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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를 담다. | ARTLECTURE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를 담다.

-데이비드 골드블라트(David Goldblatt)-

/Insight/
by 아트팩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를 담다.
-데이비드 골드블라트(David Goldbla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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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공용어 중 하나인 아프리칸스어(Afrikaans)로 '분리' 또는 '격리'를 뜻하는 이 단어는 해당 국가에서 1948년부터 약 40여 년 동안 시행된 '유색인종차별정책'을 가리키기도 한다. 남아공 인구의 16%를 차지하는 데 불과하였던 백인들은 어떠한 이유로 이 정책을 만들어냈으며, 어떻게 자신들의 지위를 공고히 하는 데 이용하였을까?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공용어 중 하나인 아프리칸스어(Afrikaans)로 '분리' 또는 '격리'를 뜻하는 이 단어는 해당 국가에서 1948년부터 약 40여 년 동안 시행된 '유색인종차별정책'을 가리키기도 한다. 남아공 인구의 16%를 차지하는 데 불과하였던 백인들은 어떠한 이유로 이 정책을 만들어냈으며, 어떻게 자신들의 지위를 공고히 하는 데 이용하였을까? 남아공 영토에서 자행된 인종차별사()의 시작은 아파르트헤이트 시기보다 훨씬 앞선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600년대 중반, 보급기지 건설을 위해 네 척의 동인도 회사 배를 이끌고 케이프 지역에 도달한 네덜란드인들은 이곳에 정착촌을 만든 뒤 현지인들을 준노예화함은 물론, 값싼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예를 수입하기 시작한다. 동인도 회사의 해산으로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이 지역에 영영 정착하게 된 네덜란드인들은 스스로를 '아프리카너(Afrikaner)'라고 불렀으며, 이들의 후예가 현재 남아공 백인 인구의 약 60%를 차지하는 '보어(Boer)'인들이다.

 

19세기 말-20세기 초, 네덜란드 본국이 영국에 의해 케이프 식민지를 빼앗김과 동시에 노예제가 폐지됨에 따라 농업과 목축업을 중심으로 남부 아프리카 지역에서 세력을 형성해 나가던 아프리카너들은 정치적, 경제적 난관에 봉착한다. 자신들의 힘을 되찾기 위해, 그리고 이 지역에서 발견된 어마어마한 양의 다이아몬드와 금을 두고 벌어진 두 차례의 '보어전쟁(Boer War)'에서 영국에 패한 아프리카너들은 기득권을 완전히 잃게 되고 만다. 결국영국의 치하 아래 그들만의 민족주의를 발전시키기로 결심한 아프리카너들은 1914년 국민당(National Party)을 결성하고 그동안 쌓인 분노의 화살을 유색인종특히 흑인들에게 돌리기 시작한다. 국민당의 탄생으로 정치적으로 결속하게 된 아프리카너들은 이제 영국인들과 대치하는 대신, 수적 우위를 가진 흑인들로부터 백인들의 이익을 지켜낸다는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1934년 연합당(United Party)을 구성한 뒤, 남아공 내 백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써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고안해낸다. 이렇게 뭉친 각지의 백인들은 '문명 보호'라는 명분을 앞세워 흑인들의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활동을 제한함은 물론, 인종에 따른 거주지역을 분리하고 지역 간의 통행을 강력히 규제하였다. 이에 따라 흑인들은 백인들의 시설을 이용할 수도, 거주지역에 출입할 수도 없게 되었으며 이를 어길 시 폭력적인 처벌이 그들에게 가해졌다.




백인 거주지역으로 향하는 흑인들의 모습



그런데 남아공 내에서도 이러한 극단적인 인종차별정책에 반발한 백인들이 당연히 존재하였고, 이번 칼럼에서 소개할 사진작가 '데이비드 골드블라트(David Goldblatt)'가 바로 그 예이다. 1930년, 리투아니아에서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남아공으로 이주한 부모님 밑에서 태어난 데이비드 골드블라트는 아파르트헤이트 정책 아래, 온갖 특혜와 특권을 누리는 백인들과는 반대로 소외되고탄압받는 흑인들의 초상을 사진으로 담아냄으로써 모순적인 남아공 사회상을 고발하였다. 골드블라트의 작품세계가 우리에게 강한 여운을 남기는 이유는 그의 사진들이 인종차별의 폭력적인 순간을 담아내는 대신, 생계를 위해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육체적, 정신적 폭력을 견뎌내며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흑인들의 담담한 얼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백인 거주지역에 위치한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8시간이 넘는 거리를 달리는 버스에 오른 흑인들은 백인인 작가의 존재를 잊은 것인지, 아니면 백인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 조차 없는 것인지 그의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데이비드 골드블라트(David Goldblatt), Pulling out of Pretoria: the 7:00 p.m. bus from Marabastad to Waterval in KwaNdebele, 1984.

데이비드 골드블라트(David Goldblatt), 8:45 p.m. Going home: Marabastad-Waterval bus: 8:45 p.m., 45 minutes to the terminal, 1983.

 



데이비드 골드블라트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업이 정치적 선전으로서의 의미를 가지지 않을 뿐더러, 그러한 의도로 이용되는 것 또한 원치 않음을 피력하며 작품 속 이야기의 결말을 보는 이들에게 맡긴다고 언급하였다.비록 작가는 특정 의도를 작품에 반영하지 않는다고 설명하였지만, 그가 작업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과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시, 공간적 배경을 달리하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이미 효과적으로 전달되고 있지 않을까 한다.

 

그는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으로부터 야기되는 인종차별 문제뿐만 아니라 남아공 사회에서 '소수자'로 여겨지는 이들의 일상을 담아내기도 하였다. 기득권 세력인 백인 남성들의 시선을 충족시키는 미인대회에 참가한 백인 여성들의 모습, 아프리카 내 다른 지역에서 남아공으로 넘어온 난민들의 모습 등은 골드블라트 자신 또한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소수자라는 시선을 감당해내야 했기에 그의 마음을 대변하기 위한 또 다른 소재들이었을 것이다.




데이비드 골드블라트(David Goldblatt), Saturday Morning at the Hypermarket: 

Semi-final of the Miss Lovely Legs Competition, Boksburg June 28, 1980, 1980.


데이비드 골드블라트(David Goldblatt), Refugees from Zimbabwe given shelter in the Central Methodist Church, 

Pritchard Street, 22 March 2009, 2009.




1991년,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의 폐지와 함께 약 300년에 걸친 남아공에서의 인종차별사는 일단락된다. 그러나 데이비드 골드블라트는 남아공 사회와 그 구성원들의 초상을 계속해서 렌즈 속에 담아내며 '포스트 아파르트헤이트(Post-Apartheid)'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정체성'과 '가치판단'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작업을 이어 나갔다. 그가 2018년, 생을 마감하기까지 남긴 사진 작품들은 세계 곳곳의 미술관에 걸려 우리에게 인종차별 문제와 남성과 여성, 다수자와 소수자라는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폭력에 대해 여전히 상기시키고 있다.


 


데이비드 골드블라트(David Goldblatt)



끝나지 않은 인종 간, 국가 간의 갈등 그리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더욱 깊어지고 있는 그 골을 우리는 매일같이 눈으로 목격하고 있다. 예술적으로 인정받는 예술가 대신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진가'가 되고 싶어했던 골드블라트의 메시지에 우리가 다시금 주목해야 할 이유이지 않을까.

 


[1] https://www.history.com/topics/africa/apartheid#&gid=ci0245618b100025ab&pid=photo-gallery-apartheid-getty-2664162

[2] https://www.history.com/topics/africa/apartheid#&gid=ci0245618b100025ab&pid=photo-gallery-apartheid-getty-93106695

[3] https://collections.vam.ac.uk/item/O131204/pulling-out-of-pretoria-the-photograph-goldblatt-david/

[4] https://www.artic.edu/artworks/236597/8-45-p-m-going-home-marabastad-waterval-bus-8-45-p-m-45-minutes-to-the-terminal

[5] https://www.moma.org/collection/works/84216

[6]https://www.walthercollection.com/en/collection/artworks/refugees-from-zimbabwe-given-shelter-in-the-central-methodist-church-pritchard-street.-22-march-2009

[7]https://africasacountry.com/2018/06/david-goldblatt-1930-2018

참고자료

1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jaune10&logNo=220036857724&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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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제현_아트팩트-아트팩트는 미술사, 순수예술, 미학 등 예술 분야를 전공자들이 모여 만든 문화컨텐츠 제작 프로젝트 그룹이다. 아트팩트는 팟캐스트, 칼럼, 전시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탄탄한 관련 정보 수집 및 전공자들의 해석을 기반으로, 양질의 예술 정보를 대중들에게 전달하며, 대중적인 시각으로 예술을 사회적 논의로 풀어내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예술의 다양한 형태를 소개할 뿐만 아니라, 예술에 관련한 풍부한 사회문화적 담론을 이끌어내 전공인과 비전공인 사이의 예술적 가교 역할을 추구하는 그룹이다. artfactprojec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