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툭튀” 내 집 앞 공공미술
“갑툭튀” 내 집 앞 공공미술
-한강 예술공원 조형물 논란을 보면서-
정부의 환경개선‧미술 진흥정책, 공공미술
오늘날 공공미술은 미술계와 지역사회에서 모두 중요하게 다루는 화두이다. 삶과 미술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공통된 인지를 기반으로, 지역사회는 미술을 지원하고 미술은 '잘 관리된 지역' 만들기(도시 이미지 구축 환경개선 및 공간의 미적 활용)에 충실히 관여한다.
이 뜻밖의 만남은 '공공성‘이란 비전을 공유한다. 지역사회의 문화 인프라의 구축은 지역 구성원들의 편의 및 심미적 만족을 충족시키며 지역 환경 개선의 차별화된 전략이 되고 있다. 미술계에서도 "미술의 본질은 공공성에 있다" 고 본 미학자 힐데 하인(Hilde Hein)의 주장처럼, 미술이 사회적 책임에 통감하고 지역사회와 소통해야 할 것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많은 국립 예술기금이 조성되기에 정부의 공공미술 진흥정책은 미술계에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동시대 미술의 쟁점으로 급부상한 공공미술은, 공공성을 정의하는 데 있어 모연한 해석과 합의되지 않는 의견들이 충돌하면서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됐다. 가까운 예로, 우리는 지난 9월 서울시가 수십억 원(사업비 102억 원 중 설치에 60억 원을 사용)을 들여 한강 예술공원에 설치한 37개의 조형물 일부가 논란에 휩싸인 것을 보았다. 특히 이촌 한강공원 위를 지나는 철교 아래에 설치한 ‘북극곰’ (그림 1) 같은 경우에는 “곰이 한강의 강한 생명력을 부각시킨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라는 작가의 창작 의도와 시 관계자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에게는 “흉물 같다”라는 거부감과 혐오감만 불러일으키고 있다. 급기야는 현재 조형물의 철거를 바라는 민원까지 제기된 상황이다(김선엽 : 2018).

그림 지영호, 북극곰, (이미지출처, 아시아경제)
문제시되고 있는 한강공원 조형물을 보고 있자니, 뉴욕 연방 광장에 설치되었다가 민원에 의해 철거된 리처드 세라의 유명한 설치미술작 <기울어진 호>(1981)(그림 2) 가 떠오른다.
미니멀리즘의 대가라 불리는 리처드 세라의 <기울어진 호>는 높이 3m 65cm, 길이 36.5m의 규모로 뉴욕 맨해튼 연방 광장 앞에 설치됐다. 그런데 이 조형물의 거대한 크기 때문에 통행에 방해를 받은 대중들의 원성이 빗발치자 정부는 작가에게 작품을 철거하고 다른 장소에 옮길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작가는 작품이 놓인 ‘바로 그’ 장소를 떠나면 의미가 없다는 주장을 펼치며 연방정부와 무려 9년에 걸친 법정 공방과 공청회를 거쳤다. 이때 리처드 세라가 내세운 주장은 장소와 작품은 때려야 땔 수 없는 불가분 한 관계에 있다는 '장소 특정적 미술‘의 개념이다. 그러나 공공의 권리가 우선한다는 법원의 판결에 따라 결국 <기울어진 호>는 1989년에 철거되었다. 이 사건은 미술가의 표현의 자유와 공공의 권리가 대립하며 마찰을 일으킨 사례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이와 같이 보건대, 대중 정서에 반하는 공공미술은 대중들에게 차갑게 외면받을 수 있고 자칫 위협적으로 간주될 수도 있으며, 미술가의 표현의 자유는 공익의 문제와 충돌할 시 보호받기 힘들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 리처드 세라, 기울어진 호(1981~89)
공공장소와 공공성
그러나 대중들의 호의적인 반응에 기대야만 공공미술이 공공성을 획득하고 작품 존치의 정당성을 보장받는 것일까?
미국 시카고에 설치된 <더 시카고>(1967)(그림 3) 는 세계적인 미술가 피카소가 만든 조형물로, 작가의 유명세와 마치 개코원숭이를 연상케 하는 친숙한 이미지 때문에 시카고 시민들에게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면서 시카고의 상징물이 되었다. 그러나 이 조각상은 피카소가 아내 재클린과 기르던 애완견의 이미지를 혼합해 만든 것으로 작품이 위치한 장소의 사회‧문화적 맥락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즉 "야외라는 물리적 장소에 놓여 있다는 점과 작품의 크기나 규모를 제외하면, 그 자체만으로 ‘공공’ 미술이라고 할 만한 특성을 갖고 있지 않다.”(권미원 : 2016)
어떤 때는 횡포가 되고 어떤 때는 자부심이 되는 공공미술의 딜레마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리는 공공미술이 설치되는 –또는 퍼포먼스로 행해지는- '공공장소(영역)'의 개념을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인간의 조건과 인간다움에 대하여 깊이 있는 성찰을 꾀한 철학자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공공영역은 “문제 제기의 장이 되고, 그 장은 멀리 떨어지지 않고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열리며, 구성원들이 소외되지 않고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연대하는 주요 공간”을 의미한다. 하버마스는 이 공공영역의 전신을 19세기 프랑스의 살롱(salon)에서 찾는다. 살롱은 일종의 복합적인 사회·문화·예술 공간이라 할 수 있는데, 작게는 부르주아들의 사적인 공간이라 할 수 있고, 크게는 당시 사회에 중요한 여러 의제에 대하여 대중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논의하고 실천을 이끌어냄으로써 공공성을 획득한 공간이기도 하다. 이에 따르면 공공장소는 단지 추상적인 텅 빈 공간이 아니라 지역 구성원들이 그곳의 환경·역사·문화·예술‧사회·정치적 맥락을 함께 공유하고 교환하는 공동체의 공간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보건대, 앞서 살펴본 한강 예술공원의 문제의 조형물과 리처드 세라의 <기울어진 호>는 비단 작품이 장소와 불가분 한 관계에 있어도, 관람자인 지역 구성원들이 소외되었으므로 –작품과 공동체가 '소통' 하고 '관계' 하는데 실패- 미적 소통매체로서의 공공성을 획득하지 못한다. 또한 피카소의 설치미술작 <더 시카고>는 작품과 그것이 설치된 장소 및 공동체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으므로 역시 장소 특정적의 공공성을 획득하지 못한다.

그림 피카소, 더 시카고(1967)
공공미술의 역할과 목적 그리고 예술성
공공미술은 전통적 미술 –미술과 미학을 이해하는 엘리트 중심으로의 전시가치 우선- 의 고급스럽고 난해한 옷을 벗고, “만지지 마시오”라는 권위 표도 떼어 버리고, 우리가 다니는 길목에 서서 우리에게 대화를 청한다. 지금 바로 여기서(here and now), 나의 현존(presence)을 붙잡고서.
우리 주변에는 이 공공미술이란 이름으로 행해진 조형물들은 산재해 있다. 시청광장에 설치된 <스프링>(그림 4),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 홍국생명 사옥 앞의 <망치질하는 남자>(그림 5)는 그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앞으로 이러한 공공미술의 수요는 계속 늘어날 전망인데 우리는 세금 내는 시민으로서, 지역주민으로서, 또 미술 감상자로서 무엇을 요청해야 할까?


그림 조나단 보롭스키, 망치질 하는 남자(2002)
공공미술은 단순히 스타 미술가의 유명세에 의존하거나 아름다운 형식미에 그치는 조형물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정체성을 담고, 지역민들의 미적 감수성을 키워주며, 소통의 장을 열어주는 공동체의 의미 있는 상징물로 발전해야 한다. 공공미술은 그것이 설치된 지역적 공간을 둘러싼 작품과 감상자가 서로 소통하고, 동질의 문화를 공유하는 지역 공동체의 네트워크 활성화에 기여해야 하는 데 그것의 목적과 역할을 다해야 한다.
만일 공공미술이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지역문화자원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시키지 못하고, 삶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지 못할 시, 가족‧친구‧연인과 함께 찾는 명소로서의 공감은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지역민들이 미적 감각을 열고 각자 속에 내재된 총체적인 예술혼을 일깨워 미의식을 고양시”(김성숙 : 2012) 킬 수 있을 때 공공미술의 예술성 또한 구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공미술은 ‘장소’, ‘인간’, ‘공공성’을 함께 충족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익숙한 내 공간에 “갑툭튀(갑자기 툭하고 튀어나온)” 대상이 될 뿐이다.
[참고 기사‧문헌]
김선엽, 「수십업 들인 한강 예술공원 작품... 시민들 “흉물 같다”」, 『m.chosun.com』 (2018.09.06.)
김성숙, 「미적 소통을 위한 공공미술 사례연구: 공공미술의 역할과 미술교육의 방향」, 문화예 술교육연구 제7권 제3호), 2012.
권미원, 『장소 특정적 미술』, 김인규 , 우정아, 이영욱 옮김, 현실문화, 2013.
힐데 하인, 「공공미술이란 무엇인가: 시간, 장소, 그리고 의미」, 이장은 옮김, 윤난지 엮음, 『모더니즘 이후 미술의 화두 4: 공공미술』, 눈빛, 2016.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이진우‧태정호 옮김, 한길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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