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5일부터 11월 9일까지 진행되는 임시공간의 외부 협력전시 《암컷들의 바다》는 ‘바다’ 그리고 ‘암컷’이라는 키워드가 가지는 보편적인 상징과 의미를 벗어나는 시도를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1883년 개항 이후 1930~1940년대의 건축물들이 보존되어 역사성과 장소성을 가진 해안동에 위치한 ‘차(茶) 스튜디오’의 공간을 활용한다. 건물의 창 전반을 전시 타이포로 채운 외부 조성은 선별된 기록과 보존 바깥에도 여전히 상기해야 할 역사와 서사가 있음을 발언하는 듯하다.

전시는 김지영, 안유리, 조성연 작가의 작품으로 구성되었으며, 오후 네 시부터 여덟 시까지 관람이 가능하다. ‘바다’가 차오르는 만조의 시간을 염두에 두고 오픈하는 이 전시는 ‘해’가 저물고 점차 ‘달’이 떠오르는, 상징적으로 남성에서 여성으로 이동하는 시간까지 운영함으로써 주된 두 키워드를 시간 속에서도 드러내고자 하였음이 나타난다.

입구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김지영 작가의 작품 〈세계의 소리는 과거에 기대어 울린다〉는 성난 파도를 의미하는 ‘노도(怒濤)’ 연작으로, 과거를 의식하여 현재를 성립하는 존재 방식을 드러낸다. 부서지는 파도와 포말의 이미지, 그리고 음절 단위로 분절된 화면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멀어질수록 문장이 읽히는 작품을 통해 김지영 작가는 개인의 삶(미시적이고 분절된 포말, 음절)과 세계(거시적인 화면, 문장)를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선을 담아내고자 하였다. 오일 파스텔로 만들어낸 포말의 질감, 그리고 다소 딱딱한 글자체의 간결함은 부서지고 끝내 견고해지는 삶의 축적을 연상케 한다.

조성연 작가는 송도 국제도시 미개발구역에서 수집한 식물의 이미지를 통해 불온하게 만들어진 생태의 흐름 속 아름다움을 〈still alive〉를 통해 제시한다. 폐기물과 염생 식물, 조경 식물 등 비인간의 시간을 시각화하는 조성연 작가의 작품은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방식 대신 장식적인 요소를 더한 새로운 이미지를 통해 실제 현상에 대한 상상, 혹은 더 긴 고찰을 하게끔 한다. 검은색 레이스 테이블보가 깔린 검은 좌대 위 메마른 식물들의 이미지에서 인간의 이기심이 초래한 자연의 파열과 그럼에도 자생하고자 하는 식물들의 애쓰는 힘이 느껴진다.

안유리 작가의 〈포효하는 잿더미들〉은 항공 촬영을 통해 얻은 끝없는 바다의 이미지와 이에 이어지는 내레이션을 바탕으로, 바다를 건너 이동한 시신을 중심으로 한 디아스포라 서사를 풀어나간다. 작품은 제주 4·3과 사할린 잔류의 역사적 기록, 그리고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를 작가 개인의 가족사와 연결하며, 중국어·일본어 등 여러 언어의 내레이션으로 구성된다. 이를 통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이국에서 잿더미가 된 망자들과, 그들의 죽음에 얽힌 전쟁과 이념의 역사가 여전히 현재로 이어지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이번 전시는 삶과 죽음, 인간과 비인간, 사건과 개인이라는 주제를 ‘바다’와 ‘암컷’이란 키워드를 통해 풀어내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는 거대한 자연과 그 안의 개별 존재들이 만들어온 목소리들을 다시 듣게 하며, 잊힌 서사들을 서로의 파장 속에서 다시 연결해보기를 제안한다. 결국 우리가 마주해야 할 질문은, 잊힌 서사들을 다시 불러낼 때 어떤 세계를 새로 써 내려갈 수 있는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