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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누군가에 대한 '기억' | ARTLECTURE

향수, 누군가에 대한 '기억'

-마리 앙투아네트와 몽테스키외-

/Art & History/
by 이지아
Tag : #역사, #기억, #향기, #향수
향수, 누군가에 대한 '기억'
-마리 앙투아네트와 몽테스키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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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향수는 애초에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단순히 좋은 냄새를 풍기는 것에서 이제는 누군가에 대한 ‘기억’이 되어버린 향수에 대해 알아보자....



“낯선 남자에게서 그의 향기를 느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광고 카피 중 하나이다.

내가 처음 향수를 사용한 건 스물다섯 살, 항공사 입사를 하고 나서였다. 회사에서는 4개월간의 신입 교육 동안 서비스와 안전에 관한 내용을 비롯해 헤어, 메이크업 그리고 향수 사용법까지 가르쳤다. 사회인으로, 성숙한 여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기쁨과 동시에 이제는 풋풋한 나이가 아님에 서글픈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비행이 있는 날이면 손가방에 향수 미니어처를 지니고 다니며 필요할 때면 언제든 꺼내어서 뿌리곤 했다. 특히 비행 중 두 번째 식사 서비스를 준비하기 위해 갤리 안으로 들어가면 각양각색의 향수 냄새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레스트(rest: 장거리 비행 시 첫 번째 식사 서비스가 끝나면 조를 나누어 일정 장소에서 쉬는 행위)가 끝나고 다들 각자의 향수를 뿌리고 나오는 통에 좁은 갤리는 커다란 향수 단지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나의 첫 향수는 동기에게 선물 받은 것으로 내 취향과는 다소 거리가 먼 짙은 향이었지만 20년 가까이 같은 향을 고집하고 있다. 누구나 우연히 맡은 향기에 ‘그때 그 사람’이 떠오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름도, 얼굴도 흐릿하지만, 면세점에서 나눠준 퍼퓸 테스팅 스트립이 다시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 경험. 향수란 옛 기억이나 추억을 불러올 수도 있는 것이란 생각에 바꾸기가 조심스럽다.     


향수는 애초에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단순히 좋은 냄새를 풍기는 것에서 이제는 누군가에 대한 ‘기억’이 되어버린 향수에 대해 알아보자. 



배설물이 넘쳐나던 베르사유 궁전      





“공원과 정원 그리고 심지어 궁궐 전체에서 진동하는 지독한 냄새로 구역질이 난다. 통로, 안뜰, 건물 내부, 복도를 비롯하여 도처에 배설물이 널려있다. 매일 아침마다 재상 집무실 바로 아래에는 도축된 돼지의 피가 흐르고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생클루 대로는 웅덩이에 고여 썩어가는 물과 고양이 사체로 뒤덮여 있다.”

 -<향수의 기억> 엘리자베스 드 페도     


마리 앙투아네트의 조향사 장 루이 파르종이 베르사유에 대한 첫인상을 기술한 것이다.

하늘하늘한 꽃향기만 날 것 같은 베르사유에서 배설물이 넘쳐나다니…. 지금은 상상이 가지 않는다.


‘태양왕’ 루이 14세 시절 파리는 ‘문화의 중심지’로서 전 유럽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었다. 당시 왕의 거처인 베르사유 역시 간단한 의복과 어느 정도의 예만 갖추면 외국인, 관광객 할 것 없이 입장이 가능했고 왕의 침실까지도 들어갈 수 있었다.


베르사유에 이토록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던 이유는 베르사유가 프랑스 권력의 중심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유럽 패션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 유행을 만들어내는 곳이라는 표현이 훨씬 정확할 듯싶다.

베르사유에 거처하는 왕족이나 귀족들은 마치 오늘날의 아이돌 스타나 다름없었다.

옷, 가발, 구두, 가방……. 등 그들이 걸치는 것이면 모두 다 유행이 되었다.

유럽 각국에서 온 사람들은 귀족들의 인테리어나 테이블 매너, 걸음걸이, 말투와 몸짓까지 눈에 보이는 건 전부 따라 한 셈이다.      


하지만 위생적인 측면에서는 이야기가 좀 달랐다. 파르종이 받았던 첫인상대로 화려한 샹들리에로 치장된 복도에는 오줌 냄새가 진동하였고 루이 14세가 잠자리에 들기 전 시종장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침대에 뛰어다니는 벼룩을 잡는 일이었을 정도로 위생 관념은 매우 뒤떨어져 있었다.




<19세기 파리>     



이러한 문제는 인구가 밀집되어있는 파리가 더 심각했다.

산업화와 공업화 덕에 급속도로 몸집이 불어난 파리는 증가하는 인구를 감당할 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상하수도 시설이 정비되지 않은 탓에 건물 화장실에서 오물이 넘치는 일이 일상이었고 창밖으로 던지는 쓰레기 더미를 뒤집어쓰는 일은 화를 낼 축에도 들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콜레라가 한 달 만에 수천 명의 생명을 앗아간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파리는 당시에도 인구 밀도가 매우 높은 도시였다. 하지만 물이 귀한 탓에 몸을 씻기기는커녕 생활 식수조차 없었다.          


프랑스 향수 산업은 이러한 도시의 아픔? 덕에 급속도로 발달할 수 있었다.

몸을 제대로 씻을 수 없으니 자연히 악취가 심했고 이것을 가리는 유일한 방법이 향수를 뿌리는 일이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자연히 은은한 향보다는 독하고 진한 향을 선호했다. 향수를 사용하는 방법도 지금처럼 몸이나 옷에 한두 방울 뿌리는 것이 아니라 향수에 몸을 담그는 수준이었다.


귀부인들은 그야말로 온몸을 향수로 치장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는데 작은 향수병을 펜던트로 만들어 목에 걸고 다니기도 했고, 향 가루를 머리 전체에 뿌리고, 향을 먹인 가터벨트까지 착용했다. 진한 머스크 향 때문에 ‘담비’라는 별명까지 얻은 귀족도 있을 지경이었다.


이것으로도 모자란 일부 상류층들은 향수를 집안 곳곳에 뿌리거나 아예 작은 새 모양의 향수 주머니를 만들어 이곳저곳에 걸어 두곤 했다. 또한, 향비누를 개발 하여 엄청난 부를 거머쥔 시기도 18세기였다.


이러한 향수에 대한 집착은 상류층이 심해서 어디를 가나 몸에서 풍기는 독한 향이 코를 찔렀고, 사람들은 진한 향기를 몰고 다니는 왕족들을 ‘향수 냄새가 밴 궁궐’이라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향수에 운명을 맡긴 여인, 마리 앙투아네트



<마리 앙투아네트>     



향수 때문에 운명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여인도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대혁명 당시 평민 분장을 하고 파리를 떠날 계획이었지만 결국 왕비임이 밝혀져 단두대에 목이 날아간 비운의 여인으로 남게 됐다. 그녀가 왕비임이 들통났던 이유는 다름 아닌 우비강 향수 때문이었다.


결국, 그녀가 애지중지하던 향수가 그녀의 운명을 벼랑 끝으로 내몰아간 셈이다.

또한, 마리는 사냥을 나갈 때도 머스크 향이 나는 황 수선화로 만든 조향 장갑을 착용했고, 딸아이를 임신했을 때에는 예민해진 후각을 진정시키기 위해 안젤리카 향을 넣은 주머니를 향로에 줄곧 태우곤 했다. 이렇게 그녀가 소비한 화장품과 향수 금액만 1778년 한 해 동안 20만 리브르를 넘었다고 하니, 그녀를 단두대의 운명으로 몰고 간 것은 우비강 향수가 아닌 그녀 자신이었을 것이다.




머스크 향과 댄디남



<로베르 드 몽테스키외>     



그림은 19세기 사교계를 휩쓸었던 최고의 ‘댄디남’ 로베르 드 몽테스키외 백작이다.

몽테스키외는 알렉산드르 뒤마의 소설 <삼총사>의 주인공인 달타냥의 후손으로, 마르셀 푸르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하는 남색가 샤를뤼스의 모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그가 누구이든 늘씬한 몸매와 잘 다듬은 콧수염, 최고급 캐시미어 슈트,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지는 산양 가죽 장갑 등 한눈에 보아도 매우 ‘세련된 멋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시대의 ‘댄디남’이었던 몽테스키외는 진한 머스크 향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사람들은 워낙 독한 향으로 온몸을 치장한 탓에 웬만한 향수는 구별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후각이 거의 마비되다시피 했던 당시 사람들도 그의 머스크 향만은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는데, 몽테스키외가 보이기도 전에 진한 머스크 향으로 인해 그가 등장할 것을 미리 알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머스크 향은 ‘사향’이라고도 하는데 오늘날에도 흔히 볼 수 있는 향이다. 원래 사향은 사향노루 수컷의 음경 안에 있는 생식선에서 분비되는 물질로 영역을 표시하는 데 쓰인다. 천연사향을 얻기 위해서는 포획된 노루의 배꼽 근처에 있는 호두 알만한 크기의 사향주머니를 떼어내어 알코올에 한 달 동안 담가 희석한 후 다른 향수와 섞어서 추출한다. 하지만 시중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사향은 인공사향이다. 사향노루 사냥과 상업적인 거래는 국제적으로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알코올에 희석하기 전 천연사향에서는 배설물과 같은 냄새가 나는데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냄새와 매우 비슷하다. 향이 매우 강해 한 번 뿌리면 40년 가까이 냄새가 지속될 정도다. 이 때문에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에는 사향이 여성들에게 우울증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악마의 향’으로 불리기도 했고, 조세핀은 나폴레옹에게 자신을 잊지 않게 하려고 말메종에 사향과 영묘향(에티오피아 고양이의 생식선에서 나오는 분비물)을 잔뜩 뿌렸다고 한다.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          



이처럼 사람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가리기 위해 급속도로 발달한 향수는 애당초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을까?


이집트 문서에 따르면 기원전 2000년경 미라 매장에 향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최초의 향수는 아마도 제사나 신당에 바치는 봉헌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얼마 후 사람들은 향을 연고의 형태로 만들어 몸에 바르기 시작했는데 1922년에 발굴된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발견된 향 연고에서는 3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향을 풍겨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후 패션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된 향수는 16세기에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향수의 직접적인 발상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은 프랑스 코트 다쥐르 cote d'azur의 구릉 지대 그라스 grace이다.

본래 그라스는 중세시대까지 가죽 공업으로 유명한 도시였다. 동물의 원피를 가죽으로 만드는 공정에서 역한 오줌 냄새가 나는 것을 참다못한 장인들은 가죽에 향수를 뿌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향은 장갑이 완성된 후에도 은은하게 남아 당시 귀족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고, 1553년 카트린 드 메디치가 그라스에 연구소를 세우면서 향수 산업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그라스는 전 세계 향수 생산을 선도하는 도시가 되지만 천연원료의 한계와 비싼 인건비, 더불어 값싼 합성원료가 쏟아져 나오자 그라스 향수 산업은 점차 쇠퇴하고 만다. 하지만 오늘날도 여전히 그라스산 재료는 비싼 값에 거래되고 있고 샤넬과 같은 대표적인 몇몇 향수 제조사가 그라스의 수확물에 대한 독점권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고대에서는 제사에 사용되던 향수가 중세를 거쳐 17, 18세기에는 악취를 제압하기 위한 용도로 발달해왔다. 그렇다면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향수는 어떤 의미일까?      


나만의 향기를 찾기 위한 긴 여정을 담은 <향기 탐색>이라는 책에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기억이나 추억 등 추상적인 것을 향 안에 담아내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 말하는 조향사는 작가의 시그니쳐 향수를 만들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퍼붓는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취미는 무엇인지, 꼭 이루고 싶은 꿈, 어린 시절 추억, 가족의 의미, 친구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는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향은 내게 어떤 의미인지…….’


나에 대한 질문이지만 쉽게 대답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나는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나의 미래가 담겨있는 질문이기도 했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 한참을 멍하게 앉아있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생각과 동시에 향수란 그저 멋내기용으로 외출 전 몇 방울 뿌리는 것이라 치부해버린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었다.

작은 향수 한 병에 내 인생을 담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난 지금, 향수의 선택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향을 남기고 싶은가’에서 이제는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 ‘에 대한 고민으로 옮겨 가야 하지 않을까?

향수는 나의 일부이고 그 안에 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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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아_항공사 승무원으로 재직하며 겪었던 일상과 예술을 통해 어떻게 하면 '온전한 나'로 살수 있는지 연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