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북’이라는 낡은 단어
책은 하나의 매체다. 메세지를 담아 전달하는 것을 우리는 매체라 부르고, 책은 메시지 전달을 위해 발명된 매체다. 동시에 예술가에게 있어 활용 가능한 하나의 관습이자 규칙이다. 그리고 미술가들은 책 역시 하나의 재료 삼아 매체로서의 가능성을 다양하게 실험하기 시작했다. 역사적으로, 그리고 현재에도 책과 관련해 시도된 작품 혹은 프로젝트들은 모두 ‘아티스트 북’이라는 이름으로 분류되어 그 실험 전개의 역사를 형성하고 있다.
레몽 크노(Raymond Queneau), 1억편의 시(A Hundred Billion Poems), 1961
아티스트 북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어떤 책이 떠오르는가? 주로 책의 종이를 천 등의 색다른 물질로 대체하거나, 페이지를 오려 책 안에 동굴이 파져 있는 등의 외적으로 특이하게 생긴 책 이미지가 먼저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책에 시각적인 변주를 주는 방식으로 제작된 책들은 아티스트 북의 역사에서 초기에 시도된 사례들에 해당하며, 굉장히 다양한 방식의 아티스트 북들이 현재까지 시도되어 왔다. 그것들은 각각 북 오브제, 아트 북, 독립 출판 실천 등의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런 여러 갈래의 시도와 이름에도 아티스트 북은 어쨌든 아티스트 북이라고 칭해진다. 하지만 이 단어는 과도하게 광활하여, 지금 현재 또 다른 국면에 접어든 매체로서의 책이 가진 잠재적인 가능성을 제한하는 듯 하다. 이름의 문제는 그것이 설정하고 있는 범주의 문제이기도 하다. 아티스트 북은 예술가가 만든 책인가, 예술(가)에 대한 책인가, 하나의 작품처럼 디자인된 책인가, 예술가가 쓴 글들을 모은 것인가? 이 연속된 질문들은 말장난 같아 보일 수 있지만, 각각 완전히 다른 차원의 접근들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이 책들이 모두 아티스트 북이라는 같은 이름 아래 모여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예술적 시도들을 뭉뚝하게 지칭하고 어설프게 껴안고 있는 '아티스트 북'이라는 단어는 그러므로 곧 낡은 단어라 칭해본다. 이에 우리는 이 이름의 대안을 찾거나 새로운 이름을 제안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필자는 한국 미술 작가들의 최근 출판-전시 사례를 모아 살펴보며, 동시대 미술에서의 책을 둘러싼 작업 양상과 함께 새로운 이름을 향한 방향을 감각해보려 한다.
전소정 작가의 『Syncope(싱코피)』(2023): 책은 순차적 시간을 통해 현실을 창조한다
책의 특이성에 대한 사유를 전개한 개념예술가 울리세스 카리온(Ulises Carrió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책은 공간들의 순차이다. 이 각각의 공간들은 서로 다른 순간에 인식되므로, 책은 순간의 순차이기도 하다. 책은 단어의 그릇도, 단어의 가방도, 단어의 전달자도 아니다. 쓰여진 언어는 공간으로 확장되는 기호의 순차이다. 이것을 읽는 것은 시간 안에서 발생한다. 책은 시공간의 순차이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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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시간의 예술이다. 그리고 모든 시간은 순차적으로 전개된다. 이는 단순히 책을 읽을 때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 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스릴러 영화를 볼 때, 순간적으로 지나간 짧은 장만 하나가 하필 저 장면 앞에 나와서 저 인물을 범인으로 의심하게 만든다. 숏(short)의 순서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이해되는 경험은 책 안에서 더욱 열렬히 일어나곤 한다. 어떤 내용이 어떤 순서로 배치되는지에 따라 독자의 이해와 서사의 구조, 내용의 의미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순차가 곧 구조를 만들고, 그 구조는 순간의 경험을 창조하는 것이다.
책의 “시공간” 이라는 의미가 곧바로 이해되긴 어렵지만, 흐르는 시간을 책 출판과 영상, 조각 작업을 연계해 구체화한 작가를 살펴보면 보다 직관적인 이해가 떠오를 것이다.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전소정 작가(b. 1982)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 2023≫(2023) 전시에서 영상 작품 <Syncope(싱코피)>를 선보였는데, 그와 함께 작가는 자신이 해당 영상 작품과 함께 제작 출판한 동명의 책 『싱코피』을 배치하였다. 전시실 안에 책들이 열람 가능한 형식으로 배치되어 있었고, 관람자 모두가 현장에서 실물 책으로, 혹은 QR코드를 통해 다운로드 가능한 디지털 북으로 읽을 수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3≫ 책 『싱코피』가 설치된 전경(좌)
『싱코피』 열람 가능한 앱스토어 내 다운로드 화면(우)
『싱코피』는 해당 영상 작업이 만들어질 때 함께 쓰인 책으로, 작가를 포함해 필자 6명의 글 여섯 개가 모여 있는 책이다. 책에 참여한 필자들은 영상 작업이 이미 존재한 상황에서 글을 쓴 것이 아니라, 아직 완료되지 않은 현재 진행형의 영상을 함께 상상하면서 글을 썼다. 작가는 소리를 따라 멀리까지 간 사람들을 따라가며 작업을 하였다 밝혔는데, 여기서 서로를 따라가는 일련의 시간적 순차가 만들어진다. 소리를 따라 간 사람, 그들을 영상을 만들며 따라 간 작가, 그 영상의 보이지 않는 궤적을 따라가며 글을 쓴 나머지 5명의 필자들, 그리고 그들의 글을 읽는 관람자 혹은 독자들. 이렇게 각자가 자신 앞의 것을 쫓거나 뒤의 것에 쫓기며 순차적인 시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순서와 구조 덕에 작업의 이야기가 연쇄적으로 그 다음으로 전달되며 확장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의미와 기호의 확장이라는 것은 책 속 목차와 본문의 배열만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책은 자신의 외부 현실과 언제나 함께 하고 있다. 책 속의 내용이 여기 현실과 동떨어진 다른 세상을 말하고 있는 듯해도, 결국 그 책은 우리와 순서를 이루며 여기 현실에 평행하게 놓여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책은 자신의 안과 밖 모두에서 순서를 형성하고 그러므로 시간에 참여하고 있다. 또한 책 자신 안의 시간과 자신이 놓인 밖의 시간을 연결하는 일종의 포털로서 사람들을 모은다.
오민 작가의 『포스트 텍스처』(2022): 책은 일종의 공간 설계이자 건축이다
평소 글을 읽는 방식대로는 절대 읽히지 않는 책이 있다. 그 책은 오민(b.1975) 작가의 『포스트 텍스처』로 2022년에 일민미술관에서 진행된 작가의 개인전 «노래해야 한다면 나는 당신의 혁명에 참여하지 않겠습니다» 에 맞춰 출간된 책이다. 이 책 역시 전소정 작가의 책처럼 일종의 작품 연계 도서로 부를 수 있을 것인데, 다만 이 책은 작가가 설계한 건축적 공간으로서의 책으로 기능한다. 그리고 이 공간은 책의 문법, 암묵적인 규칙을 과감히 버리고 있다.
10.5 x 15cm 크기의 이 작고 하얀 책은 마치 악보처럼 매뉴얼처럼 책이 갖고 있는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 해당 책에는 오민과 세 명의 연구자가 나눈 대화록 세 편이 실려 있다. 그런데 이 세 편의 개별 대화록이 한 페이지의 지면을 같이 쓰고 있다. 세 개의 다른 이야기들이 삼등분 된 페이지에 공존하며 흐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본래 책을 읽듯 왼쪽 페이지부터, 위에서 아래로 읽는다면 내용이 뒤섞여버린다. 한 페이지 전체를 읽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방식이 아니라 펼쳐진 양쪽 두 페이지를 통째로 좁고 길게 보면서 읽어야 한다.

『포스트 텍스쳐」 본문 내용
동시에 이 책은 앞표지와 뒤표지의 문법 역시 따르지 않는다. 책의 앞표지는 주로 책의 이름과 저자, 출판사 등의 정보를 큰 글씨로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앞표지에는 책의 본문 내용이 아무런 예고 없이 등장해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앞표지가 아닌 뒤표지에서부터 글이 시작되는데 이는 독자로 하여금 책 본문을 읽을 때처럼 책등을 마주 본 채 책을 거꾸로 열어 보길 유도한다. 이렇게 작가가 설계한 책은 단순히 디자인의 측면에서 책의 규칙 체계를 벗어나는 것을 넘어서서, 그를 읽는 독자로 하여금 다른 방식으로 책을 들고 움직이게 만든다. 이는 마치 건축가가 설계한 공간에 맞춰 행동의 습관이 바뀌고, 생활 방식이 변화하는 것과 유사한 것이다. 책은 독자의 책 읽는 몸짓까지 공간에 연동한다. 독자는 그에 맞춰 움직이고 써보지 않은 읽기 근육을 쓴다.
독자는 책이라는 건축 공간의 일시적 거주자다. 그리고 건축가의 역할을 맡은 작가는 그 공간의 정교한 설계를 단지 텍스트의 내용 뿐 아니라 함께할 필자를 모집하는 기획, 템플릿의 배치 차원에서도 시도한다. 이때의 건축이라는 의미는 책 디자인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종류의 책들은 작가가 지속적으로 주목해 온 주제를 질문하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펼쳐지기 때문에, 일회적인 디자인 실험만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앞서 세 개의 서로 다른 대화록이 한 페이지에 작은 선 구분과 함께 나란히 있는 모습은 마치 악보 위에 3화음의 모습과 닮아있다. 오민 작가는 피아노를 전공하고, 음악에서의 선율처럼 조화 혹은 위계를 만드는 것들의 시간에 대해 질문을 던져왔는데, 이러한 작가의 배경과 주제의식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이해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오민은 악보에 대한 리서치와 작업 연구를 출판의 형식으로 지속적으로 시도해오며, 작가의 주제와 관심사를 책의 문법을 자유롭게 활용하며 확장하고 있다.
책 읽는다는 것의 재정의
살펴보았듯 오늘날의 동시대 미술가들은 재료로 삼을 오브제 혹은 결과적인 물질을 작업으로 선보이고자 책을 택하지 않는다. 그보다 책의 고유한 형식과 문법을 이해하고 그를 만드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상황을 필요로 한다. 텍스트를 쓰고, 그것을 프린트하고, 제본하고, 공식 출판하여, 배포하는 책 만들기의 전체 과정 곳곳에서 여러 실험들을 발생시켜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더이상 ‘책’은 메시지를 담아 전달하는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정확히 읽히는 것이 목적이 아닌 매체가 되었다. 카리온이 “당신이 전체 책의 구조를 이해하는 바로 그 순간 읽기를 멈출 수도 있다.”2)고 말한 것처럼, 그 책이 놓인 순서와 시간, 체계와 구조를 아는 것이 읽기의 전부인 책들이 이질적인 요소들과 연계해 등장하고 있다. 이는 동시에 독자로서 우리가 미술가, 예술가의 책을 읽는 차원에서도 새로운 이해의 전환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이렇게 책 만들기의 시도들이 누적되어 이제 책을 읽는 것까지 재정의되는 순간이 온 만큼, 책을 통한 시도들에 대한 정확한 이름들이 발명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