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74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섹션에 초청되었으며,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월드시네마 섹션을 통해 국내에 첫선을 보인 <플레이그라운드>(2021)는 놀이터 안팎 사이에 서 있는일곱 살 노라(마야 반데베크)가 떠나는 고민의 여정을 그린영화다. 로라 완델 감독은 <플레이그라운드>가 첫 장편영화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과감한 선택을 내린다. 로라완델 감독은 연출할 시 최대한 어른들의 얼굴과 시선을 프레임 밖으로 밀어내고, 카메라를 철저히 어린아이노라의 눈높이에 맞추며 사회 문제에 진중히 접근하고 면밀히 파고든다. 특히 중요한 순간마다 어른들의시선을 완전히 배제하는 대신, 홀로 학교폭력을 목격하고, 고민하고, 그리고 해결까지 해야만 했던 노라의 시선을 망원 렌즈로 삼아 학교폭력의 참상을 가슴이 시릴 정도로 침착하게 그려낸다.
<플레이그라운드>는 초등학교 입학 첫날아빠와 오빠 아벨(군터 뒤레)과 함께 등교하는 노라의 모습으로시작한다. 낯을 심하게 가리는 성격상 노라는 아빠와 잠깐 헤어지는 게 무서워 학교에서 계속 아벨만 찾아나선다. 휴식 시간이 시작되자마자 노라는 동급생 무리에 둘러싸인 아벨이 있는 놀이터로 한걸음에 달려간다. 그렇지만 아벨은 들러붙으려는 노라에게 친구들과 거칠게 놀고 있으니 다가오지 말라고 밀어낸다. 노라와 아벨 간의 줄다리기 때문에 투 숏이 형성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두아이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고집을 꺾지 않고 결국 아벨의 옆에 서게 되는 순간, 노라는 덩치 큰 동급생들에게 폭행당하고 있는 오빠를 아주 가까이서 목격한다.무엇보다 아웃 포커스된 아벨이 담긴 노라의 시점 숏은 이전 숏에서 흘렀던 긴장감을 진공 상태로 만들면서 노라가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음을명확하게 전한다. 하굣길 마중을 온 아빠가 오늘 하루가 어땠냐고 묻자 아벨은 축구 시합에서 두 골이나넣었다고 거짓말한다. 그 순간 절대로 시선을 주지 않는 아벨에 대한 노라의 리액션 숏은 오빠가 주는무언의 압박에 침묵할 수밖에 없는 노라의 불가피한 상황을 보여주는 동시에, 앞으로 모든 걸 혼자서 감당해야하는 노라의 미래를 암시한다. 다음날 수업 이동 중에 아벨이 계단에서 구타를 당하는 상황을 목도한 노라는담임교사 아그녜스(로라 베르랭당)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도리어 오빠의 동급생들은 아그녜스에게 신경 쓰지 말라는 무례한 발언을 하며 폭력을 이어간다. 설상가상으로 아벨의 학년을 담당하는 교사는 소극적으로만 조치하고, 이는물고문을 비롯한 더욱더 심각한 학교폭력의 기폭제가 된다. 아벨의 여전한 무언의 협박 때문에 어쩔 수없이 입을 다물고 있는 노라는 오빠의 곁에라도 있으려고 애쓰나, 그럴수록 두 아이 간의 줄다리기는 오히려극심해지며 투 숏이 형성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자기 학급 친구들마저도 오빠를 조롱하기 시작하자더는 참을 수 없는 노라는 아빠에게 오빠가 학교폭력에 시달리고 있다고 우회적으로 알린다. 그 과정에서오빠의 안전과 행복만을 위해 고민한 흔적이 깊은 시름에 잠긴 노라의 옆얼굴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충격적인 사실을 들은 아빠는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면 바로 알려달라고 부탁하지만, 아빠마저도 즉각적인 대처를 하지 않으면서 노라가 짊어져야 하는 부담감은 배가된다. 여기에, 교사의 분리 조치로 아벨이 노라와 함께 지내게 되자 친구들은면전에 냄새가 난다고 조롱할뿐더러, 오빠처럼 되고 싶지 않으면 집단 따돌림에 동참하라고 암묵적으로 협박한다. 그럼에도 노라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학급 친구들은 노라의 아버지를 일하지 않고 구걸하면서 음식과 돈을얻으려는 사람이라고 깔보며 은근히 따돌리기까지 한다. 며칠 뒤 아빠는 아벨을 괴롭힌 동급생들을 찾아내경고하지만 아벨은 되레 노라에게 증오의 눈빛을 날리고, 노라의 옆얼굴에는 오빠를 정말 사랑해서 내린선택이 예상과 다른 반응으로 이어진 것에 대한 난처함과 억울함이 묻어난다. 이후 놀이터에서 친구들과놀던 노라는 저항도 못하고 끌려가는 아벨을 봤음에도 계속 빙빙 돈다. 의도적인 회전 운동과 그로 인해흐려진 시야는 오빠를 지키겠다는 의지와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 간의 내적 충돌이 조금씩 일어나고 있음을 상징한다. 하지만 내적으로 갈등하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을 느끼는 노라의 옆얼굴은 오빠를 지키고 싶은 애절한 마음을 대변한다. 수업 중에 교장 선생님이 찾아와 지금 오빠가 심각한 사건을 당해 아빠가 학교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전하자 노라의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런 노라를 달래고자 꺼낸 담임교사 아그녜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사건의 본질에서벗어났고, 이에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노라의 단호한 옆얼굴은 이건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는내면의 절규처럼 다가온다. 이어서, 아빠를 보자마자 목소리를크게 내지 못하고 속삭이기만 하는 노라의 옆얼굴에는 본인 때문에 오빠를 더 아프게 한 거 같아 느끼는 죄책감이 나타난다. 아울러 해당 시점부터 유지되는 아이 레벨 숏은 노라의 감정을 가감 없이 보여줌으로써 학교폭력을 방관하는 현실의민낯과 학교폭력 피해자의 주변인이 겪는 2차 피해의 심각성 모두 환기한다.

어영부영하던 학교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열긴 하나, 가해 학생들은학교폭력을 시인하되 아벨에게 기계적인 사과만 되풀이한다. 어처구니없는 광경을 지켜보는 노라의 리액션숏과 아벨의 얼굴을 반만 프레임에 담아낸 숏이 일으킨 충돌 몽타주는 의미 없는 시간만 흘렀으며 완전히 도려내지 못한 학교폭력의 씨앗이 다시 싹틀것임을 암시한다. 학폭위가 끝난 후 노라는 아빠에게 직장을 다니지 않는 이유를 묻는데, 이때 그 말속에 숨겨져 있는 함의를 파악해야 한다. 노라는 아빠의무직 상태가 못마땅한 게 아니라, 학교폭력에 관해 한동안 주변만 서성거리고 모든 걸 자기에게 부탁한아빠 때문에 속상했음을 알아주기를 바랄 뿐이다. 여태껏 숨길 수밖에 없었던 감정을 배설한 노라는 동급생무리에 다시 다가가려 하지만, 이들은 노라를 생일 파티에 초대하지 않는 등 완전히 배척한다. 그런 학우들의 뒤를 악착같이 쫓는 노라를 보여주는 핸드헬드 팔로 숏은 또래 집단의 커뮤니티로부터 거부를 당한현실을 용납할 수 없는 노라의 처절한 심정을 시각화한다. 끝끝내 분을 참지 못한 노라는 같은 반 학생의생일 초대 카드를 모조리 찢어버린다. 해당 사건의 경위를 알게 된 왕따 주동자의 엄마는 노라에게 진심으로사과하며 오빠도 생일 파티에 초대하겠다고 말하자, 왕따 주동자는 그럴 바엔 생일 파티를 열지 않겠다고악쓴다. 이에 노라의 아빠는 아벨이 초대되는 게 싫은지 묻자 노라는 입을 열지 않은 채 몸만 이리저리흔든다. 왜냐하면 노라는 또래 친구들의 집단에 다시 소속되려면 아벨이 필요조건이 되어야 한다는 상황이싫지만 대놓고 표현하면 오빠에게 상처를 입히기 때문이다.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얼굴빛이 점점 어두워지는노라의 옆얼굴은 그녀의 내적 갈등과 난처한 마음이 최고조에 이르렀음을 이야기한다. 모든 게 엉망이 된노라는 다음날 학교에서 아벨이 옆자리에 앉자 자기도 모르게 짜증을 내고, 예기치 못한 동생의 모습에아벨은 외면하려 하지만 시선은 무의식적으로 바닥으로 향한다. 이 순간 번갈아 가며 아웃 포커스되는 노라와아벨의 숏들은 서로의 심경은 이해하지만 이미 엎질러져 주워 담을 수 없는 상황을 안타깝게 만든다.

그러고 나서 오빠가 새로운 친구를 사귄 걸 우연히 본 노라는 놀이터로 돌진한다.왜냐하면 지금까지 속앓이한 노라 자기자신도 외톨이가 되었는데 간만에 보는 오빠의 즐거운 모습에 괜히 화났기 때문이다. 마음이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은 노라는 학교에서 아벨과 어색한 어깨동무를 하며 남매 사진을 찍는다. 절대로 눈을 마주 보지 않는 투 숏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남매싸움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기실 해당 투 숏에서 포착된 노라와 아벨의 너무나 닮은 눈빛은 두 아이의 서먹해진 관계를 경유해 학교폭력을방치했을 때 피해자와 주변인이 겪는 2차 피해 및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현실을 다시 한번 환기한다. 그런데 어느 날 노라는 얼마 전까지 학교폭력 피해자였던 오빠가 가해자가 된 충격적인 광경을 똑똑히 본다. 무엇보다 노라가 받은 충격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지금껏 로라 완델감독은 노라가 아벨의 학교폭력 피해를 목격하는 순간마다 아벨을 아웃 포커스하고 노라를 전경에 내세우는 구도를 택함으로써 심경을 그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노라를 이전처럼 전경에 위치시키되 아벨의 악질적인 행동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피해 학생을 아웃포커스하며 기존 구도를 변주함으로써, 자기가 오래전에 제대로 대처했다면 오빠가 학교폭력의 피해자에서가해자로 전락하지 않았을 거라고 자책하는 노라의 심경을 명확하게 그려낸다. 이어서, 노라는 아벨의 잘못된 행동을 막고자 작은 체구임에도 필사적으로 오빠를 끌어안는다. 아무 말도 없었지만 노라의 진심이 담긴 숨결이 마음에 닿자 저항하던 아벨은 점점 침착해진다. 그리고 노라와 아벨은 조용히 서로를 안고, 비로소 노라의 옆모습에평온이 되찾아온다. 보통 감상주의에 빠진 영화들은 이 순간에서 페이드아웃하며 마무리된다. 이와 다르게, 로라 완델은 의도적으로 페이드아웃을 지연시켜 스크린밖에 있는 관객들이 모든 걸 혼자서 감내해야 했던 노라의 시간과 학교폭력의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아벨의 시간을 파노라마처럼 훑게 만든다. 이를 통해 <플레이그라운드>는폭력은 어떤 경우든 절대로 방관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할뿐더러, 폭력이 폭력을 낳는 악의 연쇄를 끊어낼수 있는 실천적 행동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