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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의 미래, 인간의 미래 | ARTLECTURE

박물관의 미래, 인간의 미래

-국립세계문자박물관-

/Art & Preview/
by 학연
Tag : #박물관, #문자, #미래
박물관의 미래, 인간의 미래
-국립세계문자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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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섬 전체가 매립지인 송도 국제도시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송도 센트럴파크.
공원을 가로지르는 호수에는 관광 보트가 떠다니고 드넓은 잔디밭은 그곳을 거니는 생명들로 가득하다.
이곳의 풍경과 어우러져 몸을 낮추고 살포시 걸터앉은 새하얀 자락들.
2023년 6월에 개관한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 다녀왔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앞으로의 박물관과 전시는 어때야 하는가? 어떤 가치를 바탕에 놓고 기획해야 할까?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은 이 질문에 멋진 제안을 내놓는다. 건축과 유물, 언어 예술, 고대부터 동시대까지의 시각 예술, 문명과 문화,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만들어내며 경험하는 '사람'까지 아우르는 박물관이다. 전시 구성과 해설, , 동선, 구조, 실내외 건축 전체에서 아이들, 고령자, 휠체어 이용객, 외국인 등 다양한 방문객들의 관람 경험에 신경을 많이 써서 세심하게 설계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출처: 본인 촬영

 


곡선형으로 설치된 벽면 사이로 들어가 문자를 담는 종이에서 영감을 얻은 건축물, 페이지스(Pages)의 내부로 입장한다. 상설전시 <문자와 문명의 위대한 여정>과 특별 전시 <문자와 삽화>가 진행 중이었는데, 다양한 관람객들이 누구나 쉽게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만든 '쉬운 안내' 책자가 눈에 띄었다.

 



김승영, <바벨탑>, 2023

출처: 본인 촬영

 


먼저 상설전의 시작은 스피커로 된 거대한 설치 작품이 맞이해주었다. 구조물 안으로 들어가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김승영 작가는 '불통의 경험'을 주제로 'Tower' 연작을 하는데 이곳에 설치된 작품 <바벨탑>은 특별히 이 공간을 위해 만들어졌다. 다른 연작들과는 달리 문자가 생기기 전 세상의 소리들을 들려주는 작업이라고 한다. 음성 언어의 시대에서 문자 언어의 시대로,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순간이다.

 


출처: Wikimedia Commons

 


그렇게 전시실로 들어가면 문자 이전의 기록인 라스코 동굴 벽화부터 전 세계 문자들의 역사와 문자가 없는 언어, 점자까지 문자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보고, 읽고, 듣고, 만져보기까지 할 수 있다.

 

 

쉬빙(Xu Bing),지서(地書)>, 2023

출처: 본인 촬영

 


상설전의 끝자락에는 글자가 하나도 없는 책도 있었다. 쉬빙(Xu Bing)이라는 작가의 작품인데, 전 세계 누구나 사용하고 이해할 수 있는 아이콘과 이모티콘으로만 이루어진 '모두가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특별전에는 전시의 주된 내용이었던 알브레히트 뒤러의 동판화를 도장과 스크래치 등의 방법으로 직접 만들어보는 체험형 콘텐츠가 있었다. 아이들에게도 즐거운 전시 경험이 되고 모두가 자신의 산출물을 만들어갈 수 있어 좋았다.

 

 

급체 사회

 

문자가 나타난 이래로 종교와 문화를 매개하여 집단의 결속이 생겨났고, 이것들을 전파하여 문명이 되었다. 그리고 다른 문자로 쓰인 정보를 번역하여 옮김으로써 우리와는 다른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우리 인간은 번역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지혜로운 인간)에서 호모 트라두센스(옮기는 인간)로 진화했다.

 

번역학에서 말하는 첫 번째 번역(translation)은 소통이다. 상대방의 신호(기호)를 내가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순간에도 번역이 일어난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 음성 언어도, 문자 언어도 소통하기 위해 생겨났다. 아주 간단하게는 라스코 동굴의 벽에 그려진 그림도, 우리가 내뱉는 말이나 감탄사도 마찬가지다.

 

소통이란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호작용이 오갈 때 비로소 완성된다. 예술 작품은 작가의 작업실에서 나와 관람객의 시선이 닿을 때 완성되듯 언어를 매개로 한 소통도 상호작용이나 재생산이 이루어져야 비로소 소통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충분한 소통을 하고 있는가? 버스 창밖으로 빠르게 변하는 풍경을 바라볼 새 없이, 나를 감싸고 있는 주변의 발걸음과 바람 소리에 귀기울일 새 없이, 언제 어디서든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한 채 끊임없이 정보를 받아들이기만 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에너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음식을 먹도록 설계되었지만 이제는 먹은 것을 소화할 틈 없이 계속 먹기만 하고 있는 셈이다.

 

문자 언어는 그 기록의 성질 덕분에 문화와 문명을, 논리와 학문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최근의 문화는 문자 언어에서 다시 음성 언어로 회귀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게다가 일방적이기까지 하다.




 출처: Pixabay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에서 바틀비는 서류를 확인하는 일을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다(I would prefer not to)'라며 모든 일을 그만두기 시작한다. 고대에는 신의 말씀을 문자 언어로 변환하여 기록하고 전하던 필경사가 자본주의 시대에는 기계적인 노동을 하는 직업으로 전락했고, 이제는 사라졌다. 문자와 함께 꽃피워간 우리의 문명이 앞으로는 어디로 나아갈까?

 

글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꼭 가봐야 할 박물관이다. 글과 문화와 예술, 인간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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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학연_예술과 사람과 세상에 진심을 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