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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미술의 트레이닝들(2): 동적/정적 스트레칭과 아티스틱 리서치 | ARTLECTURE

동시대 미술의 트레이닝들(2): 동적/정적 스트레칭과 아티스틱 리서치


/Insight/
by 김나연
동시대 미술의 트레이닝들(2): 동적/정적 스트레칭과 아티스틱 리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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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세 편에 걸쳐 연속 기고되는 ‘동시대 미술의 트레이닝들’은 ‘인터벌 러닝’, ‘동적/정적 스트레칭’, ‘근력 운동’, 이 세 가지의 신체 운동 방법의 관점에서 오늘의 미술을 이해하는 시도다. 우리는 미술과 함께 어떻게 트레이닝하고 무엇을 향상시킬 수 있을까?

무언가를 알아내는 리서치란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의 자리를 더듬고 그에 도달하는 과정이라면, 리서치는 알지 못하는 것의 전선(frontier)으로 우리 몸을 초대한다. 지금의 동시대 미술에서는 여러 유형의 아티스틱 리서치(artistic research)가 전개되고 이것은 조사, 프로젝트, 실천, 작업 등의 여러 이름으로 수행된다. 본 운동 전후의 동적 스트레칭과 정적 스트레칭은 운동의 예비 단계에서는 새로운 운동의 강도를 시도하기 좋게 신체를 활성화하고, 운동이 끝난 시점엔 짧아진 근육을 이완하고 피로도를 최소화한다. 그렇다면 리서치를 예비하고, 리서치를 종료하는 시점의 신체에겐 어떤 스트레칭이 도움이 될까? 몸으로 미술의 행위를 통해 앎의 감각을 감지한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미술은 어떤 종류의 지식을 형성하는가? 인터벌 러닝의 방법론과 함께 전시라는 사건이 지속적으로 유포되는 트레이닝을 살펴본 첫 번째 글에 이어 해당 편에서는 동적/정적 스트레칭의 효과와 함께 아티스틱 리서치에 관해 이야기한다.

 

아그네 알레시우테(Agnė Alesiūtė)가 설명하는 아티스틱 리서치에 대한 개념



동적 스트레칭과 정적 스트레칭의 차이

스트레칭(stretching)은 유연성을 높이는 운동으로 주로 운동 시작 전, 운동 시작 후에 수행된다. 운동을 꾸준히 수행하다 보면 본 운동 전후 스트레칭의 방법을 다르게 하였을 때 보다 효율적인 운동 효과를 얻을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가장 많이 알려진 방법으로 운동 전에는 동적 스트레칭, 운동 후에는 정적 스트레칭이 있다. 동적 스트레칭은 관절의 움직임을 넣어서 율동적인 동작의 형태로 스트레칭을 수행하는 것이다. 정적 스트레칭의 경우에는 목표로 하는 근육을 늘린 상태로 자세를 고정하고 일정 시간 유지하는 스트레칭에 해당한다. 이때 동적 스트레칭이 운동 전 워밍업으로 적합한 이유는 관절과 근육의 가동 범위를 향상해주기 때문에 전반적인 운동 능력 향상과 부상 예방에 도움 된다는 점이다. 정적 스트레칭의 경우 자세를 고정한 채 근육을 충분히 늘리면서 운동 이후 근육의 수축 상태를 완화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운동 이후의 스트레칭으로 적합하다. 스트레칭은 기본적으로 유연성을 향상하지만, 이처럼 각자의 신체 상태에 맞는 스트레칭의 세부적인 방법론의 조합과 운동 전후 타임라인을 구성하는 배치에 따라 신체 훈련과 훈련 이후의 시간을 유효하게 만들어준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타임라인 위에 그 동작을 행하는 시점에 따라서 효과적인 동작이 달리 있고, 상황과 시점에 따라 그 율동적 움직임의 개입을 선택하여 트레이닝한다는 점이다. 사실상 스트레칭이란 무언가를 늘리는 행위를 칭하는 진행형의 동사이며 정해진 안무로 짜인 장르도 아니다. 다만 행위를 취하는 시점과 움직임을 주는 여부에 따라 원하는 몸의 상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는 메커니즘을 가진다는 점에 주목해 볼 수 있다. 다가올 본 운동에 맞춰 가동 범위를 확장하고, 또 다음의 운동을 위해 몸을 적절하게 종료하는 이 스트레칭의 방식과 조합은 특히나 루틴 없이 시작과 끝, 행위의 종류와 방식을 열려둔 운동의 전후에서 효과적으로 우리 몸을 도울 것이다. 이렇게 스트레칭의 각 특징을 섬세히 구분해 몸의 수행성이 중요하면서 열린 행위인 리서치 전후에 스트레칭을 배치한다면 어떨까? 몸의 활성화를 보조하는 앞뒤 스트레칭을 지금의 미술에서의 아티스틱 리서치(artistic research)에 더한다면 리서치를 과정에서 도달하는 앎과 지식에 더욱 유연하게 도달할 수 있을까?

 

 

아티스틱 리서치라는 행위의 정의 불가능함: 학위가 있는 작가의 연구? 예술적인 방식의 조사? 미술에 대한 탐구?

아티스틱 리서치란 학위를 가진 작가의 연구인가? 작업을 만들기 위한 조사 과정 전반인가? 혹은 그 방식에서 창의적인 접근이 활용되는 조사인가? 혹은 미술사적 지식에 해당하는 이론적 논문 작성 과정인가? 이 전부가 아티스틱 리서치, 아트 리서치라는 이름의 행위가 될 수 있다이 주제에서 정제되지 않은 질문이 연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티스틱 리서치 자체를 정의하려 시도하는 순간, 이 아티스틱 리서치가 기존 사회과학 연구와 구별되는 특징과 그만이 가진 여러 성격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다만 감을 잡기 위해 리서치와 인접하게 불리는 인접한 행위의 단어들을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다. 미국의 시각예술 비평가 제임스 엘킨스(James Elkins)는 리서치라는 용어의 대안으로 사용되는 단어들이 어떤 경우에는 리서치를 둘러싼 이해를 돕는 데 효과적임을 얘기하기도 한다. 그에 따르면 첫째로 탐구(inquiry)’ 혹은 조사(investigation)’가 가능한 대안이고, 둘째로 프로젝트(project)’의 경우보다 예술가들이 자기 정의로서 삼는 용어로 사용되곤 한다. 셋째로 실천(practice)’는 프로젝트와 비슷하게 현재 흔히 사용되는 것이고, 마지막으로는 작업(work)’이 있다.



제임스 엘킨스(James Elkins)의 블랙 마운틴 리서치에서의 강연 리서치란 무엇인가? (What is Research?)”


 

탐구, 조사, 프로젝트, 실천, 작업이라는 용어들은 리서치라는 용어와 같이 정확히 어떤 행위 혹은 과정을 지칭하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속성을 가진다. 일부 직관적인 감각에 의존해 구분하기도 한다. 확실한 것은 각 단어가 혼자 자리할 때보다 서로 모아두었을 때 여전히 추상적인 기준이긴 하지만 어쩐지 각 단어가 주는 행위의 미지를 어렴풋이 떠올리고 서로 구분할 수 있다. 무엇보다 여기서 밀접하게 눈여겨볼 단어가 바로 실천이라는 단어로 오늘날 동시대 미술에서는 연구로서의 실행(practice as research)’으로서의 작업들의 중요도를 감각할 수 있다. 이 연구로서의 실행 역시 그것이 담론적으로 활성화된 지역이나 국가에 따라 예술기반 연구, 예술정보연구 등등으로 다시 한번 구분되어 이해될 수 있다. 제임스 엘킨스의 경우에는 앞선 분류를 시작으로 미술 연구의 경우들을 최대 유형화하고 나열하려는 시도를 보이는데, 결론적으로 이러한 유형화의 접근 자체가 필연적으로 즉각 행해지는 수행적인 작업들에 대한 사후적인 정리 이상이 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유효한 접근일지 의문이 든다. 최소한 아티스틱 리서치에 대한 이런 식의 접근과 이해는 우리 트레이닝에 적합하지 않은 듯 보인다. 우리에게 필요한 훈련의 차원을 생각한다면 아티스틱 리서치에 대한 질문의 초점은 이 예술/미술과 함께 전개되는 이 리서치가 형성하는 앎과 지식에 맞춰져야 할 것이다.



지식은 왜 정치적인가: 암묵적·비공식적 지식을 형성해 온 예술

예술은 역사적으로 어떠한 종류의 지식(knowledge)을 형성해 왔을까? 먼저 생각할 것은 여기서 말하는 예술이 형성하는 지식은 역사적으로 학위 프로그램을 받은 검증된 학자가 기관이나 학회, 대학에서 제도화된 형식으로 생산한 지식에 국한하지 않는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떠올리는 개념의 지식은 주로 사회과학적 맥락의 지식을 의미하는데, 이때 지식의 정치성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정치적으로 교육과 학위, 실험 가능한 환경과 자본을 가진 소수의 집단이 무언가를 발견하면, 그것이 제도의 언어를 거치고 정당화되는 심사 과정을 마친 이후에 지식으로서 공표되나. 이러한 지식 형성의 관습과 그 역사는 그러므로 정치적인 것이다.

우리가 주목하는 예술을 통한 앎과 지식은 이 정치성에 의해 암묵적이고 비공식적인 것으로 분류되어 왔다.1)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부터 지금의 인터넷까지 인류의 지적 발전과 지식의 탄생사를 짚어낸 지식의 재탄생(이언 F. 맥닐리, 리사 울버턴)에 따르면 예술은 비공식적 지식의 형태로 간주하여 왔다. 해당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우리의 책은) 신문 읽기, 오토바이 수리, 아이 양육, 예술작품 제작 같은 데서 얻을 수 있는 지식 유형인 비공식적 지식에 대해 거의 다루지 않는다고 밝혔다.2) 여기서 함께 예시를 든 것들을 보면 일상적인 행위 혹은 젠더의 차원에서 노동 및 작업으로서 이해되길 배제되어 온 행위들이 비공식적인 것으로서 지식으로 명시되지 않아 왔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공식적 지식으로 분류되어 온 영역의 경우 역사적으로 누적되면서 각자의 역사를 구축해왔 으나, 그 제도적 지식의 범주에 들지 못한 일상적 행위들의 경우 일종의 회색 지대에서 이어져 왔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제도 밖 지식이 명시적으로 형성되고 공표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비공식적 차원의 지식은 다른 층위에서 지식을 형성해 왔다는 것이다. 자신의 생애 전반에 걸쳐 지식에 대한 사유를 전개한 마이클 폴라니(Michael Polanyi)가 언급하는 개념 중에서 암묵적 지식(tacit knowledge)’이라는 개념을 생각해 볼만 하다. 이 형태의 지식은 언어나 제도화된 지식의 관습적 형식을 통해서는 표현할 수 없는 지식에 해당한다. 그럼 표현할 수 없었다면 이 지식은 어딘가에 모여있는 지식인 것인가? 이 암묵지들은 바로 경험과 학습의 차원에서 작동하는 것이기에 신체에 축적된 지식에 해당하게 된다. 자전거를 탈 줄 아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자전거 타는 능력 역시 어떤 앎의 지식에 해당하지만, 이건 100도가 되면 물이 끓는다는 과학의 증명된 지식과는 분명 다른 경로로 학습, 경험, 누적되고 존재하는 지식이다. 3) 한번 더 살필 것은 암묵적 지식으로서 예술의 지식은 신체를 지식의 저장고이자 장치로 삼는다는 점이다. 공식화된 지식은 기호를 포함한 언어를 통해 명시되어 왔는데, 언어란 지식이 몸을 떠나고도 살아갈 수 있도록 그를 저장하는 외부 하드디스크, 일종의 디바이스로 이해할 수 있다. 그와 달리 무엇보다 몸을 움직이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비공식적이고 암묵적인 예술의 지식은 몸 외부의 장치가 아닌 신체에 저장되게 되는데, 이 점에서 바로 지금의 아티스틱 리서치라는 행위가 가진 근본적인 수행성이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무언가를 알아가는 것이 어떻게 신체의 일이 되는가? 그 질문이 바로 이 기존 지식 형성과는 구분되는 이 지점에서 답이 될 것이다. 예술의 수행, 실천, 행위를 통해서 혹은 그 안에서, 그와 함께 지식은 없지 않고 있는 상태, 존재하게 된다. 이에 따라 예술과 지식은 모든 가능한 전치사(through, in, at, with etc.)로 표현되는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식은 예술을 통해서, 그 안에서, 그와 함께, 거기서 발생한다.

 

 

알려지지 않은 것(unknown)의 경계로 우리를 초대하는 아티스틱 리서치

공식적 제도에서의 지식이 ‘100도에서 물이 끓는다라고 발견을 명제로서 고정하는 앎의 완결 구조 안에서 작동한다는 점을 비교하였을 때, 아티스틱 리서치는 미완이기에 존재론적을 의미를 가진다. 아티스틱 리서치의 과정에서는 무언가를 알게 되었음, 그 발견의 앎을 집단 내에서 공유되는 언어나 기호를 통해 반드시 명시할 의무로부터 자유롭기에 미완일 수 있는 것이며, 이것이 아티스틱 리서치의 근원적 속성이 된다. 그렇기에 리서치는 과정 상에서 우연에 반응하는 유연성이 뛰어나며, 다시 한번 더 그 수행적 성격을 내재한 행위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아티스틱 리서치는 감각과 직관의 층위 역시 함께 작동하는 앎의 구조를 가졌다는 점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우리는 지식이 무언가를 아는 것의 문제라고 생각해왔으나, 무언가를 알아가는 과정을 실질적으로 생각해보면 내가 모르는, 비어 있는 어느 자리에 대한 감지가 선행된다. 그리고 이 (아직)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감각이 알고 싶다라는 의지와 결합이 될 때, 우리는 그 모르는 것으로 바짝 다가가는 행위를 수행하게 된다. 관련한 글에서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가능성에 대한 무한한 깨달음의 게임은 그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거나 알 수 있는 경계에 거주하도록 우리를 초대한다(The endless game of realization of the possibles invites us to dwell at the frontier of what is, and of what we know or can know” 4)

 


가능성에 대한 무한한 깨달음의 게임이 바로 아티스틱 리서치에 대한 비유가 된다. 미완의, 규칙과 루틴의 의무가 없는 열린 행위로서의 리서치는 우리의 의지가 향하는 방향에서 끝없이 깨달음과 앎을 맞이하는 게임이 된다. 리서치를 통해 결국 우리고 모르는 영역의 앞으로, 그 앎과 아직 알지 못함의 경계선 위로 초대된 우리는 기존의 전통적 지식 생산의 프로토콜과는 다른 방식으로 수행하게 된다. 그렇기에 이 리서치의 수행성에는 기존 관습적인 지식 형성과 앎, 배움, 교육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그를 비판하는 동시에 완전히 새로운 프로토콜로서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전복성을 무기로 갖게 된다. 다음의 사례를 살펴보자.

 

최태윤 <불확실한 학교> (2016)


<불확실한 학교> 워크숍 1. ’코드란 무엇인가현장 사진(2016817) @서울시립미술관


불확실한 학교〉 는 확실한 세계의 언어로는 표현될 수 없는 잠재력을 탐구하는 학교이다수업 내용은 예술기술장애의 관계를 다루며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학습해 온 배타적인 가치관과 차별에서 벗어나는 것을 목표한다불확실한 학교〉 에서는 장애의 유무에 상관없이 지역 사회에서 활동하는 작가활동가학생들을 핵심 참가자로 초청하여 참가자를 위한 비공개 워크숍을 진행하며 일반 관객도 관람할 수 있도록 공개 행사도 함께 진행한다.” 5)

일반적으로 언러닝은 기억이나 지식을 의도적으로 없애기그 영향을 되돌리기습관을 버리기’ 등을 뜻합니다저는 보다 구체적인 의미에서 언러닝이 우리가 도전해야 할 권력 구조를 탈학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언러닝은 엉킨 실타래를 푸는 것과 같습니다진정한 배움은 그 실을 가지고 직조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6)


뉴욕과 서울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교육자, 활동가인 최태윤 작가는 2016년 제11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여름캠프의 일환으로 <불확실한 학교>를 진행하였다. 해당 프로젝트는 학교로서 작동하였다. 15명을 정원으로 참여자를 모집하였는데, 이 참여자들은 진행된 총 다섯 번의 워크숍의 학생이고 여섯 번의 세미나의 발표자 혹은 협력 작가들은 강사가 되어 공동의 상호적 배움의 가능성을 목격하고 시도하는 프로젝트였다. 최태윤 작가의 블로그에 따르면 그는 청각 장애인을 비롯해 장애가 있는 이들을 위한 공용어로서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 왔다고 한다. 더불어 작가는 자신의 이러한 연구와 시도들이 카르멘 파필라(Carmen Papila)-시각적 학습, 사라 헨드렌(Sara Hendren), 메릴 하퍼(Meryl Harper) 등등의 예술가와 리서처들, 그리고 자신의 커뮤니티 멘토들의 아이디어를 근간에 두고 있다고 밝힌다. 7) 작가는 지속적으로 이렇게 장애와 배움에 대해 개인적인 사전 연구를 수행해오면서 다르게 배우는 것’, 다르게 배울 수 있는 방법과 맥락을 고안하고 그 리서치를 하나의 기획으로 발전시켜, 새로운 차원의 수행적 연구이자 작업, 프로젝트를 학교라는 이름으로 시도한 것이다.

이 사례로부터 우리는 앞서 살폈듯 아티스틱 리서치와 그에 인접한 단어들이 명확히 구분될 순 없지만 분명 각자의 방식으로 병행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 가능하다. 더불어서 이 프로젝트를 보았을 때 아티스틱 리서치가 근원적으로 잠재적 미완의 속성을 갖는다는 의미에 대해서 정확히 이해 가능하다. 리서치가 관습적 지식의 형태로서 완결될 의무가 없다는 것이 바인딩 되지 못하고 흩어져 있는 낱장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그다음을 맞이하는데 열려 있음을, 즉 완결성의 부재가 연료가 되어 새로운 현실을 계속해 창출해 낸다. 이를 우리는 예술적 현실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8) 무엇보다 작가가 가져온 문제의식과 해당 프로젝트가 가장 유의미한 지점으로 기존의 배움의 과정과 학습의 방식에 내재한 권력구조로부터 탈피하는 방식으로서 연구를 택했다는 점이다. 이때 멀리 있는 대상을 배제한 채 닫힌 구조로서 반복될 뿐이었던 기존 배움과 연구, 지식과 앎의 체계를 전복하기 위한 대안 혹은 방식으로서 다시 한번 택해진 이 다른 맥락의 연구가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라고 생각된다. 기존의 프로토콜을 비판하면서도 그 비판 자체가 새로운 갱신을 원하는 행위를 새롭게 시도하는 것이 되는 것. 이는 곧 리서치의 주제가 형식이 됨과 동시에, 리서치의 과정과 결과의 정해진 선후관계 혹은 구조를 발생하지 않으면서도 앎과 배움의 감각이 공유되고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앎은 나아가 참여의 장소가 될 수 있다는 점. 이것은 기존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지금의 인터넷까지의 공식적 지식의 역사로부터 배제되어 온 지식과 배움의 종류뿐 아니라 제도와 관습 바깥의 주체로까지 그 앎의 문제를 확장한, 또 다른 유형의 지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유의미한 아티스틱 리서치를 참조한다면 리서치 전후의 각각 단계에 맞는 스트레칭은 필수적일 것이다. 동적 스트레칭은 운동의 예비 단계에서는 새로운 운동의 강도를 시도하기에 좋은 활성화된 신체 상태를 만들어주며, 정적 스트레칭은 운동이 끝난 시점엔 지금 이후의 다가올 운동을 위하여 달리는 동안 긴장된 특정한 근육을 집중적으로 늘어트리며 이완한다. 이러한 스트레칭의 효과는 무엇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지, 현재 새로운 앎을 눈앞에 둔 경계에 있는 상황인지를 더욱 예리하게 감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신체 상태를 준비해 준다는 점에서 보조적이나 그러므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본다.

 

리서치 대상과의 관계와 나의 자리 설정: “겸손한 목격자로서의 리서처

고주영, <Social minorities and Art in japan(일본의 사회적 소수자와 예술)>


연극이란 무엇인가지금의 사회에서연극혹은 예술의 역할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며 공연을 기획하고 만들고 있다지금의 나에게 공연예술이라는 장은 묻히기 쉬운 작은 목소리를 픽업해 조금이라도 확장해 나가는 매개이다장애가 있다는 이유로다수와 다른 성적 지향과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나이가 많거나 가난하다는 이유로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은 사회적 소수자들과 예술이 만나는 일본의 현장을 찾아 관점과 실천의 방식을 확장하고 연대의 가능성을 찾아보고자, ‘일본의 사회적 소수자와 예술이라는 주제로 2023년 1월 4일부터 2월 17일까지 약 40일 간 일본에 머무르며 리서치를 진행했다이 리서치를 통해 한 개인의 삶공연예술 기획자로서의 작업그리고 한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하기 위한 실마리를 발견하고자 했다.”9)


고주영, <Social minorities and Art in japan(일본의 사회적 소수자와 예술)> 웹사이트 내 프로젝트 지도


고주영, <Social minorities and Art in japan(일본의 사회적 소수자와 예술)>의 리서치 내용 페이지

 


공연 프로듀서인 고주영이 진행한 해당 리서치 연구는 서울시립미술관의 세마 코랄로부터 커미션을 받아 진행된 연구로, 현재 세마 코랄 웹사이트에서 해당 연구에 대해 당시 세마 코랄 기획/편집자 김진주 큐레이터가 정리한 글을 읽을 수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이 해당 리서치는 위 설명글에서 설명되었듯, 고주영 프로듀서가 리서처로서 약 40일간 일본에서 진행한 리서치인데, 김진주 편집자의 경우 고주영의 리서치가 리서치 미덕, 그 암묵지를 침묵의 상태에 두지 않고기록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말하자면 그 리서치의 태도다. 10)

앞서 리서치를 앎과 지식을 형성해 나가는 행위로서의 도구이자 과정으로 말했지만, 주의할 점은 리서치의 태도 차원에서 리서치의 대상을 이 과정에 귀속시키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리서치 수행자는 리서치하는 대상과 어떤 관계와 거리를 맺을 것이며, 그에 따라 리서치를 수행할 자신의 자리에 대한 고민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것이 리서치를 통해 행위의 가동 범위를 확장함에 있어 태도로서 중요한 것이다. 해당 사례에서 김진주 편집자는 고주영 프로듀서가 겸손한 목격자로서 이 리서치에 기꺼이 연루되었다고 표현한다. 이 겸손한 목격자라는 표현이 중요한 이유는 아티스틱 리서치가 기존 연구와 조사가 가진 정치성으로부터 탈피 가능함의 잠재성을 갖고 있지만, 그렇기에 더욱 이 아티스틱 리서치의 과정에서 목격하는 것들을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발화할 것인가의 문제가 떠오른다. 목격자는 자신이 목격한 모든 사건을 발화할 자유를 권리로써 가질 수 있으나, 리서치 과정에서 수집된 내용은 리서치 대상에게 현실이나 그를 리서치의 사후에 독자, 참여자 등의 차원에서 접하는 이들에겐 하나의 정보로서 작동한다. 즉 지극히 현실과 일상인 것으로부터 현실성을 삭제하고 하나의 서사와 정보로서 작동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 아티스틱 리서치이다 보니, 수행하는 리서처에겐 무엇보다 자신이 지금 어디에 서 있고, 자신이 어디까지 개입하고 움직일 것인지를 선제적으로 택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이는 리서치를 수행하기 전에 동적 스트레칭을 통해 자신 신체의 관절과 근육의 가동 범위를 확인하고, 활성화된 감각으로 저 대상과 여기의 내가 어떤 모양으로 얽혀있는지 감각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상황에 대한 유연함을 곧 몸의 유연함으로

종종 아티스틱 리서치에 대한 글을 보면 이것이 창의적인 예술 분야에서의 리서치라는 점에서 특별하거나 유일한 무언가로 서술되곤 한다. 하지만 아티스틱 리서치를 창의성에만 방점을 두고 그 고유성을 손쉽게 긍정하고 감탄하는 것은 오히려 이 리서치라는 행위에 대한 이해에 한계를 두는 것이 되어버린다. 아티스틱 리서치라는 기술이자 행위를 더욱 정확히 이해하고 활용할 때, 그것은 더욱 근사한 도구가 되어 우리를 더 먼 곳으로 데려다 줄 수 있을 것이다.

이제쯤 학제적 프로젝트와 협업이 모든 분야 전반에서 정말 익숙한 풍경이 된 상황에서, 리서치란 분과 혹은 장르의 차이를 보존하면서도 서로의 역량을 활용해 공통의 질문에 기여 할 수 있는 행위이다. 여기서 하나 주의할 것은 리서치를 행하는 주체의 직함에 따라 그 주체가 행한 리서치의 성격을 사전에 규정해 버리는 오해가 종종 목격된다는 것이다. 아티스틱 리서치를 행하는 이들을 대표적으로 작가, 연구자, 비평가, 큐레이터 등으로 보았을 때, 각자 훈련해 온 배경이 다르다 보니 작가의 리서치와 연구자의 리서치는 분명 차이를 보이고 또 어느 지점에선 달라야 한다. 하지만 자신이 어떤 롤을 플레이하고 있는지에 맞춰 아티스틱 리서치의 가능한 여러 방식 중 하나를 익숙하게 택해 그것에만 천착하거나, 자신 리서치가 도달 가능한 영역을 사전에 규정하고 시작한다면, 그것은 앞서 공식적 제도에서 형성해 온 지식의 방식에 무의식적으로 의존하고 답습하려는 태도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어려운 것이 리서치라는 방식을 무분별하게 적용하여 지금까지 내 몸이 훈련해 온 장르와 배경을 망각해선 안된다. 그렇다면 다학제간의 연구는 역할 분담 없이 무분별하게 개인 플레이하는 플레이어들의 단순 집합에 불과하게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리서치는 우연과 상황에 대한 유연함이 코어 근육으로 작동하는 행위이며, 유연하기 위해선 근육과 관절의 유연한 바탕도 요구된다. 그 유연함을 위해선 스트레칭을 통해 내 몸의 이해가 충분하고 감각이 활성화된 상태에서 시작해, 리서치 과정 중 과도하게 반응하거나 피로감을 느낀 근육을 풀어주며 적절히 마무리하는 전후의 예비와 종료의 단계가 중요할 것이다. 보조적인 역할의 스트레칭이 결국 트레이닝 간의 연결을 연쇄하고 우리를 원하는 앎으로 데려다 줄 것이다.



각주

정확히 구분을 해야할 것은 만약 르네상스 당시 한 피렌체 사람이 역사화를 관람하며 과거 역사에 대해 배웠다고 가정해보자이 경우 예술을 통해 무언가를 알아간 것이나이때의 예술은 특정한 개인에 의해 저술되고 학문화된 지식을 재현하는 매개체에 해당하며 이는 이 글에서 말하는 예술이 제공하는 앎의 감각 혹은 지식과 다른 맥락의 것이다그 사람이 관람한 역사화를 그린 피렌체의 화가가 그림을 제작하며 알게 된 크고 작은 기술적감각적 지식들이 이 글에서 조명하는 맥락의 앎에 해당한다.

2) 데이비드 조슬릿이진실 역예술 이후현실문화연구, 2022.

3) 마이클 폴라니김정래 역암묵적 영역, ()박영사, 2015.

4) Henk Borgdorff, ‘Artistic Practices and Epistemic Things’, p. 118.

5) 11회 미디어시티서울 2016 홈페이지, “불확실한 학교”, http://archive.mediacityseoul.kr/2016/ko/summer-camp/uncertainty-school

6) 건축신문최태윤 불확실한 학교”, http://architecture-newspaper.com/v19-c16/

7) 최태윤 블로그, ‘다르게 배우는 사람들을 위한 크리에이티브 코딩’ https://taeyoonchoi.com/soft-care/different-learners/

8) Henk Borgdorff, 앞의 글, p. 117.

9) 고주영, <Social minorities and Art in japan(일본의 사회적 소수자와 예술)> 웹사이트

중 리서치 개요’ 페이지https://kohjooyoung.info/About-1

10) 서울시립미술관 세마 코랄김진주, “리서치의 역할을 기록하기”, http://semacoral.org/features/jooyoungkoh-social-minorities-and-art-in-japan#fn:2


이미지 및 동영상웹사이트 출처

 

이미지 1) Ieva Pleikienė, “Research: Practitioner | Curator | Educator” https://www.researchgate.net/publication/340827950_Research_Practitioner_Curator_Educator

 

이미지 2) 미디어시티비엔날레불확실한 학교 사진 출처

http://archive.mediacityseoul.kr/2016/ko/project/what-is-code

 

이미지 3&4) 고주영, <Social minorities and Art in japan(일본의 사회적 소수자와 예술)> 웹사이트 https://kohjooyoung.info/About-1

 

동영상제임스 엘킨스(James Elkins)의 블랙 마운틴 리서치에서의 강연 리서치란 무엇인가?(What is Research?)” https://www.youtube.com/watch?v=7VgOOMn93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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