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알림이 울릴 때마다, 우리 모두는 무조건 반사적으로 화면을 확인한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확인하는 것도, 밤에 잠들기 직전까지 보는 것도 그저 네모 속 작은 화면이다. 조너선 크레리가 『24/7 잠의 종말』에서 경고했듯이, 우리는 시간의 경계가 사라진 24시간 연중무휴 체제 속에서 살아간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꿈꿀 능력'이다.

알고리즘을 다룬 다큐멘터리 ‘소셜딜레마’ ⓒ 넷플릭스
‘꿈꿀 능력’이라는 표현은 다소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꿈꿀 능력은 생각보다 구체적이고 보다 현실적인 단위에서 우리의 일상과 맞닿아 있는 문제이다. 크레리에 따르면, 꿈과 수면은 자본의 논리에 저항하는 유일한 생물학적 행위라고 정의된다. 하지만 알고리즘은 이 모든 것을 단순한 데이터와 기계적 반응으로 바꿔버린다.

인공지능과 알고리즘 ⓒ HCAIM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이라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는 우리의 취향도, 관심사도, 심지어 꿈까지도 예측 가능한 패턴으로 치환된다. 우리가 좋아할 만한 것을 미리 추천받고, 보고 싶은 콘텐츠를 자동으로 선택할 수 있게 된 일상이 반복되며 어느 순간 ‘무엇을 좋아하는가?’라는 질문조차 스스로에게 묻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이 제시해 주는 예측은 우리에게 새로운 매커니즘의 효율성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감각과 상상력, 우연이라는 인간 고유의 가능성을 조금씩 침묵시키고 있었다.
이렇게 우리는 점점 덜 놀라고, 덜 의심하며, 덜 꿈꾸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동시대적 흐름 속에서 우리는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
세화미술관의 실험, 『논알고리즘 챌린지』

‘논알고리즘 챌린지’ 전시 포스터 ©세화미술관
바로 이 지점에서 세화미술관의 3부작 기획전시 『논알고리즘 챌린지』(2023-2024)는 새로운 사유의 계기를 제시해 준다. 이 전시는 인공지능 시대, 인간과 비인간의 존재와 관계 속에서 ‘인간다움'에 대해 다각도로 사유하는 프로젝트로 기획되었다. 이 같은 명확한 목적의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전시는 단순히 인공지능을 비판하거나 거부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대신 '비알고리즘적 경험'이 무엇인지 시각적으로 보여주며,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 고유의 감각과 사유 방식을 되찾을 수 있는 대안을 ’전시‘의 형태로 보여주고 있었다.

《귀맞춤》 전시 전경 ©세화미술관
전시는 '감각-신체-기억'이라는 세 개의 키워드로 구성되어 있다. 1부 《귀맞춤》에서는 청각을 중심으로 한 공감각적 경험을 다룬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듣는다'는 행위가 단순히 소리를 인식하는 것을 넘어선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원우리 작가의 <주파수 응답>을 경험해 보면, 각자의 고유한 청각적 감수성이 개인마다 얼마나 다른지 감각을 통해 깨닫게 된다. 이는 표준화된 알고리즘적 인식과는 정반대의 경험이다.

《가장 깊은 것은 피부다》 전시 전경 ©세화미술관
2부 《가장 깊은 것은 피부다》에서는 더욱 직접적으로 이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여기서 인간과 세계가 피부를 통해 서로 진동하고 공명한다는 의미의 '살갗 풍경(Skinscape)'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민찬욱의 디지털 휴먼 연작을 통해 관람객은 진짜 몸과 가상의 몸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게 된다. 이런 혼란이야말로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명쾌한 답변들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선사해 준다.

《4도씨(4℃)》 전시 전경 ©세화미술관
마지막 파트였던 3부 《4도씨(4℃)》에서는 기억을 다루는데, ’4도씨‘라는 제목 자체가 상징적이다. 4℃는 물의 밀도가 최대가 되는 온도로, 생명 유지의 임계점을 의미한다. 겨울철 강물의 수면은 얼어붙어도, 깊은 곳의 4℃ 물에서는 생명이 꿈틀거린다. 즉, 4℃는 아직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이라는 기계가 가지지 못한 따뜻한 인간성을 상징한다.
3부는 ’감각‘과 ’신체‘를 다루는 1부와 2부의 서사적 연장선상에 있다. SEOM:(섬:)의 따뜻한 사운드스케이프, 태킴의 뜨거운 게임 아바타 탐구, 오묘초의 차가운 기억 전이 실험은 각각 다른 온도의 기억을 다루면서도 모두 인간 기억에 대한 성찰이라는 공통 주제를 탐구한다. 특히 오묘초의 작업은 ‘질료의 상전이’ 과정을 통해 물질이 가진 기억을 추출하고 전이하며 복원하는 실험을 통해 물질 자체의 기억을 형상화한다.
즉, 『논알고리즘 챌린지』는 단순한 기술 비판이 아니라 비알고리즘이라는 가치 아래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기계의 이성 작용과 그 현상에 대한 예술의 도전적 서사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이는 조너선 크레리가 제시한 ‘꿈꿀 능력’의 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문화적 실천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전시의 각 파트는 독립적이면서도 ‘감각-신체-기억’이라는 순환적 구조로, 인간 존재의 총체적 경험을 비알고리즘적 관점에서 재구성해, 이를 통해 관람객들이 자신의 꿈 꿀 능력을 단계적으로 회복할 수 있는 감각적 여정을 제공하였다.
그리고 관람객

박관우 <도슨트 프로그램> 퍼포먼스 진행 사진 ©세화미술관
본 원고에서는 해당 전시에 함의된 메시지가 실제 관람객에게 어떻게 도달하고, 또 인식되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에 올라온 관람 후기 67편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보았다. 놀라운 점은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을 다룬 전시라면 대개 “어렵다”라거나 “이해가 안 된다”라는 부정적인 반응이 주를 이룰 것이라 예상했지만, 실제 관람 후기에서는 다소 달랐다는 점이다.
물론 "전시가 어려워서 리플렛을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쉽지 않았다"와 같은 전시 이해의 측면에서 어려움을 토로하는 반응 자체는 적지 않았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관람객들이 이러한 난해함을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려워도 뭔가 끌리는 게 있었다"라거나 “이해 안 되는데 계속 생각하게 됐다"라는 반응들이 그것이다. 이는 알고리즘이 추구하는 즉각적이고 명확한 정보 전달과는 정반대의 경험을 보여준다.
또한 관람객들은 전시를 통해 '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질문’을 가질 수 있었다. "다양한 감각을 체험했다", "내가 귀로 소리를 들인다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몰입했다"라는 반응들은 시각 중심의 관람 습관을 벗어난 몸 전체의 경험을 보여준다. 특히 "집에서도 계속 생각하게 된다", "전시를 계속 곱씹어봤다“ 등과 같은 후기는 전시 경험이 단지 현장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으로 스며들고 때로는 무의식의 영역까지 확장되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어쩌면 이 순간이야말로, 크레리가 말한 ‘꿈꿀 능력’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한 장면이 아니었을까? 싶다.
전시장에서 꿈꾼다는 것은

‘논알고리즘 챌린지’ 2, 3부 아티스트 토크 전경 ©세화미술관
『논 알고리즘 챌린지』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전시장이 단순한 작품 감상 공간을 넘어 '꿈꾸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여기서 말하는 ‘꿈’은 단지 잠을 자는 동안 꾸는 꿈이 아니다. 대신 예측 불가능한 연상과 상상, 기존 사고의 틀을 벗어나는 사유, 그리고 몸 전체를 통한 감각적 경험까지 모두를 포함한다.
알고리즘이 우리의 선택을 예측하고 조작하려 하는 시대에, 전시는 예측 불가능한 만남이 발생하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관람객은 큐레이터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작품을 해석할 수도 있고, 뜻밖의 기억이나 감정이 떠오를 수도 있다. 이러한 비결정적 경험이야말로 우리가 알고리즘의 일방향적 흐름에 저항할 수 있는 하나의 감각적 무기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이런 접근이 기술을 무조건 거부하자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술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사유해 보자는 제안에 가깝다. 그리고 세화미술관의 실험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AI는 위험하다’라고 단순히 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만이 지닌 비알고리즘적 능력의 구체적 형상을 예술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꿈꿀 능력을 회복해 주는 전시실을 나서며 우리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알고리즘의 예측을 살짝 비껴가는 작은 실천들일 것이다. 추천 알고리즘이 제시하는 콘텐츠 말고 우연히 마주친 무언가에 호기심을 느껴보기. 효율성과 생산성의 논리에서 벗어나 그저 멍하니 있는 시간 허용하기. 스마트폰 화면이 아닌 내 몸의 감각에 집중해 보기. 이런 작은 실천들이 모여 우리의 '꿈꿀 능력'을 조금씩 회복시킬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작점으로서 ‘전시’만큼 좋은 곳도 없다고 생각한다.
『논 알고리즘 챌린지』는 끝났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비알고리즘적 실험은 이제 시작이다. 오늘 저녁,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마지막으로 언제 꿈을 꾸었는지 생각해 보자. 그 순간부터 우리의 작은 저항이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