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5가에 즐비한 대로변의 약국들을 지나쳐 골목 안쪽에 자리한 두산갤러리는 두산아트센터 1층에 위치한다. 지리적 입지 조건이 결코 나쁜 편이 아님에도 대중의 방문보다는 흔히 말하는 미술계의 인사들만이 방문하는 전시 맛집 같은 두산갤러리는 종로에 가면 꼭 들리는 공간이기도 하다. 금호와 두산 출신 아닌 작가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은 작가를 배출하고 있는 두산갤러리는 대기업의 이름에 가려진 것이 아쉬운 공간이기도 하다.
rain reading 전시전경 © 두산갤러리
평범할 것 없는 가장 플랫한 화이트 큐브에 펼쳐진 모더니즘 시대의 작품들을 연상시키는 «Rain Reading»은 강동주, 김인배, 박우진, 허우중 4인의 그룹전이다. 전시 설명 첫 마디에 기획자는 기획 의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다가올 어떤 일을 예측하거나 감지하는 우리의 일상적인 감각을 비를 예감하는 일에 비유하여 바라본 기획전이다”
한 기상청 관계자가 ‘매일 비가 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날씨를 예측하는 것보다 높은 정답률을 가진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만큼 날씨를 예측하는 것은 21세기에 살아가는 현재에도 어려운 일이다. 인간의 한계, 코로나19로 깨닫게 되는 많은 사실 중의 하나이자 더불어 과학의 한계도 깨우쳐 가는 요즘 비를 예측하는 과학적 수치와 데이터가 아닌, 공기 중의 습도를 머리카락과 코끝의 온도로 느끼는 인간 태초의 감각에 귀 기울이게 하는 전시가 «Rain Reading»이었다.
rain reading 전시전경 © 두산갤러리
전시장 전체를 빗속 공간으로 연상하게 하는 김인배의 <선 속의 선>을 중심으로 벽면을 따라 회화의 가장 기본적인 재료라 할 수 있는 종이에 연필 드로잉으로 완성된 강동주의 ‘빗물드로잉’ 시리즈가 펼쳐진다. 장마기간 동안 내리는 비를 받아낸 종이가 마른 뒤 나타낸 형상을 그려낸 ‘빗물드로잉’은 회화의 기초 작업으로서의 드로잉이 아닌 그 자체로 작업의 완성을 이루는 드로잉을 보여준다.
박우진_creep_ ©정소영
이번에 참여한 작가 중 새롭게 발견한 작가는 박우진 작가였다. 94년생이라는 작가의 어린 나이도 한몫 했지만 언뜻 지나치기 쉬운 작품을 전시기획 안에서 주목하게 하였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흰색과 검은색, 그 안에서의 재료와 강약에 따라 달라지는 그라데이션의 강도만이 존재한 전시공간 속에서 박우진의 <creep>은 유일한 구상작품으로 전시의 마침표가 되어주었다. 작가의 일상 공간의 빛과 어두운 주변 공간을 표현한 <creep>은 판화 기법의 하나인 메조틴트(mezzotint)로 표현하였다. 별도의 설명 없이는 연필 드로잉처럼 보이는 작품은 시각이 갖는 한계를 깨닫다가도 표면으로 드러나는 질감의 표현까지 전시 기획에 포함된 것인지 경의와 의문을 동시에 갖게 했다.
그 옛날 그린버그(Greenberg, Clement)가 칭송한 모더니즘 회화의 매체 순수성의 위대함을 깨닫는 순간이었던 이번 전시는 장마 이전에 전시가 끝나는 것이 조금은 아쉽지만 회화의 본질에 대해, 그리고 삶에서의 기초적인 감각에 대해 생각해 보는 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