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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와 위기, 그리고 아득히 멀어진 희망 | ARTLECTURE

위기와 위기, 그리고 아득히 멀어진 희망

-<정오의 별> (Stars at Noon, 2022)-

/Art & Preview/

위기와 위기, 그리고 아득히 멀어진 희망
-<정오의 별> (Stars at Noon,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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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의 양면>(2022)으로제 72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정오의 별>(2022)로 제75회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거머쥐며, 2022년 세계 유수 영화 평론가들 사이에서 많이 언급된 감독 중 한 명이었던 클레어 드니는 프랑스 파리에서 출생했으나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령 식민지인 부르키나파소, 카메룬, 세네갈 등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이와 같은 유년 시절을 통과했기에 클레어 드니가 지베자의 논리와 피지배자의 시선 사이에서 식민 지배를 바라보는 게 가능했으며, 그녀의 작품에 관심을 두고 있는 영화 팬들이라면 첫 장편 연출작 <초콜렛>(1988)과 제66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었던 <백인의 것>(2009)을 단번에 떠올릴 수밖에 없을 테다. 두 작품의 맥락과 클레어 드니의 사적인 경험에서 살펴볼 수 있는 <정오의별>은 데니스 존슨의 1980년대 니카라과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독재 정권이 유지되고 있는 동시에 코로나 팬데믹까지 덮친 동시대 니카라과로 무대로 옮겨 각색했다. ‘스파이 스릴러혹은 에로틱 스릴러라는 장르를 경유하는 <정오의 별>은 불가피하게 발이 묶여 성매매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젊은 미국인 저널리스트 트리시(마가렛 퀄리)가 정체가 모호한 영국인 남성 다니엘(조 알윈)과 격정적인 사랑에 빠지지만, 머지않아 정치적 음모에 휩쓸리면서 아득히 멀어지는 희망을 그려낸다.




종신집권을 노리는 니카라과의 독재자 다니엘 오르테가가 직접적으로 등장하거나 언급되지는 않지만, <정오의 별>은 코로나 팬데믹과 더불어 각지 각처에 군인과 경찰들이 투입될 만큼 선거를 앞두고 긴장감이 고조된 니카라과의 삼엄한 상황을 우선적으로 그려낸다. 미국에서그런 곳으로 취재를 떠난 트리시는 니카라과 군인에게 여권을 빼앗겼을뿐더러 설상가상으로 프레스 카드까지 만료되면서,본인이 세운 계획을 절대로 실현할 수 없는 굴레에 빠진다. 게다가 갖고 있던 달러까지 부족해져미국인으로서의 가치가 없어진 트리시는 니카라과 군인을 대상으로 성매매를, 권력의 한 자리를 차지한 늙은 정치인과 교제하며 하루살이 신세를 이어간다. 기자로서 꿈꿨던 상황에 배신을 당해 점차 피가 마르던 어느 날, 트리시는 한 호텔에서 왓츠 오일이라는 기업에서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는 영국인 남성 다니엘을 만난다. 그런데 회사명과 직업만 제외하면 <정오의 별>은 다니엘이라는캐릭터에 구체성을 일절 부여하지 않는다. 다니엘이 니카라과를 경제적으로 통제하고 중앙아메리카의 정치적 상황에 개입하려는 미국의 심기를 건드려 CIA 요원(베니 샤프디)과 코스타리카 사법부 사법수사기구(a.k.a. OIJ) 요원(대니 라미레즈)에게 쫓기고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심지어 트리시는 다니엘과 본능적으로 사랑에 빠진 후 끊임없는 위기에 봉착하더라도, 다니엘이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 지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되레 트리시와 다니엘의 사랑은 육욕적 관계에서 통제할 수 없는 순수한 정열로 발전한다. 다니엘과 엮이게 되면서 CIA 요원과 OIJ 요원의 염탐 대상이 되었고, 본인들과 접촉한 사람들이 살해되는 상황이 펼쳐짐에도 불구하고, 트리시는 그와 함께 코스타리카 국경을 넘어 다른 곳으로 도피를 꿈꾼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트리시는 복합적으로 찾아온 두 가지 위기에 포위된다. 하나는 동시대적 식민주의의 맥락과 유관하다. 일반적인 식민주의는 인종 및 국적을 기반으로 착취자와 피착취자를구분하는 관성에 의해 작동하나, <정오의 별>에서는 이와 같은 관성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 화이트 색 계열의 양복을 고집하며 영국에서 온 백인임을 어필하지만 호텔 체크아웃을 강제로 당하고 법인 카드까지 쓸 수 없게 된 다니엘과, 여권과 프레스 카드를 빼앗기자 미국이라는 국적과 백인이라는 인종이 쓸모가 없어진 트리시 자체가 단적인 예시일 테다. 이와 함께, 달러가 없으면 전화 통화를 하기 힘든 두 사람의 처지는 자본 문제를 상기시킨다. , 트리시는 자본으로 인해 굴러가고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나뉘는 21세기 식민주의의 논리에 의해 형성된 위기에 몰린다. 또 다른 하나는 가식적인 동시에 교묘하게 짜인 젠더의 위계와 관련이 있다. 작중 트리시와 다니엘의 성적인 관계를 제외하면, <정오의 별>에서의 육체적 관계는 항상 남성이 여성을 상대로 우위를 점하고 놓치지 않는다. 트리시가 니카라과 군인을 피하지 못하고 성매매를 하는 초반부, 군인은 거친 손짓과 함께 트리시에게 집중좀 하지?”라고 경고하며 섹스에서 권력이 누구에게 있는지 주장할 뿐만 아니라, 섹스를 마친 후 트리시의 육체를 만지며 본인이 원하는 이상적인 신체를 유지할 것을 간접적으로 강요한다. 이와 같은 요구 사항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면 트리시는 미국으로 돌아갈 수 없으므로 침묵으로 소심한 반항을 할 뿐, 자신의 거취를 좌지우지하는 남성들에게 의존하는 방식을 유지한다.무엇보다 성매매로 번 돈은 남성들의 권력에 의해 돌아가는 사회에 반강제적으로 다시 유입되고, 젠더의 위계에 따른 지배와 피지배의 구조가 빠져나갈 구멍 없이 고착화된다는 점에서 트리시는 다른 형태의 위기에도 옴짝달싹하지 못한다.




이처럼 이중삼중으로 터지는 고난과 역경에 온몸으로 부딪쳐야 하나, 트리시는 다니엘과의 순수한 사랑 덕분에 실낱 같은 희망을 바라본다. 그렇지만 사랑이라는 감정과 힘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결국 외부의 압박에 굴복하게 된다. 밀입국을 도와주기로 한 사람들이 전부 사살되면서 다니엘과 함께 코스타리카 국경을 넘지 못한 트리시는 CIA 요원과 OIJ 요원에게 끝끝내 포위된다. 트리시는 그들에게 다니엘을 넘기지 않고 오히려 지키려고 하나, CIA OIJ 요원의 정보력과 수사력은 트리시의 순수하고 정열적인 감정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억누른다. 특히 두 요원의 몰아치는 언사, 지금이 아니면 미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 궁극적으로 그런 상황을 결국 극복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은 트리시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니엘을 그들에게 넘기게 만든다. 원치 않는 배신에 조건 없는 사랑에 마침표를 찍은 트리시는 체포된 다니엘을 미안한 심정으로 바라보기만 한다. 니카라과 고위 관직자와 다르게 CIAOIJ 요원은 계약을 지켰기에 트리시는 직면했던 두 가지 곤경에서 단숨에 벗어났지만, 정치적 음모와 경제적 결탁에 잠식된 다니엘의 잔상은 악에 분열을 일으키는 데 실패한 열렬한 사랑과 그가 떠난 자리에 남은 자유를 씁쓸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정오의 별에 가닿기 힘든 만큼 트리시의 눈빛은 여느 때보다 애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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