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보기_https://artlecture.com/article/1233
《올해의 작가상 2019》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2019.10.12-2020.03.01.
김아영 작가.
지난 3주 간 한 작가씩 차례로 다루며, 2019년 열리는 《올해의 작가상》 전시를 꼼꼼히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마지막 작가로 만날 작가는 바로 김아영 작가입니다.
김아영 작가
김아영 작가는 한국의 근현대사, 영토 제국주의, 자본이나 정보의 이동 등 동시대적인 문제들을 사운드, 비디오와 퍼포먼스, 설치를 통하여 다각도로 다루어 왔습니다. 특별히 최근 김아영 작가는 전 지구적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주’의 문제에 천착하여 오랜 기간 작업을 해왔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는 김아영 작가의 신작 역시 ‘이주’와 동시대의 이주와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난민’의 문제를 다룹니다.
《올해의 작가상》 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작품은 <다공성 계곡 2: 트릭스터 플롯(Porosity Vally2: Tricksters' Plot)>(2019)입니다. 이 작업은 2017년 발표된 <다공성 계곡: 이동식 구멍들>의 후속작으로, 주인공이 광물이자 데이터 클러스터입니다. 주인공 설정부터가 매우 독특한 작업입니다. (*사전을 몇 군데 뒤져보니, 여기서 클러스터란 파일과 폴더에 대해 디스크 공간을 할당하는 단위를 뜻한다고 합니다.)
김아영, <다공성 계곡: 이동식 계곡> (2017), 싱글 채널 비디오, 21 min.
김아영 작가의 <다공성 계곡> 연작의 주인공 페트라는 시공을 뛰어넘는 차원의 이동을 꾀하다가, 해안가의 한 섬에 불시착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주자를 ‘외계인’ 혹은 ‘바이러스’라고 규정짓는 이주 당국의 결정에 따라 페트라는 에일리언 보호소에 구금 조치됩니다. 그곳에서 페트라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따라 섬 내부로 이동하게 되고, ‘어머니 바위’라는 초월적 존재를 만납니다. 어머니 바위의 데이터와 결합한 페트라는 결과적으로 섬에 기여하는 존재가 됩니다. 페트라의 이주는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난민의 이주를 떠오르게 합니다.
김아영, <다공성 계곡 2: 트릭스터 플롯>, (2019), 2 채널 영상, 24 min.
데이터의 이동을 픽션 화하여 난민의 이주를 상기시키고자 하는 작가의 발상은 눈여겨볼만합니다. 작품은 데이터 클러스터의 이주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에, 관람자들은 ‘난민의 이주’가 아닌 ‘데이터의 이주’를 바라보며,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세계와 난민의 이슈에 대한 사유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만약 ‘난민의 이주’를 직접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영상이었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조금 달랐을지도 모릅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난민의 문제는 바다 건너 다른 대륙의 문제일 뿐 '우리'와는 상관이 없는 문제였지만, 제주로 '사태' 이후 갑작스럽게 '우리'의 문제로 재조명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주는 인류의 역사와 그 맥락을 함께 해왔을 정도로 그 역사가 길고, 언제나 존재하는 일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이주'가 문제시되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김아영, <플롯 다이어그램>, 2019, 레터링 시트 프린트, 디지털 프린트
영상이 재생되고 있는 전시실의 벽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활동범위 등 제한 통지서’, '출국기한 유예 허가 통지서’, ‘난민 불인정 결정통지서’ 등 낯설지만 동시에 익숙하게 느껴지는 서류 이미지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서류 한 장으로 한 개인의 인생이 통째로 부정되기도, 혹은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벽면을 바라보다 보면 데이터에 따라 인간의 이주나 거주가 결정되는 현대 사회의 특성이 기이하고 낯설게 느껴집니다. 한 개인의 인생이 문서화되고 데이터화 될 때, 그것의 이동과 폐기는 용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정작 한 개인의 인생이 담고 있는 깊이 있는 이야기들은 쉬이 삭제되어 버리기도 합니다. <다공성 계곡 2: 트릭스터 플롯>과 벽면에 설치된 작품 <플롯 다이어그램>은 모든 것을 ‘데이터화’하는 현대 사회에 관한 무거운 비판을 가볍고 위트 있게 풀어냅니다.
<플롯 다이어그램>의 일부분.
우리 사회에서 난민의 이주는 여전히 불편하고 어색한 주제입니다. 올해 제주도에 정착을 시도한 예멘 난민들 412명 중 87.7%가 임시적 체류를 허가받음에 따라, “제주도 불법 난민 신청 문제에 따른 난민법, 무사증 입국, 난민신청 허가 폐지/개헌 청원”은 게재 열흘만에 40만 명에 달하는 동의를 얻어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포털 등에는 예멘 난민들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배타적 태도를 드러내는 글들이 연이어 올라왔습니다. 무슬림에 대한 두려움과 그에 따른 혐오적 반응은 좀처럼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갈등의 골은 점점 더 깊어져 사회적 합의점을 찾는 일은 아득하게만 느껴졌습니다.
2018년 6월 30일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일어난 제주도 예멘 난민 반대 집회. 맞은편에서는 '인종차별을 반대한다'는 구호를 외치며 난민 반대 집회를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다
여전히 ‘난민의 이주’라는 이슈는 회사 직원들과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혹은 오랜만에 모인 친척들과 과일을 깎아 먹으며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닙니다. 그러나 불편하다고 해서 더 이상 외면하기만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닙니다. 우리는 말해야 하고, 또 들어야 할 것입니다. 김아영 작가의 신작은 불편한 사유를 시작하게 하고, 이 불편한 사유들이 논의되는 장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커뮤니케이션의 시작이 언어가 아닌 ‘예술’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더욱이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김아영 작가의 작품이 대중과 깊이 있는 교감을 가능케 하는 작업인지에 대해서는 확답을 할 수 없습니다. 김아영 작가의 작업은 난민에 대한 혐오를 보다 가벼운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나 대중들에게는 이해하기 이해하기 어렵고 난해한 작품일 수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필자인 저는 이 작업이 지금 이곳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꼭 한 번쯤은 감상했으면 하는 작업입니다. 따라서 김아영의 신작이 대중들이 ‘난해하다’라고 여기는 선에서 머물지 않고, 더 많은 이들의 사유와 이야기를 시작하게 하는 작업으로 존재했으면 좋겠습니다.
《올해의 작가상》전시에 대한 리뷰는 이것으로 마칩니다. 불과 며칠 전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될 작가가 결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수상 여부와 상관없이 국내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서울의 중심가에 넓게 자리 잡은 미술관에 전시되고 있다는 자체로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