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말 유럽의 미술계는 전통적인 표현 방식을 버리고 예술가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을 독창적으로 표현하던 실험의 세기였다. 그 사이 갖가지 유파에 속하지 않으면서 독학으로 자기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하는 화가 앙리 루소(1884~1901)는 1886년부터 꾸준히 “살롱 데 앵데팡당" (Salon des indépendants)에 자신의 작품을 정기적으로 출품하며 자신의 작품들을 알린다.
초기의 그의 작품은 비난과 조소를 받았는데 정식 미술 교육 받지 않은데다 어색한 인체비례,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은 미숙함으로 평가되고 더불어 원초적 자연의 풍경은 공식적인 살롱에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알아본 폴 시냐크는 여러 유명 갤러리에 루소의 전시를 열어 주었고 피카소는 자주 드나들었던 골동품 가게에서 발견한 루소의 “M부인의 초상” 매료되 구입하고 그의 작업실에 걸어 두기도 했다.
피카소는 자신이 발견한 이 그림의 화가를 알리기 위한 파티를 자신의 아틀리에 열어 주변의 지인들을 잔뜩 초대하였다. 거기에는 시인 아폴리네르, 화가 마리 로랭상, 비평가인 모리스 레이날과 거트루드 스타인등이 있어고 그들과의 만남으로 루소는 당대 중요한 예술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신의 예술세계를 좀 더 인정 받게 된다.
앙리루소, 마담M ,1895-1897
당시 루소의 작품에 관심을 둔 것은 피카소만이 아니었다. 화가이자 미술상인 앙브와즈 는 이미 루소의 그림 중 일부를 구입했으며 1908년에 루소의 첫 개인전을 기획한 독일 미술 평론가이자 화상인 빌헬름 우데 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나이브 아트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었고 이후 세라핀, 앙드레 보샹, 카미유 봉부아, 루이 비뱅 같은 작가들을 발굴했던 인물이다.그는 1928년 소박하지만 훈련되지 않은데서의 순수성을 높이 평가해 몽마르트 근처에 "성심의 화가들" (les peintre du Sacre-Coeur) 이라는 이름으로 전시회를 기획했고 1932년에는 19세기 스타일의 '원시적' 예술의 개념에 대한 일종의 언급으로서 "현대의 원시인" (Les primitifs Mordernes) 라는 제목의 전시를 선보이며 유럽와 미국에 나이브 아트의 가치를 선전하며 그들을 미술사의 주역으로 만들었다.
나이브 아트의 특징들
자연스러움, 소박함, 천진함,미숙함,순진함을 내포하는 "나이브" 이라는 용어 때문에 서투름을 의미하는것으로 간주될수 있지만 루이 아라공은 "이 그림을 나이브 하게 생각하는 것은 나이브 하다" 라고 말했다. 전통적인 미술 교육과 형식의 규칙을 따르지 않거나 일부러 거부하는 예술가들이 만든 형태의 시각 예술 로써 그것은 시대 예술의 지배적인 경향과 일치 하지 않지만 이 예술가들의 정신을 분명히 반영하는 일종의 서술적 감성적 고리를 가지고 있고 독립적인 특유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가장 일반적인 모티브는 살아있는 생물, 사람과 동 식물등 자연과 계절의 풍경, 평범한 사람들의 삶, 주변의 일상 생활 장면, 시골 생활 장면( 농부, 들판 깎기, 양치기, 애완 동물 등) 있다.
또한 그들은 그곳에 가본 적이 없더라도 이국적인 장소(예: 루소의 정글시리즈 ), 열대 우림, 환상적인 생물, 야생 동물이 등장하여 실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는 현실과 초월된 시간을 그림속에 담기도 한다. 이런 특징들이 들어나는 나이브 아트는 대부분 평화롭고 어린 시절로 데려가 가장 아늑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천진함과 디테일한 네러티브 가득 찬 다채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그림들은 대체로 크지 않고 단조로우며 장식적인 경향이 있는데 거기에는 공통적으로 선명한 채색, 풍부한 세부묘사, 계산되지않은 원근법, 평면적 공간처리로 아카데믹한 기교를 배제한 경향이 두드러진다.

앙리 루소, 굶주린 사자, 1905
나이브 아트는 초기에는 프랑스의 화가들을 중심으로 알려지시 시작했지만 여러 지역에서도 나이브 아트의 특징성들이 들어나는 예술적 경향들이 존재한다. 특히 1930년대에 크로아티아의 작은 시골 지방 단체인 흘레빈 마을을 중심으로 모인 예술가들이 농민의 삶과 그곳의 자연과 신비를 담은 그림들을 그리면서 홀레빈 스쿨이라 불리는 나이브 예술가 단체가 만들어진 곳으로 나이브아트의 성지 같은 곳으로 유명하다. 동유럽의 세르비아에서는 코바치카 와 야고디나 주변 지역을 일대로 마을의 이상화된 일상을 그리는 나이브 예술가들이 알려지고 20세기초 미국과 캐나다로 이주한 유럽 사람들은 그들의 고립과 새로운 환경에서 찾은 아름다움을 표현해 북미 지역 특유 나이브 예술가들로 자리잡니다. 국제적으로 퍼져있는 나이브 예술가들은 이런 지역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시대를 초월한 인간미의 내러티브를 묘사하는 순수함으로 가득차있다.
세계 속의 나이브 화가들
나이브 아트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는 프랑스의 앙리 루소 이지만 언급할 가치가 있는 다른나라의 20세기의 몇명의 중요한 나이브 예술가들에 대해 알아보자.
이반 제네랄리치 Ivan Generalic ( 1914-1992 ) 는 크로아티아 Hlebine 출신으로 크로아티아 나이브아트의 대표적인 화가로 동물이 등장하는 환상적인 시골풍경과 크로아티아의 농촌의 삶을 주로 그렸다.
이반 제네랄리치, 사슴의 결혼 ,1974
폴란드 화가 니키포르 크리니키 (Nikifor 1895-1968 )는 40,000점이 넘는 엄청난 양의 그림을 남겼는데 그림속에는 대부분 러시아 정교 교회의 건축물 그리고 자화상을 위주로 종이와 공책, 담배상자등에 그림을 그렸다. 일생의 말년에서야 알려진 화가이다.
니키포르, 크라쿠프 1956
시드니 놀란(Sidney Nolan 1917- 1992 )은 앙리 루소에대한 동경했으며 자신의 조국인 호주의 황량한 사막, 버려진 광산 척박한 환경과 그곳의 동식물을 모티브로 현대 문명 자연과 공존을 그린 화가이다
시드니 놀란 , 예쁜 폴리 광산, 1948
세르비아 출신의 주자나 할루포바 (Zuzana Halupova,1925- 2001)는 전세계 나이브 아트의 뮤지엄에 그녀의 작품들이 소장 있으며 세르비아의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과 농가의 동물들과 어우러진 다채로운 풍경 가득한 그림들로 유명하다.
주자나 할루포바, 5월의 축제, 1978
미국의 모지스 할머니( Grandma Moses 1860- 1961 ) 는 76세에 그림을 시작해 101살까지 그림을 그림 뉴욕과 버지니아에서의 농장의 경험들을 토대로 시골생활을 어린아이같은 순수함을 불러일으키는 그림들로 미국이 사랑하는 국민화가로 불리는 인물이다.
모지스 , 슈가링 오프, 1942
나이브 아트의 회고와 컬렉션들
1937년 "현실의 대중적인 거장" (Popular Masters of Reality) 이라는 제목으로 그르노블 미술관의 큐레이터였던 앙드레 파시 Andry-Farcy가 기획한 나이브 아트에 대한 이 전시는 뉴욕, 취리히, 런던 현대미술관의 순회전으로 이어진 성공적인 국제적 전시였었다. 이후 1961년부터는 크로아티아의 자그레프 나이브아트 미술관, 같은해에 뉴욕 민속 미술관이 등장 하였고 1982년 니스의 아나톨레 야코프스키 나이브 아트 국립 미술관이 문을 열어 전세계 나이브 화가들의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2012년에는 동시대적 해석의 나이브 아트에 관한 전시가 카르티에 현대미술 재단 에서 "보는 이야기들,보여주고 말하다" (Histoires de voir, Show and tell)라는 제목으로 선보였었다. 다양한 나라의 예술가들이 이른바 '나이브’, ‘독학', '원시적인' 예술이 무엇을 구성하는지 현대미술과 대중미술사이에서 생각해보는 나이브 아트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는 전시였었다. 가장 최근인 2020년 파리 마이욜 미술관에서는 잊혀저가는 프랑스 나이브 예술가들에게 다시한번 경의를 표하기 위해 "드와니에 루소에서 세라핀까지: 나이브의 대가들" (Du Douanier Rousseau à Séraphine : les grands maîtres naïfs ) 이란 제목으로 전시를 기획했었다. 앙리 루소, 세라핀, 앙드레 보샹, 카미유 봉부아, 루이 비뱅등의 작품 100여점들은 마치 빌헬름 우데의 전시가 지금의 파리에 다시 선보이기라도 한듯 미술관에 펼쳐졌었다.
"드와니에 루소에서 세라핀까지: 나이브의 대가들" , 마이욜 미술관, 2019- 2020
나이브 아트의 미술의 특징인 전통적 교육과 규칙 대한 거부, 그리고 자유로운 순수함에 대한 지향은 어쩌면 완전한 자기 표현을 허용하는 예술가들로써 오늘날 재평가 될수 있다. 그리고 현재까지 나이브 아트는 그 자체로 독립된 장르로써 이를 재해석하고 회고하는 전시들, 박물관 및 컬렉션들이 지속적인 등장이 이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