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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 첫인사 | ARTLECTURE

첫 만남, 첫인사

-디에고 벨라스케스 <브레다의 함락>-

/Picture Essay/
by 이지아
첫 만남, 첫인사
-디에고 벨라스케스 <브레다의 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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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스피놀라는 말에서 내려와 모자를 벗고 나사우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그를 격려하고 있다. 승자와 패자를 가르기 이전에 인간에 대한 예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상대의 눈을 바라보며 관용을 베풀고 있는 그는 무척이나 온화한 표정이다. 성문 열쇠를 건네고 있는 나사우 역시 굴욕적이거나 자비를 구걸하는 모습이 아니다. 겸손한 태도로 부드럽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 슬프고 지친 표정이지만 패배를 인정하며 공손하고 위엄 있다. 전쟁의 끝이 새로운 전쟁이나 공포가 아닌 평화의 시작임을 이야기하며 인간적으로 깊은 감동을 준다. 이렇듯 작가는 승자와 패자 모두에게 최소한의 품위를 부여하고 있다....

나에게 처음이란 단어는 설렘보다는 낯섦과 어색함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처음은 늘 서투르다. 나의 첫 직장생활이 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1년마다 바뀌는 팀원들은 매년 나를 긴장시켰고, 늘 새로운 멤버들과 함께하는 비행은 내게는 스트레스 그 자체였다. 생각해보면 5년 내내 비행 전날은 편히 잠들었던 때가 없었다. 팀장님은 어떤 분인지, 부팀장은 예전에 같이 비행을 했었던 것 같은데……. 탑 시니어는... 나와 같은 존을 담당하는 언니는 좋은 사람일까? 유명인인가 혹시 또라이……? 이런저런 걱정들을 하다 보면 어느새 한숨도 못 잔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야 했다.


다행히 이러한 증상들을 완화시켜주는 매우 간단한 방법이 있긴 했다.

브리핑 전에 미리 가서 얼굴도장을 찍는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146기 이지아입니다.”

“언니 안녕하세요? 저 CR 듀티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몇 마디 안 되는 말을 건네고 나면 12시간의 비행이 조금은 덜 어색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이렇게 비행 전에 인사하는 것이 관행이 되었고 5년 내내 이렇게 인사를 했던 것 같다. 내가 좀 편하자고 하는 의례적인 인사였다. 여기에 마음 따위를 담는 일은 없었다.

비행 중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비행기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많은 곳이라 최대한 민첩하게 행동해야 했다.

하지만 좁은 갤리에서 일을 하다 보면 아무리 조심을 한다 해도 부딪히고 엎지르고 넘어지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입버릇처럼


 “실례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조심하십시오.”


심지어 내 발이 밟혀도 “죄송합니다.” 내 발이 거기 있어서 죄송할 지경이었다.    

  

교육생일 때도, 승무원이 되어서도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인사를 잘하자’였다.

하지만 그 인사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들은 없었던 것 같다.

인사는 마음으로 하는 것인데 나는 늘 입으로만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에 대한 진정한 예를 갖춘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소개하고 싶다. 



<브레다의 함락> 1634-1635. 디에고 벨라스케스. 프라도 미술관




작품은 1625년 6월 2일 네덜란드의 남부 요새 브레다가 스페인에 함락된 사건을 그린 역사화이다. 4개월간의 포위 공격으로 모든 보급로가 차단된 네덜란드는 결국 스페인에 항복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사건의 주인공들은 이제는 조용해진 전장을 뒤로하고 전경에 모여 있다.

화면 오른편을 빼곡히 매운 창들만 보아도 어느 쪽이 승자인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하늘을 찌를듯한 창들과 약간 비스듬히 놓인 몇몇 창들이 리드미컬하게 배치된 사이로 군인들의 시끄러운 함성과 축하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반면 상대편에는 하늘로 솟은 창 대신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두 무리의 군인들 역시 창들의 모습만큼이나 대조적이다.

작가의 섬세한 붓 터치와 재능 덕분에 인물들의 감정과 심리상태를 생생하게 읽을 수 있다.

잘 다듬어진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콧수염, 잘 정돈된 군복은 스페인 기사로서 자부심을 나타내고 있다. 기품 있고 세련된 스페인 부대와는 달리 네덜란드 군인들은 느슨하게 풀어져 있는 모습이다. 특히 흰옷을 입은 군인은 패자임을 스스로 인정하듯 고개를 떨구고 자조하는 듯한 제스처가 인상적이다. 역사적인 사건을 과장 없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하려는 작가의 노력이 엿보인다..


오른쪽에는 승자를 감싸 안은 듯한 말의 배치로 화면에 깊이감을 부여하고 있다.

군인들은 자신을 이끌었던 유스티누스 데 나사우 장군과 암브로시오 스피놀라 장군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웬일인지 일반적인 전쟁 화의 승자와 패자의 모습이 아니다. 승자는 말 위에서 칼을 휘두르며 거만하게 패자를 내려다보는 것이 보통이다. 패자 또한 피범벅이 된 몸으로 목숨을 구걸하거나 군복은 온데간데없이 죽어가는 모습이다. 이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이나 가치는 있을 수 없다. 승자가 짓밟고 간 파괴와 살육만이 남을 뿐이다.




<키오스섬의 학살> 외젠 들라크루아 1824 루브르 박물관 354*419     




들라크루아의 <키오스섬의 학살>이라는 작품이다. 튀르크 인들에게 자유 혁명을 도모한 그리스인들이 대량으로 학살당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예상처럼 오만한 정복자에게 자비란 찾아볼 수 없다. 그의 말 아래에는 노인과 여자들이 공포와 절망에 휩싸여 있다. 상위가 찢긴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엄마의 가슴 위로 아이가 젖을 물려 하지만 엄마는 이미 시체가 되어있다. 죄 없는 시민들의 대량 학살이 얼마나 잔인하고 끔찍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한 사람의 품격

다시 브레다의 함락으로 돌아와 보자. 두 사람은 들라크루아의 작품처럼 극명하게 엇갈리지 않는다. 마치 전쟁터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적군이 아닌 서로의 동료를 대하는 듯하다.   

   

스피놀라는 말에서 내려와 모자를 벗고 나사우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그를 격려하고 있다. 승자와 패자를 가르기 이전에 인간에 대한 예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상대의 눈을 바라보며 관용을 베풀고 있는 그는 무척이나 온화한 표정이다. 성문 열쇠를 건네고 있는 나사우 역시 굴욕적이거나 자비를 구걸하는 모습이 아니다. 겸손한 태도로 부드럽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 슬프고 지친 표정이지만 패배를 인정하며 공손하고 위엄 있다.

전쟁의 끝이 새로운 전쟁이나 공포가 아닌 평화의 시작임을 이야기하며 인간적으로 깊은 감동을 준다.

이렇듯 작가는 승자와 패자 모두에게 최소한의 품위를 부여하고 있다.      


사람이든 책이든 형식보다는 내용에 집중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내용은 행동이나 태도에서 나타난다. 행동 하나하나에 어떤 마음이 담겨 있는지 보인다. 말을 하는 태도, 말을 듣는 태도, 단 한마디 말이나 작은 행동이 전혀 사소하지 않다. 도덕성, 인품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늘 입으로만 ‘안녕하세요’라고 외쳤던 나는 상대의 진정한 안녕을 물었던 것이 아니다.

진정한 인사는 따뜻한 체온과 인품에서 비롯됨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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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아_항공사 승무원으로 재직하며 겪었던 일상과 예술을 통해 어떻게 하면 '온전한 나'로 살수 있는지 연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