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허앵, <You are what you eat 1>, Oil on canvas, 80×116.2cm, 2021
들어가며
익숙한 모든 장치가 와르르 무너지는 경우가 닥친다. 아침에 일어나기, 전차로 출근하기, 사무실이나 공장에서의 네 시간 근무, 식사, 전차, 네 시간 근무, 식사, 잠 그리고 똑같은 리듬으로 반복되는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이러한 일정은 대부분의 경우 어렵지 않게 이어진다. 어느 날 문득 ‘왜’라는 의문이 고개를 들고, 놀라움이 동반된 이 무기력 속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1)
카뮈는 그의 철학 에세이 「시지프 신화」에서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부조리한 것으로 파악하고, 부조리한 세계와 대면하는 인간의 삶의 자세를 논한다. 천신만고 끝에 정상에 올려 놓으면 다시 산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바위. 그 바위를 계속해서 밀어 올리는 부질없는 수고를 이어나가는 시지프의 운명은 사회의 굴레에 갇히고 길들여져 반복된 패턴의 일상을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유사하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처럼 한 인간의 삶은 끝없는 자기모순과 비이성적인 판단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것을 인지하는 순간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것은 자신을 향한 자괴감과 모멸감이다. 이러한 회의주의적 사고방식은 미술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이미 운명의 시작과 끝이 결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세계에 대해 물음을 던지는 작가들이 있다. 이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것들 중에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는 것을 증명해 내고자 한다. 그렇게 ‘무기력’ 속에 탄생한 비일관된 자아는 그 다음 상황을 촉발시킨다.
<먹고 마시고: 사랑하지만 역겨운 나에게>
김허앵은 평소 생활에서 불가피하게 마주치는 것들-사람 혹은 사건들-을 재료로 이야기를 짓는다. 2) 작년 킵인터치에서 있었던 <mama do> 전에서 작가는 산후 우울증을 앓게 된 경험을 기반으로 그의 육아 일상을 해학적으로 그려냈다. 당시 그의 작품들이 마치 시트콤의 한 장면처럼 ‘엄마하기’에 수반되는 고충을 증언했다면, 인스턴트루프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번 전시에서 그는 ‘먹고 마시는’ 것으로 대표되는 일상적인 행위에서 발생하는 양가적인 감정에 주목한다.
김허앵, <You are what you eat 3>, Oil on canvas, 60.5×73cm, 2021
‘나’라는 존재에 대해 물질적으로 접근한다면 결국 ‘나’는 ‘내가 먹는 것’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겠는가. 경쾌한 색면 배경과 도식화된 인물들의 표정이 마치 만화 속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김허앵 작가의 작업은 왠지 모르게 시니컬한 어조를 굉장히 강하게 풍기는데, 그 이유는 작품에 인용된 장면들이 지적하는 날 것 그대로의 ‘팩트’ 때문이다. ‘You are what you eat(2021)' 연작은 통제력을 잃고 식욕에 지배된 인물과 각종 주류, 인스턴트 식품으로 도배된 냉장고와 식탁 위를 묘사한다. 입이 귀 옆까지 찢어진 채로 즉석떡볶이를 해치우는 인물은 말 그대로 ’먹다가 미칠‘ 지경에 이르렀다. 먹는 것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하는 행위. 이것은 비극인가. ‘먹기 위해 사는지, 살기 위해 먹는지’ 모르게 주객이 전도된 웃픈 장면을 그린 그의 작품들은 쉽게 웃어 넘어갈 수만은 없는 상황을 연출하며 스스로에 대한 ‘역겨움’을 유발한다.
김허앵, <Broccoli>, Oil on canvas, 60.5×60.5cm, 2021
그렇다고 해서 식습관을 한 순간에 바꿀 수도 없는 법. ‘Broccoli(2021)'에는 소위 ’디톡스‘ 기능이 있다고 알려진 브로콜리와 양배추가 해변을 배경으로 그려져 있다. 바다를 떠다니는 양배추와 모래사장에 심어진 브로콜리라는 초현실적인 풍경은 건강식품이 만들어낸 허상과 그러한 이미지를 소비하는 현대인의 일상을 꼬집는다.
‘건강식을 먹는다고 더 건강해지는 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에 다다라 더욱 강하게 밀려오는 허무감을 마주하고 나면 살이 찌는 것과 별개로 식사를 할 때마다 마음의 무게가 점점 무거워져만 갔던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하루 얼마나 ‘쳐’ 먹었는지를 반성하며 새로운 내일을 다짐해보지만 이는 영영 오지 않는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실까. 이 희대의 난제는 아마도 사는 내내 우리를 뒤따를 것이다. 마치 다이어트처럼.
<Morining Menu>
김허앵의 작업이 엉뚱한 유머 감각과 해학으로 일상의 단면과 그 이면에 숨겨진 무시무시한 기제들을 포착한다면, 김다혜와 남다은은 새롭고 낯선 자아와의 충돌을 익숙하고도 현재적인 감각으로 표현한다.
김다혜의 <맥거핀 서스펜스 그리고 후추와 ATM기기의 상관관계>는 죽은 화면처럼 이미지 없는 영상 자막을 포함한다. 영상과 조각의 배경은 동이 트기 전이다. 두 작가의 교환 노트에서 알 수 있듯 김다혜는 ‘사용자가 들어오기 전까지 기다리는’ ATM 기기의 입장에서 작업을 전개한다. 영상은 ‘후추가 사라진’ 어느 날 후추를 중고거래하기 위해 ATM기기에서 현금을 인출해야하는 설정으로부터 출발한다. 영상은 다분히 현실적이지만 결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후추가 사라진 것도 모자라 후추를 사고 파는 것조차도 쉽지 않다. 하루 24시간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각자가 느끼는 시간의 체감 길이가 다르듯, 작업 속 ATM은 사회의 시차 속 그만의 시차를 지키고 있는 존재로서 등장한다. 그렇게 의인화의 과정을 거쳐 시간의 세계로 편입된 ATM은 전시 공간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서는 누군가가 찾아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동이 틀 무렵의 빛을 ‘맞이’하듯, 어둠 속 빛나는 ATM의 화면은 마치 새벽녘의 어슴푸레한 빛처럼 밤중의 불안과 혼란을 일부 해소시킨다. 그렇게 아침은 다시 찾아온다.
김다혜, <맥거핀 서스펜스 그리고 후추와 ATM기기의 상관관계>, 아크릴과 비닐, 가변크기, 2021 / 남예은, <창문을 통해 보이는 숫자>, 혼합 패브릭, 가변크기, 2021
남예은의 <창문을 통해 보이는 숫자>는 아침으로부터 나머지 하루의 어떠한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상태에서 시작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모든 것이 투명하지 않은 상태로부터 갈피를 잡으려는 시도이다. 이미 잘려 있고 채집한 패브릭들의 재구성으로써 피스들에게 각 숫자가 부여되고 주사위로 배치가 결정이 된다. 으레 커튼을 열어젖히는 행위는 아침을 맞이하는 관례처럼 여겨진다. 커튼을 여는 순간 우리는 어떤 풍경을 마주할지 이미 대강은 알고 있다. 해가 떠 있거나, 비가 오거나, 조금 흐리거나. 이러한 광경이 사라진 아침은 얼마나 당혹스러울까. 아니, 재미있을까. 가지각색의 패턴과 컬러를 지닌 패브릭들의 조합은 이질적이면서도 꽤나 조화롭다. 이처럼 임의적인 선택이라고 할지라도 결국은 모든 것은 어떠한 기준에 의해 결정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이 상상한 결말이 다가올 것인지 기대하며 아침을 맞이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희망 없는 세상에 맞서는 인간의 역설적인 행복이 아니던가.
마치며
그림으로 존재의 의미를 찾아내려는 김허앵의 작업과 관성적으로 되풀이 되는 일상 속 비일상의 틈을 발견해내는 김다혜, 남예은의 작업은 적어도 우리 몸에 밴 고질적인 문화적 패턴, 인류가 살아온 방식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이들은 자신의 가장 개인적인 경험을 작업에 녹여내지만 그렇게 탄생한 결과물은 어찌보면 ‘우주적으로’ 공통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합리성이나 인간의 실존 따위와 같은 지극히 사변적인 논리들은 작품 속 혼란스럽고 불안한 상황들에 의해 해체된다. 이는 정상궤도에서 이탈해 부조리한 운명에 맞서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와 자유의 산물이자 모든 것에 무기력하게 반응하면서도 자신의 현실을 재창조하고자 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세계에 던져진 인간의 비극(이자 희극)은 그렇게 몇 가지 실패와 성공을 동시에 낳는다.
<참고문헌>
1) 알베르 카뮈, 『시지프의 신화』, 열린책들, 2020,
2) 윤민화, 『mama do』 전시 서문,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