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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is, 그리고 삶 | ARTLECTURE

Paris, 그리고 삶

-피터르 브뤼헐 < 이카루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

/Picture Essay/
by 이지아
Paris, 그리고 삶
-피터르 브뤼헐 < 이카루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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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우리의 삶은 작품처럼 잔잔하지도 평화롭지도 않다. 머릿속은 늘 고민거리들로 가득 차 있고 수많은 관계와 갈등 속에 놓여있다. 롤러코스터와 같은 삶에서 늘 같은 마음을 유지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복잡다단한 삶 속에서 버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평정심을 유지하는 일이 아닐까 한다. 이카로스와 같은 운명이 닥칠지라도 우리는 계속 우리의 삶을 살아야 한다. 우주의 조화로움 속으로 계속 걸어가야 한다. 묵묵히 쟁기질하는 농부처럼 말이다...



파리 소르본 어학원을 다닐 때의 일이다.

우리 반은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의 인텐시브 클래스로 국적, 나이, 직업 등 매우 다양한 학생들로 구성되었다. 그중 동양인은 나와 중국인 한 명뿐이었고 나머지는 다른 유럽 국가와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 온 학생들이었다.


영어권이 아닌 친구들은 불어가 제2외국어이거나 모국어가 불어와 같은 계열 언어든지 아무튼 불어와 무척 친근한 아이들이었다. 이미 출발선부터가 나와는 달랐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넘은 어린 친구들과는 달라야 한다는 생각에 몇 배 더 노력했고 성적도 우수한 편이었다. 무엇보다 비싼 학비와 많은 것을 포기하고 왔다는 생각이 늘 나를 다그쳤다. 마음은 초조했고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결과물을 내야 한다는 강박증도 있었다. 하여튼 내 머릿속엔 온통 언어에 대한 생각으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지난밤에 외운 단어와 문장들을 몇 번이고 되새기며 학교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8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교실 문을 열고 기계적으로 왼쪽 벽면의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자 익숙지 않은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어두운 교실에서 한 친구가 창밖을 바라보며 책상 위에 앉아 있는 것이다.


“지아, 불 켜지 말고 이리 와서 앉아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가가 옆 책상 위에 걸터앉았다.

겨울이라 그런지 인제야 해가 반쯤 떠오르고 있었다.

“지아, 여기가 100년 전에는 인상주의 화가들의 아틀리에로 쓰였던 곳 이래. 너무 아름답지 않아?”      

순간 그동안 잊고 있던 사실 하나가 내 머릿속을 스쳤다.


‘아 여긴 파리지! 수없이 고민한 끝에 올 수 있었던 파리였지!’


그제야 내가 지금 있는 곳이 파리임을 알아차렸다.

우리 교실은 전면이 유리인 데다 다른 건물들의 높이가 낮아 파리 시내를 내려다보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과연 빛의 화가 인상주의자들이 좋아했을 법한 장소였다.   

   

내게 말을 건넨 그녀는 독일인 변호사였다. 그때 이미 지금의 내 나이쯤 되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파리에 오기 위해 나보다 더 많은 것을 포기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고작 쪽지시험 점수에 연연하는 나와 달리 매우 여유롭고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마치 파리 전체를 그득 담아낼 수 있을듯한 얼굴로.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무척이나 잔잔해 보였지만 누구보다 파리를, 자신을 사랑하는 표정이었다. 거울을 보니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하나라도 더 움켜잡으려는 듯 날카롭고 독기 가득한 얼굴이 있었다. 참 못나 보였다. 다시 나란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처음 파리행을 결심하게 되었을 때.

flight bag마다 사직서를 찔러 넣고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릴 때.

나의 마음가짐과 내 삶의 방향에 대해 말이다.

당장 눈앞에 닥친 일에 급급하여 정말 중요한 건 놓치고 있었다.      


평. 정. 심.

불혹이 넘은 지금도 붙잡기가 쉽지 않다.

마음이 어지럽거나 초심을 잃고 헤맬 때 마음 깊숙한 곳에서 꺼내어 보는 작품이 한 점 있다. 이카로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    



<이카로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 피터르 브뤼헐. 1560. 벨기에 왕립미술관  

 


   

작품은 그리스 신화를 주제로 한 브뤼헐의 유일한 그림이다. 미노스의 명령으로 한번 들어가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미궁을 만든 다이달로스는 테세우스의 탈출을 도왔다는 이유로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미궁 속에 갇힌다. 탈출 방법을 모색하던 중 하늘을 나는 새의 깃털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깃털을 모아 날개를 만들 계획을 세운다. 드디어 밀랍과 실을 이용하여 만든 날개를 달고 크레타섬을 탈출한다. 하지만 어린 아들은 아버지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태양에 너무 가까이 간 나머지 밀랍이 녹아 추락하고 만다.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의 이야기는 무수히 많은 화가와 조각가들에 의해 수백 년 동안 작품의 주제로 등장한다.




<이카로스의 추락> 카를로 사라체니. 1607

<이카로스의 추락> 피터 폴 루벤스. 1636     




사라체니와 루벤스 그림에서 보듯 대부분은 이카로스가 곤두박질치는 극적인 장면에 주목한다.  

   

하지만 브뤼헐의 작품은 이카로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이라 하기에는 무척이나 고요하다.

전경에는 말을 앞세워 밭을 가는 농부의 모습이 보이고 그 아래쪽에는 평화롭게 풀을 뜯는 양과 목동이 보인다. 목동만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지만 지루한 일상의 연속인 듯 오른 다리를 슬쩍 앞으로 꼬고 여유 있게 지팡이에 기대어 서 있다.


오른쪽 아래 해안가에 등을 보이고 앉아 있는 낚시꾼이 압권이다. 그가 이제 막 던진 낚싯대를 따라가 보니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두 다리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아버지와 탈출하다 밀랍이 녹아 추락한 이카로스이다.




<이카로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 부분도     




농부와 목동은 거리상 이카로스의 존재를 모를 수 있다고 해도 낚시꾼은 의도적으로 외면해버린다. 그와 동시대인임이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다이달로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아무도 관심 없는 절박한 이카로스의 처지가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화면에 등장하는 누구도 생사의 갈림길에 서 허우적대는 이카로스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자신들의 삶에 충실할 뿐이다.

농부는 말과 밭고랑에 집중하고 양치기와 낚시꾼도 각자의 하루를 살고 있다.   


        

평정심


처음 작품을 접했을 때 이카로스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목가적인 풍경이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인간의 삶과 매우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작품처럼 잔잔하지도 평화롭지도 않다. 머릿속은 늘 고민거리들로 가득 차 있고 수많은 관계와 갈등 속에 놓여있다. 롤러코스터와 같은 삶에서 늘 같은 마음을 유지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복잡다단한 삶 속에서 버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평정심을 유지하는 일이 아닐까 한다. 이카로스와 같은 운명이 닥칠지라도 우리는 계속 우리의 삶을 살아야 한다. 우주의 조화로움 속으로 계속 걸어가야 한다. 묵묵히 쟁기질하는 농부처럼 말이다.

언젠가 나에게도 이러한 평정심이 가슴속에 깊이 뿌리내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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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아_항공사 승무원으로 재직하며 겪었던 일상과 예술을 통해 어떻게 하면 '온전한 나'로 살수 있는지 연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