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속 판타지를 꿈꾸며 | ARTLECTURE

현실 속 판타지를 꿈꾸며

-호텔 이매지너리, <맑은 세계>-

/Preview/
by 쇼코는왜
Tag : #현실, #판타지, #세계,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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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속 판타지를 꿈꾸며
-호텔 이매지너리, <맑은 세계>-

HIGHLIGHT


<맑은 세계>는 아무것도 없는 순수한 상태의 세계가 아니다. ‘맑은 세계’는 자신이 판단과 생각이 최우선 되는 세계, 나보다 높은 무언가의 이름 아래 행해지는 자유가 아닌, 외부의 간섭 없이 오롯이 스스로 판단하고, 불안하고 고독하지만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세계가 바로 이 전시에서 밝히는 ‘맑은 세계’다. 관리자의 질문 속에서 우리는 나의 선택을 생각하고, 그것이 가져올 결과를 반추한다. 스스로의 선택이 가져온 결과에 대해 희열이 느껴질 수도 있지만, 동시에 또 다른 고민을 만들어낸다는 점 또한 깨닫게 된다. ‘맑은 세계’를 지키는 과정은 생각보다 깨끗하지 않다....

가끔 지나간 순간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분명 그 당시에는 어떻게든 그곳을 빠져나오고 싶었음에도 돌이켜보면 다시 한번 그 치열했던 삶으로 뛰어들고 싶은 순간들. 대학생 때 나는 문학 동아리 활동을 했다. 매주 각자가 가져온 시와 소설을 읽으며, 좋은 점과 나쁜 점을 토론했고 때로는 고성이 오갔다. 당장이라도 주먹다짐을 할 것처럼 서로를 경계했지만, 보통 모임 후 술 한 잔을 먹으면 풀렸다. 나는 굉장히 옹졸해서 대부분의 작품을 폄하했다. 그렇다고 그것들을 압도할 만큼의 실력은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 과정에서 생긴 스트레스의 대부분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었고, 나는 그것에서 도망치기 위해 동아리를 탈퇴했다. 그런데 내 발로 도망쳐 나온 그곳이 그리울 때가 있다. 시를 쓰겠다며 발버둥 치고 글이 안 써진다는 핑계로 마셨던 술들이 가득한 공간, 누가 언제부터 사용했는지 모를 접이식 라꾸라꾸에 누워 밤을 새웠던 그곳을 떠올리게 하는 전시를 다시다녀왔다.

 

<호텔 이매지너리 외부>


 

호텔 이매지너리, 이전에도 와봤던 곳이다. ‘코펜하겐 해석인디언 캠프를 중심으로 펼친 스토리텔링 전시, 그곳에 모인 5명의 생각이 충돌하는 현장에서 나는 문학 동아리를 떠올렸다. 말할 차례를 기다리며 생각을 정리하는 순간, 더듬으며 준비한 말들을 뱉으면서도 불안한 손을 가만두지 못해 난장판이 된 손톱까지. 심지어 전시가 끝난 뒤 느껴지는 아찔한 현기증조차 나에겐 모두 그리운 것들이었다. 그 기억을 가지고 체크인을 마쳤다. ‘맑은 세계’ 1.

 (과거 연관 전시: https://artlecture.com/article/684)



<류민지, Leaves, 2019>


<류민지, a moon, 2019>


 

전시는 크게 4개로 나눠진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도련님>을 중심으로 하는 스토리텔링, 류민지 작가의 <Leaves>, <a moon>, <Starry>를 전시한 공간, 그 사이로 흘러나오는 에릭 사티의 <Aldo Ciccolini> LP, 마지막으로 모든 전시가 끝난 이후에 차분하게 감상할 수 있는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어느날 밤에 생긴 일>까지. 언뜻 산발적으로 퍼져 있는 것 같은 4가지를 묶는 것은 다름 아닌 판타지. 물론 이곳이 디즈니랜드라는 의미는 아니다.

 

이 전시에서 판타지를 다루는 방식은 단순히 현실과 이상의 구분, 낭만적인 세계로의 도피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에서 더 나아가 개인의 욕망이 향하는 방향, 그것이 세계와 부딪혔을 때 작용하는 반응, 그리고 그것을 무릅쓰고 추구하려는 개인의 이상을 다룬다. 그중 하나로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도련님>을 통해 자유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자유로움의 기원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자유롭다고 착각하는 현실에서 벗어나, 다른 어떤 것보다 개인의 자유와 위상을 가장 우선시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도련님>1906년에 나온 일본에서 소설이다. 당시 일본 사회에 만연하게 깔린 전체주의 속에서 개인의 사상과 신념은 뒷전이 된다. 그런 상황 속에서 개인주의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것, 이는 이기주의와는 다르다. 내 생각을 관철하는 것만큼 다른 사람의 생각도 존중하겠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적 배경 아래서 주인공이 겪는 고난과 선택에 충분히 생각해보고 내가 그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반응할지에 대해 관리자는 끊임없이 질문한다.

 

<맑은 세계>판타지는 나-타인-세계란 상대적인 층위에서 발생한다. 여기서 판타지는 세계 속 자아가 아닌 자아 속 세계를 형성하는 것, 자기 자신을 타인이나 주변 세계보다 더 높은 층위에 둘 때 발현된다. 이는 위에서 밝힌 개인주의에 빗대 생각해보면 더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개인의 삶은 그 자체로 하나의 판타지다. 우리는 2020년의 경험이 1906년의 경험과 부딪히는 과정에서 그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관리자는 <도련님>의 주인공을 통해 우리의 판타지를 간접 체험을 시켜준다.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닌 제삼자의 경험을 살펴볼 때 우리는 이 주제에 대해 객관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날 밤에 생긴 일 포스터>

 

전시의 다른 작품들도 이런 층위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영화 <어느날 밤에 생긴 일>은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드러나는 개인의 심리와 층위의 변화, 상징적인 요소들로 단순할 수 있는 영화 구조를 한층 다채롭게 만들어준다. 돈의 유무에 따른 피터의 변화, 세계에 대해 알아갈수록 당당해지는 엘리의 변화는 그들의 판타지를 관객들에게 확실하게 드러낸다.

 

나는 전시 내내 한 가지 사실을 주지하고 있었다. 자유는 결과고, 어떤 과정이나 수단이 아니다. 그 자체로 목표고 상정된 결과다. 우리는 자신이 자유로운 만큼 타인과 주변 세계 또한 자유롭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그저 자유를 목표에 두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우연한 상황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자유의지라 부르는 것 또한 그저 결과일 뿐, 그 과정에서 내 선택이 온전히 자유롭다는 걸 보장하진 않는다. 스스로가 자유롭다는 착각 역시 판타지다.

 

<맑은 세계>는 아무것도 없는 순수한 상태의 세계가 아니다. ‘맑은 세계는 자신이 판단과 생각이 최우선 되는 세계, 나보다 높은 무언가의 이름 아래 행해지는 자유가 아닌, 외부의 간섭 없이 오롯이 스스로 판단하고, 불안하고 고독하지만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세계가 바로 이 전시에서 밝히는 맑은 세계. 관리자의 질문 속에서 우리는 나의 선택을 생각하고, 그것이 가져올 결과를 반추한다. 스스로의 선택이 가져온 결과에 대해 희열이 느껴질 수도 있지만, 동시에 또 다른 고민을 만들어낸다는 점 또한 깨닫게 된다. ‘맑은 세계를 지키는 과정은 생각보다 깨끗하지 않다. 전시 중간중간 충분히 치열하게 생각하길 바란다.

 

호텔 이매지너리의 전시는 가을에 다시 찾아올 예정이라고 한다. 지금 장소에서의 마지막 전시가 될 수도 있으니 기회가 된다면 한 번 찾아가길 바란다. 친절한 관리자의 안내와 따뜻한 홍차, 쿠키를 먹으며 전시를 즐기다 보면 어느새 단골손님이 돼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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