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보통 박물관을 '보러' 간다. 흰 벽, 밝은 조명, 캡션과 시선의 동선처럼 시각적 언어는 전시장의 공용어처럼 느껴진다.
경청의 한자어 뜻 ⓒ 네이버 한자 사전
그런데 ‘경청(傾聽)’이라는 단어를 자세히 살펴보면, ‘박물관을 보러 간다’라는 그 문장이 조금 달라질 수 있다. 사전은 경청을 ‘귀를 기울여 들음’이라 정의하지만, 그 안에는 흥미롭게도 이미 몸을, 내 신체를 기울이는 행위가 내포돼 있다.
즉, 듣는다는 것은 단순한 청각적 반응이 아니라 몸의 방향을 바꾸는 일, 나의 중심을 잠시 세계 쪽으로 내어주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바로 이 작은 기울기가 뮤지엄 경험을 바꾸는 찰나라 생각한다.
겨울의 언어 표지 ⓒ 웅진지식하우스
김겨울의 『겨울의 언어』에서 「이상적인 경청의 세계」를 읽으며 '경청'이라는 단어가 갖는 밀도를 처음으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향유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예술로 얻고 싶다면 그만한 시간을 기울여야 한다"라는 문장이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아있었다.
“향유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예술로 얻고 싶다면 그만한 시간을 기울여야 한다.”
- 겨울의 언어 中 김겨울
경청이란 귀로 듣는 행위가 아니라, 시간의 견디기 속에서 타인과 함께 존재하는 태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렇게 '뮤지엄에서 경청하기'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미국 자연사 박물관 정면 ⓒ 미국 자연사 박물관
뮤지엄은 본디 시간을 담는 그릇이다. 수집과 보존, 전시와 기록. 그렇다면 관람 역시 시간의 기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경청하는 전시 경험은 이미 몇몇 현장에서 시도되었다. 영국 브래드퍼드의 국립과학미디어박물관이 진행한 'Sonic Futures' 프로젝트는 관람객과 함께 새로운 전시 프로토타입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어떻게 더 잘 들을 것인가'를 실험했다.
Listening session 전경 Ⅰ
ⓒ Science Museum/Science & Society Picture Library
특히 주목할 만한 지점은 이 프로젝트가 단순히 사운드 기술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람객들이 여러 주에 걸쳐 반복적으로 모이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다.
Listening session 전경 Ⅱ
ⓒ Science Museum/Science & Society Picture Library
그중에서도 특히 ‘Sound Postcard’ 그룹의 사례를 주목할 만하다. 참여자들은 직접 사운드 엽서를 제작하고, 우편으로 다른 참여자에게 보냈다. 그리고 며칠을 기다린 후 도착한 엽서를 받아 다시 모여 함께 들었다.
프로토타입 워크숍 전경
ⓒ Science Museum/Science & Society Picture Library
디지털 시대에 굳이 아날로그 우편을 활용한 이 느린 과정은, "소리를 단지 받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한다"라고 한 어느 참가자의 말처럼 ‘소리’를 ‘커뮤니케이션’의 층위로 전환시켰다.
즉, 시간을 들여 사람과, 또 작품과 관계 맺는 과정 자체가 무언가를 보고 감상한다는 하나의 향유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Gramophone Record Postcards
ⓒ Science Museum/Science & Society Picture Library
그렇기에 내가 말하고 싶은 '경청'은 단순히 청각적 감각의 확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뮤지엄에서의 경청은 시간을 사용하는 방식, 다시 말해 나의 시간을 작품과 함께 '견디는 행위'에 가깝다.
박물관 내부의 전경 ⓒ MAINGAU
사실 우리는 보통 박물관을 굉장히 빠르게 통과한다.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작품을 본다는 건 사실 내 앞에 있는 무언가를 '확인한다'라는 것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런데 경청은 반대의 방향으로 우리를 이끈다. 무언가를 더 많이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해하기 이전의 상태로 충분히 머무르기 위해서. 작품의 맥락과 나의 감정이 서로 엇갈리고, 정리되지 않은 채 공존하도록 두기 위해서. 이 순간들을 위해서 경청할 때, 그때 비로소 전시는 시간이 걸리는 경험으로 변한다.
그래서 경청은 시간을 요구한다. 어떤 것을 향유하려면 그만한 시간을 지불해야 한다는 자명하지만 자주 잊히는 사실. 서두르지 않는 시간, 맥락을 기다려 주는 시간, 내 해석이 도착하기까지의 간극을 허용하는 시간 말이다.
박물관의 오디오 가이드 ⓒ MuseumNext
이것은 전시장의 오디오 가이드를 '재생'하는 시간과도 다를 것이다. 경청은 정보를 더 받는 일이 아니라, 이미 내 주변에서 울리고 있었지만 내 귀가 채택하지 않았던 리듬에 주파수를 맞추는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뮤지엄에서 어떻게 경청을 실천해 볼 수 있을까? 사람들의 다양한 개성만큼 경청에는 수많은 방식과 형태가 있겠지만, 이번 원고에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태도를 제안해 볼 수 있겠다.
첫째, 집중의 시간
경청은 나의 시간을 오롯이 내어주는 집중의 행위다. 한 작품 앞에서 오래 머물며, 그 안에서 일어나는 나의 내적 변화를 감지하는 일. 그 변화는 감정의 떨림일 수도 있고, 혹은 단순한 호흡의 변화일 수도 있다. 이 집중의 시간은 예술을 '정보'로 받아들이는 습관을 느리게 해체하게 할 것이다.
둘째, 머무름의 시간
경청은 곧 기다림이다. 작품이 나에게 말을 건네도록, 혹은 내가 그것에 닿을 수 있도록 기다리는 시간. 해석보다 감각이, 감각보다 존재가 앞서는 상태. 이 머무름의 시간이야말로 향유의 핵심이 될 것이다.
셋째, 되돌아보는 시간
경청은 경험의 여운을 흘려보내지 않는다. 전시장에서의 시간은 퇴장과 함께 끝나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의 흔들림 속에서, 혹은 며칠 후 문득 떠오르는 이미지 속에서 전시는 다시 시작된다. 경청은 그렇게 ‘이후의 시간’을 열어주는 감각이 될 것이다.
뮤지엄에서의 다양한 경청 ⓒ 서부원
'경청하는 관람'이란, 내 시간을 예술에게 잠시 빌려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경청하는 순간, 내 삶의 속도는 예술의 속도와 맞춰진다. 시간을 내어주는 것은 곧 자신을 내어주는 일이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예술의 일부가 될 것이다.
즉, 뮤지엄에서 경청한다는 것은, 작품을 '듣는' 일이 아니라 나의 시간을 '들어보는' 일이다. 내가 지금 얼마나 느리고, 얼마나 불안하며,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를 자각하는 일.
이때 예술은 비로소 오롯이 향유하는 예술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필자는 뮤지엄을 '시간을 사용하는 공간'이라 부르고 싶다. 전시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속도를 허락하는 공간이다.
빠르게 해석하는 대신 천천히 관계 맺는 것, 정보를 습득하는 대신 의미를 길어 올리는 것. 이 느림의 미학이 바로 오늘 우리가 다시 배워야 할 경청의 기술이지 않을까 싶다.
참고자료
https://journal.sciencemuseum.ac.uk/article/staging-listening-new-methods-for-engaging-audiences-with-sound-in-museums/#text-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