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라프먼의 nine eyes of google street view 는 구글 스트리트 뷰 이미지를 캡쳐한 아카이빙 작업으로, 구글 스트리트 뷰가 처음으로 보편화되기 시작한 2008년부터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다. 라프먼은 캡쳐한 이미지들을 pdf 파일로 저장하고, 텀블러에 업로드하거나 출판하는 다양한 방식으로 다루며 대형 크기로 확대한 이미지를 갤러리에 전시하기도 한다.
구글 스트리트 뷰는 자동차가 돌아다니면서 아홉 개의 렌즈를 가진 카메라로 각지역의 사진을 찍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스트리트 뷰의 발명을 통해 사람들은 지도를 볼 때 360도 전체를 조망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스트리트 뷰의 발명은 세계 전체를 조망하려는 인간의 욕망에 의해 계속 발전해나간다. 구글 스트리트 뷰의 이미지 전체가 데카르트적 원근법 법칙에 의해 구획되지 않고 발전되고 기술을 통해 새로운 조망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트리트 뷰가 가지고 있는 욕망은 근대의 원근법 중심주의적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시대착오적이다.
세계에 대해서 모두 파악하고 싶다는 욕망, 내가 실제로 그 공간에 갈 수 없음에도 간접적으로라도 모든 세계에 대해서 안다고 말하고 싶다는 욕망은 여전히 지배적이다. 구글 스트리트 뷰의 이미지는 여전히 스펙타클로서 작용되며 그러한 욕망에 의해 계속 발전해 나아간다.

라프먼이 캡쳐한 이미지들은 우연히 카메라에 찍힌 세계 다양한 지역 사람들의 일상들을 보여준다. 그러한 이미지들은 전혀 아름다운 이미지가 아님에도 그러한 이미지들이 예술적 아름다움을 가진 것처럼 평가되는 이유는 일상을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다기 보다는 관음적 욕망에서 비롯된다. 관음적 욕망을 내포하고 있는 이미지들은 매혹적이다. 스크린 샷에 나타난 사람들은 완전한 타인이지만 우리는 그들이 순간적으로 포착된 이미지들을 통해 타인에 대해 추측하고 평가하며 예술로서 혹은 실용적 기능으로서 소비한다.

구글 스트리트 뷰에 나타날 수 없는 지역은 실제 세계에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존재감을 가지지 못한다. 볼 수 있는 권력, 시각장을 확보할 수 있는 권력은 오랫동안 본다는 것에 대해서 가장 권력을 가진 시선으로 작용되어 왔다. 그러나 현대에는 보일 수 있다는 사실 동안 권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거의 모든 현대인은 세계에게 자기 자신을 보일 수 있기를 욕망한다. 보일 수 있다는 것은 단순히 보여지고 있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세계의 권력과 질서에 의해 선택된 주류 가치에 가장 잘 부합할 수 있는 사람임을 의미하며 이는 자본과 직결되기에 개인에게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라프먼이 스트릿 뷰에서 선택한 이미지들은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할 만한 사생활처럼 보이는 이미지가 많다. 이러한 라프먼의 작업은 사적인 이미지들이 가장 공적인 공간에 전시되는 일들에 대해 재검토하게 만들고 카메라에 보여지는 일에 대한 양가적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카메라에 보이고 싶은 욕망과 보이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 동시대인에게는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구글 스트리트 뷰의 이미지는 중립적이며 비의도적이다. 구글의 카메라에 의해 찍힌 이미지들은 사람이 카메라로 찍은 다큐멘터리 사진보다 객관성에 있어서 우위를 가진다. 구글의 카메라는 스트리트 뷰에 업로드할 사진을 선택할 때 어떠한 의미도 내포하지 않으며 전체는 랜덤적인 이미지들로 구성된다. 반면 존 라프먼이 자신의 아카이브를 완성하기 위해 캡쳐한 이미지들은 라프먼의 의도와 의지에 의해 선택된 이미지들로 의미가 부여될 수 밖에 없다. 만약 라프먼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동적으로 스크린샷을 찍는 기능을 통해 이미지들을 수집했다고 할지라도, 이미지가 축적되어 하나의 파일로 만들어 질 때 이미지를 보는 사람들, 관람자들은 그 이미지 사이의 관계와 의미를 해석하려고 노력하고 하나의 내러티브를 만들어 낼 것이다. 텀블러라는 인터넷 플랫폼에 이미지들을 업로드 하는 작업은 중립적이고 기계적인, 비의도적인 스트리트 뷰의 이미지들로 하여금 더 내러티브를 가지게 한다. 텀블러의 사용자들은 자기 자신 개인의 내러티브에 알맞다고 생각하는 이미지들을 내러티브하고 좋아요 버튼을 누름으로써, 적절한 캡션을 다는 작업을 통해 이미지들을 개인화하고 관계를 발생시켜 나간다. 구글이라는 평등성을 광고하는 플랫폼에 있어서 중립성은 이미지의 가치를 평가하는 척도로 작용한다.

더 중립적이고 객관적일수록 그 이미지는 더 가치있는 이미지가 된다. 구글은 스트리트 뷰 기능을 소개하면서 세계를 더 편리하게 만들기 위해 이미지를 축적했다고 명시한다. 그러나 라프먼이 구글의 스트리트 뷰에 올려진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이미지를 캡쳐하여 텀블러에 업로드 한 순간 그 이미지들은 예술의 위치를 가지게 되며, 이제 그 이미지의 가치를 평가하는 척도는 중립성과 객관성이 아니라 얼마나 더 많은 의미를 해석할 여지가 있는지, 얼마나 좋은 내러티브를 가졌는지이다. 텀블러에서 가장 많이 리트윗되는 이미지는 의미를 가진 것처럼 보이는 서사가 있는 이미지이지, 중립적인 이미지가 될 수 없다.
라프먼은 작품에 대한 인터뷰에서 구글 스트리트 뷰의 이미지들 중에서 뉴트럴한 이미지에서 의미와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을 만한 부분을 가진 이미지를 선택하고 거대한 자연과 스펙타클에서 숭고함을 느끼는 인간의 감정을 다시 도출해내려고 했음을 밝혔다. 이처럼 라프먼의 스크린 샷들은 플랫폼 속에서 무한히 복제된 이미지들을 넘나들면서 의미와 개인적 내러티브를 만들어내고 소비하는 현대인과 이미지와의 관계를 탐구할 뿐만 아니라 이미지가 매체마다 다른 가치를 가진다는 사실에 의해 논의할 수 있는 지점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동시대 예술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구미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