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하고 어려운 건 싫다. 스낵컬처의 기류가 사회 전반에 흐르고 있다. 특히나 문화산업에선 진지하고 전형적인 주류문화가 밀려나고 가볍고 산뜻한 스낵컬처의 선전이 두드러진다. 짧고, 직관적이고, 재밌으면서 농담 같은 주제와 소재들이 하루에도 몇천 개씩 등장하고 사라진다. 덕분에 유행은 더 빠르게 지나간다. 또 금세 지루해진다. 요즘엔 TV나 영화관보단 유튜브, 전시회보단 인스타그램이다. 이제 사람들은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다. 이런 현실에 위기감을 느껴서일까? 전시회들이 점차 자신의 고리타분함을 벗어던지고 있다. 핵심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것.
<위:오킹, 드로잉> <아래:오킹, 여름 안에서>
많은 전시장이 가진 단점은 물리적 공간으로 관람객이 직접 가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물리적인 공간이 존재한다는 건 장점이 될 수 있다. 이를 활용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현실에서 벗어난 환상을 보여주거나, 지극히 평범하고 편안함 속에 동화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빨강머리 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 동화나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주제로 한 전시가 주를 이뤘다. 후자의 경우에는 개인 카페들에서 진행하는 소규모 전시들이 대부분이다. 말하자면 전시를 관람한다는 행위를 일상의 일부분으로 바꿔내는 것이다. <오킹 : SECRET GARDEN>은 ‘라이즈디즈1601’이라는 물리적 공간 안에서 커피와 마카롱을 먹으며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전시다. 오킹의 비밀 정원에선 무언가를 크게 생각할 필요도, 진지한 얼굴로 작품을 뚫어지게 보고 있을 필요도 없다. 좋다. 별로다. 혹은 예쁘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위:오킹, 보랏빛 숲> <아래:오킹, 분수 앞에서>
오킹의 작품은 주변에 대한 관찰에서 시작된다. 여름의 향기와 풍경, 그 싱그러움과 상쾌함을 그려내고, 그 아래서 여유롭게 쉬는 사람들과 자신을 그려낸다. 그렇게 관찰자가 된 작가는 라벤더, 데이지, 가을로 접어드는 숲, 수평선이 길게 늘어선 바다를 살피며 스스로 자연에 동화된다. 그러면서도 자신만의 상상에 빠지거나 행복한 시간을 그려낼 때면 소위 인스타그램에 올라갈 것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허영심이 아닌 자신의 빛나는 순간을 스스로 알고, 작가는 자신의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순간을 포착할 줄 안다. 대부분 그런 순간들은 다 지나가고 나서 깨닫기에, 작품을 다 보고 나서는 관람객은 차 한 잔과 함께 스마트폰 속 앨범을 켜 가장 아름다웠던 날들을 되뇔 수도 있다.
<오킹, 붓꽃 정원> <오킹, 의자에서의 휴식>
오킹의 작품은 자신의 삶 속에서 소중한 순간을 찾고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다. 이런 경험은 습관 같은 일상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일상 속으로 전시가 스며드는 것, 일상이 전시로 스며드는 것. 어느 것이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일렬로 작품을 관람하는 미술관과 다른 공간의 일체감을 느낄 수 있다. 어렵게 말을 늘어놨지만, 결국 우리는 평소처럼 카페에 왔다가 전시를 봤고, 그 전시가 마음에 들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곳에선 다른 전시회처럼 확실한 목적성을 띠고 그것들을 관찰하지 않아도 된다. 마치 내 방에 붙어있는 영화 포스터처럼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만이다.
전시 선택의 폭이 넓힐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단순히 점심 메뉴를 고민하더라도 다양한 선택지가 있으면 여러 사람의 취향을 고려할 수 있듯이 전시회도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사실 영화나 게임 등 다른 문화산업에 비해 전시가 너무 고리타분하게 뒤처져 있는 건 사실이다. 최근에 와서야 힐링, 감성 등의 주제로 무장한 ‘가벼운’ 전시회가 등장하긴 했으나, 아직까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건 대부분 비슷한 주제와 형식, 문제의식을 지닌 작품을 내세운 전시회다. 다만 모든 전시를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수준으로 가볍게 바꾸자는 건 아니다. 이전에 다녀온 ‘호텔 이매지너리’나 ‘대림미술관’, ‘구슬모아당구장’, ‘식물관 PH’ 같은 공간이 일상에 좀 더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