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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의 나, 만들어진 나 | ARTLECTURE

실제의 나, 만들어진 나

-너, 이 그림 본 적 있니? <알브레히트 뒤러>-

/Picture Essay/
by 안노라
실제의 나, 만들어진 나
-너, 이 그림 본 적 있니? <알브레히트 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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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존재의 증명은 타인의 시선과 '좋아요'보다 자신에 대한 존중과 믿음에서 시작해야 한다. 현실의 자신을 인정하고 격려하고 믿어야 한다."

비가 오고 바람 부는 주말엔 따뜻한 집에 콕 박혀서 부침개에 막걸리를 마시자. 냉장고를 열면 김치가 있을 거야. 김치만 있어도 부침개는 뚝딱이니까. 낭만적인 집이라면 막걸리도 있겠지. 혹시 낭만이 떨어졌다면 근처 슈퍼에서 사 오면 돼. 비 오고 바람 부는 봄날 오후, 커튼을 내린 거실의 작은 테이블에 막걸리와 부침개를 준비하고 영화를 보는 거야. 틈새 없는 창문은 세상의 바람을 막아줄 테지. 오롯이 혼자서 또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 보는 거야. 다른 세상이 어디 있냐고? 흰 토끼를 따라가면 돼. 매트릭스의 토마스 앤더슨이 흰 토끼를 따라가듯 말이야.   

  

느루도 여러 번 봤을 영화 <매트릭스>를 다시 한번 보았구나. 보면 볼수록 놀라운 영화야. 20년 전의 영화인데도 지금의 현실과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고 있는 듯한 설정이 놀라워. 이 영화는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이라는 책의 인식을 기반으로 만들었다고 하지.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토마스 앤더슨이 해킹 자료 저장 디스크를 보관하던 초록색 표지의 책, 기억나니? 영화에서는 5~6초 정도밖에 나오지 않아. 아마 감독의 복선이었겠지.


(왼)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 / (오) 영화 매트릭스에서 나온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 책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1981년에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라는 책으로 실제보다 더 실제와 같은 이미지, 아니 나아가 원본 없는 이미지가 그 자체로서 원본을 대체하고 독자성을 지니게 되는 현상을 예언했지. 그의 책은 잘 벼린 검과 같이 현대 사회의 중심을 깊이 절개했어. 깨끗하게 잘린 절단면에는 미디어가 소비하는 이미지를 통해 존재가 결정되는 거대한 문화 프레임이 숨김없이 드러났단다. 매트릭스가 가상과 현실이라는 두 세계를 축으로 진행되는 것처럼 현대사회는 미디어에 의한 가짜 이미지를 소비하고 있다고 말했지. 그리스 신화에서 꿈의 신이었던 모피어스가 앤더슨에게 두 손을 벌리며 말하잖아. 빨간약과 파란 약 중 선택하라고. 토마스 앤더슨으로 살던 그가 네오로 살게 될 다른 세상, 이미 분리되어 있는 실제 세상을 만나기 위한 선택.

  

느루야, 영화 <매트릭스>와 같은 시기가 올까? 현실세계와 현실세계와 같은 가상세계가 있는 걸까? 글쎄, 그건 모르겠지만 내가 게임을 하거나 인터넷 채팅을 하거나 글을 올리는 '온라인에서의 이미지'와 집에서 살림하고 쇼핑하는 '실제의 나' 사이에 공간이 있는 건 사실이야. 도대체 어떤 것이 진짜 나일까? 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 나는 나를 어디에서 만나지? 오늘은 자신의 얼굴을 그린 자화상을 찾아보자. 옛사람들은 자신을 어떻게 보고 나타내고 인식했는지 궁금하구나.


너, 이 그림 본 적 있니?


알브레히트 뒤러 <자화상, 1500>

   


거리에서 이 남자를 만난다면 고개를 돌리지 못할 것 같아. 눈에 얼음과 번개를 담고 있네. 꿰뚫어 보는 눈, 고집 센 코, 메두사같이 살아 움직이는 머리칼을 가졌어. 헤어숍에서 금실을 꼬아 붙임머리를 하면 저렇게 될까? 어깨에 출렁거리는 금빛 머리카락 아래엔 깃에 달린 고급스러운 모피를 여미고 있는 우아한 손가락이 보여. 고요히 앉아있는 그는 완강하면서도 기품이 있구나. 엄마는 영화를 보고 난 뒤 소파에 나무늘보처럼 엎어져 있다 캥거루처럼 발딱 일어났단다.  

  

이 그림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 1471~1528)의 <자화상, 1500>이야. 자화상(self-portrait)의 어원은 '끄집어내다', '밝히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prothahere에서 portrait가 나왔다고 해. 결국 자기 내면의 무엇을 끄집어내거나 밝히는 걸 의미하는 것이지. 자의식 없이는 자화상을 그릴 수 없다고 하니까. 값비싼 모피코트를 입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그를 봐. 한낱 솜씨 좋은 기술자 취급을 받던 신분 낮은 화가가 아닌, 창조하는 예술가로서의 단단한 자의식이 배어 나와. 빛은 조심스럽게 뒤러의 이마와 손등에 떨어졌고 어두운 뒷 배경 왼쪽에 그의 로고, AD와 제작연도인 1500이라는 숫자가 그려져 있어. 오른쪽엔 "나, 뉘른베르크 출신의 알브레히트 뒤러는 28세의 나이에 불변의 색채로 자신을 그렸다."는 글귀도 보여. 마치 영화에서 페이드인(fade-in, 화면이 처음에 어둡다가 점점 밝아지는 일)하듯, 일렁이는 화면 위에 금박 물린 글씨가 조금씩 조금씩 환영처럼 떠올라. 신비하고 영적인 분위기로 주변을 압도하네.

  

게다가 당시 초상화에서 정면을 바라보는 자세와 좌우 대칭은 예수 그리스도의 전매특허였어. 함부로 흉내 낼 수 없었지. 그런데 그는 그런 구도를 빌려와서는 신의 아들처럼 당당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어. 뒤러는 흙으로 빚은 인간 중 만물을 창조한 신을 닮은 이가 있다면 그건 화가라고 생각했대. 대단한 자부심이지.



(왼) 알브레히트 뒤러 <자화상, 1484> / (오) 알브레히트 뒤러 <미하엘 볼게무트 초상, 1516>


  

물론 그의 자화상이 이게 처음은 아니야. 열세 살 어린 나이에 자신의 모습을 은필 소묘로 그렸단다. 그의 첫 번째 선화(線畵)이자 자화상이지. 예리한 관찰력으로 특징을 파악하고 난 후, 군더더기 없이 단번에 그린 솜씨야. 은필화는 지우거나 고칠 수가 없거든. 열세 살의 아이가 그렸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능숙하고 깔끔하지. '탁월함'이란 이럴 때 어울리는 단어겠지. 또 도제 시절 그의 재능이 꽃피울 수 있도록 가르치고 격려했던 스승 미하엘 볼게무트의 모습도 보여줄게.

  

엄마가 지난번에 뒤러의 아버지가 뒤러의 뛰어난 그림솜씨를 보고 미카엘 볼게무트라는 화가이자 목판 삽화가에게 보냈다고 했지. 그림을 배우게 하려고 말이야. 그는 스승에게서 화가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 기법과 데생 등을 착실히 배웠단다. 뒤러가 그린 스승의 모습을 보렴. 인간의 욕망이나 정념이나 비루함을 모두 걸러낸 뒤, 신실하고 깊은 내면만을 남긴 모습 아니니? 삶에 꼭 필요한 것만 남아있는 것 같은 얼굴이야. 뒤러는 스승을 존경하고 따랐지. 스승이 세상을 떠난 뒤 "그는 82년을 살았으며 1519년 해가 뜨기 전 성 안나의 날에 세상을 하직했다."는 문장을 오른쪽 위에 삽입하고 스승님을 애도했어.

  

뒤러는 틀니와 보청기를 끼고 인간과 멀어졌던 늙은 중세가 아침밥을 먹고 뛰어오는 유년의 르네상스에 바통을 넘겨주던 시기의 사람이란다. 오랜 겨울이 지나고 싱그런 물이 차오르는 봄과 같은 시기였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이름이 바람을 타고 알프스 산맥을 넘어오고 수채화와 풍경화가 등장하고 납작하고 지루한 캔버스에 원근법이라는 환각제가 투여되던 시기야.



알브레히트 뒤러 <인체 비례론, 1525> 중 원근법에 관한 삽화

  

  

요즘도 선진학문을 배우기 위해 유학을 가잖아.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그림과 조각, 문화가 보존되어 있던 이탈리아는 당시 여러 개의 크고 작은 공국으로 나뉘어 있었어. 각 통치령마다 자국의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해 예술가에 대한 대대적인 후원이 있었단다. 그래서 당시 이탈리아의 미술은 인형 안에 또 다른 작은 인형이 계속 나오는 '마트료시카' 같았어. 비슷했지만 같은 건 하나도 없었지. 게다가 뒤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최고의 화가로 흠모했구나. 그는 1494년부터 일 년 가량 베네치아로 여행을 떠나 르네상스의 세례를 받는단다.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우리들이 아는 미술계의 천재들, 조반니 벨리니, 베첼리오 티치아노, 라파엘로 산치오, 조르조네 등이 모두 이때의 찬란한 별들이지. 그는 이탈리아에서 원근법과 비례 법을 배웠고, 50세에 이르러 <인체 비례론>이라는 책을 쓰면서 원근법에 관한 삽화를 그리기도 해.

  

뒤러는 1505년부터 1506년에 걸쳐 다시 베네치아로 여행을 떠나. 이 여행에서 그는 선을 통해 양감이나 명암을 표현하는 기법이라든지 색채가 주는 강력한 힘을 깨닫게 되지. 근면하고 통찰력 있었던 그의 탐구는 북유럽 회화의 성장과 판화의 저변을 확대하는 동력이 돼. 역사에서 보면 여행을 통한 성장과 성숙에 도달한 예가 많아. 젊은 사람들에게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구나.



(왼) 알브레히트 뒤러 <자화상, 1493> /  (오) 알브레히트 뒤러 <자화상, 1498>


  

왼쪽 자화상은 스무 살 즈음의 그가 도제 생활을 마치고 유럽의 여러 곳을 여행하던 중에 그려 고향집으로 보낸 작품이야. 당시 부모님이 신붓감을 정하셨거든. 양가의 혼담이 오가던 중이라 약혼녀에게 그려 준 것인지도 모르겠어. 독일 시인 괴테가 지금으로 치면 뒤러의 덕후였다고 할까? 열성 팬이었는데 괴테가 뒤러의 그림을 꼼꼼히 살피던 중, 이 그림에서 뒤러가 들고 있는 꽃이 부부의 애정을 상징하는 '에린지움'이라는 것을 알아냈다고 하는구나. 1494년 오순절, 여행에서 돌아온 뒤러는 명망 있는 뉘르베르크 상인의 딸인 아그네스 프레이와 결혼해. 그녀는 순종적이고 선한 여인이었지만 뒤러의 예민하고 섬세한 신경, 지적인 에너지를 담지는 못했던 모양이야. 평생 자녀가 없어서인지 이러저러한 설이 있더라.

  

오른쪽 장갑을 낀 자화상은 1498년, 그가 남유럽을 돌아다니며 피렌체나 베네치아풍의 그림을 공부하고 있을 때 그린 작품이야. 창 너머에 의도적으로 알프스 풍경을 넣은 듯 보이고 당시 유행하던 줄무늬 모자에 흰 장갑을 꼈어. 자신감 넘치는 포즈와 당당한 얼굴도 시선을 사로잡지만 그의 옷차림을 보면 요즘 아이돌이 무색할 만큼 세련되고 유니크하지 않니? 그는 의식에 있어서나 패션에 있어서나 심미안이 뛰어났던 것 같아.

  

그런데 느루야, 화가들은 왜 자화상을 그렸을까? 자신의 얼굴이니 판매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주문을 넣은 것도 아닌데 말이야. 카메라가 없던 시절, 자의식이 강한 화가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얼굴을 그렸어. 하지만 처음부터 드러내 놓고 그리진 못했단다. 주문받은 그림에 아주 정교하게 끼워 놓거나 역사적 인물을 자신의 얼굴로 바꾸어 그려 놓는 방법을 썼어. 대표적인 작품이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이지만 설명이 길어질 염려가 았으니 오늘은 이 두 그림을 보자. 얀 반 에이크 작품인 <아르놀피니 부부>에는 뒤 거울에 얀 반 에이크라는 화가의 모습이 비치고 <동방박사의 경배>에는 다들 갓 태어난 예수에 정신이 팔린 사이, 오른쪽 구석에 산드로 보티첼리 자신의 모습을 그려놓았단다.



(왼) 얀 반 에이크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 (왼, 위) < 거울 속 화가 모습>

(오) 산드로 보티첼리 <동방박사의 경배> / (오, 위) <그림 속 보티첼리 모습>


  

르네상스 이후에는 그림에 대한 평가를 할 때, 누가 그렸는지에 대한 화가의 가치가 중요해졌어. 화가들은 맵고 짜고 시고 쓴 삶의 순간들을 마주칠 때마다 자신의 모습을 기록했어. 대표적인 화가가 렘브란트야. 그의 자화상은 그림으로 쓴 자서전이라고 하지.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다음에 자세히 설명해줄게. 그럼 뒤러의 자화상은 왜 유명할까? 뒤러는 처음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홍보하는 수단으로써 자화상을 그렸단다. 그는 "나는 세상을 창조하는 예술가예요." 하는 일종의 커다란 그림 명함을 제작했던 거야. 그건 느루가 셀피를 찍는 마음과 비슷해. 느루가 자랑스러운 일이 있거나, 친구와 일상을 공유하거나, 자신을 돋보이고 싶을 때, 셀피를 SNS에 올리는 것과 같지.  

  

셀카를 찍는 모습을 흔하게 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정말 많더구나. 한쪽에선 자기 과시나 허영심, 나르시시즘 등으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하지만 엄마의 생각은 조금 다르단다. 자기 과시보다는 존재 증명, 허영심보다는 외로움, 나르시시즘보다는 생존전략이라고 보여. 나를 인식하는 상대의 존재가 없다면 나는 있는 걸까, 없는 걸까? 사회적 사망, 또는 왕따라고 일컬어지는 현상을 보면 인식이 없다면 존재도 없는 것으로 여겨져. 광고가 없다면 상품도 없다는 말처럼 말이야. 나의 일상을 SNS에 계속 업로드하는 건, "내가 여기 있어요." 하는 존재의 외침이 아닌가 싶어. 드러내기보다 사라지지 않으려는 노력. 타인과 함께 하려는 필사의 외침이 엄마의 귀에 아프게 들린단다.

   

현대는 자신을 드러내는 시대지. 자신의 존재가치가 '안 씨 문성공파 11대손'이라는 누구누구의 후손이나 아들로서 인정받는 시대는 지났으니까. 전통은 존재를 보호해주지 못했지. 아니 존재가 전통의 보호를 바라지 않았어. 왜냐하면 그건 집단적 의미가 강했거든. 문성공파 11대손은 나 하나가 아니니까. 근대가 낳은 여러 가지 중에 '개인'은 예상치 못했던 혼외자야. 사람은 신의 자식이거나(신민), 왕의 자식(백성)이거나 그도 아니면 공화국의 자식(국민)이어야 했는데 어느 날 '세상에 유일한 존재로서의 나'라, 집단을 초월해 모든 것의 기본이 되는 자의식의 씨앗이 뿌려졌어. 교육과 산업 발달이 가져온 깨우침이었지. 이제 개인은 각자의 가치를 각자의 방법으로 실현하려 노력하게 되지.

  

지금으로부터 약 500년 전인 1509년에 뒤러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그림 한 점을 보자.



알브레히트 뒤러 <누드 자화상, 1503년 경>


  

그는 타인을 의식하지 않아. 그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어. 마치 앞에 거울이 있는 양, 몸을 약간 구부려 자신을 샅샅이 관찰하고 있지. 긴 머리는 헤어 네트로 묶고 어깨와 가슴으로 이어지는 단단한 근육, 접힌 옆구리의 긴장, 늘어진 음낭의 탄력, 허벅지와 빛이 비치는 슬개골까지 가감 없이 기록하고 있어. 가늘고 길쭉한 몸이면서도 힘이 느껴져. 이 그림에서는 그의 나르시시즘이 보이는구나. 그는 아마 모눈종이에 뼈와 근육과 장기의 길이와 무게를 빠짐없이 기록하며 자신의 정신과 존재가치가 몇 kg인지도 확인했을 거야.

  

자화상과는 다르게 셀카가 허영심이나 나르시시즘을 조장한다는 비판은 아마도 자신의 모습 그대로가 아닌 사진이 갖는 기술을 이용해 자신을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조작이나 환영에 대한 거부감일지도 모르겠다. 정밀한 에디팅의 결과로 전혀 다른 '나'가 나오는 인생 샷을 건지기도 하니까. 득템 했다고 하잖아. 하지만 옛 화가들도 형태나 구도, 색이나 음영 등을 이용,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로 각색한 것도 엄연한 사실이란다. 사람이 실제 자신의 모습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세상에 보이길 원하는 건 본능이 아닐까 싶다. 느루야, 셀카로 대변되는 사회현상에 대한 엄마의 노파심은 다른데 있어.

  

쉽게 성형을 예로 들어 보자. 우린 모두 아름답길 원하지. 느루도 느루가 원하는 아름다운 이미지로 성형을 했어. 무척 만족스러워. 그럼 이제 어떻게 하지? 과거 불만스러웠던 자신의 사진은 없애기 시작할 거야. 자신이 아니라고 부정하게 되는 거지. 만들어진 이미지는 실제 나로부터 출발했지만 이제 이미지 즉, '성형 후의 나'는 실제에서 독립된 '나'가 되지. 복제물이 원본을 대체하게 돼. 아까 말한 장 보드리야르라는 학자가 현대사회를 진단한 거야. 현대를 하이퍼 리얼리티의 세계라고 하지.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원본보다 더 원본 같은 복제물의 시대라고 말이야. 현대는 일상에서의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갈수록 모호해지고 불분명해지고 있어.


(왼) 영화 <조작된 도시>에서 게임 속 완벽한 리더인 권유 / (오) 현실에서 평범한 백수인 권유

  

  

그러니 현대인들이 가상의 SNS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유지하려고(존재를 증명하려고), 아니면 '좋아요'와 같은 인정과 공감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건 당연하지. 더 환상적인 이미지로의 업그레이드가 그 세계에서 더 오래 생존을 보장하기도 하겠지. 갈수록 알맹이보다 포장된 이미지가 중요해지는 사회에서 그것이 얼마나 절박한 것인지도 느낀단다. 다만 그 노력의 부작용으로 현실을 왜곡하거나 방치하게 될까 봐 걱정하는 거야. '실제의 나'와 '만들어진 나'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릴까봐 우려하는 거야. 과거 충만한 자의식으로 자신을 그렸던 화가들의 자기 재현과 현대 기술문명이 우리에게 가능하게 한 자기표현은 무엇이 달라진 걸까?

  

자신을 다소 멋지게 표현하는 '셀카' 정도를 가지고 너무 비약하거나 지나친 우려라고? 그럴 수도 있어. 하지만 혹시 SNS에 있는 자신보다 실제의 모습이 초라하다고 느껴 타인과 만나는 걸 두려워하는 건 아닐까? 내밀한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없어 점점 더 외로워지는 건 아닐까? 상처 받을까 겁나기 때문에 직접 만나고 부딪치기보다 인터넷 검색하듯 상대방에게 피상적으로 접근하는 건 아닐까? 너희들의 "썸 탄다"라고 하는 말이 엄마에겐 때로 그렇게 들려. 그래서 불안할 때가 있단다.

  

그리고 서로 만나고 겪으면서, 싸우고 화해하며, 이해하고 알아가는 과정을 생략하고 온라인 상의 이미지로 문자를 주고받는 걸 친구로 여기는 건 너무나 허약하고 부실한 관계라고 말해주고 싶구나.  아무런 방책도 없이 걱정만 하고 있는 엄마의, 아니면 기성세대의 노파심을 이해해주렴.



(왼) 알브레히트 뒤러 <자화상, 1522> / (오) 알브레히트 뒤러 <자화상, 1521>


   

위의 두 자화상은 1520년부터 21년까지 네덜란드를 다녀온 후, 회색빛으로 세어진 머리카락과 주름진 자신의 몸을 그린 거란다. 수척해 보이지. 풍성했던 머리칼도 줄었고 살짝 늘어진 뱃가죽과 주름도 감출 수 없지. 오십이 된 나이 탓도 있지만 그건 여행 중의 사고 때문이야. 동식물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그는 마침 네덜란드 해안에 고래가 떠밀려 왔다는 소문을 들었어. 급히 달려갔지. 하지만 고래는 보지 못하고 그는 열병에 걸렸단다. 오른쪽 자화상은 그가 의사에게 보낸 편지 속에 삽입된 그림으로 "손가락을 가리키는 곳이 아파요." 하는 자가진단서지. 하지만 의사도 그를 낫게 하지 못했어. 정확한 병명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췌장 종양으로 사망했을 거라고 해. 죽기 직전에 마른 짚 덤불처럼 바싹 말라버렸다고 하는구나.

   

그는 우아한 것들을 사랑했어. 명예와 품위, 지식, 고급스러움, 음악과 예술을 연모했지. 생명을 사랑했고 저속함을 혐오했어. 그는 윤기 나는 옷과 비싼 장신구를 사는데 돈을 아끼지 않았어. 그에게 있어 화가란 신의 환상을 옮기는 메신저였으므로 아름답고 고귀해야 했지. 화가로서 자신에 대한 무한 자부심을 갖고 자신을 홍보하고 선전했던 천재가 남긴 자화상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닐까?


"존재의 증명은 타인의 시선과 '좋아요'보다 자신에 대한 존중과 믿음에서 시작해야 한다. 현실의 자신을 인정하고 격려하고 믿어야 한다."라고 말이야.

  

느루야, 턱을 깎고 볼을 세운 보정으로 얼굴이 조막만 해진 셀피도 예뻐. 음식에 약간의 다시다는 풍미를 돋워주는 것처럼 그건 존재의 여분에 뿌리는 환상의 금가루지. 빛나는 그 알맹이에 지치지 않는 생명력이, 작은 재능도 소홀히 여기지 않는 자부심이, 뻔뻔하리만치 세상에 대해 저돌적인 당당함이 있는 '자아'가 옹골차게 들어있도록 노력하자. 셀피보다 아름다운 자화상을 그리자.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주문을 외워보자.


Abracadabra(아브라카다브라)! Abracadabra(아브라카다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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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안노라_역사를 그림으로 푸는 안노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