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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마약, 그리고 시대의 우울 | ARTLECTURE

꽃과 마약, 그리고 시대의 우울

-너, 이 그림 본 적 있니?_페르난도 보테로-

/Picture Essay/
by 안노라
꽃과 마약, 그리고 시대의 우울
-너, 이 그림 본 적 있니?_페르난도 보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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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비가 오는군요. 비는 생명을 살리는 비라 바라보는 마음 만으로도 편안하고 촉촉합니다. 갑자기 기형도의 이 말이 떠 오르더군요.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음을 믿는다." 전 "가장 오랜 아름다움이 자연 속에 있음을 느낀다." 어쨌든 올 봄, 산불이 났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없네요. 다행입니다. 느루도, 저도 요즘 새로운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간의 일들과는 너무나 다른 일들이 주어져 적응하느라 몹시 바쁘고 어설프군요. 느루에게 보내는 다정한 편지는 못 썼네요. 대신 요즘 미얀마와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뉴스를 들으며 제가 가슴 아프게 기억하는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ptero Angulo, 1932~ )의 그림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는 명작에 대한 재 해석으로 아주 유명합니다. 예를 들면 이렇게.








굳이 어떤 그림에 대한 패러디인지 말씀 드리지 않아도 금방 아시겠지요. 우리에게 아주 가깝지는 않은 보테로에 대해 소개 드릴게요. 

‘꽃과 마약’ 어울리나요? 종이는 아무리 얇아도 앞면과 뒷면이 있습니다. 앞면이 꽃이라면 뒷면이 마약일 수도 있는 것이겠지요. 이렇게 극단적 이미지의 불일치를 한 몸에 안고 신음하는 공간이 있습니다. 콜롬비아의 ‘메데인’입니다. 

이곳은 세계적인 마약 상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메데인 카르텔’의 본거지이자 네덜란드에 이어 세계 최대 꽃 생산지이며 오늘 소개할 페르난도 보테로의 고향입니다. 야만의 문명이 총구를 겨누기 전, 금과 에메랄드의 고향이기도 했습니다. 귀한 자원과 넓은 땅, 생에 대한 정열과 선량한 마음씨들이 모여 사는 아름다운 곳에 콜럼버스가 도착했습니다. ‘개화’와 ‘문명’이라는 이름이 상륙하자 ‘영원한 봄의 도시’라는 별명을 지닌 이곳은 ‘마약’과 ‘독재’와 ‘폭력’의 특별거주 지역이 되었습니다
.


<파블로 에스코바르>


 

그가 라틴아메리카 특유의 낭만과 자유로움을 그리워하며 현재의 고단함을 기록한 <콜롬비아의 춤>을 소개합니다. 고국의 현실에 눈 감지 않은 그의 언어로 그의 희망을 읽어 볼까요?



<콜롬비아의 춤>


 

화면이 터질 듯합니다. 가스가 팽팽하게 주입된 애드벌룬처럼 통통거립니다. 사과가 떠 있고 담배가 흩어져 있는 비현실적인 공간 위를 두 명의 댄서가 춤을 추고 있군요. 붉고 검은 정열적인 의상은 화면 가운데로 시선을 이끕니다. 라틴 아메리카는 예로부터 룸바, 살사, 탱고 등 그들의 원시적 역동성을 드러내는 뜨거운 춤이 많았습니다. 토착민인 인디오, 스페인의 오랜 지배로 인한 이베리아, 아프리카에서 온 노예들의 문화가 섞여 라틴 특유의 이국적이고 정열적인 문화를 만들었지요.

그런데 음악과 춤이 있는 장면 치고는 몹시 적막하지 않은가요? 춤을 추고 있는 두 남녀의 표정이 경직되어 보이는군요. 음악이 춤을 추기엔 적절하지 않은지도 모릅니다. 연주자들을 살펴볼까요? 더블베이스와 기타는 현이 없군요. 공명하는 울림구멍도 없거나 아주 작습니다. 항아리처럼 부푼 관악기로는 소리를 밖으로 밀어 내지 못합니다. 플롯처럼 보이는 악기는 너무 작습니다. 연주자와 댄서는 있는데 음악과 춤은 없습니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요?

그의 조국은 1970~80년대 독재 치하였습니다. 독재는 이권과 결탁하기 마련이고 치안은 갈수록 불안해 졌습니다. 아픈 가족이 있어도 밤엔 약을 사러 나가지 못했고, 어린 아이는 굶주렸으며 일자리는 없었습니다. 궁핍은 쉽게 마약의 카르텔에 더 많은 수의 국민이 빠져들게 했습니다. 민주주의는 절름거렸고 언론은 소리 내지 못했습니다.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은 엄격히 제한되었지요. 저 <콜롬비아의 춤>에서의 연주자들처럼 악기를 가지고 있되 소리는 낼 수 없었습니다.

그는 그만의 방법인 대상의 볼륨감을 과장되게 표현하는 ‘보테로몰프’ 기법으로 저항합니다. 그의 무기는 부드러움과 풍만함입니다. 정물도 인물도 풍경도 풍만하다 못해 육중하게 부풀어 있습니다.





부피감 있는 인물들은 물리적이고 신체적인 슬픔과 고통을 비현실적으로 느끼게 합니다. 내전의 참혹함도 분홍과 주황을 입혀 날 것으로 대면하게 하지 않습니다. 사납고 거친 주제도 가볍고 여유 있고 심지어 따뜻하게 전달할 줄 압니다. 미망인의 가난한 집, 둘째 아들로서 자라나 독학으로 회화를 공부했지만 관습적 화풍이 그를 길들이기 전에 독자적인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 내었습니다. 양감과 색감과 형태에 숨어 있는 그의 무겁고 진지한 메시지를 찾아보시겠어요?







정물화조차도 풍부한 양감이 살아있습니다. 다른 그림도 소개해 드릴게요.






입을 꾹 닫은 아담도 (아마 하나님께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 거예요. 왜 하필 그렇게 뇌쇄적인 이브를 만들어 제 곁에 두었느냐고...)

이브도... (이브를 유혹했다던 뱀이 얼마나 초라한가요. 저 두께와 근력으로는 이브의 허리에도 못 올라갈 것 같습니다. 보테로만큼은 뱀이 이브를 유혹했다고 생각지 않았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제우스에게 납치 당한 에우로페도... (빈약한 가슴과 두툼한 뱃살과 튼실한 허벅지를 보세요.ㅋㅋ 그녀는 "안 돼요~ 돼요~ 돼요~" 를 외치고 있는 듯 합니다.)

심지어는...





침대로 들어가는 여인조차 풍성합니다. 브래지어를 푸는 빨간 손톱이 앙증맞군요. 연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만반의 준비를 끝냈습니다. 제 눈에는 침대의 남자가 살짝 긴장한 듯 보입니다만...ㅎㅎ 여인의 엉덩이를 사과로 표현한 것도 위트 있지요?


보테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난 한번도 뚱보를 그린 적 없다. 양감과 색감이 드러나길 원했을 뿐이다."
  

그는 '풍만함'을 자신의 개성으로 삼았습니다. 그가 캔버스에 창조한 인간들은 모두 스스로의 색과 공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주눅 들지 않는 당당한 개인들이 밀고 당기며 의사소통하는 광장입니다.

그가 명화에 대한 재해석으로 유명한 화가라고 말씀드렸지요. 그는 여백이라고는 찾을 수 없이 터질 듯한 자신의 스타일대로 고전을 재 해석했습니다. 몇 작품 더 보여 드릴게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란 작품 중, 정 중앙에 자리 잡은 마르가리타 공주입니다.





보테로는 <벨라스케스를 따라서>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그렸습니다.





느낌이 너무 다르지요? '속물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품위라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보테로는 어설픈 '품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 작품도 보시겠어요? 왼쪽은 루벤스의 <루벤스와 아내> 입니다. 오른쪽은 보테로의 <루벤스와 아내>입니다.

그의 터질 듯한 양감은 '사랑'이나 '결혼'이라는 제도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부풀어 있는 무표정으로 제도 안에 담겨있는 건조하고 리얼한 감정을 찾아냅니다. 마치 sexless인 부부처럼요.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우르비노 공작 부부의 초상>입니다. 미술사에서는 무게가 있는 그림입니다. 우르비노의 공작이었던 페데리코는 전투를 대신하는 용병대장이었습니다. 창 시합에서 오른쪽 눈을 잃었지요. 그래서 아내를 바라보는 왼쪽 얼굴만 그렸습니다. 그의 아내 스포르차는 여덟 번째이자 후계자인 첫 아들을 낳고 죽습니다. 그녀가 죽은 후 데스마스크(Death mask)를 쓴 시체를 보고 그려 놓은 으스스한 그림이지요. 엄격한 의미에서 초상화에서 프사처럼 보여주고 싶은 모습 만을 보여줄 수 있도록 변칙을 사용한 첫 사례이기도 합니다.

아래 쪽은 프란체스카의 그림을 패러디한 보테로의 <우르비노 공작부부의 초상>입니다. 페데리코의 창에 찔린 오른쪽 눈이 멀쩡하게 보입니다. 프란체스카의 작품이 더 서늘한가요? 보테르의 작품이 더 서늘한가요?

한 발자국, 더 들어가 봅시다. 이 그림을 자세히 보세요.
보테로의 <거리>라는 작품입니다. 천천히, 같이 읽어보아요.



페르난도 보테르 <거리>

  


경찰관이 있고 수녀가 있고 행인이 있고 아이를 손잡고 가는 어머니가 있고 창문을 여는 여인이 있고 현관에 남자가 있고 교회와 푸른 산과 높은 하늘과 흰 구름이 있습니다.

그들은 아주 까맣고 조금 까맣고 조금 희고 아주 흽니다. 다양한 종족이 섞여있는 라틴 아메리카를 의미하지요. 그들의 얼굴에서 감정을 느낄 수 있나요? 자유로운가요? 그들 사이에 교류가 있다고 느껴지시나요? 창문 위의 여인은 누구를 바라보는 걸까요?

거리에 있는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의 시공간에 있습니다. 아무도 눈을 마주하지 않습니다. 순간 스치되 머무르지 않지요.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는 침묵 속에 냉정함이 묻어 납니다.



(왼) 피카소 <우는 여인> / (오) 보테로의 <우는 여인>




피카소의 여인은 소리내어 우는데 보테로의 여인은 눈물을 펑펑 쏟기만 합니다. 피카소의 여인은 관객과 함께 울 줄 압니다. 보테로의 여인은 울면서도 어찌할 바 모르는 당혹함이 그림에 묻어 납니다. 보고 나면 제 가슴이 먹먹합니다. "왜 우느냐"고 물으면 말을 더듬거릴 것 같은 저 여인에게 보테로는 간신히 수건 한 장을 쥐어줬을 뿐입니다.

그는 고통을 마주 대하지 않습니다. 원색을 사용하고 익살스럽게 포장합니다. 슬픔은 표백제를 사용한 면 빨래처럼 희고 가볍게 빨래줄 위를 살랑거립니다.

이제 부드럽고 가벼운(?) 그의 슬픔을 들여다 볼 차례입니다.
  

그의 조국 콜롬비아는 중남미 지역에서 경제적 빈부격차가 가장 심한 나라입니다. 전체 토지의 50% 정도를 전체 인구의 0.4%가 보유하고 있습니다. 35,000명의 부유한 인구가 국가 부(富)의 22%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상상이 되시나요?

53년에 걸친 내전이 있었고 민간인 살해, 성범죄, 납치, 차량 폭탄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내홍에 시달렸습니다. 패권국인 미국은 제 나라의 이익을 위해 무수한 범죄와 불의와 폭력과 기만을 적극적으로 묵인, 용인, 이용했습니다.



보테로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 시리즈



이라크 전쟁에서 미군에게 포로로 잡힌 이라크인들에 대한 고문과 학대가 대대적으로 보도 되었습니다. 이를 그림으로 나타내었지요. 상처 입은 몸은 보테로몰프 기법으로 인해 물질성이 강조되고 더욱 참혹하게 느껴집니다. 마치 자국민의 고통처럼 그는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보테로는 캔버스에서 부패한 권력을 정조준 했습니다. 그가 붓으로 쏘아 올린 미사일은 독재와 내전의 한복판으로 떨어졌으나 폭발력은 작가의 안전을 더 크게 위협했습니다. 그는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이런 작품을 남겼지요.



보테르 <꽃 3연작>



콜롬비아의 국기를 보시면 이 꽃 3연작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아실 수 있으실 거예요.




<콜롬비아 국기>



2012년부터 진행된 평화 협상이 우애곡절 끝에 가결되어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평화협정 합의문 서명에 사용된 펜은 내전 때 사용되었던 총알을 녹여 만들었다고 하지요. 펜에는 "총알은 우리의 과거를 썼다. 교육이 우리의 미래다" 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그의 작품 속에 숨죽이고 있는 많은 콜롬비아인들이 기지개를 펴고 자유롭게 뛰쳐나올 날을 기다립니다. 풍만함 속에 감추어진 고뇌와 우울이 여유와 평화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주섬주섬 꿰매고 기웠던 글을 마칩니다.



all images/words ⓒ the artist(s) and organiz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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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안노라_역사를 그림으로 푸는 안노라입니다. 그림과 음악과 문학과 역사의 숨은 이야기를 엄마와 딸이 알콩달콩 수다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