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과 추상 사이, 휘슬러의 '녹턴'
제임스 맥닐 휘슬러(James McNeill Whistler, 1834-1903)는 1860년대부터 70년대까지 ‘녹턴(Nocturne, 야상곡)’이라는 제목의 연작을 집중적으로 그렸다. 이 중 특히 <검정색과 금색의 녹턴: 떨어지는 불꽃>은 오늘날의 관람자가 보기에 감흥이 없을 수 있으나, 당시의 비평가들과 관람자들에게는 굉장히 이상하고 충격적인, 존 러스킨에 따르면 ‘물감통을 끼얹은 것처럼’ 성의 없는 작품으로 받아들여졌다. 그가 이러한 그림을 그리게 된 배경은 19세기 당시 서양 미술계로 유입된 일본 미술의 영향과 그의 유미주의적 신념을 꼽을 수 있다.
'녹턴'이 탄생하기까지 - 일본 미술과 유미주의

휘슬러를 비롯한 당대 많은 유럽의 화가들이 일본 판화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데, 그는 특히 인물화에서는 스즈키 하루노부(1725?~1770), 풍경화에서는 안도 히로시게(1797~1858)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휘슬러의 녹턴 연작 중 <떨어지는 로켓>은 안도 히로시게의 <명소에도백경: 료고쿠 다리 위의 불꽃놀이>와 소재나 구도 상의 유사성을 보인다.
풍경화와 관련하여 그가 일본미술에서 차용한 것 중 중요한 하나는 ‘2차원적인 구성’이라는 아이디어일 것이다. 하루노부의 그림은 원근법을 사용하지 않아 평면적이고, 장식적인 측면이 강하다. 한편 우키요에를 차용한 휘슬러의 그림(대표적으로 <발코니(1864-7)>)을 보면 원근법을 사용하여 공간의 깊이감을 표현하는 등 서양 예술가의 관습을 완전히 벗어 던지지는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휘슬러의 어머니’로 잘 알려진 <회색과 검정색의 배열 No. 1(1967-72)> 등의 인물화에서 알 수 있듯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하루노부의 ‘2차원적 구성’이라는 아이디어를 서양미술의 재료와 소재를 가지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구현해내게 된다.

제임스 맥닐 휘슬러, <검정색과 금색의 녹턴: 떨어지는 로켓>
휘슬러는 또한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s sake)’를 표방하는 유미주의 운동의 선봉자로서 알려져 있다. 녹턴 연작 중 <떨어지는 로켓>에 대한 존 러스킨의 혹평으로 인해 시작된 러스킨과의 소송 논쟁은 유명하다. ‘무엇이 예술인가’에 대한 대중적인 담론을 이끌어낸 이 사건에서, 러스킨 측의 증인으로 나온 윌리엄 포웰 프리스는 “그림의 의미에 있어서 구성과 묘사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며, 이를 결여하고 있는 휘슬러의 그림은 예술작품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유미주의 화가로서의 휘슬러의 정체성을 역설적으로 확인시켜주는 대목이다. 휘슬러는 그림과 화가의 역할에 있어서 구성과 묘사를 전면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보다는 색채와 형태의 체계적인 구성, 배치, 혼합에 더욱 관심을 두었다. 그는 <열 시(Ten O’Clock)>라는 강연에서 “예술은 이기적으로 그 자신의 완벽함만으로 인해 충족된다”고 언급하였는데, 이는 예술의 역할이 단순히 자연을 모사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 자체의 아름다움만으로 예술의 역할을 충족할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을 드러낸다.

제임스 맥닐 휘슬러, <푸른색과 금색의 녹턴: 구 배터시 다리>
녹턴의 추상성 - 제목과 대상, 그리고 색상
그의 녹턴 연작 제목을 살펴보면, 묘사 대상이 아니라 녹턴(nocturne, 야상곡)이라는 음악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을 사용한다는 점에서부터 휘슬러가 의도적으로 관자의 초점을 대상보다는 색과 형태의 배열로 이동시키고자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쇼팽의 곡 중 여러 작품의 제목이 된 야상곡은 18세기에 주로 저녁 파티 때 연주되던 곡을 일컬으며, 주로 밤에서부터 영감을 받은, 그리고 밤의 성질을 띠는 악곡 장르이다. 그는 이 제목에 대해 “이 제목은 멋스럽기도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너무나 시적으로 잘 말해주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야상곡’이라는 단어는 저녁의 풍경을 묘사한 것이라는 점에서 연관되기도 하지만, 음의 요소를 조합하고 구성하는 ‘음악가’처럼 색과 형태를 가지고 ‘편곡’하는 예술가가 되고자 했던 휘슬러의 생각을 잘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이 연작의 제목은 이 작품이 필연적으로 색채와 선, 형태의 추상적인 조화, 그리고 음악적인 리듬감을 담고 있을 것임을 예상하게 한다.
또한 밤과 도시, 강이라는 대상의 선택은 녹턴 연작을 미술사적으로 구상 회화와 추상 회화의 중간 지점에 위치시키는 데에 일조하였다. 어두운 밤을 그리는 것은 필연적으로 빛을 차단하여 대상의 형태가 잘 보이지 않게 한다. 게다가 색채 선택의 폭을 좁히고, 대상 본연의 색감과 형태를 화가가 자의적으로 묘사할 수 있게 하는 가능성을 열게 된다. 즉, 화가가 대상에 종속되기보다 오직 그림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기 위한 장식적인 측면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작품의 주 색상이 푸른빛인 <구 배터시 다리>보다, 어두운 검정빛을 주 색상으로 한 <파이어 휠>이나 <떨어지는 불꽃>의 작품에서 더욱 그 대상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어렵고, 수평선이나 사람의 모습이 희미한 환영처럼 남아있어 언뜻 추상회화처럼 보이게 된다. 또한, 강을 대상으로 했다는 것도 이러한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유동적이고 형태가 가변하는 물의 특성과, 강 위로 진 어슴푸레한 안개는 윤곽선을 모호하게 만들고 대상을 쉽게 구분하기 어렵게 한다. 또 <구 배터시 다리>의 다리 묘사는 어떠한가. 무채색, 직선 등의 도시적 특성을 대변하는 다리의 골격을 왜곡된 형태로 표현함으로써 다리를 그대로 재현했다기보다는 마치 평면을 수직선으로 분할하는 조형적 장치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실제로 러스킨과의 소송 논쟁에서 러스킨은 이 그림을 보고 “이 그림에서 어떤 부분이 다리인가요?”라며 조롱하기도 했다고 한다.

제임스 맥닐 휘슬러, <검정색과 금색의 녹턴: 파이어 휠>
밤과 강이라는 대상을 표현하기 위해 <녹턴> 연작은 필연적으로 색의 사용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으며, 휘슬러는 쿠르베의 영향으로 물감을 먹처럼 얇게 여러 번 덧발라 톤을 조절하였다. 이를 위해 그는 ‘물감이 흘러내리지 않기 위해 캔버스를 눕혀야 할 정도’로 굉장히 묽은 재료(휘슬러는 이를 소스(sauce)라고 불렀다)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녹턴 연작에서의 재료의 선택은 윤곽선을 불분명하게 만들고, 대상을 모호하게 하며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러한 기법은 20세기의 ‘색면 추상’이라 불리는 추상표현주의 선구자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의 작품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자연의 빛깔을 대체로 그대로 모사하였다는 점에서 녹턴 연작은 재현적 특성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그의 재료 선택과 제한적인 색의 사용은 그의 그림에서 표현주의적인 효과를 내는 것이다.
녹턴 연작에서 <떨어지는 불꽃>, <파이어 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작품이 구상, 재현 회화에 더 가까우며, 이 두 작품 역시 완전한 추상, 표현 회화라고 말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휘슬러가 녹턴 연작을 통해 실현하고자 했던 것, 그것의 결과물, 그리고 이것이 촉발한 논쟁 등 모든 면에서 이 연작이 현대 추상표현주의 회화의 핵심 아이디어와 연결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휘슬러의 녹턴 연작은 다양한 예술적 실험이 벌어지던 19세기 말의 서양 미술사에서 추상회화로 향하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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