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개인적으로 다큐멘터리 사진을 좋아합니다. 기억을 기록하는 작업에는 그것만이 주는 매력이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사진이 기록하는 기억의 층위는 폭넓습니다. 그건 한 사람의 일기가 될 수도 있고, 사회의 풍경을 채집하는 앨범이 될 수도 있고, 한 국가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기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개인, 사회, 국가를 둘러싼 역사를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은 흘러가는 시간에 사라져 버릴 수밖에 없는 모든 기억을 보존하는 작업입니다.
그중에서도 무엇보다도 역사의 상처를 담는 작업을 소중히 여기고, 꾸준히 이런 작업을 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분들을 존경합니다. 시대의 위정자들이 숨기고, 지우려 하는 진실을 기록하는 사진가들이 없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지금보다 훨씬 더 암울할지도 모릅니다.
필자는 얼마 전 한국 근현대사의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는 세 사진가분의 작업을 조금 더 가까이서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다큐멘터리 사진가 겸 기획자로 활동 중인 신웅재 작가님의 제안으로 시작된 다큐멘터리 사진 계간지 <리프레임>의 창간호에 실릴 작가분들을 인터뷰하면서 각자 하는 프로젝트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오늘날 한국의 다큐멘터리 사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재갑 작가님의 일제 강제노역에 대한 기록 <상처 위로 핀 풀꽃>, 김흥구 작가님의 제주4.3에 대한 기록 <트멍>, 그리고 주용성 작가님의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희생자에 대한 기록 <붉은 씨앗> 프로젝트는 우리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슬픔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위정자들 때문에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숨죽여야만 하는 평범한 이들의 목소리가 세 사진가의 프레임 안에서 되살아났습니다. 학살터에서 발굴한 아이의 신발과 노리개 앞에서, 스산한 바람만 남아 흐르는 칠십여 년 전의 현장 앞에서, 무수한 목숨을 삼켜 버린 채 바다 위에 떠 있는 탄광 앞에서 스러져 간 이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옵니다.
언뜻 서로 다른 사건을 담고 있는 프로젝트들은 역사의 거대한 틀 안에서 하나로 합쳐집니다. 나라를 팔아먹었던 이들이 다시 나라를 지배하고, 권력과 지배욕을 채우기 위해 평범한 양민들을 학살하라고 명령했던 이들은 독재와 쿠데타를 거치며 꿋꿋이, 오히려 더 공고히 살아남았습니다. 청산되지 않은 이들의 유령이 2024년 대한민국 위정자들의 얼굴 위로 겹쳐 보입니다. 과거의 망령이 비상계엄이라는 망상을 등에 업고 오늘을 어슬렁대고 있습니다.
한 시인은 김흥구 작가의 제주4.3 작업을 보며, 우리가 결코 잊어선 안 되는 건 바로 책임을 묻는 일이라 했습니다. 그저 미친 자의 헛소리 같았던 몽상이 현실이 된 지금, 우리가 결코 잊어선 안 되는 일은 책임을 묻는 일이라는 시인의 말을 곱씹어 봅니다.
다큐멘터리 사진 계간지 <리프레임> 1호의 창간에 맞춰 서촌 갤러리 류가헌에서 창간 기념 전시와 작가와의 만남 행사도 함께 열립니다. 전시는 오는 12월 17일부터 29일까지 열리며, 12월 19일(목) 오후 6시에는 세 사진가분들 및 편집자이신 신웅재 작가님이 참여하여 독자와의 만남을 갖습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께서 이번 전시와 작업을 보며 지금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다큐멘터리사진 계간지 <리프레임> 창간 기념전.
- 제목 : 《리프레임: 사진으로 기억하고, 사유하고, 행동한다》
- 일시 : 2024년 12월 17일(화) ~ 12월 29일(일)
- 장소 : 갤러리 류가헌 1관(2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