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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무위無爲의 질주 | ARTLECTURE

소리, 무위無爲의 질주

-에피메테우스의 열네 번째 질문-

/Artist's Studio/
by youwallsang
소리, 무위無爲의 질주
-에피메테우스의 열네 번째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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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길을 걷다 갑자기, 인식할 겨를 없이 빠르게 순간을 흘러가는 음악의 속도에 멀미를 느껴본 적이 있다. 내게 음악은 도망가는 이의 펄럭이는 옷깃을 닮았고, 달아나는 희망의 민머리 뒤통수를 닮았다. 음악이 가진 멈출 수 없고 되돌릴 수 없는 시간성은 언제나 명료한 시작과 끝을 가진다. 순간으로 쪼개지고 허공을 맴돌아 붙잡을 수 없는 소리. 아마도 나는, 통제할 수 없으며 물리적으로 모든 순간이 모두 다른, 형체 없이 속도만을 가진 소리의 다변적 흐름에 무력한가 보다.
소리를 채집해 그 의미와 생각을 시각적 구조물과 함께 선보이는 사운드 아티스트Sound Artist 김준은 소리의 감각을 증폭시켜 무형의 소리로 세계를 재현한다. 입체를 평면으로 고정하려는 것이 회화라면, 형상 없이 움직이다 모이고 흩어지는 소리는 시각 예술의 현장에서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까. 작가 김준이 형상화하는 소리의 모습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EBS 키즈 예술교육 다큐 아티스트-김준


 

소리는 속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언제나 스쳐 간다. 마치 지나치고서 보게 된 내비게이션의 좌/우회전 표시처럼 지나간 속도는 상대를 무력하게 만든다. 인간이 무언가를 즐기려면 일단 멈춰 세워야 한다. 시간을 고정해야 둘러보고 만져보고 경험하며 이해하고 즐길 수 있다. 소리는 그런 이유로 간혹 무시되거나 외면당한다. 더욱이 어떤 것도 지향하지 않는 소리, 무엇도 되려 하지 않는 소리는 소음騷音이라 불리며 시선 밖으로 밀려난다.


 


<장소의 발현:51482008,-0.144344>, 김준, 2015

혼합매체(오디오 앰프, 스피커, 나무, 사진, 8채널 사운드, 가변설치,

2015 생생화화 生生化化 <시간수집자> , 2015.11.26.~2016.1.24


 

탁자를 닮은 나무틀 위로 낡은 사진과 좌표, QR코드가 보인다. 낡은 사진 속의 집과 거리는 어스름한 조명 밑에서 아무리 집중하려 해도 나의 기억과 너무 멀어 흐려지고 흩어진다. 물리적으로 먼, 다른 지형의 장소이고 심리적으로는 더 먼, 낯선 이들이 사는 장소다. 알 수 없는 주소, 어떤 기억도 떠올리지 못하는 낯선 공간의 소리가 곁을 서성인다. 좌표축의 어떠한 지점에서도 만나지 못할 그/그녀의 공간이 강압적으로 직진해 온다.

 


눈은 눈꺼풀이 있어 자의적으로 열고 닫을 수 있지만

귀는 닫을 수가 없다.

언제나 열려있다.

<감히아름다움>, 최재천 엮음이음, 2022,

김혜순, <안으로의 무한


 

닫을 수 없는 귀를 향해 QR코드의 먼 도시와 건물들, 먼 이들의 지하와 벽 안의 소리들이 걸어 나온다. 그건 언어가 아니다. 미처 인지하지 못한, 전자파나 어떤 물리적 현상의 소리, 끝없이 송출되는 수신인 없는 신호들이다. 낮게 바닥에 깔리며 걸음을 어지럽힐 것만 같은 부자연스러운 소리들은 공간에 달라붙어 공생하고 있는 생명체처럼 신음한다. 서랍을 하나씩 열 때마다 비명이 아닌,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증언을 닮은 소리가 당당하게 귀를 파고든다. 소리가 서랍이라는 익숙한 장치 속에 나뉘어, 하나의 서랍에는 하나의 장소가, 하나의 장소에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소리가 차곡차곡 개켜져 있다. 두 개의 서랍이, 반쯤 열린 서랍이 들려주는 소리의 중첩은 동시에 읽을 수 없는 여러 권의 책을 닮았다. 한꺼번에 연 서랍에서 우르르 쏟아지는 소리는 거대한 무리의 실체처럼 주변을 점령한다, 각각의 소리는 서랍을 여닫는 행위에 따라 멈추고 다시 시작된다. 서랍속에 닫힌 소리는 멈추고 한 자리에 고인다. 어떤 지향하는 음을 가지지 않았기에 고인 소리는 저항하지 않고 닫힌 자리에서 맴을 돈다.




 <가공된 정원>, 김준, 2015,

혼합매체(오디오 앰프, 스피커, 나무, 사진, 4채널 사운드, 가변크기,

2015 생생화화 生生化化 <시간수집자> , 2015.11.26.~2016.1.24.


 

바닥의 흙더미가 스피커를 숨기고 볼록한 굴곡을 만든다. 마치 소리들이 일으켜 세운 어깨처럼 비뚤비뚤 흙을 비집고 나온다. 오래전 사진과 만난 지금이 축적된 기억과 눌린 소리들과 함께 어우러진다. 시간 차이를 두고 벌어진 사진 기록과 소리 채집은 각기 다른 곳을 설명하듯 어긋난다. 흑백의 사진에 담긴 공간은 침묵하고, 폐기물에서 유출된 메탄가스, 여전히 썩어가는 것들의 쉰 소리, 서로 엉키고 누르며 만들어진 소리들은 시선을 잃고 떠돈다. 우리는 소리를 밟으며, 소리가 만든 세상 위를 걷는다. 산더미 같던 쓰레기 매립지가 어느 날의 평평한 공원으로 바뀌어 다져질 때, 그 속에 억눌렸던 한숨 같은 소리는 작가가 들려주고 싶었던 공간의 역사이고 현실의 더께다.



 

<The Breaths>, 김준, 2015,

혼합매체(오디오 앰프, 스피커, 나무, 2채널 사운드, 180X120.5X120.5. 80kg,

2015 생생화화 生生化化 <시간수집자> , 2015.11.26.~2016.1.24.



아래쪽이 뚫린 사각의 상자는 성인이 안쪽으로 들어가면 얼굴과 가슴께가 가려지는 높이로 서 있다. 상자 속은 소리를 전달하는 스피커를 통해 동종의 무게처럼 낮게 가라앉는 울림으로 몸을 두드린다. 소리의 떨림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순간, 소리의 느낌이 몸의 경험으로 바뀌는 공간이다. 네 방향에서 몰아치듯 밀려오는 소리의 공격은 각 방향의 소리가 갖는 부피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큰 덩치로 전체를 흔든다. 시각이 차단된 공간에서 일방적으로 다가오는 소리의 두드림은 횟수가 아닌 세기의 강도로, 옅은 현기증을 일으킬 만큼 깊다.


소리의 주인은 남이섬의 버려진 물탱크다. 일대의 식수원을 담당하던 물탱크가 세월을 지나 폐기되고 난 뒤, 쓸모가 사라진 제 몸통의 울림을 상자 속으로 흘려보낸다. 물방울이 떨어져 깨지는 소리, 파이프를 타고 흐르는 소리, 공간을 상상할 수 있는 진동의 흔들림. 몸의 떨림이 소리 후에도 가시지 않는 것은 아마도 버려진 물탱크의 마지막 이라는 서사가 소리의 감각을 변화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한때 생생하게 살아있던 물탱크는 속을 가득 채워 어떠한 소리도 물속으로 흡수했을 것이다. 가득 차고, 신선하고, 활기차게 생명을 담고 있던 시간이 지나간 뒤, 텅 빈 물탱크의 빈속은 주름을 닮은 신음처럼, 희뿌연 마지막 숨처럼, 고요하지만 깊숙하게 온몸을 귀로 만든다. 하나의 감각을 살려 모든 감각을 깨우고, 굳은 사물에 생명을 부여한다. 김준 작가는 듣지 못했을 수도 있는 그 마지막 숨결을 우리에게 주의 깊게 들으라 말한다. 마치 태아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양수의 울림처럼 시원적이고 평온한 숨을 물탱크의 공허한 빈속을 통해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굳어진 조각들>, 김준, 2017~2019, 복합매체. 가변크기

<PICK ME 재료사용법> , 2019.10.8.~2020.2.2., 경기도미술관

 


어떻게 소리에 집중했을까. 그것도 아무도 원치 못한 소리를. 누구도 귀 기울인 적 없는 소리를. 그에게 채집된 소리들은 유일하다. 서사를 모른다면 다르게 들릴 수도 있는 소리들. 그가 들려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결코 알지 못했을 소리다. 관심조차 없던 공간 내부의 항시 소음 恒時 騷音, 잊거나 혹은 잊으려고 덮어버린 소거된 소리, 묵음默音도 소리다. 어떤 목적을 위하여 달려가는 음이 아닌 아무것도 아닌 소리로서의 질주, 그 무위無爲의 질주에 귀를 연다. 작가는 그 소리들로 무형의 공간을 짓는다, 인간의 행동반경을 벗어난 이중의 공간에서 기억에 없는 소리들이 쌓여 그들의 구조를 만들고 공간의 곁을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얼마나 많은 것들이 우리와 함께 살고 있을까. 인간의 소통과 편의를 위해 이뤄낸 일의 결과로 비롯된, 그러나 오히려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 존재들이 얼마나 가까운 곳에서 낮은 숨을 몰아쉬고 있을까.


소리가 풍경을 만들어내는 것은 실상 이미 풍경 속에 소리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시각적 이끌림에 도취 되어 풍경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한다. 소리는 부차적이고, 모든 것을 시각의 주도하에 세상을 살고 있다. 소리가 몸을 타고 오르는 것에 저항할 방법은 없다. 귀를 막아도 소리는 공기의 진동으로 몸을 흔든다.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소리의 공격 속에 속수무책의 무방비 상태가 되기도 한다. 스쳐 가는 것을 서랍에 가두고, 미처 챙기지 못한 소리를 경험하게 만드는 김준 작가의 작업은, 세상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소리를 통해 시각에 매몰된 우리의 감각을 일깨운다. 내가 가진 감각의 개수를, 각각의 감각이 주는 치 떨리게 선명한 경험을, 소리로 만든 공간이 더 선명하게 만든다. 물감이 세상을 재현할 수 있다면, 소리 또한 세상을 지을 수 있다. 기억과 공생의 직조는 모든 감각의 총체로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MMCA 청주프로젝트 2022:도시공명 작가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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