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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방가르드를 넘어서, 키아 환상과 신화전 | ARTLECTURE

아방가르드를 넘어서, 키아 환상과 신화전

-시대의 파도에 맞서서-

/Insight/
by 박정수
아방가르드를 넘어서, 키아 환상과 신화전
-시대의 파도에 맞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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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그는 회화에 있어서는 어떤 본질을 다시금 회복시키려는 운동을 도모하였다. 그것은 인간이 창조한 영역이기에, 인간이 풀 수 있는 영역으로서 본질에 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모더니즘, 아방가르드, 포스트모더니즘, 트랜스 아방가르드

지난 20세기와 현재 21세기까지 이어지고 있는 미술계의 흐름은 무수하고도 다채로운 시각적 실험으로 가득 차 있다. 야수파 및 청기사파, 다리파로 대표되는 표현주의에서부터 큐비즘과 추상표현주의 등으로 대표되는 모더니즘, 그리고 팝아트에서부터 개념미술, 미니멀리즘, 대지미술, 퍼포먼스 등으로 대표되는 포스트모더니즘, 양자 모두 지난 시대의 미술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변주들로 가득하다. 하나의 지배적인 사조와 화파가 약 백 여 년 이상 동안 생명력이 있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20세기부터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가장 차별화된 변주란 이 같은 지배적인 사조를 붕괴하려는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더니즘 및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후자에 깊은 영향을 주었던 아방가르드의 내부가 결코 다채롭다 한들, 그것을 묶는 큰 틀로서의 대표성이 결코 부재했던 것은 아니다. 모더니즘은 결국 회화의 본령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 필연적인 평평함 및 2차원, 캔버스에 묻어나는 질료와 아무리 지워내려 해도 드러나는 마티에르, 회화 및 조각의 영역에서 더 이상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던 재현의 포기 및 이로써 귀결된 색과 선, 순수한 조형성의 강조를 꼽을 수 있다. 아방가르드와 포스트모더니즘의 태동은 이 같은 모더니즘의 엘리트주의적인 움직임을 타파하고자 모색되었다. 하지만 그들 또한 언제나 관습으로 대표되는 과거의 것을 전복하는 방향으로만 나았고, 심미성 대신 숭고함을 강조하는 것이 하나의 경전이 되었다. 허나 모더니즘이 회화의 본령을 찾고자 옭아맸던 예술가의 진정한 자율성이 결코 포스트모더니즘에서 극복되었다고 보긴 어렵다. 그 시대적 물결 속에서 고루한 것으로 치부되는 전근대적 회화는 과연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까.

 

회화에는 사실 아방가르드라는 개념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모더니즘 내에서 전복을 꾀했던 다다이즘의 기수인 뒤샹이 행했던 레디메이드를 생각한다면, 아방가르드로 분류되는 종합적 큐비즘에서 단일한 회화가 아닌 3차원의 오브제가 뒤섞인 회화라는 것을 상기한다면, 순수한 회화 내에서 아방가르드적인 움직임은 쉬이 포착되지 않는다. 그나마 아방가르드로 분류되는 초현실주의의 경우 매체적인 경향이 아니라, 회화 내에서 표현되는 것들이 아방가르드적이었다. 허나 근대적인 화풍와 모더니티를 간직한 화파가 뒤섞여 만들어낸 회화에 아방가르드라는 이름이 붙여진다. 바로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서구에서 일어난 회화운동을 지칭하는 트랜스 아방가르드가 바로 그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시대적인 풍조에 의해 회화에 아방가르드라는 단어가 붙을 수 있게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지나친 전복은 오히려 전통적인 매체의 선택을 위반으로 여기게끔 만들었고, 또한 숭고함이라는 단일한 미의식의 강조되는 경향에서 심미성을 드러내는 것이 역설적으로 모험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트랜스 아방가르드 운동에서 가장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는 바로 산드로 키아이다. 그는 1946년 피렌체 태생으로서 초기에는 당대의 주류이던 개념미술에 동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곧 당대가 부정하던, 그의 조국과 고향이 간직한 방대한 양의 문화유산에 경도되어 이내 곧 그것을 연구하는 방향을 선택하였다. 오히려 개개인의 모든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포스트모더니즘 내에서 키아로 대표되는 트랜스 아방가르드 운동이 거부되거나, 당대의 흐름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를 배척한다면, 그것은 시대가 띠는 방향성과 모순에 다름 아니겠는가.



길가의 소박한 사람들, 2006

(좌) 엘 그레코, <라오콘>, 1610~14 / (우) 폴 세잔, <납치>, 1867




*산드로 키아

르네상스와 바로크를 태동시키며 프랑스와 함께 근대미술의 축이었던 이탈리아와, 서구 미술의 근원에 다름 아니었던 고대 그리스, 로마 문명의 유물을 지양분 삼아서 키아의 예술세계는 열어젖혀진다. 키아의 작품 세계를 살펴보자. 우선 인물들을 살펴볼까. 인체비례는 대체적으로 현실적이다. 얼굴의 이목구비 또한 크게 사실성을 벗어나진 않는다. 하지만 결코 그 표현이 엄격하진 않고 미니멀한 축약을 동반한다. 또한 인체 또한 온당 비례에 맞다보긴 어렵다. 그것은 길게 늘여져있는데, 물론 근대에 미를 위해 인간의 육체를 왜곡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키아가 일삼는 왜곡은 앵그르보다는 그 이전의 엘 그레코를 상응케 한다. 전자의 늘여짐이 현상계에 존재하지 않는 이데아의 미에 근접하고자 하는 왜곡이라면, 후자의 늘여짐은 종교적이고도 주관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의 표현법은 르네상스가 부활시킨 고대 그리스의 정밀한 재현에 입각하고 있더라도, 인물과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은 중세와 유사하였다. 그 늘여짐은 곧 외피를 넘어서 내면과 영혼을 꿰뚫는 표현에 다름 아니요, 영성이 가진 역동성을 시각화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키아의 표현이 이 같은 엘 그레코의 것과 유사하다. 이 같은 그레코와의 유사성은 <길가의 소박한 사람들>이라는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레코는 현실보다 더욱 양감과 입체감을 드러내게 만드는 화풍을 선호하였고, 이를 통해서 더욱 휘황하고 괴괴하게 보이는 형상과 풍경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것이 객관적인 현실은 아닐지라도, 그의 눈에 비치는 주관적인 시야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레코가 그려낸 스페인의 톨레도는 더욱 을씨년스럽고 흉흉하며 스산하게 그려진 것으로 유명한데, 이 같은 주관적인 풍광은 키아의 작품에서도 이어진다. 본 작품에서의 배경은 분명 현실에 존재하는 것을 묘사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화가의 주관에 의해 주관적으로 해석되고 있다. 또한 인물들의 몸은 길게 늘여져있고, 그 색채 또한 붉게 변형되어 있다. 이는 폴 세잔의 <납치>와 같은 작품에서의 비례 및 색채의 왜곡을 연상케 하거나, 그 이후의 표현주의적인 영향으로 느껴진다.



(좌) <손 게임>, 1982 / (우) <바다 가까이에>, 2006



 

이탈리아어로 지어진 이름과, 그 이름이 가리키는 그리스인이라는 정체성, 그리고 스페인에서의 삶이 혼합된 엘 그레코처럼 키아 또한 당대의 특정 방향에 얽매이지 않는 이단아에 다름 아니었다. 20세기에 환생한 듯한 이 이단아는 매너리즘의 영향뿐만 아니라, 당대에 몇 십여 년 전에 다름 아니었던 미술운동들의 영향도 적극적으로 체화하였다. <손 게임>을 보면 원통형의 실린더들이 마치 비처럼 쏟아지고 있다. 초현실적인 정경이지만, 비단 이것을 무의식의 영역에만 국한시켜서도 안 될 것이다. 원통은 세잔이 회화의 기본적인 3요소라 말한 구, 원뿔, 원통의 세 가지 조형에 상응한다. 이를 바탕으로 20세기의 가장 혁신적인 운동에 다름 아닌 큐비즘이 전개되지 않았던가. 키아는 큐비즘의 조형성은 아니더라도, 세잔의 조형성은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본 작품에 그려진 다리나 팔과 같은 부위들은 재현에 입각하고 있는 듯 보이면서도, 이들이 보이는 단순화는 결국 이 같은 기본적인 조형의 3요소에 입각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는 정치적인 요소나 내용을 최대한 소거하고, 이전의 회화가 간직한 순수한 조형성을 적극 길어온다. 그가 초현실적인 배경을 구축함에 있어서 아라베스크 문양 및 이국적인 패턴, 미래주의시기에 고안되었던 역동적이고도 리드미컬한 이미지들이 차용되곤 한다. 이 같은 패턴들이 뒤섞인 그의 작품 속 배경은 여러 경향이 눈에 띠지만 그 중에서도 파랑이라는 색채와 자연이라는 공간성이 대두되곤 한다. 그는 하늘 및 바다의 광대함과 무한함을 표현하기 위해 파랑을 사용하곤 하는데, 이는 낭만주의 및 청기사파에서 동경과 이상향의 의미로 사용했던 파랑의 색채의 상징에 상응할 것이다. 그의 푸른 작품에서는 언제나 열려있는 가능성과 미지 너머의 공포, 깊은 공간감을 통한 무한함이 강조되곤 한다. 또한 표현주의적인 태도로 구축해낸 자연 역시, 그가 그려낸 푸른 하늘 및 바다의 태도와 유사할 것이다. 문명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원시적인 자유가 가능한 공간 속에서, 그는 규정할 수 없는 인물들을 즉흥적으로 창조해낸다.



<레다와 백조>, 2006


 


*신화



"본질적인 차원에서 회화는, 하나의 이미지를 선택하고 다른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용기의 작업이어야 한다."



산드로 키아는 자신이 추구하는 작업방향에 대해 이렇게 문장을 남긴 바 있다. 그가 가장 적극적으로 차용하는 이미지, 모티브들은 신화가 지배적이라 할 수 있다. 직접적인 형태이든 암시적인 형태이든, 자국의 역사와 문화에 지배적이었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원형으로 삼는 작품을 줄곧 펼쳐나간다. 하지만 그는 신화의 모든 것을 옮겨오지 않는다. 그가 신화를 빌려오는 것은 오직 그가 펼쳐내고 싶은 이미지를 전개하고 싶은 일환으로써, 사실상 신화가 가진 지배적인 이미지만을 빌려올 뿐, 그것이 간직하고 있는 함의는 키아의 관심이 아니다. <레다와 백조>를 살펴보자. 트로이 전쟁에 있어서 가장 중추적이라 할 수 있는 두 여성인 헬레네와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어머니이자 스파르타의 여왕인 레다는 대단한 미모의 소유자였다. 그녀는 당시 스파르타의 왕인 틴다레오스의 아내였지만, 제우스는 왕비의 미모에 홀딱 반해 백조의 형상으로 그녀를 찾아가 관계를 나눈다. 신화의 원전에서는 언제나 그렇듯 동물로 변이한 제우스의 능동성이 도드라지고, 여성은 유혹을 받는 입장이다. 이 같은 신화를 옮겨오는 키아는 배경은 공간성과 시간상을 짐작할 수 없게끔 어지럽고도 즉흥적인 패턴의 조합으로 환원시킨다. 그리고 레다의 위치를 제우스에게 유혹을 당하는 수동적인 태도를 탈피하여, 백조로 변신한 최고신을 유혹하는 주체적인 여인으로 변모시킨다. 관능적인 레다는 푸르른 색채로 칠해져 있는데, 그것은 기이하리만큼 채도가 높아 병적인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키아가 하늘이나 바다를 칠할 때 사용하는 이상과 동경으로서의 파랑과 일치하여, 이 같은 고귀한 관능성을 예찬하는 것처럼도 느껴진다. <레다와 백조>에서 도드라지는 키아의 신화에 대한 접근은 보다 능동적인 성에 대한 복권이라 할 수 있다.



팬의 작곡, 2006


 


이 같은 입장은 <팬의 작곡>에서도 나타난다. 20세기 초반에 신화와 전설에 대한 관심을 황홀하고도 다채로운 색채로 승화시켰던 상징주의 및 나비파의 색채를 키아 또한 빌려온다. 이 같은 색채로 표현된 숲은 마치 거미줄처럼도 느껴진다. 이 거미줄에는 님프로 추정되는 여인이 엎드려 누워있고, 그 앞에는 피리를 연주하는 한 남성이 있다. 그것이 판이다. 판은 그리스신화 내에서는 비교적 중립적이고 양가적인 속성을 가진 신이라 할 수 있었지만, 기원 후 기독교는 그의 이미지를 사탄에 차용하는 등 타락의 상징으로 왜곡하였다. 팬은 난봉꾼, 에로티즘, 동물적 본능, 공포와 같은 기독교의 입장에서 부정적으로 규정된 속성들에 상응하는 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 내에서도 판의 욕망은 대단히 고압적인 형태로서, 그가 구애하는 님프 및 여인들은 언제나 그를 거부하고 차라리 목숨을 끊는다. 하지만 키아는 팬이 가지는 염소뿔이나 짐승의 털과 같은 야성적인 요소들을 모두 소거하고, 대단히 정적이고 진중한 태도로 상대를 유혹하는 판의 이미지를 재창조해낸다. 판의 욕망에 있어서 선택권이 부재하던 님프들은 이 같은 구애를 멀리서 지켜보며 판단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고, 언제나 비극으로 치닫던 판의 사랑도 일련의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즉 판과 님프들은 신화 속에서 그 운명이 닫혀있었으며, 또한 그 성애는 대단히 폭압적이었다. 하지만 키아는 신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상대를 배려하며 진정으로 자유로운 성애의 방향성을, 또한 결정론에 의거하여 닫혀있지 않은 개개인의 운명을 화폭 속에 옮겨낸다.



(좌) <고대의 얼굴>, 2006 / (우) <화가와 그의 아들>, 2006



 

*실존적 테마

르네상스 및 바로크, 신고전주의와 상징주의 등을 거치며 신화의 내용은 그대로 유지한 채 이를 시각적으로 어떻게 옮기는 지가 관건이 되었다. 르동이 가장 파격적인 형태로 신화를 화폭 속에 옮겨왔다고 한들 갈라테이아를 찾아 헤매이는 사이클롭스의 이야기는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같은 신화는 그것이 지배적인 당대에 살아온 인류의 사고와 인식을 규정하였다. 신화가 가리키는 삶의 규범은 곧 당대의 인류에게 보편에 다름 아니었다. 그리고 키아가 신화를 다룸에 있어서 가장 파격적인 이유는 인류에게 있어 신화의 높다란 권위를 해체시켰다는 것에 있으며, 이는 곧 인류의 해방을 의미한다. 키아는 분명 미술에 있어선 어떤 모더니즘적 태도를 지향한 것 같지만, 그가 담아낸 인류의 모습에 있어선 실존적인 태도가 나타난다. 키아의 작품세계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바는, 바로 무수한 얼굴들이다. 지금 여기가 아닌 고대에 하나로 환원되지 않는 개성적인 무수한 얼굴들을 드러내는 <고대의 얼굴>과 같은 작품들에서도 신화라는 이념에 구획되지 않는 자유로운 얼굴들이 나타나곤 한다. 키아가 지향하는 인물을 그려내는 필치는 여전하지만, 각각의 얼굴들에서의 시선이나 색채는 단일한 초상으로 환원되기를 거부한다. <고대의 얼굴>과 같이 이 테마를 전면에 배치한 작품에서도 나타나지만, 이외의 작품들에서도 마치 헤르마프로디토스를 연상케 하는 두세 개의 얼굴을 가진 인물들의 초상이 나타나곤 한다. <화가와 그의 아들>을 보자. 초록색 의상을 입은 남성은 제목에서 추론하건데 키아 자신의 투영일 것이요, 작은 아이는 그의 아들일 것이다. 전자의 경우 보편적인 하나의 얼굴이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셋으로 얼굴이 분화되어 있다.



(좌) <고양이를 흔들며>, 2006 / (우) <습격>, 2009


 

1940년대에 태어난 키아에게서 진정한 실존이란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화폭 속에 담아내는 그의 성향은 꽤나 진보적이지만, 미술 그 자체를 바라보는 키아의 태도는 보수적이지 않던가. 그 또한 온당 시대성을 거부하진 못한 것이리라. 하지만 그의 아들은 하나로 귀결된 자신과는 달리, 작품 속 세 가지로 열려진 무수한 가능성을 펼쳐 낼 수 있기를, 무엇보다 그 아들의 곁에 듬직하게 있어줄 뿐, 이를 결코 구획하거나 재단하지 않는 느슨한 보호자로서의 태도가 도드라진다. 키아는 자신이나 그의 세대가 불가능했던 진정한 자유로서의 실존적 경향을 아들을 통해 이행시키고 있는 듯 보인다. 신화의 자유로운 변이나 한 개인이 띨 수 있는 양성적 성향 등이 내비치는 키아의 경향으로 볼 때, 그의 작품 세계 속에 투영된 존재들의 어떤 본질을 밝혀내려하는 것은 대단히 무의미한 일에 다름 아닐지 모른다. <디노와 함께><고양이를 흔들며>와 같이 동물들이 어떤 상징성을 띨 것만 같은 수수께끼와도 같은 초상들에게서 답변을 찾아 헤맬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그들은 다만 공룡인형과 함께 있는 것이 좋은 것이요, 고양이를 흔들고 놀아주는 것이 즐거울 뿐일지 모른다. 이러한 자유분방한 행동들, 유희의 강렬함은 미래주의 풍의 배경이 매혹적인 <기습>에서도 도드라지지 않던가. 배경이 갖는 파괴적인 에너제틱함과 가학적인 여성과 피학적인 남성의 관계는 오묘한 조화를 이룬다. 온당 실존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키아가 화폭 속에 자주 드러내곤 하는 성에 있어서의 해방으로서, 특히나 이 관계는 성애에 있어서 결코 소거되지 않는 필연적 폭력성을 지적하는 바타이유의 이론을 연상케 한다. 바타이유가 말한 것처럼 벌게진 남성의 엉덩이로부터 달아오르는 에로티즘, 그리고 동물과의 차이점으로서 우리가 느끼는 수치심을 남성의 시선과 포즈로 드러냄으로써 방종한 동물의 성욕이 아닌 인간의 자유로운 에로티즘을 구획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그림을 그린다>, 2006



 

*메타회화

이러한 작품세계에 담겨진 키아의 자전적인 바나 사유를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그의 작품 세계에서 인물들의 주위에 글자가 놓여있는 구도가 강조되곤 한다. 가장 먼저 <나는 생각한다 고로 그림을 그린다>를 보자. 이는 앞서 언급한 실존적인 경향과는 상반되는 제목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키아는 그가 담아낸 경향에 있어서는 실존적인 바가 포착되더라도, 매체나 방법론에 있어서는 어떤 본질의 탐구를 찾아 헤매는 경향을 줄곧 내비쳤다. 아무리 키아가 즉흥적으로 작업에 임한다 한들, 그것은 계획이 대단히 느슨한 것뿐이지, 어떠한 이성의 개입도 없이 펼쳐지는 작업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작품이 그것을 보여준다. 언어와는 분명 다른 시각예술의 영역임에도, 그의 사고를 일부 규정하는 언어는 작품과 온당 결별되지 않는다. 한편으로 그 언어의 힘은 지배적이지는 않은 것처럼 보인다. <협동>을 볼까. 언어가 잔뜩 적힌 벽면을 어지러운 곡선이 도드라지는 낙서들로 더럽히고 있다. 언어가 선형적으로 배열된 벽면은, 두 인물의 즉흥적이고도 혼란스러운 협동에 의해 비선형적으로 뒤섞인다. 이 두 작품의 관계는 대단히 모순적인 것으로도 보인다. 하나는 언어를 조합하는 것처럼 보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파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절충한다면 전자는 그가 생각하는 미술에 있어서의 최소한의 이성적인 영역을 의미할 것이고, 후자의 경우에는 그것을 바탕으로 지배적이어야 하는 것은 결국 선과 색이라는 시각예술의 기본요소라는 것을 환기하는 것이리라.



(좌) <턱시도, 리비도, 토르페도>, 2002 / (우) <트럼본 사이로 보면>, 2006


 


그 최소한의 언어는 자신의 작품을 지칭할 요소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코스메틱, 미메틱, 애틀레틱><턱시도, 리비도, 토르페도>를 보자. 전자는 미용, 모방, 육상이라는 단어이고, 후자는 양복, 욕망, 어뢰라는 단어이다. 이 뜻을 모를 때, 이 단어들의 조합은 어떤 공통된 의미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 자체로는 어떠한 의미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 개념과 사물들을 지칭하기 위한 단어와의 우연적인 결합일 뿐이다. 이 관계가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는 <턱시도, 리비도, 토르페도>를 볼까. 이를 되뇌는 인물은 돼지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돼지는 팔라초, 테라초, 파파라초라는 각각 저택, 테라스, 파파라치에 상응한다. 양자의 문장 모두에도 어떠한 이성적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양자의 대화는 독백일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시선은 일치하며 어떤 소통을 이루는 것 같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키아가 그려내는 것은 순수한 시각적 즐거움인 기의의 영역이요, 그들이 말하는 것도 기의와는 무관한 순수한 라임의 연속으로서의 기표일 뿐이기 때문이다. 키아가 감상자들과 행하는 대화도 이와 유사할 것이다. 어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대화가 아닌, 그것 자체로 감각적이고 유희를 일깨우는 대화, 우리는 키아의 작품으로 세상의 법칙을 찾아내고자 하진 않는다. 그의 작품은 온당 세계를 투영해내지 않기 때문이다. 키아의 세계는 대단히 음악적이다. <트럼본 사이로 보면>을 보면 오른편 얼굴은 팔레트를 바라보고 있지만, 왼편 얼굴은 트럼본 내부를 바라보고 있는 오묘한 시선이 드러난다. 이는 회화에 있어 그의 음악적인 태도를 암시하는 작품일 것이다. 음악이 그리스도의 수난을 표현한다고 한들 그것은 언제나 고난을 연상하지는 않으며, 또한 송어 및 마왕으로부터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들, 창조물은 그것과 유리될 수 있을 만큼 독립적이다. 음악은 원형이 된 대상들을 언제나 지칭하지 않는다. 그리고 모더니즘에서 음악을 제외한 다른 예술 영역은, 음악의 이와 같은 자율적인 속성을 빌어, 자신들도 독립성을 추구하고자 했다. 그리고 키아는 이 운동을 계승하는 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순수하고도 고유한 시각적인 즐거움과 감각성 그것 자체를 일깨우기 위한 고뇌로 골똘히 차있는 것이다.


 

*정리

이렇게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거부하기 어려운 물결 속에서, 모더니즘적인 화풍을 자유로이 선택하고 이를 펼쳐낸, 시대의 이단아에 다름 아닌 산드로 키아의 일대기를 살펴보았다. 그는 회화에 있어서는 어떤 본질을 다시금 회복시키려는 운동을 도모하였다. 그것은 인간이 창조한 영역이기에, 인간이 풀 수 있는 영역으로서 본질에 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한편으로 신화처럼 인간의 창조물이기 때문에, 이를 만들어낸 인류의 일원으로서 그것을 자유롭게 유희하려는 태도로 해석되기도 한다. 허나 미술과는 달리 담아내는 인류의 초상에 있어선 대단히 자유롭고도 실존적인 경향을 지향한다. 신화에 의해 인류가 지배될 수 없는 것처럼, 화가로서의 인간이 다른 인간을 화폭 속에 지배하려는 것은 야욕일지 모른다. 키아는 그것 자체를 그려내거나, 인간 자체에 대한 경이로운 상상력을 펼쳐내어, 유한하지만 무한한 그 가능성을 화폭 속에 펼쳐낸다. 이러한 산드로 키아 및 그가 속한 트랜스 아방가르드라는 사조가 먼 훗날 미술사에 기록될 바를 상상해보자. 그들은 미술사에서 있어서 대단히 보수적인 이념을 띠었던 사조들과 유사하게 기록될지 모른다. 바로크의 역동적이고 회화적인 미학에서, 르네상스 및 고대 그리스의 정적이고 조각적인 아카데미 규범으로 회귀한 신고전주의 사조처럼, 그리고 모더니즘의 맹아가 맺히던 당대로부터 라파엘로 이전을 주창하던 라파엘 전파처럼 기록될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마냥 보수성과 과거로의 회귀를 드러내진 않는다. 포스트모던의 시대, 예술의 종말의 시대에 모든 예술적 가능성이 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 이 시대 속에서도 이전 시대의 경전과도 같은 가치들은 여전히 잔존해있다. 소쉬르나 아도르노, 리오타르가 주창한 숭고함이 가장 지배적인 미의식을 이루며 동시대에도 일련의 경전으로부터 온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상황이다. 그래서 트랜스 아방가르드의 기수들은 한때 아방가르드가 반하고자 했던 경전화가 그들 손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게끔 만든다. 이를 통해 역설적으로 현재가 거부하는 것들을 과감하게 행하며, 열린 가능성을 보여주는 그들의 미학 속에서 어떤 것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미학자 단토의 개념인 예술의 종말이 진정으로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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