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가 발명되면서 전통 회화는 무너질 거라 했다. 사물을 그대로 복제하는 사진과 영상은 말 그대로 완벽한 그림이었다. 하지만, 서로의 위치를 위협할 줄 알았던 두 장르는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됐다. 영화가 등장한 영상은 기록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됐다. 미장센으로 통칭하는 영상 속 구성요소와 내러티브를 담은 편집 기술은 영화를 기록에서 예술로 올려놓았다.
사진 또한 마찬가지다. 회화를 대체할 수단으로 여겨졌던 사진이 여러 기법을 통해 작가의 의도를 담은 예술이 된 건 이미 오래전 일이다. 요즘 사진을 못 찍는 사람은 없다. 다만 잘 찍은 사진은 쉽게 만나기 힘들다. 단순히 사물을 그대로 그린 그림이 잘 그린 그림의 기준이 될 수 없듯이, 사진 또한 마찬가지다.
그간 사진전을 다니다 보면, 보게 되는 표현 방식은 주로 두 가지였다. 사진의 기본 요소인 빛을 극대화해 사물 혹은 인물을 왜곡시키거나 질감을 표현하는 방식, 색을 제외한 채 오로지 사물의 움직임과 구도에 극한으로 몰입해 표현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삼청동으로 산책간 김에 청와대 바로 옆 갤러리를 들렀다. 4명의 사진작가의 작품이 걸려 있는 전시, 그중에서도 단 2점만 전시된 그의 사진에서 내러티브를 처음 느꼈다.
‘Erwin Olaf’의 두 작품, <Chessmen XXIV>과 <Berlin_Porträt 1>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Erwin Olaf, Chessmen, XXIV, 1988>
<Chessmen XXIV>은 글자 그대로 체스에서 사용되는 말을 인체로 표현한 <Chessmen> 연작 중 한 작품이다. 작품을 처음 보면 마치 영화 <판의 미로> 같은 중세 판타지물을 보는 듯한 기괴함과 섬뜩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 속을 면밀하게 살펴보면 강박에 가까운 구도와 명암, 독특한 내러티브가 느껴진다.
하나씩 살펴보자면, 명암을 통해 근육을 세밀한 묘사함으로써 직선적인 외관을 드러내고, 시시포스 신화처럼 벌을 받듯 돌을 허리에 얹음으로써 자연스럽게 나오는 유려한 곡선. 단단하면서도 자유로운 신체를 극한으로 활용하는 모습은 굉장히 인상적이다. 게다가 남성의 성기 부분을 의도적으로 ‘거세’시킴으로써 자연스럽게 인물을 중성적으로 보이게 하고, 혹은 오이디푸스 신화 속 ‘거세된’ 남성성에 대해 떠올리게 만든다.
<Erwin Olaf, Berlin_Porträt 1, 2012>
이처럼 그의 작품은 표면적 사실보다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그것은 작업한 시기는 다르지만 <Berlin_Porträt 1>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베를린’이라는 도시와 고압적인 눈으로 상대를 응시하는 소년의 교집합을 찾다 보면 한 인물이 스쳐 지나간다. 아돌프 히틀러. 2012년을 살아가는 소년에게서 느껴지는 독일의 과거는 단순히 한 인물을 회상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인종차별과 우월한 유전자, 제2차 세계대전과 나치 독일과 네오나치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들이 차갑게 당신을 바라보는 소년의 눈과 당장이라도 명령을 내릴 것 같은 가죽 장갑 속 손가락 등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심지어 올곧은 자세마저도 아리안의 후손이 자신의 우월감을 드러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Erwin Olaf의 작품은 서사를 담는다. 피사체가 담고 있는 상징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지만, 그렇다고 감추지도 않는다. 보는 사람이 상상력을 발휘해 그 작품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게 한다. 올 겨울이 가기 전에 한번은 그의 작품을 보길 바란다. 그의 판타지가 디즈니는 아닐지라도 그에 못지않게 매력적인 건 사실이니까. 공근혜 갤러리 이외에도 그의 작품을 보고 싶다면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어윈 올라프: 완전한 순간-불완전한 세계>를 찾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