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살다_대구예술발전소
도시가 쇠퇴하면 가장 먼저 공장부터 문을 닫는다. 제품이 생산되어도 지역 내 수요가 없기 때문이다. 유일한 방법은 지역 외로 수출하는 것뿐인데 국가의 경제가 전반적으로 좋지 않으면 이 마저도 쉬운 일은 절대 아니다. 쇠퇴하고 있는 도시에 버려진 공장이 많을 수밖에 없다.
대구 중구 경제의 대표적 엔진이었던 대구연조제초장 건물은 더 이상 공장 건물이 아니다. 공장으로서의 수명이 다한 것. 1949년 지어진 이 건물은 1999년 최종적으로 문을 닫았다. 2010년대에 이르러 정부 주도로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된 후 2013년 대구예술발전소로 변신했다. 담배를 만들기 위하여 사람을 고용했던 공간이 예술을 만들기 위하여 사람을 고용하려 한다. 여전히 쇠퇴하고 있는 도시의 커다란 공장이라면 사실 개인이 건물을 구매해서 뭔가 해보기 쉽지 않다. 늘 수요 부족이라는 벽에 막힐 테니. 그래서 정부 주도의 프로젝트가 상대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다. 또한 상업적 목표가 다분한 프로젝트는 현실적으로 추진하기 쉽지 않다. 대단한 모험일 수밖에 없는데 쇠퇴가 빠른 도시에 상업적 수요가 충분 할리 만무하다.

대구발전소연혁
대구예술발전소는 대구 중구 수창동에 위치하고 있다. 동네를 둘러보면 쇠퇴의 정도가 매우 심각한 것을 바로 알 수 있는데 연초제조창 왼편(사진을 중심으로)에 새로운 건물이 건축되고 있었다. 도시의 여러 요소와 심각한 부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이 동네 자체가 어떻게 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반면 연초제조창 건물은 오래된 건물이어서 주변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예술발전소 바로 앞에는 수창공원이 있는데 지역 주민에게 잠깐의 쉼을 주는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건물의 외관은 붉은 벽돌로 보였으며 보존 상태는 매우 양호했다.

외관. 매우 큰 건물이다. 대구예술발전소의 영문명은 Art Factory

수창공원
대구예술발전소는 총 5층 건물이다. 1층과 2층은 주로 전시실이 있으며 문화 예술 교육을 위한 강의 공간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방문했을 당시 1층 전시실에는 '그림으로 듣는 음악사'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경주에 있는 대중음악박물관에서도 봤음직한 전시였지만 한국 재즈와 같은 장르 음악 역사가 소개되고 전시되고 있었다.

1층로비

1층 전시실
2층의 전시실은 1층 전시실에 비해 규모가 크다. 2층에는 전시실과 만권당이라 불리는 북라운지가 있다. 2층 전시실의 작품은 해석하기 좀 난해했다. 다만 폐품을 활용하여 폐품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 것 같았다. 난해했지만 아라리오 미술관보다는 그래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정도는 되었다. 워낙 인상적인 작품이라 사진을 찍었다. 어지러이 날고 있는 것은 나비이다. 문을 뚫고 나비의 행렬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전시 작품

만권당
발전소 내부에서 재밌는 구조물이 있어 사진에 담았다. 이런 구조가 어디에 활용되었는지는 감이 오질 않는다. 굴뚝같기도 하고. 다만 중요한 것은 보존되었다는 점이다. 아마 이 공장에서 일했던 할아버지가 손주를 데리고 놀러 오시면 이 구조물에 대해 한참이나 설명해 주실 것 같다. 하트를 그려 넣은 것 또한 매우 재밌었다.

하트가 익살스럽다
발전소 안을 둘러보다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담을 수 있었다. 이 동네는 참 오래된 동네이다. 빈곤을 이야기하기 전에 이 곳의 삶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여전히 사람의 흔적이 발견되는데 조만간 재개발될 것으로 보인다. 이후의 삶을 개별적으로 추적할 수는 없을지라도 도시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거처를 비워주는 이웃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여하튼 발전소 주변은 매우 쇠퇴했다.

발전소에서 본 창밖 풍경
각 층의 로비에는 공장 구조물의 흔적을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건물은 본관과 별관이 이어져있는 듯한 모양을 하고 있다. 큰 구조물 두 개가 이어졌는데 이어진 공간에서도 계단으로 오를 수 있다.

두 건물이 이어진 모습
발전소의 3층에는 흥미롭게 구성한 예술정보실과 수창홀로 보이는 공연장이 있다. 수창홀은 발전소 측에 따르면 약 120석 규모라 한다. 그리고 몇 개의 회의실도 있다.
4층과 5층은 주로 레지던시 예술인들을 위한 공간으로 보였다. 혹시라도 방해가 될까 싶어 4, 5층은 굳이 오르지 않고 3층에서 발길을 돌렸다. 발전소 측은 4층과 5층은 작은 규모의 작업실(스튜디오)이 여럿 들어서 있고 이 곳에서는 실제 예술가들의 작업이 이루어진다고 밝히고 있다.발전소 주변을 한번 둘러보면 수창공원 옆 쪽에 빈 건물 두 채가 나란히 서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완전히 버려진 공간이지만 뼈대는 온전히 남아 있었다. 주거 용도의 건물이었음은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발전소 바로 옆에 붓을 이용해 페인트 대신 물감을 칠한 듯한 '모타전문 고도전기'집이 있었다. 이 가게 자체가 동네의 역사일 것이다.
사진 한 장 찍고 가려는데 사장님으로 보이는 분을 만날 수 있었다. 사장님으로부터 이 두 건물의 미래에 대해 들을 수 있었는데 이 두 건물은 리모델링 후 레지던시 작가의 숙소로 활용될 예정이라 한다.

주변의 낙후도 심하다

모타 전문, 고도전기
삶이 모여 역사가 되고
젊은 시절의 모든 진을 짜 내어 일을 했던 우리의 공장은 다양한 삶의 스토리로 넘쳐날 수밖에 없다. 굳이 각색도 필요 없다.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모든 감정이 여러 사건과 조화를 이루며 모두의 마음속 깊은 못에 죽는 날까지 자리할 것이다. 비록 젊은 날 우리의 멋짐이 일터의 담장 밖으로 뻗을 수 없었을지라도, 슬픔이 컸을지라도, 몇 날 며칠을 아들을, 딸을 붙잡고 그 시절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공장에서 사람의 삶은 없어진다. 사람은 노동의 한 단위로 인식되고 손이 빠른 사람과 손 느린 사람 딱 두 부류로 우리 소중한 삶이 정의된다. 그래서 아픔이 많은 장소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사람은 숨을 쉬고, 관계를 맺고, 사랑을 하고, 꿈을 꾼다. 그런 삶이 하나 둘 모이면, 동네와 마을 그리고 한 나라의 역사가 된다.
사회의 필요에 적응하여 새로운 곳으로 탈바꿈할 수만 있다면 공장의 보존과 함께 그 시절의 삶도 보존된다. 요즘의 공장은 도시 중심가에 건설되는 경우가 전혀 없지만 과거의 공장은 도심지 가운데에 위치했다. 누구나 걸어서 출근할 수 있도록. 접근성이 매우 뛰어나므로 보존의 가치가 매우 크다. 그리고 공장은 크다. 건물이 크면 클수록 재활용을 위한 비용이 많이 필요하지만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매우 다양하다. 문화 시설로 공연도 가능하고 대중 교육도 가능하다. 기존의 공장을 허물고 새로운 건물을 올려 도시를 재생하는 것보다는 환경을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 환경 파괴의 주범에서 환경 보전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이야기. 이렇게나 장점이 많다.
공장 재활용은 이 책의 또 다른 탐험 대상이기도 하다. 공장의 변신을 통해 도시의 재생 가능성을 탐험해 보는 앞으로의 여정은 매우 흥미로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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