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에서 눈길을 끄는 작품을 마주한 우리는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작품을 감상합니다. 눈으로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하고, 멀찍이 떨어져 한눈에 작품을 담아보려 하기도 합니다. 도슨트의 설명이나 오디오 가이드를 들을 수도 있죠. 안내 책자나 작품 옆에 붙어 있는 해설을 읽어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해설을 읽어보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던 적, 오히려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지기만 했던 적이 있나요?

어려운 미술, 불친절한 미술관
음악이나 영화와 같은 분야에 비해 시각 예술(미술) 분야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에는 여전히 진입 장벽이 높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가 미술은 잘 몰라서’, ‘제가 미술에는 조예가 깊지 않아서’ 감상하기 어렵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와인이든, 문학이든, 영화든, 식물이든, 그 분야를 깊게 알아갈수록 더 많은 재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술관에 방문해서 전시회를 관람하는 것마저 어렵게 느껴진다면 미술은 소수만이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되지 않을까요?
사실은 미술 관련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전시 해설은 읽기 어렵습니다. 한자어나 외국어, 철학 용어처럼 어려운 단어로 가득한 글을 읽으려니 무슨 뜻인지 한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때로는 문장이 너무 길고 복잡해서 부분부분 나누어 읽다 보면 문장 구성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합니다.
물론 많은 작품들이 복잡한 내용을 담고 있고 다양한 미술사적, 사회학적 맥락과 얽혀 있습니다. 이 내용을 모두 풀어 설명하기엔 너무 길어지니 어려운 용어들을 관람객이 이미 알고 있다고 가정한 후 최대한 간략하게 작성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작가나 기획자의 의도를 최대한 해치지 않는 글을 써야 하기도 하지요.
그래도 예술이 소통을 위한 것이라면 예술을 설명하는 글 또한 소통을 지향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갖고 있던 중에 필자(저)는 조금 더 친절한 전시회를 만드는 움직임을 발견했습니다. 서울시립미술관과 사회적기업 소소한소통, 그리고 발달장애인이 함께 기획한 ‘쉬운 글 해설’입니다.


평소처럼 전시를 보러 미술관에 방문했는데 전시장 벽에 두 가지의 해설이 붙어 있었습니다. 하나는 그동안 일반적으로 보던 해설이었고, 다른 하나는 같은 내용을 쉽게 풀어쓴 해설이었어요. 발달장애인이나 어린이, 고령자, 한국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도 해설을 읽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한 것이지요.
조금 더 꼼꼼히 살펴보니 글의 내용만 쉽게 쓴 것이 아니라 글씨 크기도 크고 또렷해서 쉽게 읽을 수 있었고, 부착된 높이도 조금 낮았습니다. 작은 글씨에 익숙하지 않은 어린이나 시력이 좋지 않은 분들, 그리고 키가 작거나 휠체어를 타고 있는 관람객들을 배려한 것입니다.
‘정보 접근성’에 대해 들어본 적 있나요?
우리나라에 휠체어 이용자나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등 다양한 사람들을 고려한 설비가 부족하다는 것은 그나마 조금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접근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공공 미술관은 이런 물리적 접근성을 비교적 많이 고려하는 편이지만, 이전까지 정보를 접하고 이해하는 ‘정보 접근성’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죠. 전시 해설뿐만 아니라 안내문, 신청서, 계약서 등 일상에서 필수적인 수많은 정보들이 어렵게 쓰여 있습니다.
미술 전시 공간은 이미 오래전부터 작품을 걸고 선보이는 자리 그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예술이라는 언어로 사회, 정치, 문화, 예술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가는 장소가 되었지요. 이것을 ‘담론 공간’이라고 합니다. 전시장이 담론 공간이라면 문해력, 경험, 신체적 특성이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두 모여 의견을 나눌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필자도 이번 글을 작성하며 사회적기업 소소한소통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모두를 위한 전시 정보 제작 가이드>를 읽어보았는데요, 글을 쉽게 쓰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 그리고 조명의 밝기와 반사 정도, 재질 등을 고려해서 캡션을 섬세하게 디자인하는 방법도 나와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전시장에서 신경 써야 할 안전, 관람 정보, 동선까지 자세히 안내되어 있어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 이렇게나 많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글도 많이 부족하지만 가이드를 토대로 평소보다 쉽게 써보려고 했는데요, 예상보다 쉽게 쓰는 것이 훨씬 어려웠습니다. 아직 완벽하지 않아도, 어려워도 노력해야겠지요. 예술을 하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많이 반성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예술이 모두에게 진정한 소통을 열어주길 바라는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