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은 박물관에 가지 않는다. 오직 10명 중 2명만이 매년 갈 뿐이다. 왜 그럴까?
코로나19 이후 국내에서는 전국적인 전시회 열풍이 일었고, 국립 및 사립 기관을 불문하여 해외 컬렉션을 중심으로 한 관람객 폭증 현상을 경험했다. 2023년 서울시립미술관의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는 약 30만 명의 관람객을 동원하고, 같은 시기 국립중앙박물관의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역시 32만여 명을 기록하는 등 국공립기관의 기획 전시가 ‘락다운’이 무색할 만큼 놀라운 회복세와 성공 추이를 보였다. 그리고 이처럼 전시를 향한 열기는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비엔나 및 고흐전 포스터 ⓒ각 기관 공식 홈페이지
지난 2024년 11월 30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한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특별전은 개막 2달 만에 누적 관람객 20만 명을 돌파하며,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보다 11일가량 빠른 관람객 증가 추이를 보이고 있고,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의 《불멸의 화가 반 고흐전(1)은 누적 관람객 4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런 국내의 상황을 보고 있으면 한국의 박물관과 미술관은 시민들에게 일상적으로 친숙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데,
정말 그러할까?
통계청에서는 한 해 동안 음악, 연극, 무용, 영화, 박물관, 미술관 등의 문화예술행사를 관람하기 위해 문화예술시설에 가본 적 있는 인구의 비율을 격년으로 발표하고 있다. 통계청의 ‘문화예술관람률’에 따르면 박물관 및 미술관 관람률은 데이터가 최초 수집된 1996년 이후로 점진적인 증가 양상을 띠고 있지만, 전시회 붐 현상을 현실에서 실제로 체감하는 것만큼 수치상의 급격한 변화는 찾아보기 힘들다.
문화예술관람률(박물관) ⓒ통계청, 필자 제작
실제 2011년도부터의 박물관 관람률을 살펴보면 1년간 박물관에 1회라도 방문한 인구 비율은 10명 중 2명이 채 되지 않는다. 미술관 관람률을 합할 시 겨우 1년에 2.5명이 방문하는 셈인데, 이마저도 ‘영화’ 카테고리와 비교하면 약 3배의 차이가 발생한다. 1990년대 후반 이후, 박물관 및 미술관 관람률의 상승세는 분명하나 마의 20%를 매년 넘지 못하고 있으며, 영화와 같은 대중문화 콘텐츠와 비교하였을 때 언제나 큰 간극이 존재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왜?’라는 질문이 빠져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문제의 출발점은 ‘지역민이 일상적으로 방문할 수 있는 박물관은 어디인가?’라는 의문점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문민정부 당시 행정구역 개편과 지방자치제도가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는데, <신한국 문화창달 5개년 계획>과 같은 문화정책 기조를 살펴보면 국립 지역 박물관의 균형 설치와 같이 지역문화 활성화를 중심에 둔 것을 알 수 있다. 1990년대 말에는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고 지역문화 진흥이라는 큰 틀을 이어받아 21세기 문화국가 실현을 위한 문화기반시설을 적극적으로 조성하였다. 이후 참여정부를 거치며 중앙정부 주도에서 벗어나, 지방자치제가 주축으로 되는 공립지역박물관의 설립이 왕성해졌다고 볼 수 있다.
공립박물관 시기별 개관 개수 ⓒ문화체육관광부, 필자 제작
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기반시설총람을 살펴보면 공립 1종에 해당하는 박물관들은 대개 2000년대를 지나며 개관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지역 공립박물관의 설립 당시 취지는 문화예술기반시설에 대한 지역사회의 물리적·심리적 장벽을 낮춰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문화를 향유하는 공간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지역적 가치와 지역문화를 창발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각 지역 내에 설립된 지역 공립박물관이 시민사회에서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반추해 보면 설립 당시의 기능과 역할이 매우 미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지역민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지만, 이 장소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흔히 문화예술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서울과 수도권으로, 중앙으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더욱이 국내 관람객의 서양미술에 대한 높은 선호도는 블록버스터급 규모의 특별전을 개최하기 힘든 지역 공립박물관에 더욱 큰 장애로 작동한다. 또한 결정적으로, 지역 공립박물관의 경우 많은 경우가 지역사, 인류사와 같은 역사 기반의 정보성 전시가 높은 비중을 차지하기에 가벼운 ‘문화 여가’를 즐기고픈 오늘날 관람객에게는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는 공간이라는 관념이 형성되었다.
물론 지역 공립박물관에서도 이와 같은 현대의 동향을 반영하여 주기적으로 전시실 개편을 통해 새로운 관람 트렌드를 반영한 상설 전시를 선보이거나, 대중적으로 관심도가 높은 기획전을 개최하여 현대 사회에 발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예산과 인력이라는 인프라 요소의 확보가 비교적 용이한 1종 시설에만 국한된다. 국립 또는 공립으로 지역 내에 개관되었지만, 내·외적 요인의 불충분으로 인해 2종 및 미등록인 기관의 경우는 더욱 심각해진다.
이 같은 공립박물관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전시콘텐츠 구성에 있다고 판단한다. 미술관 또는 회화 중심의 전시와 달리 지역 내에 건립된 공립박물관은 흔히 공부를 위해 가는 공간 내지는 현장 체험 학습으로 타의에 의해 끌려가는 장소로만 인식되곤 한다. 이에 지역 박물관은 시민사회에서 매력도가 낮은 기관으로 점차 개념화되고, 어린이의 교육만을 위한 어쩌다 한 번 가는 공간으로 전락 되었다.
하지만 지역 공립박물관은 지역민들을 위해 형성된 공간이자,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방문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고, 이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를 위해 지역 공립박물관에서는 새로운 기관 이미지와 브랜드를 형성하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즉, 기관 정체성과 유물을 중심으로 시민사회에서 대체될 수 없는 ‘고유성’을 발굴해야 한다. 다만 이 역시 지극히 원론적인 서술이기에 프랑스 파리의 ‘인류학박물관’ 사례를 통해 박물관이 더욱 재밌는 공간으로 구성될 수 있는 방향을 제안하고자 한다.
파리 인류학박물관 ⓒ기관 공식 홈페이지
프랑스 파리 16구에 위치한 인류학박물관(Musée de l’Homme)은 1937년 세계 박람회 개최를 맞이하여 건립된 국립박물관으로, 인류라는 광활한 주제를 생물학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접근하는 기관이다. 흔히 ‘인류’를 다루는 박물관이라고 한다면 선사시대, 생물, 진화의 과정과 같이 교과서적인 내용만을 다루는 정적인 공간이라고 인식된다. 하지만 파리 인류학박물관은 ‘단순화’라는 기법을 활용해 효과적으로 전시콘텐츠를 시민사회와 연결하고 있었다.
파리 인류학박물관 상설전시 전경 ⓒ기관 공식 홈페이지
파리 인류학박물관의 상설 전시는 인간의 기원에서 미래까지 세 가지의 주요 주제를 중심으로 스토리라인이 전개된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세 가지 질문으로 인류의 탄생, 진화, 발전을 아주 단순하게 그려냈다.
파리 인류학박물관 전시 인트로 설명 ⓒ필자 촬영
상설 전시 도입부의 설명문은 ‘단순화’라는 기관의 특성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해당 설명문은 지식과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달하기보다는 하나의 이야기와 질문거리를 제시하고, 유물과 전시물을 통해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유도한다. 더욱이 이는 전시실 내 유물들이 분리된 독립적 개체가 아니라 하나로 통합된 집합체이자 이야기로서 인식하게 한다. 즉, 마치 소설을 읽는 것처럼 동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유물을 이해하고 자신만의 언어로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복잡하고 읽기 어려운 단어들의 나열이 아닌, 누구나 읽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문법으로 작성된 단순화된 설명문은 시민사회의 장벽을 효과적으로 완화하였다.
파리 인류학박물관 체험형 콘텐츠 ⓒ필자 촬영
또한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 역시 다양한 매개체를 활용해 제시하고 있었는데, 다르게 표현하자면 유물 중심의 나열형 전시가 아니라 직접 경험하고 재미를 먼저 느낀 후 그 뒤 간접적으로 교육적 기능을 전달하고 있었다. 인간이란 존재를 고찰하는 과정 중 ‘말하는’ 행위에 주목해 소멸 위기인 언어를 ‘혀’를 잡아당기는 행위를 통해 알아가게 한다거나, 인류의 진화 과정 중 내 얼굴과 네안데르탈인을 친척 관계로 비교해 주는 촬영 부스 등의 다양한 체험형 콘텐츠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끊이지 않았다. 이렇게 파리 인류학박물관에서는 ‘재미’라는 감정을 먼저 선사하고, 지식을 서서히 전달하는 체험형 요소들을 배치하여, 설명문으로만 본다면 그저 스쳐 지나갈 법한 내용을 이곳에서는 온전히 집중하며 스스로 탐구할 수 있었다.
파리 인류학박물관 체험형 콘텐츠 ⓒ필자 촬영
파리 인류학박물관은 인류의 진화와 인류학이라는 주제를 체험형 콘텐츠와 단순화된 전시로 구성하여 관람객에게 깊이 있는 경험을 제공하고 있었다. 이러한 접근은 우리 오늘날 박물관이 시민에게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방법과 형식에 대해 고찰하게 한다. 또한 이는 우리 사회에서 시민들에게 관심을 받지 못하는 박물관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지역 공립박물관은 시민에게 있어 당연한 선택지 중 하나로 제시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사회를 향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그 메시지를 담은 형식은 어떤 형태일지에 대해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고민과 노력이 결국 ‘소통’의 형태로 사람과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국 사람들은 박물관에 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박물관에 갈 수 있고, 그렇게 박물관은 일상적인 공간이 되어갈 것이다. 그게 필자가 바라는 박물관의 당연한 모습이다.
각주 1)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의 경우 외부 기획사 주최로 개막되는 대관 전시가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상술한 《불멸의 화가 반 고흐전》 역시 HMG그룹이 기획한 대관형 특별전이다. 이에 《불멸의 화가 반 고흐전》은 국공립기관에서 통상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연구-전시-교육의 형태를 찾아보기 힘들며,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서 제시하고 있는 박물관·미술관의 역할과 기능이 매우 약화되어 있다. 이에 《불멸의 화가 반 고흐전》은 기관에서 주최한 특별전이라기보다는 형식상 전시 이벤트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으나, 본 원고에서는 서양미술에 대한 대중의 높은 선호도를 파악하기 위한 현상으로 이를 인식하여 작성되었다.
참고자료 통계청, 지표누리 국가발전지표, 문화예술관람률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기반총람2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