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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물방울 | ARTLECTURE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물방울


/Artist's Studio/
by 최선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물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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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뮤지컬, 전시, 연주회를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드라마나 영화는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친구 중에 드라마광인 친구와 만나면 항상 서로를 신기해한다. 어떻게 저러지? 어떻게 이러지? 그 친구와 서로의 취미가 너무나 다름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내가 무엇을 더 중히 여기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뮤지컬, 전시나 연주회는 모두 직접 가서 눈앞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을 본다. 어떤 활동을 할 때 필자는 내 눈 앞에서직접 내가 보고 느낄 수 있는 현장성을 좋아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뮤지컬이나 전시, 공연을 보러갔을 때 내가 가장 많이 하는 것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지금 내 눈 앞에서 벌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기. 웃긴 소리로 들릴 수 있지만, 항상 핸드폰으로, 구글로, 유튜브로 무엇이든 보는 것이 습관이 되다보니 어떤 작품을 눈으로 직접 보고 있어도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이다.

 

미술 작품을 볼 때도 사진으로만 보던 작품을 실제로 보면 이 작품이 정말 내 눈 앞에 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이다. 그럴 때는 작품을 가까이 들여다보기도 하고, 직접 발을 움직여서 작품 모서리에서 모서리까지 가보기도 하고, 실제로 작품을 마주할 때만 볼 수 있는 붓터치를 관찰하고 있으면 내 눈 앞에 이 작품이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면서 입꼬리가 씰룩거리기 시작한다. 미묘한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우리는 입꼬리가 씰룩거리는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김창열의 물방울은 그러한 특별한 경험을 하기 가장 좋은 존재일 것이다.

 



 

이번에 제주도를 갔을 때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이 김창열 미술관이었다. 김창열은 그 누구보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가장 잘 표현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김창열은 전후 한국현대미술 제1세대 작가로, 초기에는 추상화 위주였으나 1972년부터 물방울이라는 자신만의 예술언어를 구축하면서 물방울 작가라고 불리기 시작하였다. 그는 1960년대 뉴욕에서 앵포르멜, 옵아트 등의 다양한 당대의 새로운 아방가르드 미술을 시도했다. 조형적 탐구 끝에 그는 70년대에 2차원의 캔버스 공간을 3차원의 입체적 공간으로 만들어내고, 그 속에 투명한 물방울이 존재하는 화면을 만들어 낸다.



 


극사실적으로 묘사된 물방울은 정말로 화면 위에 실제로 떨어진 물방울인지 작가가 만들어낸 형상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물방울이 화면에 젖어 들어간 흔적부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서로 다른 형상을 하고 있는 물방울은 캔버스를 마치 3차원이 입체적 공간으로 보이게 하고, 시간이 흐르고 있는 곳처럼 느껴지게 한다.

 

그만큼 자세하고 정밀하게 물방울을 묘사하기까지의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지, 어떤 마음으로 그 물방울을 하나씩 만들어 냈을지를 생각해보면, 김창열의 물방울 작품들의 본질이 물방울 객체의 표상에 있는 것이 아님을 금방 깨달을 수 있다. 본질은 물방울을 그리는 행위와 그 과정 자체에 있다. 그는 물방울을 하나하나 그리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수행이라고 생각했다.

 

물방울을 그리는 행위는 모든 것을 물방울 속에 용해시키고 투명하게 ()’로 되돌려 보내기 위한 행위이다. 분노도 불안도 공포도 모든 것을 ()’로 돌릴 때 우리들은 평안과 평화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혹자는 에고(ego)’의 신장을 바라고 있으나, 나는 에고의 소멸을 지향하며 그 표현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

 

김창열은 물방울의 본질이 곧 ()’이며, 결국 에고의 소멸까지 의도하는, 노자가 말하는 무위의 세계에 대한 욕망에 있다고 말한다. 즉 물방울이란 것은 가공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물방울이지만, 그와 동시에 김창열의 작품세계가 담긴 상징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김창열이 그린 물방울은 그린다는 행위에 집중했을 때는 존재하는 실재의 것이지만, 창조자가 담은 뜻은 ()’라는 점에서 오묘한 경계에 서있다.


또한, 김창열의 물방울에 대해 나카하라 유스케는 그의 작품들은 환상과 사실이라는 두 세계를 조화롭게 겹쳐놓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화면 위에 놓여있는 물방울들은 그 자체로도 가상과 현실의 경계에 있다. 물방울은 자연에 실재하는, 즉 시간의 영향을 받는 사실적인 존재이면서도 김창열이 물방울을 분노도, 불안도, 공포도 모든 것을 로 되돌리는 관념적인 존재로 규정하면서 물방울은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 서있는 표상이 된다.

 

천자문 위에서, 신문지 위에서, 혹은 단색조의 배경 위에서 생생한 빛과 그림자의 조화로 캔버스를 젖게 하는 투명한 물방울은 마치 우리에게 환상과 현실 사이의 문을 열어주는 듯하다. 한 번쯤 그 앞에 서보는 경험을 해보는건 어떨까?


all images/words ⓒ the artist(s) and organiz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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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최선_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