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거짓말 같고, 어이가 없고, 숨 막히게 매혹적이다. 나는 매일 아침 황홀한 빛을 보게 될 것이라고 깨달았을 때, 내게 주어진 행운을 믿을 수 없었다. 나는 니스를 떠나지 않기로 결심했고, 거의 평생 그곳에 머물렀다.’ - 앙리 마티스

여행지에 도착했을 때 첫 느낌은 항상 두 가지로 나뉘었다. ‘아름답다’와 ‘한국이 더 예쁜데?’ 클리셰적인 답변을 늘어놓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나는 프랑스 ‘니스’에 도착했을 때 첫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골목 사이사이 창문에 널려있는 빨래와 빛을 수직으로 받은 건물들의 따뜻한 색감, ‘아름답다’라는 말로는 형형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자갈들 사이로 파도치는 니스의 푸른색 바다와 바다에 비치는 햇빛들. 코로나 때문인지 동양인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그 해변에 누워 태닝을 즐기는 유럽인들 가득한 그곳을 왜 그렇게 예술가들이 열광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샤갈, 마티스, 피카소 등 많은 예술가는 니스 근처의 소도시에 터전을 잡고 예술의 혼을 불태운 만큼 도시 자체가 예술 작품이다. 해변을 천천히 걸으며 늦여름을 만끽하는 사람들, 운동복을 입고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갈 해변에 누워 푸른색보다 푸르른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사람들 그 자체가 ‘니스’를 설명한다.

예술가들이 특히 사랑한 도시인만큼 손꼽히는 주요 미술관들이 니스에서 수많은 관람객과 팬들을 만난다. 니스의 시미에(Cimiez) 지구에는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미술관과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 미술관이 있다. 러시아 출신의 샤갈은 첫 아내가 죽고 깊은 심연에 빠져 있다가 8년이 지난 60세에 두 번째 부인과 결혼한 후 프랑스로 망명한다. 그는 니스 인근에 터전을 잡고 98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살았으며 그의 86살 생일에 니스에 샤갈미술관이 개관되었다. 야수파의 거장 앙리 마티스는 1917년 파리를 떠난 이후 30년 넘게 니스에서 살며 여생을 보냈다. 1940년대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를 점령한 나치는 독재를 위해 예술 활동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는데, 히틀러는 특히나 반 전통에 기초한 입체파와 야수파 같은 현대 작품들을 저질작품으로 매도했다. 당시 마티스는 파리와는 거리가 먼 니스에 있었음에도 파리가 함락당하자 주변 지인들은 마티스에게 프랑스를 떠날 것을 권유했지만 마티스는 프랑스를 떠나지 않고 니스에서 자신만의 작품 활동을 고수했다고 한다.

샤갈과 마티스, 둘 다 색채의 마술사인 만큼 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건 바로 니스의 아름다운 색이 아닐까 싶다. 단순한 형태와 밝고 순수한 색감은 마티스의 작품을 대표하는 수식어 중 하나다. 기쁨과 행복이 가득 담긴 그의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관람자마저 행복해지는 힘을 주는 마티스는 1905년 이후 친한 작가들과 함께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전시를 개최했다. 강렬하고 거친 마티스와 친구들의 작품을 향해 언론은 ‘야수 그림’이라고 비판했지만, 이 표현이 마음에 들었던 마티스와 친구들은 본인들의 화풍을 ‘야수파’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드랭, 블라맹크 등과 함께 시작한 야수파 운동은 20세기 회화의 일대 혁명이며, 원색의 대담한 병렬을 강조하며 강렬한 개성적 표현을 끌어냈다.

Nature morte aux grenades, Vence, novembre 1947, oil on canvas, coll. Musée Matisse, Nice
니스의 마티스 미술관에는 마티스가 니스에 머무는 동안 그린 작품들이 많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마티스의 대표작은 파리나 런던 등의 유명한 미술관이 있지만, 이곳에는 니스의 정취를 가득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유언을 통해 자신의 작품들을 니스에 기증했는데 이 작품들을 기초로 1963년 마티스 미술관이 설립되었다고 한다.

Henri Matisse, Nu au drapé, 1918
1918년, 마티스가 니스에 도착한 직후 호텔 방에 머물면서 그린 이 작품은 창문 앞에 서 있는 모델이 주인공인 작품이다. 창문 앞에 서 있는 모델의 몸은 매우 조각적이고 거대한 특성을 잃지 않고 다양한 빛의 효과를 만들어낸다. 파리에 체류하던 그가 갑자기 니스를 방문했던 것은 쉼이 필요해서였다. 그의 건강은 쇠약했고 부인과 이별한 직후라 심리적으로도 불안한 상태였던 그는 어두운 색채로 딱딱한 구도의 작품들만 그려냈었는데 니스에 정착한 이후로는 예전의 화려한 색감을 되찾았고 자연스러운 선도 구사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이 시기에 젊고 아름다운 여성 모델을 많이 그렸는데 니스 시절(1917~1930) 나온 작품들이 ‘오달리스크’이다.
Henri Matisse, Intérieur – porte ouverte, 1920-1921
이 작품은 마티스가 1920년대와 1921년 여름 동안 그린 것으로, 열려 있는 실내의 따뜻하고 섬세한 색채는 아름다운 여름날의 경쾌한 분위기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빛이 방 전체를 가득 채우며 빈 안락의자는 방의 주인이 외출한 것을 암시하고 실제로 마티스는 예술이 마음을 진정시키고 평온함을 주길 바라 본인의 그림이 안락의자 같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의 바람이 녹아들 듯 표현된 이 작품 앞에서 관람객들은 오랜 시간 머물렀는데 아마도 작품을 통해 평온함을 느껴서가 아닐까 싶다.
Henri Matisse, L’Artiste et le modéle nu, 1921 / Henri Matisse, Femme assise, le dos tourné vers la fenêtre ouverte, 1922
마티스에게 있어서 작업실은 그의 중심 주제 중 하나였다. 이 작품에서는 모델과 그것을 그리고 있는 작가 자신이 한 화면 안에 등장하는 데 이를 통해 모델의 물리적 존재가 그림을 그리는 작가에게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화가 자신의 모습, 매혹적으로 앉아있는 여성 그리고 실내의 장식성까지 색채, 장식성 그리고 관능성, 이 세 가지 요소 모두를 조화롭게 구성한 이 작품은 니스 시절(1917~1930) 마티스 작품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 미술관에는 전시되어 있지 않지만 ‘열린 창문을 등지고 앉아 있는 여인(1922)’에서 역시나 창문 밖으로 펼쳐진 드넓은 바다는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니스의 풍경을 보여준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과 그만큼 아름다운 모델, 그리고 색깔이 강렬한 동양풍 문양의 실내 장식까지 이 모든 조화가 담긴 니스 시절 작품을 통해 그가 숨 막히게 매혹적인 니스를 왜 떠나지 못했는지 알 수 있다.

Tempête à Nice, 1919-1920, Nice, oil on canvas, coll. Musée Matisse, Nice
마티스와 샤갈이 사랑했고 오랫동안 떠나지 않았던 그 시절 니스는 여전히 그때와 같은 색감과 빛깔을 간직한 채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다. 니스 시절(1917~1930) 지중해의 아름다운 빛깔을 담아낸 그의 작품들은 영감의 원천이 된 니스에서 수많은 관람객과 작품을 통해 추억을 공유한다. 마티스 미술관으로 가는 길에 마주한 니스의 푸른 바다는 미술관 곳곳에 마티스만의 색채로 표현되어 있어서 니스 바다와 마티스를 동시에 추억하기에 가장 완벽한 공간이 아닐까 싶다. 니스에 대한 추억이 있는 독자들, 니스를 경험하고 싶은 독자들 중 마티스가 사랑한 니스를 느끼고 싶다면 그의 작품을 다시금 감상하며 그 추억을 공유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