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xpressionists 전시전경 | 사진출처: 필자 ©2024 Ayla J. | 장소: Tate Modern
인상주의(Impressionism)가 자연의 모습을 눈에 보이는 대로 포착하려 했다면, 표현주의(Expressionism)는 내면의 감정과 진정성을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표현주의의 대표적인 그룹으로는 독일 드레스덴에서 시작된 다리파(Die Brücke, The Bridge)와 뮌헨에서 결성된 청기사파((Der Blaue Reiter, The Blue Rider)가 있는데, 한국어 단어로 다리파는 어딘가 모르게 독특한 느낌을 주며, 청기사파는 젊은 혈기가 느껴진다. 1911년 결성된 ‘청기사파’라는 명칭은 사실 바실리 칸딘스키가 선호하던 기사(knight)의 모티브와 프란츠 마르크가 좋아하던 청색이 합쳐져 만들어진 것으로, 별달리 큰 의미를 담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후에 칸딘스키는 청기사의 상징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말은 신속하고 확실하게 기수를 태워다준다. 하지만 말을 모는 것은 기수다. 미술가의 재능은 신속하고 확실하게 미술가를 저 높이 데려다준다. 하지만 그 재능을 인도하는 것은 미술가다.” (김연후, 2020, p.23에서 재인용: 슐라미스 베어, 2003, 46). |
가브리엘 뮌터와 바실리 칸딘스키
이번 전시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여성 회원들, 그중에서도 가브리엘 뮌터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가브리엘 뮌터의 그림들 | 사진출처: 필자 ©2024 Ayla J. | 장소: Tate Modern
온라인에서 볼 때보다 실물로 접했던 뮌터의 그림들은 예상보다 작은 크기였고, 그녀 특유의 포근하고 아기자기한 분위기가 도드라졌다. 뮌터는 칸딘스키와의 관계로 인해 과소평가 된 여성 화가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가브리엘 뮌터는 칸딘스키의 제자이자 연인이었다. 뮌터와 만나기 전 이미 유부남이었던 칸딘스키는 그녀와의 사랑을 위해 결혼 관계를 정리했고, 함께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작품세계를 꽃피웠다. 하지만. 그가 러시아로 돌아가 우유부단하게 회피하며 뮌터를 기다리게 하는 동안, 다른 여자와 결혼 한다. 그러고는 변호사를 보내 자신의 그림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이쯤 되면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는 노릇 아닌가. 물론, 사랑은 두 사람 간의 이야기니 함부로 논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이런 일화들을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예술가의 작품과 삶을 분리해서 보기가 좀 힘들어질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과서에서만 보던 칸딘스키의 작품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흥분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정작 마음에 와닿았던 것은 프란츠 마르크의 애정 어린 동물 그림들과 가브리엘 뮌터의 섬세하고 따뜻한 작품들이었는데, 어쩌면 이 일화에 대한 영향이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청기사파의 표현주의 실험
Wassily Kandinsky, Improvisation Gorge, 1914 | 사진출처: 필자 ©2024 Ayla J. | 장소: Tate Modern
뮌터와 칸딘스키, 프란츠 마르크는 청기사파를 구성한 중심인물들이었는데, 표현주의 화가들은 이들 주변에 모여 색채, 소리, 빛을 실험하며 대담하게 펼쳐냈다. 칸딘스키는 예술의 목적이 인간의 영혼을 물질로부터 해방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면, 뮌터는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심리적으로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마르크는 인간보다 더 순수한 동물을 정신적 상징으로 탐구하며 색채에 대한 연구를 발전시켰다.
Gabriele Münter, Portrait of Marianne Werefkin, 1909 | 사진출처: 필자 ©2024 Ayla J. | 장소: Tate Modern
이 작품은 뮌터가 그린 마리안네 베레프킨의 초상화다. 마리안네 베레프킨은 러시아 출신의 선구적인 표현주의 화가였다. 칸딘스키와 뮌터는 독일 무르나우에 정착했었는데, 이때 야블렌스키, 마리안느 폰 베레프킨, 파울 클레 등이 함께 청기사파를 이루며 무르나우의 집에 자주 모였다고 한다. 뮌터는 이 시기 주변 인물들과 풍경을 일기처럼 그림으로 남겼다. 그녀는 이 시기 독일의 유리이면화를 접하게 되면서 추상성을 발전시키는데, 유리이면화의 특징은 명확한 윤곽선과, 혼합되지 않은 색, 평면성 등이다. 위의 작품에서도 두꺼운 윤곽선 등의 요소를 확인할 수 있다.
Marianne Werefkin, The Dancer, Alexander Sacharoff, 1909 | 사진출처: 필자 ©2024 Ayla J. | 장소: Tate Modern
뮌터의 작품에서 등장했던 ‘마리안네 폰 베레프킨’의 작품이다. 남성성과 여성성이 겹치는 댄서의 모습을 과감하게 표현했다. 짙은 청색과 알 수 없는 성정체성, 그리고 야릇한 표정이 합쳐져 묘하게 눈길을 끈다.
Franz Marc, Tiger, 1912 | 사진출처: 필자 ©2024 Ayla J. | 장소: Tate Modern
앞서 언급했듯, 프란츠 마르크는 순수한 동물의 영혼을 정신성의 상징으로 탐구하며, 원색과 단순한 형태를 활용해 서정적인 감정과 추상성을 표현했다. 그는 ‘아우구스트 마케’와의 교류를 통해 색채 연구를 더욱 심화시켰는데, 마르크에게 있어 푸른색은 정신성을, 붉은색은 물질성을 상징한다.
Franz Marc, Deer in the Snow, 1911 | 사진출처: 필자 ©2024 Ayla J. | 장소: Tate Modern
Franz Marc, Deer in the Snow, 1911 | 사진출처: 필자 ©2024 Ayla J. | 장소: Tate Modern
이번 전시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화면 내부에서 충돌하고 섞이면서 어우러지는 색들을 <눈 속의 사슴>을 통해 관찰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130여 점의 다양한 작품들이 있었다. 청기사파의 세련되고 대담한 실험들은 현대 독일 표현주의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아무래도 한 시대를 이끌었던 미술사 속 흐름을 볼 수 있는 기획전의 묘미란 이런 것인가 싶다. 교과서에서 보던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아 체계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도 꽤 밀도 있고 의미 있는 일이었다.

전시장 밖으로 나오면 테이트 모던에서 기획되었던 전시의 포스터들을 모아둔 벽이 있었다. 저 중에서 필자가 보았던 전시도 있고, 보고 싶었던 전시도 있었는데 이렇게 모아두니 계속 도장 찍듯 보러 오고 싶어지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이런 아카이빙적인 구성도 흥미롭게 보았던 하루였다.
참고 문헌 ● 테이트 모던 홈페이지: Expressionists: Kandinsky, Münter and the Blue Rider ● 최지윤, 가브리엘레 뮌터(Gabriele Münter, 1877-1962)의 「청기사」 시기 연구,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미술사전공 석사학위논문, 2023. ● 김연후, 표현주의 회화에 대한 연구, 충북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전공 교육학 석사학위논문, 2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