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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변화하는 세계에 대하여 | ARTLECTURE

끝없이 변화하는 세계에 대하여

-«이강소: 風來水面時 풍래수면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Art & Preview/
by 안유선
끝없이 변화하는 세계에 대하여
-«이강소: 風來水面時 풍래수면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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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이강소: 風來水面時 풍래수면시»는 독자적인 예술세계로 한국현대미술 변화에 선구적인 역할을 한 이강소(b.1943)의 60여 년의 작품세계를 새롭게 조망하고자 마련한 전시이다.
2024-11-01 ~ 2025-04-13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지하1층 3전시실, 4전시실, 서울박스(2024. 9. 2 – 2025. 4. 13.)

«이강소: 風來水面時 풍래수면시»는 이강소를 “독자적인 예술세계로 한국현대미술 변화에 선구적인 역할”을 한 작가로 소개하며, 60여년에 걸친 작업세계를 조망한다. 전시는 이강소의 작업세계를 논할 때 자주 언급되었던 1970년대 실험미술 작업에서 1980년대 초반 본격적으로 시작된 평면회화 작업으로의 이행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실험미술 작업과 평면 회화 작업을 분리해서 선보이거나 회화, 조각, 설치, 판화, 영상, 사진,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드는 그의 작업을 매체별로 구분 짓지도 않는다. 대신 이강소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작업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지점 혹은 작업을 지속하며 세계와 스스로에게 던져온 물음 두 가지를 제시한다. 첫 번째는 “세상을 만나는 주체로서 작가 자신의 인식에 대한 회의”, 두 번째는 이미지와 실재의 관계에 대한 그의 고찰과 연결되는 “작가와 관람객이 보는 대상에 대한 의문”이다. 첫 번째 지점은 3전시실에서, 두 번째 지점은 4전시실에서 다뤄지는 전시의 소주제로 작동한다. 두 전시실은 각자가 다루고 있는 주제를 잘 드러낼 수 있는 작가의 실험미술 시기(초기) 작업과 현재까지 가장 활발히 선보이고 있는 추상 회화를 비롯한 판화, 조각, 사진, 설치, 영상 작업을 동시에 선보인다.

 
3전시실: 매개자로서의 작가










3전시실은 몸에 물감을 칠한 후 천으로 그 물감을 닦아내는 퍼포먼스를 담은 사진과 물감이 묻은 천으로 구성된 <페인팅 (이벤트 77-2)>(1977)과 카메라 앞에 유리를 두고 이를 붓으로 칠하는 과정을 통해 작가를 페인트 뒤로 가려 사라지며 회화가 완성되는 장면을 담은 영상 작업 <페인팅 78-1>(1978)을 ‘작가 지우기’를 행한 작업으로 바라본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작가 지우기’는 천으로 작가의 몸에 묻은 물감을 지워내고,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작가를 사라지게 하는 작업에서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요소인 동시에 이강소가 탐구한 존재와 실존의 여러 양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선술집에서 사용하던 실제 탁자와 의자를 화랑에 전시해 관람객이 막걸리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을 만들어냈던 <소멸-화랑 내 술집>(1973)에서도 이강소는 작가와 작가의 의도를 작업의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대신 관람객이 작업에 참여하거나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도록 했다.

전시는 이러한 작가의 태도를 오리, 새, 사슴, 배 도상이 등장하는 80년대 회화 작업의 태동과 연결한다. 도상들은 자유분방하고 힘이 느껴지는 붓질로 그려져 실제 오리와 사슴, 배 등을 재현하는 것을 넘어선다. “규칙 없이 거칠게 펴져 나가는 선들은 마치 바다의 수평선과 산의 풍경을 연상시키며, 자연의 모습을 담고”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회화에는 작가의 의도보다는 우연성이 강하게 느껴진다. 전시는 이강소가 1997년부터 그려온 <섬에서>와 <강에서> 시리즈를 오리와 사슴과 같은 도상이 등장하는 <무제> 시리즈 사이에 위치시킨다. <섬에서>와 <강에서> 시리즈에도 도상이 등장할 때도 있지만, 서예의 필선이 느껴지는 획이 화면을 가로지르고 있거나 채우고 있다. 구체적인 형태보다는 추상적인 느낌이 강한 작업은 무제가 아닌 섬과 강이 명시된 제목과 만나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이강소가 자신의 회화를 “창작자가 아닌 매개자로서 작가 자신이 그려지는 그림”이라고 표현한 것을 생각해보면, 그에게 작가란 자신과 맞닿아 있는 세계를 체화하고 이를 몸과 붓질이 이끄는 대로 발산하는 자에 가깝다.

이러한 작가를 통해 완성된 “그려지는 그림”들 사이에는 그가 흙덩이를 던져 만든 조각이 놓여있다. 이강소가 “만들어지는 조각”이라고 부르는 이 작업은 재료가 되는 흙덩이가 던져지는 순간, 그것들이 서로 맞붙어 모양이 변하는 과정, 주변 환경에 따라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굳어가는 시간 등을 수반한다. 이와 같은 작업 과정은 선험적으로 주어진 감각과 이미지를 직관적으로 풀어내는 매개자의 위치에 서 있는 작가가 관람자에게 참여와 자유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함과 동시에 작업 스스로도 자신을 형성하고 의미를 더해갈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음을 보여준다.

 

제4전시실: 실재를 넘어






제4전시실은 이강소가 작업 초장기부터 가져온 “작가와 관람객이 보는 대상에 대한 의문”, 우리가 실재라고 믿는 것이 지닌 허구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선보인다. 스프레이 이미지와 실제로 스프레이를 분사한 흔적이 동시에 남아있는 판화와 실제로 존재하는 풍경 이미지에 오리와 구름, 여러 획을 그려 넣은 판화는 실재와 가상의 경계에 위치한다. 깨어진 돌과 온전한 형태의 돌을 찍은 사진으로 구성된 <무제-7522>(1975/2018 재제작)와 그 주변에 놓인 돌을 표현한 회화와 판화 작업도 실재라는 것이 불변하는 절대적인 존재가 아님을 드러낸다. 작업에 등장하는 여러 돌은 ‘돌’이라고 불리는 동시에 여러 형태와 이미지로 존재하기에, 모든 사람이 똑같이 인식하는 ‘돌’은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죽음과 긴밀히 연결된 것처럼 보이는사슴의 형태를 그리고 그 안에 실제 색칠한 사슴 뼈를 늘어놓은 작품 <무제-75032>, 살아있는 닭이 바닥에 깔려있는 회분을 밟고 전시장을 돌아다니며 흰 발자국을 남겼던 퍼포먼스 <무제 75031>(1975)를 담은 사진과 <무제 75031>의 시초가 되었던 <꿩>(1972/2018 재제작)은 감상하는 자마다 다른 실존했을 사슴과 닭을 떠올리게 한다.

미술관의 중앙에 위치한 광장이자 전시공간인 서울박스로 향하는 제4전시실의 출구 쪽에는 <청명-16181>(2016)과 사진 작업인 <꿈에서> 시리즈가 전시되어 있다. 이강소가 2000년대 들어서 선보이기 시작한 <청명> 시리즈는 앞서 살펴본 <섬에서>와 <강에서> 시리즈보다 일필휘지의 역동적인 붓질이 도드라지는 작업이다. 이러한 회화 작업에 대해 작가는 캔버스 위에 사물의 현존을 증명하려는 실존주의적인 자세를 거부하고 붓에 개념이 들어가는 것을 꺼리며 육체가 자유롭게 움직이며 만들어가는 리듬을 지향하며, 이러한 정신은 성리학에서 이야기하는 기(氣)와 연관된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작가는 서예적인 필선 사이에 자리한 여백을 두고는 태허(太虛)의 사유를 보여주고자 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태허는 우주만물의 근원이자 모체이며, 기가 작동하기 이전의 본질이자 모든 가능성을 숨긴 것들이 혼재하는 공간이기에 <청명> 시리즈는 실재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것을 넘어서 세계가 지닌 유동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여백은 길과 열린 문, 문지방을 담은 사진 작업 <꿈에서> 시리즈에도 등장한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여백을 흰색 바탕이나 비어있는 공간이 아닌 길과 계단이 향하는 곳, 열린 문과 문지방 너머로 펼쳐질 세계로 상정하고 태허의 사유를 적용해본다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탄생과 소멸이 발생하는 공간을 감각할 수 있을 것이다.

 

<소멸>, <나무의 기억-1>, <청명–21021>: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기






제4전시실을 빠져나오면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가구와 거울 설치가 더해진 <소멸>과 엣 분황사의 잔해들로 제작된 <나무의 기억-1>(2009),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선보이는 <청명-21021>(2021)을 만나볼 수 있다. <소멸>은 4전시실에서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1975년 <소멸>과는 다른 상황을 만들어내며 관람객을 마주한다. 옛 사찰에서의 기억과 한옥의 내외부를 연상시키는 작업으로 탄생하기까지의 시간이 더해진 <나무의 기억-1>도 함께 관람객을 마주하며 새로운 시간을 쌓아간다. 특정한 대상의 재현을 시도하고 작가의 의도를 내세우는 작업보다는 관람객의 자유로운 해석과 참여를 통해 작업의 의미를 완성하고자 하는 이강소의 태도를 드러내는 두 작업은 벽면에 설치된 거울에 반사되어 일종의 환영을 만들어내며 바라보는 대상과 실재에 대한 사유를 발생시킨다. <청명-21021>은 높은 벽면에 설치되어 <소멸>과 <나무의 기억-1>을 내려다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청명-21021>이 목격하는 세계는 자신의 획 사이에 자리한 여백처럼, 이강소의 작업이 관람객을 만나고, 관람객이 작업을 만나며 감각되는 탄생과 소멸이 반복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가능성을 지닌 세계일 것이다. 동시에 이는 “바람이 물을 스칠 때”라는 뜻을 지닌 풍래수면시가 비유하는 “새로운 세계와 마주침으로써 깨달음을 얻은 의식 상태”이기도 할 것이다.


참고문헌
김희주, 「이강소(李康昭)의 작품세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예술기획 전공 석사학위논문, 2018.
대구미술관, 『LEE KANG SO: 이강소, 허 Emptiness-11-l-1』, 대구미술관,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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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안유선_미술이론을 공부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