생성과 성향에 있어 장소는 중요한 요인이 되는데, 고갱은 타히티로 떠나기 전인 1880년대 후반, 그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파리, 브르타뉴, 파나마, 마르티니크, 또 고흐와 함께 있었던 아를 등을 떠돌아 다녔다. 고갱의 작품의 유파를 구분하기 어려운 이유로는 그가 이처럼 여러 곳을 옮겨 다녔기 때문이기도 하다. 


 


캔버스에 토로된 삶


고갱은 기존의 인상주의 화가들보다 기교가 상대적으로 부족하였는데, 그의 스승인 피사로에게 자신의 실력 부족에 대해 토로하기도 하였다. 그의 독창적인 화법은 이 실력의 격차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정신분석학을 미술에 적용하는 미술사가 B.콜린스는 작가의 삶이 회화에 반영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는데, 2005년 그의 저서 ‘반 고흐 vs 폴 고갱’에서는 고흐와 고갱의 관계와, 둘의 작품을 정신분석학 적으로 해석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고갱의 화법은 대상과 현실을 재현하는 것에 가까워 뛰어난 실력을 필요로 하는 인상주의와 사실주의와는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는 내면을 상징화하여, 자신의 감정과 상황과 같은 주관적인 것을 화폭에 표현하였다. 작품 해석에 작가의 생태적 환경과 정신적인 상태와 삶을 반영하거나 참조하지만, 특히 고갱의 작품 해석에 있어서는 그의 삶과 기록으로 말미암아 판단할 수 있는 정신적인 상태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폴 고갱, 설교후의 환상, 1888, 캔버스에 유채, 72.2x91cm, Edimbourg, National Galleries of Scotland. ©RMN-GP. / Paul Gauguin.



고갱의 삶에서 모순적인 부분은 바로 소아성애적 성향과 기독교적 성향이 공존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타히티에서는 13세 테하나마나와의 동거와 14세 바에오호 마리로즈와 동거하였고, 파리에서는 13세 안나와 동거한 바 있다. 또한 1900년대에는 자신의 집을 쾌락의 집(House of Pleasure)라 칭하며, 소아들과 시간을 보내곤 하였다. 그의 작품에서 나타난 기독교적 성향으로는 콜린스의 말을 빌릴 수 있겠다. 그는 고갱의 오를레앙의 생메스엥 신학교 부속 카톨릭 학교에서 5년간 있었던 경험이, 가치관을 형성하는 것에 영향을 끼쳤다 말하였다. 이러한 성향은 1888년작 < 설교후의 환상 > 에서 잘 표현되었는데, 당시 만연한 인상주의가 눈에 보이는 것을 중요시 했다면, 고갱은 추상적인 표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갱은 당시 고흐에게 이 작품에 대해 편지를 썼는데, “투박하고 맹신적인 느낌, 그러면서도 전체적으로 매우 간결하게 보이는 느낌, 등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원근법에 어긋난 비례를 추구하였다.”고 표현하였다. 이렇듯 ‘기독교적 이미지’를 내재적 세계를 표현하는 것에 사용하는 또다른 작품으로는 <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 > 이 있다. 



폴 고갱,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 1890-1891, 캔버스에 유채, 38x46cm,

오르세 미술관. © Musée d’Orsay, Dist. RMN-Grand Palais / Patrice Schmidt


폴 고갱, 신의 아들, 1896, 캔버스에 유채, 96x126cm, Neue Pinakothek, Munique.

이미지 출처. https://www.gauguin.org/nativity.jsp




그의 자화상이 첫번째 화면에 존재하며, 배경으로는 왼편의 황색 그리스도 작품이, 오른편으로 항아리로 표현된 ‘야성적인 자화상’이 있다. 해당 자화상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있으나, 고갱 스스로의 자신이 가진 원시적인 면과 기독교적인 면을 상징화 하여 나타낸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본다. 이와 같이 대치적인 면을 한 화폭에 표현하는 것은 < 신의 아들 >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회화의 구성과 누워있는 여자가 올랭피아를 떠올리는 동시에, 그림에 관한 기록과 녹색 날개가 달린 인물, 동물들이 있는 헛간 등 상징적인 이미지들이 그리스도의 탄생인 ‘성탄’을 연상시키게끔 하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주관적인 기독교적 가치관과 내재한 생각의 재현을 화폭에서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고갱의 작품은 종교화이기 보다는 ‘기독교적 이미지’을 표현하고 있는 회화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고갱의 삶과 작품이 밀접한 만큼 그의 마지막 또한 작품을 통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898년작, <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 ?’ >는 1897년에서 1898년 동안에 작업한 회화로, 고갱의 삶이 반영된 회화관의 종합이자, 고갱의 삶을 아우르는 작품이라 볼 수 있다.  

 


폴 고갱,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 ?, 1897-1898, 캔버스에 유화, 139.1x374.6cm,

Museum of Fine Arts, Boston. © 2021 Museum of Fine Arts, Boston.



‘타히티판 창세기’라는 별명이 붙여진 이 대형 작품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시선의 방향을 이동해서 보게끔 되어있으며, 이로 인해, 작품 속에서 상징하는 이미지가 탄생에서 죽음으로 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을 제작하던 시기의 전후로 고갱은 그야말로 고통과 좌절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1897년 4월, 고갱은 아내 메테로부터 자신의 딸 알린이 폐렴으로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전해 받았으며, 그에 대해 절망에 가득한 편지를 회신한다. 


“어린 시절부터 불행은 늘 나를 따라다녔습니다. 행운은 한 번도 저를 찾아온 적이 없고 기쁨 같은 것도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운명은 항상 내게 적대적 이었지요. […] 신이여 당신이 정말 존재한다면 저는 당신의 부당함과 심술궂음을 고발하려 합니다.”


이 편지를 보면, 딸의 죽음은 일종의 트리거 이고, 고갱의 지속적인 불행한 삶을 짐작할 수 있다. 고갱의 아버지 클로비스 고갱은 고갱의 나이 한 살 때, 페루로 망명을 가던 도중 배 안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이후, 고갱은 어린시절을 페루에서 보낸 탓에, 프랑스어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성인이 된 이후에도 화가로서 인정받지 못했다.  고갱은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자살을 결심하고 시도한다. 몽프레에게 보낸 편지에 이 작품에 대한 설명과 함께 이 자살시도와 함께 작품에 대한 설명을 찾아볼 수 있다.


“12월의 자살 결심이 얼마나 확고했는지 말해 두어야겠군. 나는 죽기 전에 머릿속에 떠오른 구상을 위대한 작품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네. 그래서 한 달 내내 점도 자지 않고 믿지 못할 만큼 작업에 열정적으로 몰두했지. 사람들은 이 그림을 아무렇게나 그린 미완성 작품이라고 할지 모르겠네. 자기 작품을 스스로 평가한다는 게 어떨지 모르지만, 이 그림은 내가 전에 그린 어떤 작품보다도 뛰어나고 앞으로도 이 보다 더 좋은 작품은 나오기 어려우리라고 믿네. 죽기 전에 내게 남은 모든 힘과 극한 상황에서 나오는 고통스러운 열정을 모두 쏟아 붓고 순수하고 티없는 이상을 불어넣었네. 그래서 작품의 미숙함은 사라지고 삶이 올라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지


만약 로마 미술학교 학생들이, 당신 그림은 무얼 나타내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생각이네.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학생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나는 복음서를 빗대어 철학적 작품을 완성한 것이네

 


즉, 이 작품을 통해 고갱은 생의 마지막에서, 자신의 고뇌와, 좌절을 표현한 것이다. 편지 중간에 고갱은 ‘고통스러운 열정을 쏟아 붓고, 순수하고 티없는 이상을 불어넣었다’ 하였는데, 어쩌면 이 문장 자체가 고생이 스스로 생각한 자신의 인생을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삶에 고통스러운 열정을 쏟아 부은 이유가, 바로 스스로가 순수하다 생각한 이상을 위한 것이었다는 말이 된다. 그로인해, 바로 이어진 뒷문장에서 처럼, 작품, 즉 ‘나’ 고갱의 미숙함이 사라지고, 비로소 예술이 삶으로 삶이 예술로 되었다. 라는 말은 아닐까 ? 하는 생각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작품이 우리가 보편적으로 표현할 때의 ‘이상’이 아니라 고갱의 ‘이상’이 담긴 작품으로 해석이 된다. 즉, 고갱이 몽프레에게 보낸 편지에서 표현한 주제에 가깝다기 보다는 오히려, 초반에 딸의 죽음에 관한 편지의 회신으로 보낸 내용, “신이여 당신이 정말 존재한다면 저는 당신의 부당함과 심술궂음을 고발하려 합니다.” 에서 말한 고발적 상징성이 있다는 것이다. 오른쪽 아기와 등을 돌리고 있는 여인, 그리고 무관심하게 아기를 쳐다보는 여인 두 명, 시선을 이동하면,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에서 쫓겨나던 장면을 묘사 한 듯한 두 사람이 있고, 가운데는, 열매를 따는 자세를 취하는 사람이 서 있다. 이 중간을 기점으로, 고양이 두 마리와 앉아서 사과를 먹고 있는 아이가 있고, 그 바로 상단에 세계를 창조한 타로아의 상대 여신이자 달의 여신 히나가 있다. 마지막으로, 노인의 모습과 함께 도마뱀을 잡고 있는 흰 새 한 마리를 볼 수 있다.


전체적인 주제는 ‘탄생에서 죽음으로’이지만,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거의 모든 상징 이미지가 불안, 고뇌, 절망에 가깝다 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구성과 배열이 작품은 제목 오른쪽에서부터,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 그리고 가운데, 우리는 무엇인가 ? 그리고 마지막,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 로 부합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고갱이 삶에 대해 던졌던 의문이 상징적 이미지로 표현된, 철학적 내용의 작품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회화를 다루다 보면, 적지 않은 수의 그림에 작가의 삶이 마치 물감처럼, 스며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림을 보는 일은, 어쩌면 한 사람의 생을 보고, 숨결을 느끼는 일이 아닐까.



참고문헌

브래들리 콜린스 저이은희 역반 고흐 vs 폴 고갱다빈치, 2005.

폴 고갱 저반찬규 역폴 고갱슬픈 열대예담, 2000.

라영환폴 고갱의 기독교적 이미지 사용에 대한 연구신앙과 학문, 2013, 115-139.

김선규폴 고갱과 문화다양성의 표상다문화콘텐츠연구, 2020, 7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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