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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가 되기까지 | ARTLECTURE

꼰대가 되기까지

-너, 이 그림 본 적 있니? 윌리엄 터너(1) -

/Picture Essay/
by 안노라
Tag : #터너, #영국, #그림, #풍경
꼰대가 되기까지
-너, 이 그림 본 적 있니? 윌리엄 터너(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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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터너를 육안(肉眼)으로 그리지 않고 심안(心眼)으로 그리는 화가라고 해. 그는 자신의 마음이 본 것을 쉬지 않고 캔버스에 옮겼어. 그의 그림은 무뚝뚝했던 그가 선택한 그만의 언어이자, 다정하고 섬세했던 그의 마음의 소리야. 그는 <노예선>을 통해 인간의 극악하고 이기적인 모습을 상기시키며 노예제 폐지가 이루어졌다는 섣부른 확신을 깨트렸지. 우린 아직 이기심에 가득한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고 말이야....

느루야, 지금 할머니 댁에 들렀다 지하철 타고 집에 가는 중이야. 다행히 빈 좌석이 있어 앉아 가는구나. 느긋하게 가는데도 창밖 풍경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 할머니에게 다녀오면 왜 고구마 먹고 난 뒤처럼 가슴이 꽉 막힐까? 좀 더 자상하게 알려드리지 못하고 기어코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낸 나 자신에 대한 '화'와 아주 쉬운 일을 거듭 설명하는 데도 계속 되묻는 할머니에 대한 답답함이 마구 뒤섞여서 저절로 한숨이 나오는구나. 


얼마 전, 할머니의 핸드폰을 바꾸어 드렸잖아. 단순 기능에 쓰시기 쉬운 걸로 말이야. 마침 엄마가 갔더니 할머니가 문자 보내는 법, 송금하는 법을 알려달라고 하셨어. 할머니에게 새로운 핸드폰의 자판 누르는 법을 거짓말 조금 보태면 50번쯤 설명한 것 같아. 송금하는 법은 어려우실까 봐 빈 종이에 "엄마, 요 점 세 개 보이지. 그걸 누르면 이렇게 '송금'이란 글자가 나타나요. 송금을 누르면 누구에게 보낼 건지 선택하라고 해."부터 시작해서 단계별로 하나하나 설명을 하는 데도 계속 틀리시는 거야.  "왜 이렇게 쉬운 걸 못하지?" 엄마의 인내심이 슬슬 바닥을 치기 시작했어. 


나도 모르게 "엄마, 문자 보내지 말고 전화해. 글구 엄마가 무슨 돈이 있다고 남에게 송금을 하겠어. 없는 일 만들지 말자. 우리가 보내는 돈을 카드로 쓸 줄 알면 되지." 이런 야멸찬 소리를 하고 나왔단다. 나오는 순간, 후회가 밀려왔지. 나이 오십이 넘었어도 아직 멀었구나 싶은 자책이 들었어. 한번 더 자세히 설명해 드릴걸. 할머니 번거롭게 핸드폰을 괜히 바꿔 드렸나 싶기도 하고. 휴우, 어쩌다 한번 다녀오는 데도 그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지니 이를 어쩌면 좋니. 속상하구나. 그나저나 아침도 못 먹었는데 복잡한 마음에 후다닥 나오느라 점심도 걸렀네. 끼니가 될 걸 사 가야겠어.


문을 열고 들어선 햄버거 가게는 왁자했어. 젊은 사람들의 에너지가 톡톡 튀더라. 카운터에 무인시스템이라고 적혀 있고 옆에 주문을 입력하는 기계가 있더라구. 내 차례가 되어 "X버거" 이미지를 눌렀어. 글은 없고 그림으로 햄버거와 햄버거 세트가 보였어. 세트를 눌렀어. 다시 음료수와 커피 중 선택하라고 하네. 커피를 선택했더니 다시 감자칩과 여러 사이드 메뉴가 나와. 선택 후 다시 추가 옵션이 이어졌어. 추가 옵션은 하고 싶지 않은데 화면을 살펴봐도 주문 완료 버튼이 보이지 않아. 이건가 싶어 눌렀더니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버리지 뭐야. 뒷 줄은 점점 길어지고 마음은 바빠졌어. 줄을 선 사람들이 눈으로 '꼰대'라는 화살을 쏘았던 게 분명해. 엄마 뒤통수가 따갑고 손에 땀이 났거든. 정말 요즘은 햄버거 하나도 시키기 힘들구나 싶었지. 할머니도 이런 심정이었을까? 


포장된 햄버거를 들고 오며 이 그림이 떠 올랐어. 할머니에게도 너에게도 보여주고 싶구나. 느루야, 너, 이 그림 본 적 있니?



윌리엄 터너 <해체하기 위해 마지막 정박지로 끌려오는 전함 테메레르, 1839>




이 그림을 보는 순간, 링거에 가득 찬 진홍빛 노을이 혈관을 타고 온 몸에 흘러드는 것 같지 않니? 노을은 금세 우리의 손, 발톱과 눈동자를 물들여서 눈이 읽기 전에 마음이 먼저 흔들리지. 그림 속 노을은 자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너울거리는 강에 진홍 수액을 흘리고 있어. 그 위로 높은 돛대를 세운 투박하고 위엄 있는 배가 강에 실금도 주지 않으려는 듯 조심스레 나아가고 있지. 그리고 그 옆에는 단단하고 옹골진 배가 보여. 기다란 굴뚝에서 검붉은 연기를 내뿜고 있는 걸 보니 증기 예인선이구나. 작지만 힘센 예인선이 다소 퇴락하고 지쳐 보이는 담황색의 낡고 커다란 배를 끌고 강을 거슬러 가는 장면이야. 왠지 모를 장엄함과 비장함이 느껴지지. 


  

이 그림은 트라팔가르 해전을 승리로 이끈 전함 테메레르의 마지막 항해 모습이야. 트라팔가르 해전은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전 유럽의 국경선을 매일 새로 긋던 19세기 초에 있었던 해전이지. 당시 유럽은 도미노 패가 연이어 쓰러지듯 나폴레옹의 군대 앞에 맥없이 무너졌어. 단숨에 유럽을 평정한 나폴레옹은 마지막 남은 영국을 무릎 꿇리기 위해 프랑스 스페인 연합 함대라는 매운 채찍을 준비했지. 드디어 1805년 지브롤터 인근의 트라팔가르에서 영국 함대와 겨루게 되었어. 초반, 영국군의 기함 빅토리아호는 위기에 빠졌어. 이때 아무도 예상치 못한 전법을 사용, 빅토리아 호를 구하고 프랑스 스페인 연합 함대를 궤멸시킨 함선이 테메레르 호야. 트라팔가르 해전은 단순히 전투의 승리뿐만이 아니라 프랑스로부터 영국을 지키고, 해가 지지 않는 찬란한 대영제국 시대를 여는 예포였지. 영국은 비로소 제해권을 틀어쥐었고, 대서양 무역을 통해 국가의 부를 가속화시켰어. 이 전투 후, 나폴레옹은 영국을 유럽 대륙으로부터 봉쇄하여 고립시킨 후 아사(餓死)시키려 했지. 하지만 러시아의 이탈로 실패했고, 이것이 러시아를 침략하는 빌미가 되지. 이는 나폴레옹 몰락의 단초가 되었어. 


  

빛나는 투혼으로 영광스러운 영국을 지켜준 위대한 전함 테메레르 호도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했어. 산업혁명을 통한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바람의 힘으로 항해하던 범선(帆船)의 시대에서 석탄을 이용한 증기선의 시대를 열게 하거든.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Joseph Marllord Willeam Turner, 1775~1851)는 관절이 삐걱대는 늙은 테메레르호가 해체를 위해 작은 증기선에 예인 되는 모습을 쓸쓸하고도 영웅적으로 그려냈어. 영국인이 가장 사랑한다는 <해체하기 위해 마지막 정박지로 끌려오는 전함 테메레르, 1839>라는 작품으로 말이야. 스러지는 석양처럼 퇴역하는 노병(老兵)은 과거의 영광과 역사를 접고 새 시대를 견인하는 근대문명의 총아, 증기선에 이끌러 마지막 기착지인 템즈강의 항구로 향하지. 찬란하고 기품 있게 빛나는 황금빛 바다는 영웅의 마지막을 기리는 터너의 낭만적 헌시였는지도 몰라.


  

그래, 테메레르호의 영광이 지듯 할머니 세대가 저무는 거겠지. 범선의 시대가 가고 증기선의 시대가 오듯 할머니와 우리의 문화가 가고 이제 느루, 너희들이 여는 세상이 오는 거겠지. 집에 도착하거든 할머니에게 전화드려 다시 한번 설명해 드려야겠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이 속도와 문화를 엄마도 따라가기가 벅찬데 할머니는 얼마나 생소하고 위축되시겠니? 그런데 도대체 언제부터 이리 빠르게 변한 거지?




윌리엄 터너 <비, 증기 그리고 속도-그레이트 웨스턴 철도, 1844>


  


18세기 영국은 산업혁명이 한참이었어. 유럽 대륙이 시민혁명의 불길에 휩싸여 있을 때, 유럽과 영국 사이에는 그 불길도 건너지 못하는 바다가 있었거든. 정치적 안정을 바탕으로 영국은 차분하고 체계적으로 미래를 준비했어. 곧 증기 기관차가 발명되었지. 상상해보렴. 마차를 타고 좁은 도로를 다니던 사람들이 검고 육중한 기차가 철로를 달리는 걸 보고 얼마나 놀랐겠니? 기차를 '지옥문'이라고도 했단다. 말의 걸음만큼 부지런하고 말의 울음소리만큼 조용하고 말의 갈기만큼 우아했던 19세기 사람들은 괴성에 가까운 기차의 달리는 소리와 놀랍고 경이로운 속도에 주눅 들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했지. 지금 속도에 비하면 턱없는 시속 50km였다는데도 말이야.


  

그건 화가도 마찬가지였나 봐. 윌리엄 터너는 영국의 풍경화가야.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문학에서, 윌리엄 터너는 미술에서 영국을 대표한다고 하지. 아뜰리에에서 초상화를 그리거나 자연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던 당대의 화가들과는 달리 그는 밖으로 나가 '기계의 속도'에 집중했어. 그는 보이지 않는 속도를 표현하려고 맑은 날의 기차가 아닌 비가 오는 날 템즈 강변을 달리는 기차를 그렸지. 기차의 속도에 부딪친 비는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푸르륵 사선으로 날리고 비와 안개가 섞인 공기방울은 사방으로 흩어져 대기를 어슴푸레하게 만들고 있어. 템즈 강은 반사된 색채가 어우러져 형태가 사라졌어. 그저 푸르고 흰 대기와 검고 쇠빛이 나는 철로와 연한 황금빛으로 빛나는 템즈 강이 한 덩어리가 된 채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지. 비가, 바람이, 기차가 나를 향해 무섭게 달려오는 데 압도하는 힘과 끝닿을 데 없이 펼쳐지는 시야로 꼼짝할 수가 없어. 광활한 대지를 바라볼 때의 숨 막히는 장엄함이, 자연에서만이 아니라 문명에 대해서도 느껴진다고 할까? <비, 증기 그리고 속도-그레이트 웨스턴 철도, 1844>를 보면 철도의 역사를 만들고 대영제국을 이룬 영국의 자긍심을 엿볼 수 있지. 이성을 깨우며 근대를 향해 달리는 기차, 그리고 거센 빗줄기와 같은 사람들의 비난을 맞으며 그걸 기록하는 화가. 


  

터너는 문명에 대한 예찬만큼 자연의 위대함에 대한 경외심을 나타내는 그림도 그렸어. 그는 형태보다 느낌을 강조했기에 그림을 그릴 때 자신의 체험을 중요시했지. 잦은 여행을 통해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경험한 것을 스케치북에 옮겼어. 점차 정형화되지 않은 추상적인 느낌이 캔버스에 흘러넘쳤어.




윌리엄 터너 <눈보라-항구를 벗어나는 증기선, 1842>


  

느루야, 화면에 무엇이 보이니? 아마 하늘과 바다의 경계도 없이 한 덩어리가 되어 휘몰아치는 거대한 자연과 그 절대적인 힘에 저항하며 간신히 눈보라를 뚫고 나가는 검고 작은 배가 보일 거야. 하늘에 담긴 물은 바다로 쏟아지고 바다의 증기는 하늘을 뒤덮고 있어. 선이나 형태는 사라지고 색을 통한 강렬한 느낌이 압도하지. 그의 그림을 인상주의의 모태라고 하고, 모더니즘 미술의 특징을 담고 있다는 평가는 이 한 점의 그림만으로도 충분한 증거가 돼.

  

그가 이 그림을 그리기 앞서 폭풍우 치는 날, 배의 돛대에 온 몸을 묶고 4시간가량을 항해한 일은 유명하지. 그가 탄 배는 곧 뒤집힐 듯이 격렬하게 흔들렸고 돛대는 휘청거렸어. 하지만 에어리얼 호가 하위치 항을 떠나던 그 폭풍우 치던 밤, 터너는 가장 가까이에서, 자연의 민낯을 보고 싶었지. 폭풍우가 칠 때의 공기, 대기의 흐름, 빗줄기의 방향과 속도, 바람의 질감을 직접 만지고 싶어 했어. 체험이 주는 자연의 강렬한 감동을 시적으로 표현하려는 열망은 점차 그의 화풍을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게 했어. 그는 때로 물감을 손으로 비비고 문지르고 입으로 뿌리기도 했지. 다른 화가들은 터너의 그림은 속을 울렁거리게 한다고 비웃었어. 그는 자의 반 타의반 주류에서 점차 변두리로 밀려났지.

  

사람들은 공기가 뒤섞여 몽환적이 되어가는 파격적인 그의 그림을 이해하기 힘들었어. 사람들이 무엇인지 보려고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무엇을 그린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거든. 사람들은 그가 시력이 나빠졌다거나 정신병을 앓다 돌아가신 그의 어머님을 떠올리고는 그의 정신상태를 의심하기도 했어. <눈보라-항구를 벗어나는 증기선, 1842>이라는 이 작품은 "비누거품과 회반죽 덩어리"라는 조롱과 무성한 뒷소문을 낳았지. 오로지 비평가 존 러스킨만이 "색채를 이성이 아닌 시력을 되찾은 맹인처럼 순수한 감각으로 인식했다."라고 그를 옹호했단다.   

  

그는 은둔자였어.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 공식적인 아이는 없었어. 물론 관계가 가까웠던 여인이 둘 있었고 딸도 있었다고 해. 하지만 그는 딸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지. 그의 사생활은 비밀스러웠어. 여름엔 여행을 하며 스케치를 했고 겨울엔 자신의 아뜰리에에 틀어 박혀 그림만 그렸어. 사교적인 행사에도 참석하지 않았지. 물론 그를 흠모하고, 왕립 아카데미 회원이었던 그의 실력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꾸준히 구매했고 친구가 되어 그를 재정적, 심리적으로 지원했어. 하지만 그의 300여 점의 회화와 19,000여 점에 이르는 수채화, 드로잉 작품에 비해 내면을 들여다볼 단서가 부족한 건 그가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자신의 작품을 알리기 원했기 때문일 거야. 말하지 않는 건 묻지 않기로 하자. 대신 그의 생각을 알 수 있는 그림 한 점 볼까?




윌리엄 터너 <노예선, 1840>


  


1840년에 그린 <노예선>이야. 언뜻 보면 무엇을 그렸는지 알 수 없어. 그저 해가 지는 붉은 하늘과 검은 폭풍우와 성난 바다와 돛이 달린 배, 그리고 갈고리, 사슬 등이 보이지. 조금 더 확대해 보면 바다의 물고기들과 상어들, 그리고 새들이 낮게 날고 있어. 오른쪽 하단엔 물고기와 새들이 잔뜩 몰려들었어. 그 가운데 검은 쇠사슬이 달린 다리 한쪽이 떠 있지. 바다는 푸른 제 빛을 잃어버리고 핏빛으로 붉게 물들어 있어. 붉고 노란빛의 선명함, 거친 덧칠로 표현한 광포한 바다, 형체도 불분명하고 시간도 가늠할 수 없는데 화면은 온통 절규하고 있지. 화면의 어느 곳을 두드려도 비명소리뿐이야. 신에게 부르짖는 소리는 휘몰아치는 폭풍우가 다 삼켜버렸어. 

  

영국은 1838년 영국 본토와 식민지 모든 곳에서의 노예제를 폐지하는 노예 해방령을 제정했어. 사회 각층에서 노예제 폐지에 대한 글과 연설이 이루어졌고 대다수의 선량한 시민들은 비인간적인 노예제는 끝났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월터 포크스와 함께 노예폐지 운동에 동참했던 터너는 이 그림을 통해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지. 말 수가 적고 언어적 표현이 둔했던 그는 하고 싶은 말을 온통 그림에 담았어. 이 그림은 1781년 노예선 종(Zong)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노예선 종(zong)은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 400여 명을 싣고 자메이카로 떠났어. 노예들은 창문도 없는 배 밑바닥에서 쇠사슬에 묶여 있었어. 화장실이 없으니 그 자리에서 대소변을 해결했고 오물이 질척거리는 자리 위에서 잠을 잤어. 아주 소량의 물만 지급했지. 2개월에 걸친 항해에 이미 많은 수의 노예들이 질병으로 쓰러졌어. 이득을 남기기가 어렵다는 판단이 들자 선장은 잔인한 결정을 내리게 되지. 노예들을 바다에 빠뜨려 버리기로 말이야. 왜냐하면 그래야 '보험금'을 탈 수 있었거든. 당시 노예는 '화물(짐)'로 분류되었어. 그래서 가치를 상실한 화물(죽은 노예)은 보험금 지급 대상이 아니었지만 분실된 화물은 보험금을 지급했지. 선장은 보험금을 타려는 목적으로 병든 노예든, 살아있는 노예든 모두 카리브해에 빠뜨렸어. 그리고 보험금을 청구했지.





  

터너를 육안(肉眼)으로 그리지 않고 심안(心眼)으로 그리는 화가라고 해. 그는 자신의 마음이 본 것을 쉬지 않고 캔버스에 옮겼어. 그의 그림은 무뚝뚝했던 그가 선택한 그만의 언어이자, 다정하고 섬세했던 그의 마음의 소리야. 그는 <노예선>을 통해 인간의 극악하고 이기적인 모습을 상기시키며 노예제 폐지가 이루어졌다는 섣부른 확신을 깨트렸지. 우린 아직 이기심에 가득한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고 말이야. 

  

대영제국의 가장 화려했던 빅토리아 시대는 피스톤과 볼트가 움직이는 시대였고 자와 저울의 시대였어. 시대가 요구하는 신속과 정확에 발맞추기에 그는 너무 느리고 무거웠고 불분명했지. 터너는 말년에 왕립 아카데미 원장직도 내려놓고 첼시에 작은 별장을 마련하고 칩거해. 사회적인 지위에도 불구하고 한걸음씩 더 주변부로 물러났던 그의 정신 탓일까? 빅토리아 시대를 살았던 그가 남긴 그림엔 삶이란 모호한 것이고 설명할 수 없는 것이며 연무가 가득한 바다일 뿐이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려. 


  

이제야 집에 도착했어. 고되다. 며칠 동안 이어지는 비로 거실조차 후덥지근해. 손을 씻고 에어컨을 켜고 들고 온 햄버거와 커피를 마시며 비로소 핸드폰을 열어보았어. 할머니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네. 


  "노노야 잔 든어 갓지. 고압다. 돈 받아나."


  <엄마>의 카톡방 창에 이 말이 떠 있어.

  "200,000원을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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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안노라_역사를 그림으로 푸는 안노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