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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이고 장엄한 빛

제이콥 모어, <대홍수>, 1787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 <대홍수>, 1805년 전시뱃

존 마틴,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의 파괴>, 1822
빛은 선과 진실, 어둠은 악과 파멸을 상징하는 표상을 빌어 영적인 주제를 통해 그려낸 작품들과 막강한 자연의 힘을 묘사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빛과 어둠을 표현해 낸 색채감과 작가의 공간에 대한 상상력, 실제로 시간이 흘러가고 있는 것 같은 생명력이 느껴져 정말 놀라웠다. 성경 속의 대홍수 사건에 대해 제이콥 모어와 윌리엄 터너는 다른 시간을 포착하여 표현하였는데, 제이콥 모어의 <대홍수>는 세상의 모든 것이 물에 잠기고 난 뒤를 이야기한다. 고요함과 공기의 습기마저 느껴지는 색채 표현과 어둠 가운데 빛이 드러나며 절망 가운데 소망을 품게 만드는, 마음 가운데 재앙이 아닌 오히려 구원의 불빛을 묵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윌리엄 터너의 <대홍수>는 물에 뒤덮히는 그 순간을 묘사했는데, 바람과 물의 움직임이 느껴질 정도로 그 생동감이 실로 엄청나다. 하늘이 물이 되어 그대로 쏟아지는 것 같은 홍수 속에서 사람들이 뒤엉켜 살고자 몸부림치고 위기 가운데 서로를 구하는 여러 인간에 대한 묘사가 매우 눈길을 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바라보며 자연 앞의 인간의 무력한 모습에 대해, 자연 혹은 신의 존재와 위력에 대해, 나의 마지막 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존 마틴의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의 파괴>는 화산 폭발이라는 재앙을 선명하고 세밀하게 묘사해 화폭 안으로 끌어들이며 마치 그림 속에서 함께 사건을 겪는 듯한 착각으로 몰입하게 만든다. 용암에 잠겨버린 도시, 붉은 화산재 구름으로 덮인 하늘, 도망가는 사람들, 그 움직임이 생생하게 느껴져 인간의 삶을 뒤엎어버린 재앙의 파급력과 그에 대한 두려움까지 느끼게 된다. 자연 앞에 지극히 작은 존재로, 마음이 겸허해진다.
자연의 빛
우리는 자연의 빛에 생각보다 민감한데, 그 증거 중 하나로 오늘의 날씨를 찾아보는 모습을 들 수 있다. 날씨와 빛의 상관관계에 대해 따져보지 않더라도 날씨의 변화 속에서 빛이 변화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우리는 모두 동의할 것이다.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구름이 움직이고, 바람이 흐르며, 그 흐름에 따라 빛이 이동한다. 그리고 그 빛의 움직임은 우리의 바이오리듬에 꽤나 큰 영향을 미친다. 자연을 충분히 마주해보았다면, 자연과의 교감에서 오는 빛의 교감이 정말 온 몸의 세포를 깨우는 듯한 감각이라는 의견에, 목격한 빛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붙잡고 싶은 아쉬움을 느껴본 경험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200년 전의 예술가들도 지금 우리와 같이 변화무쌍한 날씨에 영향을 받고 영감을 받아 화폭에 담아내었다. 특히 존 컨스터블은 순간적인 기상현상을 포착하고 객관적인 관찰을 통해 자연의 진실을 그려내고자 했다. 자신이 머물고 있는 지역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그리며 한 장소에서 목격되는 다양한 자연의 변화를 수많은 습작으로 기록하고 자신의 화실에서 화폭을 채워나갔다. 아래 그림은 전시 작품 중 하나인 <하리치 등대>와 존 컨스터블이 전문 판화 제작자인 데이비드 루카스와 협업에서 제작한 [다양한 영국 전원 풍경]의 22점 중 하나인 <봄>의 그림이다. <봄>에 나타난 풍경은 작가의 고향인 이스트 버골트이며, 밭을 가는 모습과 함께 대형 우박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는 것이 담겨있다. 빛과 어둠의 대조로 변화무쌍한 날씨를 생생하게 표현한 그림들을 쭉 따라가며 보고 있노라면 어린 시절부터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 자연 앞에 묵묵히 서있었을 그의 시간과 시선이 오롯이 느껴진다.

존 컨스터블, <하리치 등대>, 1820년 전시

<봄>, 1830년 출판, [다양한 영국 전원 풍경] 수록
존 컨스터블의 작품 외에도 존 린넬, 윌리엄 터너, 존 브렛, 클로드 모네, 알프레드 시슬레, 카미유 피사로, 필립 윌슨 스티어, 아르망 기요맹의 그림을 볼 수 있다. 그 중 가장 좋아하는 존 브렛과 클로드 모네의 그림을 글에 옮겼다. 존 브렛의 <도싯셔 절벽에서 바라본 영국 해협>은 1870년 여름에 영국 남서부 해안을 항해하며 바다의 변화를 필기하고 밑그림과 습작을 바탕으로 그린 작품이라고 한다. 구름 사이로 내리쬐는 빛, 그 빛이 바다에 닿는 순간, 그리고 형언할 단어가 없는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색깔과 바람에 흔들리는 바다의 물결까지 그의 묘사가 너무나도 섬세해 움직이는 것만 같은 그림 앞에서 한참을 서있었다. 특히 ‘빛비’가 내리는 것 같은 그 풍경은 실제 그 빛의 온도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클로드 모네의 작품 중 <포흐빌레의 센강>을 특히 좋아하는데, 전시를 통해 관람할 수 있어서 반갑고 또 새롭게 그림을 볼 수 있었다. 소름돋는 세부 묘사가 드러나는 작품은 아니지만, 모네 특유의 색으로 분위기를 다 말해주는, 그 공기를 느끼게 해주는 힘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아침 안개 낀 강의 모습과 물에 비친 빛의 풍경이 무심한 듯 자리하지만 깊이 끌어당긴다.

존 브렛, <도싯셔 절벽에서 바라본 영국 해협>, 1871

클로드 모네, <포흐빌레의 센강>, 1894
실내의 빛
빌헬름 함메르쇼이와 윌리엄 로덴슈타인의 실내화도 매우 좋았지만 필립 파레노의 작품은 기분 나쁘지 않은,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작품의 캡션을 보고 작품이 어디있나 둘러보는데 보이지 않았다. 의아함에 다시 캡션을 읽어보니 재료가 카펫! 카펫 위를 걸으며 이미 작품을 겪고 있는 중이었다. 저녁 6시, 바닥에 드리워진 빛과 그림자를 통해 우리가 빛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그 공간이 작품으로 인해 계속 저녁 6시에 머문다는 생각에 재밌어서 웃음이 피식 나면서도 특정한 시간이 지속적으로 머무는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시간을 제어할 수 없는 인간의 순간에 대한 갈망이 느껴지기도 했다.

필립 파레노, <저녁 6시>, 2000-6
빛의 효과
빛의 반사와 굴절, 반사광 등 빛 자체에 대한 과학적 탐구를 통해 자신의 예술세계에 접목시킨 작품들을 이 섹션에서 만나볼 수 있다. ‘빛의 화가’로 불리는 윌리엄 터너의 빛에 대한 연구도 엿볼 수 있고, 릴리안 린의 키네틱 작품, 이와오 야마와키, 에드문트 콜라인, 스테판 테메르손, 기요르기 케피쉬, 하나야 칸비, 루이지 베로네지의 실험적인 사진 작업, 야요아 쿠사마의 설치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그 중 아래 사진은 인상 깊었던 에드문트 콜라인의 <무제(데사우바우하우스, 예비 과정 요제프 알베르스 수업, 오티베르거의 물질 연구)>와 기요르기 케피쉬의 사직 작업이다.

에드문트 콜라인,
<무제(데사우바우하우스, 예비 과정 요제프 알베르스 수업,
오티베르거의 물질 연구)>, 1927년경
에드문트 콜라인이 데사우 바우하우스에서 수학하던 시절, 알베르스의 수업 중에 동료 학생인 오티베르거의 작품을 촬영한 사진인데, 3가지의 매력적인 지점이 시선을 끌었다. 첫째, 에드문트 콜라인의 빛의 사용이었다. 강한 직광으로 구조물의 그림자를 드리워 피사체의 구조를 선명하게 드러낸 촬영 방식이 독특한 존재감을 형성했다. 빛이 닿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명암의 대비가 규칙적인 패턴을 만들어내며, 본래의 물질과는 또 다른 형상을 만들어낸다. 이 한 장의 사진이 일상 속에서 빛이 닿는 자리를 떠올리게 만들며, 그 빛의 흔적들을 더 쫓게 만드는 힘을 발산한다. 둘째, 오티베르거의 거즈와 플라스틱을 사용하여 만든 격자형 구조물이다. 상반되는 소재의 사용에서 오는 두 질감이 이상하게 조화롭다. 그리고 거즈와 플라스틱 각각에 비치는 빛의 모습이 너무나도 달라 소재에 따라 다르게 반사되는 빛의 모습, 그 영향이 매우 흥미롭다. 셋째, 작품 설명에서 읽은 모호이너지의 제안이다. 모호이너지는 구조물이든 직물이든 파열면이든 간에 실재하는 것의 외견을, ‘독특한 관점이나 사선, 상향, 하향, 왜곡, 그림자 효과, 색조 대비’를 이용해 순수한 빛의 현상으로 변환시키라는 제안을 했고, 이로 인해 에드문트 콜라인은 빛과 그림자를 강조하게 됐다고 한다. 빛을 탐구하던 예술가들이 모여 있던 100년 전 그 수업이 너무나도 궁금해졌다. 사실, 탐이 났다.
아래 사진들은 모호이너지의 영향을 받은 기요르기 케피쉬의 사진이다. 1920년대 말 모호이너지의 베를린 디자인 하우스에 합류한 그는 ‘새로운 시각’에 눈을 뜨게 됐다고 한다. 케피쉬는 거울, 필터, 프리즘을 이용해 실험하면서 빛의 특성을 고찰하고 외형적 특질에 관심을 쏟았으며, 여러 추상적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원과 점>은 물에 반사되는 빛을, <구조 포토그램>은 빛에 그대로 노출된 잎의 이미지를 담은 사진들이다. 정말 다양한 시도를 통해 사진을 그려냈던 케피쉬. 사진을 보면, 관념을 깨고, 영감을 투영하며, 창작에 열을 올리고 있는 그의 모습이 그려진다.

기요르기 케피쉬, <원과 점>, 1939-40년경 / 기요르기 케피쉬, <구조 포토그램>, 1939-40년경
빛의 색채
요제프 알베르스는 1950년에 <정사각형에 바치는 경의를 위한 연구> 작업에 착수한다. 색의 심리적 효과, 상호적 효과 등을 연구하며, 물체에 반사되는 빛이 색으로 인지되는 그 과정에 대해 탐구하며 연작을 발표하는데, 그 중 3점을 만나볼 수 있었다.
2, 3개의 정사각형이 아래쪽으로 중심이 쏠린 형태로 겹쳐있는데, 처음에는 형태가 정말 정사각형인지 따져보게 되었다. 서로 다른 크기의 정사각형이 포개져 있는 것이 그 형태의 균형을 다르게 보이게 만드는 게 흥미로웠고, 집중해서 보다보니 색이 만들어내는 거리감, 단독으로 색을 보았을 때와 다르게 느껴지는 밝기 등을 발견하며 인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고찰하게 되었다. 눈으로 바라보는 색이 사실은 모두 다 같은 빛 아닌가. 그 반사된 빛에 대한 인지를 소통을 위해 ‘색’을 정해놓고 사용하고는 있지만, 사람마다 각각의 인지가 다 다르니, 내가 아는 그 파랑과 타인의 그 파랑이 절대적으로 같을 수가 없지 않은가. 세상에 얼마나 수많은 색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세상이 형언할 수 없는 수만 가지 색으로 차오르는 것만 같았다.

요제프 알베르스, <정사각형에 바치는 경의를 위한 연구-밝게 빛나는>, 1963 (좌)
요제프 알베르스, <정사각형에 바치는 경의를 위한 연구-노랑에서 점점 벗어나는>, 1964 (중)
요제프 알베르스, <정사각형에 바치는 경의를 위한 연구>, 1964 (우)
페어 화이트의 설치 작품을 마주하는 순간, 규모도 규모지만 디테일에 놀라게 된다. 482가닥의 줄에 원반 모양의 종이 조각들이 엮여져 있는데, 나비처럼 날아오를 것만 같다. 겹쳐진 색의 대조와 조화가 입체적으로 보여서였을까. 움직임이 발생하지 않았는데, 엄청난 운동력이 느껴진다. 실재하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 운동력에 이끌려 모빌을 가르고 작품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욕구를 꾹 참았다. 그리고 ‘곧 바람이 불어온다면’이라는 가정으로 머릿속으로 재밌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작가는 일상의 잊혀진 단면에 관심을 갖으며 작품에 투영한다고 하는데, 이 작품의 진짜 시작, 그녀의 아이디어의 시작에서 어떤 일상의 포착이 있었을지, 그 사소함이 너무 궁금하다.

페이 화이트, <매달려 있는 조각>, 2004
빛의 재구성
이 섹션에서는 댄 플래빈의 형광등을 재료로 삼은 설치작품, 피터 새쥴리의 색에 대한 착시를 담은 작품, 도시 환경에서 경험하게 되는 빛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이비드 바첼러의 작품, 캐서린 야스의 유색 음화와 양화 이미지를 결합한 사진 작품, 색 인지에 대해 새로운 경험을 제시하는 올라퍼 엘리아슨의 작품, 브루스 나우먼의 일상 가운데 빛의 배치에 따른 특별한 경험을 제시하는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그 중 실내의 빛 섹션의 필립 바레노의 <저녁 6시> 다음으로 웃음을 터뜨리게 한 작품이 있었는데, 바로 브루스 나우먼의 <거울과 하얀 등이 있는 통로>이다.

브루스 나우먼, <거울과 하얀 등이 있는 통로>, 1971
독특한 공간이 형성되어 있는 작품 앞에 서있노라면 웃음이 픽하고 새어나온다. 지나갈 수 없는 공간인데, 들어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에 사로잡히고, 깊고 길게 열린 통로에 대해 이상한 갈망이 생기기 때문이랄까. 무한히 확장되는 공간의 착각 앞에 불가능한 도전을 받는 느낌이 들면서 약이 오르게 만드는 재치가 느껴진다. 브루스 나우먼은 1970년대 초 혁신적인 미국의 예술가로 자신의 신체와 작업실을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펼치며 예술의 생산물을 예술가의 모든 행위로 개념을 확장한 인물이다. 영화, 비디오, 사진 작품으로 예술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게 만드는 그의 작품들은 모든 것을 오롯이 느껴보라고 이야기한다.

올라퍼 엘리아슨, <노랑 대 보라>, 2003
개인적으로 올라퍼 엘리아슨의 작품들을 매우 좋아하는데, 실제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이 전시를 오픈한 당일, 한달음에 찾아갔다. 그리고 빛에 대한 개념에 대해 새로운 경험을 제시하는 그의 작품은 한참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제자리에서 회전하는 노란색 투명한 원반에 투광 조명등이 빛을 비춘다. 노란색 모양의 원이 벽에 그려지고 특수 필터에 반사된 빛은 보라색 형체를 드러내며 궤도를 만들며 전시 공간에서 움직인다. 관람자는 그 색의 운동 속에 함께 존재하는 경험을 하게 되며, 설치물과 묘한 거리감과 동질감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빛과 색에 대해 예술적, 과학적 탐구를 지속적으로 이어온 올라퍼 엘리아슨은 빛의 물질적, 비물질적 속성에 대해 끊임없이 실험을 이어오고 있다. 색상환의 정반대에 위치한 노랑과 보라. 결국 그 둘은 하나구나. 우리의 인지가 둘을 만들어내지만 결국은 빛에서 출발한 같은 존재라는 생각으로 이어지며 여러 가지 상념에 젖게 된다. 우리의 개념이나 생활 속의 정반대의 무언가들이 합쳐질 수 없고 절대 만날 수 없는 것 같아도 결국은 그 시작이, 그 본질이,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극과 극에서 대립되어 존립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하나로 합해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가능성에 대해 희미한 희망을 마음 가운데 품게 된다.
광활한 빛

제임스 터렐, <레이마르, 파랑>, 1969, 도록 사진 촬영.
제임스 터렐의 작품은 먼저 뮤지엄 산에서 만나 본 경험이 있다. 그의 작품은 공간 자체에서 빛으로 압도하며 자연 그대로의 빛에 눈길을 뗄 수 없게 만들어 몰입의 경지로 이끌었다. 그래서 이 전시에 제임스 터렐의 작품이 전시되어있다는 소식을 듣고, 공간에 어떤 작품이 어떻게 설치되어 있을까 많은 기대와 궁금증을 품고 접하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여서 공간에서 주는 압도감을 느낄 수 있는 정도는 아니였지만 파랑이라는 색에 대해 집중하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 겪는 파랑이었다. 파랑. 살면서 얼마나 수많은 파랑을 보고, 만나왔던가. 그런데 난 파랑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지? 파랑에서 더 나아가 다른 색에 대해서도 난 무엇을 알고, 무엇을 봐왔던 것인지, 보이는 것을 어떻게 보고 믿을 수 있는 것인지, 색에 대해, 보다라는 행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사진인가, 그림인가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만든 작품이 있었는데, 바로 비야 셀민스의 석판화이다. 그녀가 표현한 바다와 사막, 하늘, 은화를 볼 수 있었는데, 캡션을 자세히 보지 않았더라면, 흑백사진이라고 착각했을 정도로 사실적 묘사가 매우 놀라웠다. 얼마나 수많은 연필화를 그렸기에 바다 위에 반짝이는 빛이 파도의 물결에 생동감을 더하고, 모하비 사막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까. 그녀가 1970년대 캘리포니아에서 생활하며 마주했던 광활한 자연은 어떤 것이었을까. 도시 생활에서는 좀처럼 느끼기 힘든 자연의 광활함을 그림을 통해 마주하며, 자연의 위대함과 생명력에 경외심을 느끼게 된다.

비야 셀민스, <바다>, 1975

전시를 나서며
이 전시는 ‘빛’에 대해 탐구해 온 여러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우리 일상의 ‘빛’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색과 형태, 물리적인 요소, 실험적 시도를 통한 추상화, 모두가 다 사실 그자체이며, 명확한 존재들이다. 그리고 ‘빛’을 묵상하는 것은 곧 ‘살아있음’을 묵상하게 만들며, 세상의 모든 존재에 대해 바라보는 행위에 대해 살피게 된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느끼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다시 물으며 지금까지의 모든 감각을 환기시켜준다.
일상의 본질에 대해 깊게 파고들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렇다면 ‘빛’을 사랑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나보면 어떨까.
전시는 5월 8일까지 이어진다.
/ 글. 김진주

작품 사진 출처_tate.org.uk, 전시 도록 촬영.
참고 서적_전시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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