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샤를 드 골 대통령의 진두지휘 아래 제5공화국이 수립된 프랑스에서는 당시 인정받던 지식인이자 작가, 앙드레 말로(André Malraux)가 처음으로 창설된 문화부 장관에 지명되며 예술정치에 새로운 흐름을 일으켰다. 1960년대에 들어서며 아비뇽 페스티벌이 시작되는 등, 지방 자치 단체들 또한 실질적인 문화 정책들을 채택하며 예술정치전선에 독자적으로 동참하기 시작하여 문화예술의 사막과도 같던 지방 곳곳에도 예술의 숨결이 닿기 시작한다.
Pièce d'actualité n°14 : Dévoiler Richard Maxwell, La Commune © Willy Vainqueur
문화 예술의 사막은 멀지 않은 곳에도 있었다. 파리에는 52개의 극장이 문전성시를 이루며 운영되어 마치 폐막식이 없는 축제와 같던 한편, 나머지 프랑스 전역에는 다 합쳐도 51개의 극장만이 존재했다. 파리 근교 지역들도 마찬가지였다. 파리 북쪽 외곽에 위치한 오베르빌리에(Aubervilliers)시는 노동과 산업의 유산으로 도시의 정체성을 내세우던 곳으로, 인구 구성원 대부분이 블루 컬러 직종에 종사하는 등 극장의 주요 고객층으로 고려되지 않던 사람들이었다. 이 오베르빌리에가 파리 교외 최초의 상설 극장, 코뮌 극장(Théâtre de la Commune)이 1965년 처음으로 막을 올린 곳이다.
이 코뮌 극장 프로젝트는 연극배우, 감독이자 연출가인 가브리엘 가랑(Gabriel Garran)에 의해 착수되었는데, 이에 큰 관심을 보인 당시 오베르빌리에시의 부시장 자크 할리트(Jack Ralite)의 개입 하에, 극장의 설립에 시 차원의 지원이 점진적으로 제공되기 시작하며 프로젝트는 활력을 더했다. 이들에게 문화와 예술 창작에 대한 접근이란 교육이나 건강만큼이나 필요한 것으로 여겨졌다. 더 많은 시민이 극장을 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대중에게 연극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문화의식은 전투적이고 선구적인 프로젝트로 귀결했다. 당시 프랑스 공산당을 비롯한 정치계는 조형예술과 달리 공연예술에 개입하는 것에 큰 관심이 없었지만, 창작의 자유를 보장하며 대중에게 예술적 소양을 갖춘 작품들을 선사하려는 코뮌 극장 프로젝트의 혁신성으로 인해 프랑스 문화정책 또한 변곡점을 맞았다.

la documentation photographique, « Culture, médias, pouvoir (1945-1991) », 2019/2, 43. © Elisa capdevila
코뮌 극장 프로젝트가 오베르빌리에에 본격적으로 착수되기 이전, 가브리엘 가랑과 오베르빌리에시는 1961년부터 1964년까지 연례 연극 페스티벌을 개최했는데, 1961년 제1회 오베르빌리에 연극 페스티벌 프로그램 포스터에 쓰여있는 « 이 페스티벌은 당신들의 것이다. (Ce festival est le vôtre) » 혹은 « 대중화하라 (Popularisez-le) » 와 같은 표현이 페스티벌의 성격과 의지를 잘 보여준다.
코뮌 극장은 1965년 1월 21일 마침내 개관하여 대중에게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극장의 전체적인 컨셉과 구조의 디자인을 맡은 장식미술가이자 건축가, 화가인 르네 알리오(René Allio)와 함께 극장은 독창적인 상상력과 기능적 실용성을 겸비한 공간을 구축하여 그만의 현대성을 쌓아 올렸다.

La volupté de l’honneur, Marie-José Malis, La Commune © Victor tonelli
가브리엘 가랑이 이 프로젝트의 본질은 « 무엇보다도 우리가 왜 공연예술을 하는지를 알고, 극장이 없는 이 대중에게 그들의 것인 극장을 선물하는 것 »이라고 말했듯이, 코뮌 극장은 본질적으로 문화적 접근이 어려운 지역의 대중들을 중심으로 예술을 향유할 기회를 확대하는 것에 전념한 공간으로, 극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주요 관객층으로 여겨지지 않는 교외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여기서 교외란 비단 오베르빌리에인들 뿐만 아니라 파리 북쪽의 다른 교외 지역까지 아우르는 개념이다. 오베르빌리에시는 여러 계층의 관객들이 쉽게 찾아올 수 있도록 파리(Paris), 릴라(Lilas), 생드니(Saint-Denis), 생투안(Saint-Ouen), 보비니(Bobigny), 클리시(Clichy) 등의 지역과 이어지는 7개의 버스 노선을 마련해, 극장이 공연예술에 관심이 있는 파리와 파리 교외 모든 시민들을 모두에게 열린 공공 서비스로서 기능하길 바랐다.

Affiche, Pièce d'actualité n°15 : La Trêve, Alice Carré, Olivier Coulon-Jablonka, Sima Khatami © La commune
오베르빌리에의 코뮌 극장은 문화예술 분야의 참여자들에게 대중 예술의 해방적 비전을 제시하고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좋은 사례로 남아 있다. 코뮌 극장이 국립 연극 센터로 변모한 지 50년이 지난 오늘도 극장은 장소의 부재를 딛고 창의적이고 수준 높은 예술을 이웃에 해방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참고문헌 : Urrutiaguer, D. (2011). Les visions d’un théâtre populaire à Aubervilliers sous les directions de Gabriel Garran et de Didier Bezace. L’Annuaire théâtral, (49), 93–111. Extrait de Nicole Zand, « Enfin Jean Vilar vint... », Le Monde, 13 août 1964. extrait de Nicole Zand, « Le Théâtre de la commune d’Aubervilliers sera l’un des plus modernes de France », Le Monde, 6 janvier 1965. Ministre de la Culture, Le théâtre de La Commune d'Aubervilliers fête ses 50 ans. Source : https://www.culture.gouv.fr/Regions/Drac-Ile-de-France/Actualites/Actualite-a-la-une/Le-theatre-de-La-Commune-d-Aubervilliers-fete-ses-50-ans Marie-José Malis (2019), Interview avec Marie-José Malis, Le Projet, La Commune. Source : https://www.lacommune-aubervilliers.fr/le-proj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