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문화회관은 ‘서양미술 400년, 명화로 읽다: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 전시를 7월 2일부터 10월 27일까지 개최한다.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400년의 서양미술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남아프리카공화국 국립미술관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의 소장품 143점을 대여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꿈에서 탄생한 미술관’, ‘네덜란드 회화의 황금기’, ‘19세기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영국 미술’, ‘인상주의 이전-낭만주의에서 사실주의 혁명으로’, ‘인상주의를 중심으로’, ‘인상주의 이후’, ‘20세기 초반의 아방가르드’, ‘20세기 컨템포러리 아트’, ‘20세기부터 오늘날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예술 현장’으로 총 9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전시는 기획 자체로 매우 웅장한 느낌을 준다. 89인의 화가, 20여 가지의 미술 사조, 143점의 명화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그 규모와 위력을 보여준다. 마케팅 또한 미술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들어 봤을 ‘클로드 모네’, ‘반 고흐’, ‘파블로 피카소’ 등 유명한 작가들의 이름을 내세우며 효과적으로 홍보를 진행했다. 그러나 이런 웅장한 기획은 표면적으로만 빛날 뿐, 실제 전시를 접했을 땐 아쉬움이 많이 남은 전시였다. 전시의 첫 번째 섹션과 맨 마지막 섹션은, 전시 주제와 다소 동떨어진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서양미술 400년의 사조와는 상관없이, 갤러리의 개인적인 서사와 의견이 너무 많이 반영되어 전시를 관람하는데 혼란을 주었다.
첫 번째 섹션
먼저, 첫 번째 섹션인 ‘꿈에서 탄생한 미술관’은 서양미술 사조가 아닌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이탈리아 나폴리 화파의 안토니오 만치니가 그린 <필립스 부인의 초상화>의 주인공인, 필립스 부인은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의 설립자이다. 그녀는 오랜 기간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겪어온 사회적 불평등 속에서, 예술이 사회적 인식을 다시 한번 제고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믿었다. 그녀는 영국의 내셔널 갤러리나 빅토리아 앨버트 뮤지엄과 같은 국제적 수준의 공공미술관을 남아공에도 설립하고자 했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였다. 이렇게 첫 번째 섹션은 갤러리의 설립 목적과 취지를 설명하며 전시를 열고 있다. 그래서 이 전시의 본격적인 시작은 두 번째 섹션인 ‘네덜란드 회화의 황금기’부터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전시는 두 번째 섹션부터 여덟 번째 섹션까지 주제와 일관성 있는 흐름으로 서양미술의 사조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인 아홉 번째 섹션에서는 뜬금없이 20세기 아프리카의 미술을 다루고 있어서 맥없이 흐름이 끊겨버렸다.
마지막 섹션
마지막 섹션 ‘20세기부터 오늘날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예술 현장’은,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아프리카 작가에 대해 주목한다. 갤러리 설립 초기에는 인종차별로 인해 흑인 예술가들의 작품이 공정하게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요하네스버그 설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상황이 많이 개선되었고, 오늘날 남아프리카의 중요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널리 알리기 위한 취지로 이 섹션이 마련되었다고 밝혔다.
끝으로
전시는 단순히 서양미술의 흐름을 소개하는 것뿐만 아니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의 역사와 그간 차별받아 온 아프리카 작가들을 조명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전시의 시작과 끝을 아프리카와 관련된 주제로 구성한 것도 이 같은 목적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관람자의 입장에서는 약간의 혼란이 느껴질 수 있다. 부산문화회관 측 전시 소개에서는 서양미술 400년의 흐름을 강조했지만, 실제 전시에서는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와 아프리카 미술이 다소 갑작스럽게 등장하여 주제의 일관성이 모호해져 혼란을 야기했다. 물론,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에서 다수의 작품을 무료로 대여해 준 점을 감안하면, 갤러리의 영향이 반영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부산문화회관이 전시를 홍보할 때 갤러리와 아프리카 미술에 대해 보다 명확히 언급했다면, 관람자들이 전시의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종합적으로 볼 때, 이 전시는 더 많은 관람객을 끌어들이려는 부산문화회관의 취지와 아프리카 미술을 알리고자 하는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의 취지가 다소 어긋난 결과물이라고 보았다. 필자는 전시 주제와 동떨어진 이러한 구성을 아쉽게 바라봤지만, 한편에서는 이 전시를 통해 아프리카 미술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