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lecture Facebook

Artlecture Facebook

Artlecture Twitter

Artlecture Blog

Artlecture Post

Artlecture Band

Artlecture Main

행복을 그리는 화가 | ARTLECTURE

행복을 그리는 화가

-에바 알머슨, 그녀의 지도를 완성하다.-

/People & Artist/
by 김정아
행복을 그리는 화가
-에바 알머슨, 그녀의 지도를 완성하다.-
VIEW 5527

HIGHLIGHT


좋아하는 철학자 김진영 선생님은 미술감상이란 '지도 없이 떠나는 여행'이라 표현했다. 그리고 덧붙여 지도 없이 떠나는 여행만이 지도를 그릴 수 있다고도 말했다. '에바 알머슨'이란 지도 없이 떠난 여행에서 나는 마침내 '에바 알머슨'의 지도를 완성했다. 그리고 작가와 작품의 진실이란 것은 고정된 것이 아님도 알게 되었다. 에바 알머슨의 자화상 속 다양한 꽃들처럼 전시장을 빠져나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은 저마다의 다른 모양과 색의 행복을 발견했을 것이다...

한 가지 실험을 해보고 싶어 졌다. 우선 전시를 관람하기 전 으레 거치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사전 조사 과정을 과감히 생략하고 완벽한 '무'의 상태에서 그들을 만난다. 그리고 과연 사전 지식이 없이 감상만으로도 작가와 작품의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지를 가늠해보는 것이 실험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 실험의 대상으로 화가 '에바 알머슨(Eva Armisén)과 그녀의 작품을 선택했다.






INTRO


전시장에 들어서자 한 여인의 얼굴과 마주하게 된다. <개화;En Flor, 2018, 55X46cm, Oil on cavas> 마치 아이가 그려낸 듯 대충 그은 검은색과 붉은색 곡선들이 모여 그 여인의 얼굴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머리 위엔 하얀 난꽃이 향기롭게 그녀를 감싸고 있다. 지성의 영역이 미처 작동하기도 전에 아주 그윽한 미소를 짓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행복을 그리는 화가 에바 알머슨', 전시의 타이틀이 아깝지 않게 '행복'이란 단어를 자연스레 떠올리며 감상이 시작된다.


발걸음을 옮겨 이번엔 아주 화려한 꽃들로 둘러싸인 여인과 마주한다. <행복;Feliz, 2018, 100X81cm, Oil on cavas> 이 그림은 작품명 자체가 행복(Feliz)이며 거기에 더해 작품 속에 뚜렷한 필체로 'Feliz'라고 쓰여있기까지 하다. 꽃 속에 둘러싸여 마치 꽃의 여신이 된 것 같은 그녀를 바라본다. 그러면 곧 그녀는 계획 없이 그려진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여기엔 이 꽃 저기엔 저 꽃, 이렇게 하나하나 따지고 계산하여 그려진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저 작가 스스로 생각하는 '진심'의 길을 따라 한송이 한송이의 행복을 조화롭게 그려 넣었을 뿐이다. 꽃을 한 송이씩 그려나가는 작업은 다가오는 계획할 수 없는 행복의 순간들처럼 화가 스스로에게도 그렇게 다가왔을듯하다. 그림 앞에 선 우리는 각각의 꽃들을 바라보며 이들의 우열을 가리고 비교하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게 되며, 대신 작품 전체를 바라보며 각각의 서로 다른 꽃들의 조화와 그 속에 둘러싸인 행복한 여인을 발견하게 된다.




Flores dentro( Flowers inside), Serigrafia, 29 in x 41 in [출처:https://evaarmisen.com ]



시선을 옮겨 오른쪽을 바라보면 <행복;Feliz, 2018>과 나란히 걸린 <개화;En Flor, 2018, 100X81cm, Oil on cavas> 속 그녀가 보인다. 그녀는 역시 꽃에 둘러싸여 있지만 옆의 그녀와는 또 다른 모습이다. 그녀는 두 눈을 살며시 감고 있다. 이 그림의 작품 설명 말미에는 이런 구절이 쓰여있다.



"꽃으로 뒤덮여있는 평온한 얼굴은 잠들지 않고 깨어있는 얼굴입니다." 



진정한 행복을 경험하는 찰나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던 순간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때 비로소 '내면의 눈'이 깨어나고 행복이라는 깊은 감정을 더욱 밀도 있고 풍부하게 느낄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첫 공간에서 느껴지는 선명한 '행복'이라는 감정을 머금고 또 한 사람과 마주한다. 그녀는 바다에 감싸인 채 내면에는 붉고 수줍게 드러난 심장을 가지고 있다 <심해;Mar de condo,2019,130X162cm, Oil on cavas>. 그녀는 바로 에바 알머슨 자신이다.





아트샵에서 구매한 도록과 엽서



Room1 - Room8


다음에 이어진 그림에서 그녀는 그 수줍은 심장 속 불씨를 밖으로 꺼내 두 손에 쥐었다 <사랑의 불꽃;Amor encendido, 2017, 92X60cm, Oil on cavas>. 그리고 <공모자;Complices, 2016, 73X100cm, Oil on cavas>에서는 하나의 부끄럽던 심장이 당당한 두 개의 심장이 되었고 이제 스스로 붉은빛을 발산하기까지 한다. 전시를 감상하다 보니 그림마다 붙어있는 설명이 유난히 가깝고 다정하게 다가온다. 마치 에바 알머슨이 직접 쓴 것 같은 문체와 내용 덕분에 작가와 대화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에바 알머슨의 그림은 대체로 평온함과 행복감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유독 두 작품에서 복잡하고 불안정한 감정이 느껴진다<무섭지 않아요;Sin Miedo, 2015, 50X65cm, Oil on cavas>. 작가는 이 그림 속에서 두 눈을 가리고 있던 편견과 선입견을 벗어던지고 세상과 마주할 것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나는 이 그림을 보자마자 고민에 빠졌다. 시각적으로는 안대를 벗고 있는 순간으로 보였지만, 느껴지기엔  반대로 안대를 쓰고 있는 순간 같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의 편견이나 선입견은 사실 '눈'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평소 나의 생각의 반영이 아닐까 추측된다. 나는 그림을 감상하는 길지 않은 순간에 '눈을 가린 채 내면으로부터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오히려 더 순수하고 자유로운 눈으로 보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또 하나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 작품은 <실을  품다;No perder el hilo, 2017, 130X97cm, Oil on cavas>라는 그림이다. 평온한 얼굴 아래 심장에서 비롯된 한 가닥의 실을 움켜쥐고 있는 벌거벗은 그녀가 서있다. 그녀와 마주하자 이상하게 심장이 갈기갈기 찢기고 벌거벗겨진 듯 가슴 아픈 순간의 감각을 느꼈다. 실제로 그림을 보는 동안 나는 숨 이찬 느낌이 들었다. 이 그림 작품 설명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쓰여있다.



"그 어떤 바람이 불어와도 나를 위한 내 마음의 실 가닥을 놓치지 마세요."




실을  품다;No perder el hilo, 2017, 130X97cm, Oil on cavas  [출처:https://evaarmisen.com ]




그녀의 자화상이 주를 이루던 공간을 지나 후반으로 갈수록 '그녀의 사람들'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그녀가 자신과 그녀의 남편을 그린 그림에서는 샤갈의 그림에서 느꼈던 감상이 느껴진다. 그 느낌은 단순히 '사랑'이 아니라 "내가 널 사랑해."라고 하는 좀 더 구체적이고 표현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함께;Juntos, 2018,  130X97cm, Oil on cavas>. 그리고 두 명의 여인이 손을 잡고 있는 동일한 제목의 그림에서는 작품 설명을 보지 않고 단번에 두 사람이 자매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함께;Juntos, 2018, 116X92cm, Oil on cavas>.



에바 알머슨의 그림 속에는 종종 익숙한 한국의 모습이 담겨있다. <해변에서의 하루;Un dia de playa, 2019, 162X130cm, Oil on cavas> 그리고 그녀는 제주 '해녀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동화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엄마는 해녀입니다, 2017>. 그녀는 10년 동안 한국을 방문하고 몸과 마음으로 교류했고 그래서 마침내 진짜 한국을 그릴 수 있게 된 것 같아 보였다. 전시 후반으로 가면 유화 작업뿐 아니라 판화작업 그리고 세리그래프와 같은 다양한 작업의 결과도 볼 수 있다. 세월과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 조금씩 변해가는 그림의 주제와 표현방식들이 한 명의 솔직하고 꾸밈없는 사람, 에바 알머슨으로 다가오게 만든다. 그리고 전시의 마지막에 이르러 나는 비로소 그녀를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녀의 행복을 그리며 우리들 각자의 가슴속에 있던 서로 다른 모양의 행복을 꺼내도록 만드는 역할을 했다. 에바 알머슨의 전시를 보고 아름다움과 행복을 느꼈다면 사실은 그 작품 자체가 아니라 스스로가 아름답고 행복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철학자 김진영 선생님은 미술감상이란 '지도 없이 떠나는 여행'이라 표현했다. 그리고 덧붙여 지도 없이 떠나는 여행만이 지도를 그릴 수 있다고도 말했다. '에바 알머슨'이란 지도 없이 떠난 여행에서 나는 마침내 '에바 알머슨'의 지도를 완성했다. 그리고 작가와 작품의 진실이란 것은 고정된 것이 아님도 알게 되었다. 에바 알머슨의 자화상 속 다양한 꽃들처럼 전시장을 빠져나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은 저마다의 다른 모양과 색의 행복을 발견했을 것이다.





all images/words ⓒ the artist(s) and organization(s)

☆Donation: https://www.paypal.com/paypalme/artlecture

글.김정아_그림그리는 작가_https://artlecture.com/ecok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