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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수많은 교차점 그 위에는 인간이 자리한다. | ARTLECTURE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수많은 교차점 그 위에는 인간이 자리한다.


/Art & Preview/
by 문솔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수많은 교차점 그 위에는 인간이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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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올 8월 14일을 마지막으로,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개최된 독일 태생의 사진작가, 안드레아스 거스키(Andreas Gursky, 1955)의 전시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7개의 주제로 나뉘어진 전시실은 Montparnasse, 1993, ‘99센트 99, 1999, 리마스터 2009 와 같은 대표작을 비롯해, 2022년 신작까지 40여점의 작품으로 채워졌다.

안드레아스 거스키는 인류와 문명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은 대규모 작품들을 선보여온 현대사진의 거장이다.[1] 7개의 주제로 나뉘어진 전시실은 Montparnasse, 1993, ‘99센트 99, 1999, 리마스터 2009 와 같은 대표작을 비롯해, 2022년 신작까지 40여점의 작품으로 채워졌다. 한 장 한 장의 사진들은 관객들의 시선을 강렬히 끌어당겼다. 압도적인 사이즈가 주는 광활한 시야는, 관객에게 하여금 마치 절대자의 시선을 체험하게 한다. 더불어, 그 시선을 따라가다보면, 안드레아스 거스키가 고집한 기학학적 아름다움의 정수가 자리하고 있다.

 
그의 사진 속, 수많은 수평선과 수직선은 끊임없이 교차하며, 무한의 그리드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 선들의 교차, 그 위에는 늘 인간이 있다. 한 칸의 그리드는 마치 현미경 위의 프레파라트처럼, 인간을 한층 더 세밀하게 보게끔 한다.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이러한 시각은 몇몇의 도시를 촬영(포착)한 시리즈를 통해 더욱 두드러진다.



Paris, Montparnasse, 1993, © Andreas Gursky



Paris,Montparnasse, 1993 의 확대 모습, © Andreas Gursky

 

파리의 최고층 아파트를 촬영한 Montparnasse, 1993 는 언뜻 ‘건물’을 촬영한 듯 보이지만, 이 사진은 건물을 이루고 있는 하나 하나의 그리드, 그리고 그 안에 위치하고 있는 파리지앵에 더욱 초점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Montparnasse 의 끊임없이 반복되는 그리드는 건물의 골조와 유리창의 직선에 의함이라고 보기보다, 파리를 이루고 있는 파리지앵들의 이야기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독일의 아스파라거스 수확지로 유명한 벨리츠를 담은 사진, Beelitz, 2007 역시 끊임없이 이어지고, 반복되는 수평선이 무서울 만큼 아름답고, 강렬하다. 그리고 그 수평선 사이에는 역시 인간이 존재한다.


수평선과 수직선은 유연하고, 자유로운 선의 느낌보다는, 엄격하고, 절대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사진 속 공장이나 도시의 커다란 빌딩 등의 윤곽을 따라흐르는 이 절대적이고도 강렬한 수직과 수평의 선은 마치 현대 사회를 비유하듯, 획일화, 균등화 되어가는 그 공장 속, 건물 속 인간의 삶을 다시 한번 재단하고, 통제하는 듯하다. 나아가, 안드레아스 거스키는 의도적으로 소실점이 다른 두 사진을 합성하여, 렌즈의 왜곡을 지우며, 소름 돋을 정도로 완벽한 그리드를 만들어낸다. 그는 이 후작업을 통해, 다시 한번, 그가 바라보는 세상을 재편집, 재구성한다. 극도로 정제된 풍경으로 그가 담아낸 이 현대사회의 단면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알 수 없는 불편함과 압도당하는 듯한 감각을 전달하면서, 현대사회에 대한 무언의 경종을 울린다.

전시장이란 공간에서 일어나는 ‘감상’이라는 행위는 안드레아스 거스키가 정제한 이미지들을 다시한번 관객에 의해 재편집, 재구성되도록 만든다. 전시된 사진을 각자의 방법으로 감상하면서, 우리는 종종 전시된 사진을 다시 촬영하는 관객들을 조우하곤 한다. 작품 앞에서 관객들은 특정 부분만을 확대하여 촬영하기도 하고, 전시된 공간과 함께 찍기도 한다. 혹은 자신도 작품과 함께 사진의 피사체가 되기도 한다. 이는 단순한 전시 감상의 순간을 ‘기념’하는 행위로 가볍게 치부할 수 있으나, 그들이 사진을 선택하고, 재편집 하는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생각보다 흥미로운 선택의 과정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사진 속의 특정인물을 확대하여, 촬영하는 관객은 어쩌면,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사진을 현대사회를 풍경을 담은 ‘풍경사진’이 아니라, 그 안의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피사체를 찍은 ‘인물사진’으로써 그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고 미루어볼 수 있다. 사람들의 손에 들려진 휴대폰의 화면, 혹은 뷰파인더는 즉, 다시 하나의 그리드가 되어, 안드레아 거스키의 ‘인간’ 한명 한명, 프레파라트 위의 관찰체로 데려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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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드레아스 거스키] 전시소개, 아모레퍼시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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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문솔_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