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콜리와 노스텔지어 사이에서 _ 서동욱 <토성이 온다>
작가들은 작업을 전개해나가는 과정에서 관심사와 문제의식을 확장하면서 다양한 주제와 매체를 아우르곤 한다. 반면 오랜 기간 일관성 있게 같은 주제와 매체를 탐구하는 작가들이 있다. 작가에게 특정한 관심사나 삶의 이슈가 깊이 각인된 경우인데, 이들 작품에서 주제나 표현방식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층위와 깊이를 더하며 변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서동욱, TV가 나를 본다 III, 2023. 캔버스에 유채, 80.3 x 116.8 cm. 사진=원앤제이 갤러리
서동욱, 기타 연습, 2024. 캔버스에 유채, 112.1 x 145.5 cm_사진=원앤제이 갤러리
서동욱 작가는 20여년 동안 인물을 그리면서 멜랑콜리에 대해 표현해왔다. 멜랑콜리는 우울이나 슬픔과 유사하지만, 그 원인이 불분명한 보다 근본적인 감정이다. 멜랑콜리에 대한 철학적, 의학적 논의는 고대 그리스 시기부터 이어진 긴 역사를 가지는데, 멜랑콜리는 어둡고 우울한 감정뿐 아니라 천재의 특성이자 예술가의 창조적 능력, 인간에 대한 통찰과 관련된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단순히 어두운 감정이 아니라 매력과 긍정적 의미를 포함한 개념인 것이다.
서동욱 작가는 개인전 <토성이 온다>에서 멜랑콜리의 아름다움에 대해 논한다. 전시 제목은 의학과 점성술에서 멜랑콜리한 감정이 토성과 관계 깊다고 믿었던 것에서 착안한 것이다. 토성은 태양계 끝 미지의 세계의 경계에 위치하기 때문에 어둠을 상징하며, 가장 느리게 공전하는 행성이라는 이유로 인내, 시련, 고난을 나타내 왔다. 이에 서구문화권에서는 인간의 어둡고 우울한 감정을 토성의 영향 때문으로 간주하곤 했다. 멜랑콜리는 우주의 원리와 연결된 신비롭고 낭만적인 느낌을 띠게 되며, 작가는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다.
서동욱, 밤수영, 2024, 캔버스에 유채, 90.9 x 65.1 cm. 사진=원앤제이 갤러리
캔버스 위에는 어딘가 불안하고 위태로워 보이는 인물들과 유추할 만한 뚜렷한 사건도 없는 장면이 담겨 있다. 집과 같은 사적 공간의 평범하고 소박한 실내에, 박스 형태의 TV 브라운관, 수십 년 전 유행했던 옥색 싱크대와 체리목 색상의 가구 등 시대에 뒤처진 과거의 산물이 등장한다. 마치 바로 앞에서 본 장면처럼 화면은 근경으로 구성된다. 그 안에는 누군가의 오래 전 현실이었을 청년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TV를 켠 채 혼자 잠든 사람, 리코더나 기타를 연주하는 사람, 휴대폰을 보는 사람, 선 채 정면을 응시하는 사람 등 화면에는 어떠한 심각한 사건이나 절망적인 상황, 격한 감정의 표현도 없지만, 인물들의 무심하고 어두운 표정은 결코 평온하지 않은 고독한 일상과 심리를 보여준다. 고독함과 외로움은 여러 인물을 함께 그린 작품으로도 이어진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이들과 함께 있어도 해결되지 않는 고립감을 진하게 풍긴다.
서동욱, 청계 익스프레스, 2024, 캔버스에 유채, 193.9 x 130.3 cm. 사진=원앤제이 갤러리
서동욱 작가 작업에는 다양한 화풍이 공존한다. 일부 작품들에서는 빛의 강한 컨트라스트와 인물의 부자연스럽고 뻣뻣해 보이는 자세, 평면적인 배경 처리를 발견할 수 있다. 너무 가까이에서 찍어서 왜곡된 사진처럼 원근법이나 인체의 해부학적 구조가 맞지 않는다. 변형된 형태와 색감은 마치 혼란스럽고 우울한 젊은 때의 왜곡된 자아상과 막막한 현실감각을 반영하는 듯, 청년들의 내면, 존재론적인 고민과 어우러진다. 한편 어떤 작품들에서는 인물과 배경이 사실적인 기법으로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있다. 여전히 낮은 채도의 색감은 화면을 누르고 정적인 자세는 침묵을 부여하지만. 한편 사실적 묘사와는 거리가 먼, 마치 일러스트와 같은 느낌의 작업들도 있다. 때로는 화면 안에 자연스러운 사실적 묘사와 디테일이 생략된 평면적인 표현이 묘하게 섞이기도 한다. 그로 인해 화면에는 긴장감과 생경함이 부여되며 흐르던 시선은 의외의 장소에 멈추게 된다. 관람자는 눈 앞의 장면이 그림으로 표현된 현실이 아닌 면과 색으로 조합된 화면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그 장면에서 빠져나와 붓터치와 색감, 선들과 면들을 보게 된다. 다양한 화풍이 교차하는 작품은 어쩌면 지난 날들에 대한 기억과도 닮았다. 눈 앞의 현실같이 생생하고 또렷한 기억과 꿈같이 모호한 기억이 공존하는 것처럼, 같은 대상에 대한 기억이 서로 다른 느낌과 감각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작품 속 이질적인 표현들은 일견 낯설지만 그래서 실제의 기억 속 장면과 더욱 유사하다.
서동욱 작가의 최근 작업에서 인물의 형태, 제스쳐, 공간과의 관계는 보다 부드러워진 느낌을 주며, 그러한 변화는 이번 전시 작업들에서 두드러진다. 회색조에 가깝던 이전에 비해 채도가 높아진 색감, 가볍게 중첩된 붓터치. 풍부한 중간톤은 공기의 흐름이나 냄새, 감정의 밀도를 나타내는 듯 화면을 채우고 있다. 동시에 마치 모든 것이 가볍게 흩어져버릴 것 같은 불안감과 아련함을 주기도 한다. 화면에는 어떤 노스텔지어, 그리움이 함께 어려 있다. 이전 작업들에서 인물들에 대한 작가의 불안한 시선이 느껴졌다면 최근 작업에서는 보다 담담하고 애정 어린 시선이 나타난다. 청춘이었던 작가가 청춘을 그릴 때와는 달리, 작가는 이제 그 현실에 직면하여 살아내고 있는 이의 시선이 아닌, 이미 과거가 된 지난 날을 회상하는 시선으로 이들을 바라본다. 다시 떠올려도 쓸쓸하고 멜랑콜리했던 날들, 그러면서도 그리운 날들. 그 날들은 지나간 시간이 되고, 추억할 거리로 남는다. 그 순간은 처연하지만 아름답게 빛난다. 과거의 자신에게, 그리고 지금 그 시간을 겪고 있을 이들에게 따뜻한 시선과 위로,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