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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두 주드(Radu Jude), 아드리안 치오플른커(Adrian Cioflanca), <열차의 출구>(The Exit of the Trains) | ARTLECTURE

라두 주드(Radu Jude), 아드리안 치오플른커(Adrian Cioflanca), <열차의 출구>(The Exit of the Trains)

-학살은 어떻게 집필되어야 하는가-

/Art & Preview/
by 박정수
라두 주드(Radu Jude), 아드리안 치오플른커(Adrian Cioflanca), <열차의 출구>(The Exit of the Trains)
-학살은 어떻게 집필되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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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학살은 이아시 내에서만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생지옥과 같은 이아시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대피하는 기차 안에서도, 질식과 기아에 의한 죽음이 일어났다. 바깥에서는 힐난과 폭력에, 기차 내부에서는 숨 쉴 수 없는 진공상태에, 어느 곳에서도 유대인들은 설자리가 없었다. 이 같은 이아시 학살을 루마니아 뉴웨이브의 대표주자임과 동시에 이단아에 다름 아닌 라드 주드가, 역사학자 아드리안 치오플린커와 함께 다큐멘터리화 한다....

2020 전주국제영화제 특집기사: 연재리뷰 6편


포그롬의 진실은 통계적 파악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독한 고문과 같은 예외적 상황에 대한 정확한 묘사에서 잘 드러난다. 잔혹한 세계 속에서 행복한 삶이란 엄청난 고통 속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몰염치한 것이다. 이 희생자들이 본질을 구현한다면 저 행복한 삶은 무()인 것이다.” -막스 호르크하이머&테오도르 아도르노-


1930년에 이뤄진 루마니아 인구조사 통계 자료에서 유대인의 인구는 약 72만 명, 비율은 4%에 달한 것으로 집계되어 있다. 이후 2차 대전의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1948년의 집계자료에 유대인의 인구는 약 138천명, 비율은 0.9%로 기록되어 있고, 56년의 0.8%를 거쳐 66년에는 0.2%를 기록하며 그 이후에는 영향력 있는 통계 수치가 나오지 않고 있다. 어쩌면 1940년 루마니아가 추축국에 가담한 이유 중 하나는 그들도 유대인 혐오의 광풍에 휩쓸렸기 때문이리라. 나치 독일과 소련의 협약에 의해 자신의 영토를 분할당한 바도 뼈아팠겠지만, 당대의 서구를 휩쓴 유대인 혐오에 루마니아인들도 마찬가지로 휩쓸렸다. 루마니아 내에서 유대인 혐오는 당시 소련에 대한 증오와 뒤엉켜서 복합적인 형태로 증폭된다. 공산주의의 배후에 유대인이 있다는 식으로, 즉 루마니아는 기존 유대인 혐오에 소련에 대한 분풀이를 더해 선전 전략을 강화하였다. 그리고 이 같은 유대인이 가장 밀집했던 도시가 바로 이아시였는데, 당시 추축국과 친밀했던 안토네스쿠는 이아시 유대인 학살을 지시한다. 처음에는 군인과 공권력으로 시작된 학살은 이내 곧 유대인 혐오에 빠진 일반 민중들로 확대되었고, 이에 희생자는 확인된 수치로서는 13226명 가량, 그리고 추정치는 150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학살은 이아시 내에서만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생지옥과 같은 이아시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대피하는 기차 안에서도, 질식과 기아에 의한 죽음이 일어났다. 바깥에서는 힐난과 폭력에, 기차 내부에서는 숨 쉴 수 없는 진공상태에, 어느 곳에서도 유대인들은 설자리가 없었다. 이 같은 이아시 학살을 루마니아 뉴웨이브의 대표주자임과 동시에 이단아에 다름 아닌 라드 주드가, 역사학자 아드리안 치오플린커와 함께 다큐멘터리화 한다.




 

*감독 소개

크리스티 푸이유, 크리스티안 문쥬, 코르넬리우 포룸보이우 등이 이끈다고 볼 수 있는 루마니아 뉴웨이브는 영화는 결코 현실에 유리되어선 안 되고, 냉엄하게 실재를 비추는 매체로서 활용되어야 한다는 끈질긴 리얼리즘을 추구한다. 동시대에 새롭게 데뷔하는 감독들도 대부분 이러한 기조를 이어간다. 하지만 그들과 비교적 동세대인 1977년 태생의 라드 주드의 색채는 루마니아 뉴웨이브로부터 가장 이질적이다. 그 독특함은 주로 형식적인 측면에서만 기인한다. 소재적인 측면에서 여전히 그는 다른 루마니아 뉴웨이브의 기수들과 여전히 유사하다. 데뷔 이전부터 그는 크리스티 푸이유의 대단히 정치적인 작품인 <라자레스쿠 씨의 죽음>의 조감독으로 참여하며 이력을 쌓기도 했고, 그렇게 데뷔하여 내놓은 작품들에서도 정치성은 작품의 주제가 되었따.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아 페림!>같은 경우는 미국 서부극의 전통을 루마니아로 옮겨오고, 이를 흑백으로 담아낸 것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20세기 서부극에서 선으로서의 백인과 악으로서 원주민의 구도를 빌려와, 이를 토대로 19세기 오스만과 러시아 아래에 놓였던 왈라키아 지역의 역사와, 계급적 위계, 특히 노예로 팔리는 집시들과 루마니아 내지인들의 관계를 탐구하며, 과거의 정치에 대한 관심으로 눈을 돌렸다. 이후 내놓은 그의 가장 흥미로운 작품 중 하나인 <상처입은 마음>의 경우, 본 작품의 시대상을 기준으로 한다면 2년 전인 1939년에 사망한 어느 루마니아계 유대인 작가의 일생을 토대로 하고 있다. 밝고 쾌활해보였으나 이것이 나치에 의한 유대인 혐오풍조 속에서 살기위해서 띤 일련의 위장색이였음을, 영상과 텍스트의 괴리를 통해서 드러낸다. 무엇보다 <나는 야만의 역사로 거슬러가도 상관하지 않는다>의 경우에는 심미적인 미학에 대한 거리두기와, 역사를 어떻게 재현할 것인지에 대한 탐구, 그리고 창작자와 관객의 의도가 불일치하는 일련의 메타적인 작업을 본 작품과 동시대인 1941년의 인종청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흑백 사진의 매체성

즉 라드 주드는 민족 간의 위계 설정에 따른 비극과, 홀로코스트에 대한 관심을 지속해오며,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취지를 되살리려는 뉴웨이브에 동참한다. 이러한 그가 1941년의 이아시 학살을 다큐멘터리로 옮겨오는 본 작업은 과연 어떠할까, 형식적인 측면에서 줄곧 실험을 시도하던 그는 다큐멘터리에서는 어떤 연출적 모색을 취하게 될까. 영화임과 동시에 영화가 아닌 듯한 작품, 그 이유는 움직이는 이미지가 아니라 그저 사진으로만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치 그것이 슬라이드 넘겨지는 듯한 아주 단순한 형식을 영화는 취한다. 하지만 각각의 사진이 넘어가면서 아주 단조로운 이동이 생겨나기에 그럼에도 영화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영화의 1부는 이아시 학살에 의해 희생된 희생자들의 사진과, 그들이 어떻게 죽어갔는지를 확인한 가족, 목격자, 생존자들의 증언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2부는 증언 없이, 학살 당시를 포착한 파편적이고 급박한 사진들로 구성된다. 1941년이라는 당대, 그리고 그 이전에 촬영된 희생자들의 사진은 모두 흑백이다. 흑백은 지금 여기에서 오색찬란한 색채를 마주하는 우리들로부터 분리된 듯한, 허구적이거나 가상의 것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흑백에 의해 과거는 온당 재현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같은 흑백 사진은 색채가 드러나는 우표나 허가증, 신분증 등에 함께 놓여 있곤 하다. 그리고 이 같은 컬러에는 현실과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다. 이를 통해서 우리와 유리된 허구가 아닌 현실이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포착되는 컬러로나마 당대의 실재를 환기시키려는 듯하다. 또한 희생자들의 초상에만 골똘히 집중하는 영화의 연출은, 당대에 나치가 선전했던 악마와도 같은 유대인의 캐리커처와 현실 속 유대인들과의 괴리를 보여준다. 이 실재적인 사진들은 누군가의 신분증, 가정의 액자 등에 놓여있는 것으로 이를 통해 한때 가능했을 그들의 일상을 연상케 하며, 누군가가 기쁜 표정을 짓고 있는 그 평온한 일상에 나치의 광기가 덮쳐온 것임을 음산하게 암시한다. 무엇보다 각각의 희생자들의 사진은 오직 하나만이 제시된다. 누군가에겐 여러 장이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당대에 사진이라는 기술이 제한적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로 영화 속에서 제시된 사진 단 하나만 있는 경우도 허다했으리라. 하지만 살아있었더라면 그 이후의 초상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었을 것이고, 그 가능성이 이아시 학살에 의해 차단된 것이랴.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와의 유사성

즉 나치에 의해서 다양한 초상의 가능성은 이렇게 단일한 사진, 단 하나 만으로 축소되어 버리고, 그것마저도 100여년 가까이의 세월을 거치며 더욱 흐릿해져가고 유실되어만 간다. 단편적인 희생자들의 역사, 그리고 초상들을 이제는 붙잡아야만 하는 것이다. 이를 수집하는 주드와 치오플른커는 이 역사의 화자가 아니다. 심지어 그 역사를 마주하고 주관적인 의견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다만 사진과 증언을 나열하고 정리할 뿐이다. 문학계에서 이와 유사한 작업을 수행한 작가가 있다. 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우크라이나의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그렇다. 그녀는 ‘2차 대전 당시에 여성이 얼마만큼 참전했다’, ‘체르노빌의 참상의 규모가 이러했다등의 거시적으로 집필된 역사를 넘어서, 미시적인 개개인의 역사에 주목한다. 알렉시예비치의 이 같은 접근에 의해 한 여성은 참전용사임에도 불구하고 화냥년취급을 당했고, 어떤 여인은 영웅이 되었으며, 또 다른 여성은 아름다움이 여성성이라 생각하게 되었고, 또 어떤 여인은 여성성을 회복하기 위해 생리와 임신에 집착했다는, 무수하게 다른 전쟁 속 개개인의 역사가 수면 위로 드러난다. 이 같은 그녀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올해 2월에 개봉한 칸테미르 발라고프의 <빈폴>에서 영화화되기도 하였는데, 발라고프는 그 무수한 증언들의 공통성을 포착하여 이를 영화화한 것이다. 그리고 이와 달리 본 작품은 알렉시예비치의 방법론을 차용하여 이아시 포그룸을 직접 집필하고 영화화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역사쓰기에 의해 단순히 13226명에서 15000명 사이에 달하는 차가운 추정치에 익명적으로 통합되는 희생자들이 아니라, 누군가는 아버지이자 남편이었고, 누군가는 이웃이요, 다른 누군가는 동료이자, 또 다른 어떤 이는 신문 배달부 소년이었다는, 각각의 고유성과 경험이 환기된다. 이는 희생자들을 종합한 수치로 묵살되어선 안 될 개개인의 명예이다. 그리고 개개인의 얼굴, 누군가는 수염을 길게 기른 유대인의 복식을 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포착되는 많은 초상들은 유대인의 특색이 느껴지지 않고, 루마니아의 주를 이루는 라틴계나 적지만은 않은 슬라브계의 형질이 느껴진다. 또한 이름에 있어서도 이들과 동화되어 있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미시적 역사쓰기를 통해서 과연 유대인이라는 보편성은 무엇인가, 유대인의 형질이 드러나지 않음에도 그들은 어떤 연유로 죽어야만 했는가와 같은, 유대인이라 뭉뚱그려진 개념에서는 생각해보기 어려운 질문들을 제기한다.

 

*추방의 증인들

이 같은 학살의 과정은 경찰, 군대에 의해 유대인들이 체포되고, 이후 끌려 나와 광장에서 집단 처형되었고, 생존자들은 기차에 실려서 일로아이에이라는 지역으로 보내졌다는 것이 타임라인이자 일반적인 역사기술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광장에 가기 이전에 저항하다가 즉각 처형되었다는 개별의 사례나, 이후 기차를 타고 일로아이에이로 향할 때 사람들이 꽉 차서 산소와 물이 부족해서 서로의 오줌을 나눠마셨다는 사실들이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빨리 죽고 싶어서 기차에서 뛰어내렸다와 같은 상세한 묘사 등, 당시의 그 처절한 상황은 결여되어 있다. 추상적인 수치와 타임라인은 역사에 대한 감정을 환기시키지 못한다. 그래서 본 작품은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말해지지 않은 세부들, 그리고 개개인들이 느꼈던 경험들을 촘촘히 모아서 이아시 학살을 집필한다. 영화는 이 같은 증언 이후에 밝게 웃고 있는 누군가의 일상의 초상을 몇 초가량 길게 응시하게끔 여백을 남겨두는데, 비극적 죽음과 환한 초상의 아이러니란 우리에게 숙연한 불편함을 안긴다. 이 같은 미시적 역사에 의해 드러나는 공통의 경험은 이아시 학살이 곧 추방의 역사였다는 것이다. 집과 직장으로부터, 그리고 이아시로부터 추방되고, 또 기차에 태워져 생존한다면 일로아이에이로, 버티지 못한다면 죽음으로 추방되는 역사다. 그리고 본 작품의 사진이란 매체성은 묘하게 이 같은 추방의 역사와 묘하게 조응한다. 사진에는 모든 시간이 아니라 특정한 순간, 인물의 특정한 표정만이 실재의 삶으로부터 필름을 향해 추방된 것이다. 추방의 증언들을 마주하다보면 모든 삶으로부터 박탈되고, 오직 특정한 삶의 순간과 증언만이 남은 그들의 사진들이 더욱 가혹하게 느껴진다. 또한 학살 당시에는 지하실 등에 숨어들거나, 추방 이후엔 기차 안에서 공기가 부족했다는 희생자들의 증언에 의해, 배경을 가득 채워 갑갑해 보이는 사진 속에 갇혀버린 개개인의 웃는 모습은 일련의 폐쇄성이 환기된다. 이러한 사진으로만 구성된 영화는 영화가 아닌 것만 같은 의문감이, 그리고 증언들은 우리가 결코 편한 마음으로 들을 수 없는 고통이, 또한 사진과 증언 사이의 괴리에는 모순에서 비롯되는 불편함이 있다. 이렇게 모호하고도 편치 않은 본 작품은 심미성을 전달하지 않는다. 대신 전달되는 미의식은 바로 숭고함이다.

 

*숭고론

이 숭고함은 낭만주의 화가 프리드리히의 풍경화를 보며 느껴지는 근대적인 숭고함이 아니라 포스트모던의 숭고함이다. 그간의 이데올로기에서 틀린 이치들로 규정된 배리들이 민주적인 다양성으로 부상하며 동시대에는 불편함이 촉발되어야 한다는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가 주장하는 '숭고함', 또한 홀로코스트를 기준으로 하여 그 이후에 전개되어야 할 예술은 당대의 광기와 희생자들의 절규를 아방가르드적 양식의 불쾌감을 통해 각인시켜야 한다는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바로 그 '숭고함'이다. 영화는 우리가 믿어왔던 역사 이상의 것, 그리고 더하면 더했을 당대의 고통을 영화 같지 않은 형식적 불일치와 시청각의 모순적 어긋남으로 촉발시키는 것이리라. 이 같은 어긋남은 우리가 믿곤 하는 제도에 대한 불신에도 상응한다. 홀로코스트의 특성은 대다수의 증거가 소멸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법정에서 희생자들이 가장 난항을 겪는 것이 바로 이 '증거 없음'이다. 이 증거들이 실재로 패망 직전의 나치들에 의해 유실되었듯, 본 작품에서도 공권력에 의해서 찢겨졌음이 반복적으로 강조된다. 경찰과 군인들은 유대인들의 허가증과 면제증을 그 자리에서 찢고 광장으로 데려가서 학살했으며, 또한 파시스트가 판사였다는 증언이 등장하기도 한다. 파시스트인 그들에 의해서 증거는 상실되며, 또한 판결을 내리는 것도 역시 파시스트들인 것이다. 이아시 학살에 대한 재판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 역사가 어떻게 집필될 것인지는 희생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권력자들의 손에서 운명 지어져 있는 것만 같다. 또한 그 절차, 그리고 이성이란 과연 믿을만한 것인가? 어떤 절차도 없이 끌어내는, 또한 끌어내지도 않고 즉각 처형했다는 것을 목격한 증언들을 보건데, 당대는 이성적인 절차가 무시되고 광기가 이성으로 호도된 시대였음에 틀림없다. 그러한 학살과 추방 이후에 공권력과 민간인 가릴 것 없이, 망자와 생존자들의 재산을 대놓고 약탈하거나 묘수를 이용해 환수했음이 알려진다. 죽음이 공식화되지 않았기에 망자에게 세금을 징수하거나, 아니면 생존자들에게 더 많은 증세를 하는 식으로 말이다.

 

*혐오론

한편 이 같은 약탈은 나치가 음흉하고도 간악한, 고리대금업을 하며 타인의 재산을 갈취한다는 유대인의 '이미지'와 닮아있지는 않은가. 유대인 철학자, 그리고 2차 대전 당시에 망명이 불발되어 자살한 비극적인 운명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혐오'의 본질과 촉발이, 대상 속에서 자기 자신의 추를 마주하는 역겨움이요, 그래서 타인을 보면서 내가 간파당하고 지배되는 두려움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즉 혐오하는 타인은 곧 나의 거울이자 이에 대한 적대이다. 그리고 나치에 동조한 서구인들의 혐오 또한 자신 내부에 있는 악마성에 대한 증오와 부정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 본 작품에서 유대인의 악마적 이미지를 그들의 사후에 공권력과 민간인 할 것 없이 재현했다는 증언들이, 자신의 악마성을 타인에게 덧씌웠고, 타인과 내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 혐오의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이렇게 악마들에게 학살된 영화 속 초상들은 주로 남성이다. 생존할 수 있는 면죄부가 쥐어진 듯한 여성들은 남겨져서 목격하고 생존하고 이를 증언한다. 하지만 그녀들에게도 삶은 허용되지 않았다. 악마의 상을 자처한 그들에 의해서 모든 것이 약탈된 생존 이후는 곪아만 간다. 우리는 이아시 학살을 마주할 때, ‘1941년에 일어났다라는 사실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그 이후에 여파는 어디까지 지속됐을까. 생존자들은 1944년까지 죽느니 만도 못한 삶을 겨우 연명했다고 말한다. 또한 역사 속 희생자들의 추정치 속에서 나이는 구분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에서 제시되는 초상들의 많은 일부는 어린 소년들이다. 이를 통해 영화는 1941년 이후의 이아시 학살로서 미래 없음을 보여준다. 루마니아에서의 유대인 추방은 1941년 이후에도 순차적으로 악랄하게 이뤄진 것이다. 그렇게 살아남은 목격자 및 생존자들은 스스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생존하였다고 해도 작금에는 90~100세가 넘는 노령의 나이이기에, 생존자들의 대다수도 이제는 돌아가셨으리라. 비교적 젊은 목소리가 대단히 기계적이고 건조하게 증언을 읊는다.

 

*객관적인 매개자

그리고 이렇게 증언을 읊는 성우들도, 또한 사진을 정리하는 감독들도 그들의 증언에 주관성을 덧입히지 않는다. 누군가는 길고 누군가는 짧은 그 역사들에 어떠한 편집도 가하지 않는다. 본 작품의 역사는 당대의 희생자들로부터 비롯한다. 하지만 그들은 작금에 말할 수 없기에, 그걸 옮기는 매개자들은 거기에 어떠한 지문도, 흔적도 남기지 않는 것이리라. 그래서 영화는 허구를 만들어내지도 않는다. 영화 속에서 때때로 강조되는 것은 칠흑 같은 공백이다. 사진이 없는 시각적인 공백, 그리고 증언이 없는 청각적인 공백이 나타나곤 한다. 또한 누군가는 이름도 없다. 이름을 남기지 않은 희생자가 남겨놓은 처절한 기록이 읊어진다. 하지만 이 같은 적막과 침묵에서 비롯된 그 구멍들이 지금 이아시 학살의 특수성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영화는 그 공백들을 없애지 않는다. 사진만이 존재하는 것에 증언이 덧입혀지기를, 그리고 청각만이 존재하는 것에 사진이 입혀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후 2부인 사진 파트에서 이 같은 속성이 더욱 강조된다. 공간만이 포착된 사진들에서 사물은 증언할 수 없고, 신원을 알 수 없는 피해자들의 모습들과, 처형되어 우리로부터 등지고 널브러진 주검들은 결코 말할 수 없다. 사진들은 대단히 급박하게 촬영된 듯 초점이 흔들리기도 하며, 사진과 사진 사이에는 연속성은 있으나 그 간격이 대단히 헐겁다. 권력에 의한 찢겨짐, 말할 수 없는 망자에 의해 학살의 역사란 곧 증거 불충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존재하지 않았나? 증언과 초상과 풍경은 분명 사실이다. 그들은 분명히 존재 했지만 찢겨나감에 결코 완전할 수 없다는 것뿐, 그래서 완전하지 않다고 해서 사실이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다. 3시간가량의 긴 러닝타임임에도 헐겁게 느껴지는 작품, 영화는 더 길어야만 할 것이고, 더 가득 채워지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정리

확인된 수치는 13226, 그리고 추정치는 15000, 하지만 그 수치는 역사를 대변할 수 없다. 한명, 한명 사이의 특수성과, 전체적 수치에 내재한 공백들을 설명해내지도 못한다. 또한 큰 틀에서 보편적인 상황묘사만을 하는 서술은 당대의 감각성이 부재한다. 이 같은 과오의 여파를 느끼지 못함에 이웃과 친구를 죽이는 유고 인종청소가 반복된 것이요, 현재에는 전 지구적인 네오파시즘이 불거지는 것은 아닌가. 잘못된 역사를 마주했음에도 역사가 반복된다는 것은, 그것이 잘못 매개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네아스트 라드 주드와 역사가 아드리안 치오플린커는 생생히 전달하기를 시도한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방법론을 사용하여 당대의 절규와 고통, 그 처연함과 진창 속을 누비던 삶의 모습의 매개자가 되길 자처한다. 또한 포그롬의 증거 없음은 망자들의 침묵을 악용한 권력자들의 간교이자, 애초에 이들은 폐기를 실행했다. 그리고 폐기하는 이들이 내리는 판결과 집필은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이랴. 그래서 우리는 이 결과를 의심하고 또 의심하며, 실재의 초상과 목소리를 듣기 위해 마주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본 작품은 라드 주드의 작품세계를 통틀어보면, 그의 바로 전작 <나는 야만의 역사로 거슬러가도 상관하지 않는다>의 시퀄처럼 여겨질 것이다. <나는 야만의 역사로 거슬러가도 상관하지 않는다>에서 이뤄진 미학적 고찰로서 예술이 역사를 다룰 때, 심미성에 치중하여 진실에 태만하다면 오히려 안하느니만 못한, 과거를 왜곡하게 되거나 이에 누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처절한 역사를 다루는 작품은 그 고통을 고스란히 담으며 형식은 기교 대신, 진실을 다루기 위한 가장 적절한 그릇이 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나는 야만의 역사로 거슬러가도 상관하지 않는다>에서 제기된 '어떻게 다룰 것인가?'의 문제는, 본 작품 자체로 답변을 제시하는 것이다. 사지가 뻣뻣이 굳어버린 망자, 그래서 움직일 수 없기에 영화일 수 없는 것이 바로 망자의 현실일까. 그래서 바로 이러한 진실을 라드 주드는 사진 영화로 펼쳐내며, 그 형식적 실험성을 주제와 일치시키고, 현실 그 자체에의 밀착을 시도하는 루마니아적 다큐멘터리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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