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GHLIGHT
식민지 이후의 시대를 살고 있는 말레이시아 속, 작품은 과일의 의미를 통해 현대화된 말레이시아의 전통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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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ryn Gill, 1999-2000
한 식당으로 보이는 곳에서 차가운 밀크티, 혹은 커피를 즐기고 있는 남성이 보인다. 청색 남방과 시계를 찬 남성의 얼굴은 람부탄으로 보이는 과일로 가려져있다. 마치 과일이 얼굴을 대체한 것 같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작품은 <세기의 전환기에 놓인 작은 마을(A Small Town at the Turn of the Century)> 로, 1999년부터 작가 심린 길 (Simryn Gill) 이 제작한 사진 시리즈이다.
말레이시아 출신의 심린 길은 싱가포르, 영국, 호주 등에서 거주하며 다양한 작업을 하던 중 고향 말레이시아 딕슨 항을 방문했다. 제목에서 알수 있듯, 심린 길은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고향의 모습을 담고자 했다. 작가는 본인에게 친숙한 집, 골프장, 식당, 바닷가, 공원 등 장소에 사진의 주인공을 배치했다. 스냅사진처럼 자연스럽기도, 초상화처럼 진중하기도 한 인물들의 포즈와는 달리 그들의 머리는 바나나, 망고스틴, 두리안 등의 과일을 쓰고 있다.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눈, 코, 입 그리고 머리카락이 전혀 보이지 않고, 과일머리는 우스꽝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imryn Gill, 1999-2000
평소 조각이나 설치작에서도 작가는 과일껍질과 같은 자연재료를 활용해 한 사람의 정체성을 장난스럽게 표현했다. 한편으로는 열대지방인 말레이시아의 수출과일을 연상시킨다. 특히 호주나 영국서 살았던 경험으로 인해 작가는 서양국가에서 대량수입하는 열대과일이 가지고 있는 식민지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작가는 열대과일과 그것을 생산해내는 동남아를 이국적인 휴양지로 바라보는 시선을 의식한다. 그리고 그 시선이 말레이시아인의 정체성에도 뻗어났음을 이야기한다. 식민지 이후의 시대를 살고 있는 말레이시아 속, 작품은 과일의 의미를 통해 현대화된 말레이시아의 전통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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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조혜연_ 일러스트레이터. 같이 공부하고 싶은 마음으로 쓴 현대미술 작가와 작품 이야기들_heyonch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